생태계 보고 연천을 폐기물 무덤으로 만들지 말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경기 연천의 SRP공장에서 매연을 뿜어내고 있다. 황의혁 제공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연천군은 임진강과 한탄강 두 개의 강이 흘러 만나는 곳이다. 임진강의 경우 중상류는 북한에 속해 있지만, 중하류 이남은 휴전선의 민간인통제 지역을 줄곧 흐른다. 다행히 이곳은 개발행위가 거의 없는 곳이다 보니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다. 반면 한탄강은 북한의 평강군에서 발원하여 철원을 거쳐 흐르면서 연천까지 흘러내려온다. 규모가 큰 강으로 알려지지는 않지만, 5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인해 형성된 용암 지대가 점차 물길로 인해 침식되면서 만들어진 주상절리와 기암절벽이 지금의 임진 한탄수계의 비경을 이룬다.
임진 한탄강의 지질학적 배경은 바로 선사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이다. 2020년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타 지역의 강과는 전혀 다른 자연유산의 가치를 갖는다. 이런 지질학적 특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바로 강을 따라 발달한 자연생태계이다. 접경지역이다보니 사람의 손길을 덜 탄 때문이기도 하지만, 넉넉한 수량으로 흐르는 두 강물 주변으로는 다양하고 풍부한 생물권이 잘 발달되어 있다. 계절마다 야생 동식물들을 달리 만날 수 있고,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놓인 희귀 철새들이 철마다 찾아든다. 그만큼 연천의 자연환경이 아직까지는 덜 오염되어 있다. 유네스코도 이런 자연생태계 가치를 인정해서 2019년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그래서 흔히들 연천을 '유네스코 타이틀 2관왕 지역'이라고 부른다.
'유네스코 타이틀 2관왕' 지역을 오염시키는 것
현재 연천의 인구는 빠르게 줄고 있다. 경기도의 통계에 의하면, 1966년엔 7만 명에 육박했던 인구가 2024년 2월 말 현재 4만 2531명까지 줄어들었다. 반면 경기도의 인구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04년 경기도와 서울이 1,000만 인구를 각각 기록하고 있다가, 현재는 경기도가 1400만을 갓 넘어섰고 서울은 960만을 조금 넘는다. 그럼에도 연천의 인구는 좀처럼 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경기도로 이주해오는 사람들에게 연천이나 인근의 작은 도시들은 매력적이지 않다는 증거이다. 청정하고 생물권 보전이 잘 되어 있다는 연천이 왜 이렇게 소멸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연천이 지닌 자연유산이나 지정학적 특수성은 이 지역의 경제적 산업적 활동 측면에서는 오히려 제약이 되어왔다. 즉 군사시설보호구역에다, 수도권에 속하므로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적용받아야 한다. 유적지가 많으므로 문화재보호법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은 도로를 내고, 산업단지와 아파트단지, 학교를 세우기에 분명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연천의 젊은이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교육이나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등진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연천인구의 29%를 차지하고 있는 점이 이것을 설명한다.
이렇게 제약이 많아 지역의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되고 있음에도, 연천군의 한가운데에는 온갖 폐기물처리업체들이 난립해 있다. 청산면 대전면 산업단지 내에는 염색공장 15개 이상 입주해 있고, SRF(고형폐기물연료) 쓰레기 소각장, 아스콘 공장과 2곳의 건설폐기물 처리장이 있다. 연천군에서 나오는 생활쓰레기를 태우는 소각장도 있다. 그런데다 2022년에는 SRF 열병합발전소마저도 새로 준공되어 영업에 들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30년 이상 환경오염에 피해를 받고 살아왔던 이 지역의 주민들은 연천군에 SRF 열병합 발전소의 사업허가를 내주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연천군에서는 사업허가를 내주고 말았다. 결국 기댈 곳 없는 주민들은 오염에 따른 극심한 피해를 호소하며, 사업승인 철회 및 청정연료로의 전환 등 외부기관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전곡읍의 외곽 간파리에는 폐유정제공장과 건설폐기물업체, 음식물쓰레기처리업체, 의료폐기물소각장 등이 단지를 이루어 가동되고 있다. 연천에는 왜 이렇게 온갖 오염물질을 처리하는 폐기물 업체들만 모여드는가.
설상가상으로 규모가 큰 산업폐기물매립장 시설을 한탄강이 통과하는 전곡읍 고능리 지역에 설치하겠다고 해서 연천주민들이 발칵 뒤집혔다. 주민들이 나서 반대투쟁을 벌인 지 올해로 7년째 되고 있다. 이 투쟁은 2018년부터 벌어져 왔는데, 업체 측의 땅 용도변경 요청을 연천군과 경기도가 부결시켰고, 연천군의회도 반대의사를 분명히 해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산업폐기물매립장을 결사반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던 현재의 군수는 입장을 바꾸어 땅 용도변경뿐만 아니라 매립장사업까지도 조건부입안을 전제로 진행했다. 연천군 의회의 강경하던 반대 목소리도 소수 의견으로 잦아들었다. 지역 국회의원마저도 이런 사업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다닌다. 이제 산업폐기물매립장 설치건은 군수의 최종승인절차를 눈앞에 두고 있다.
천혜의 자연유산과 삶의 터전 유린
소멸위기에 놓인 수도권 안의 변방 연천지역이 과연 이대로 흘러가도 좋은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물음에 반대의견을 제기한다.
첫째, 오염물질 배출시설들의 연천지역 밀집도가 너무 높다. 1990년대부터 난립해온 염색공장 등을 비롯해 온갖 종류의 폐기물 사업들이 들어와 있다. 대전리와 간파리에는 아예 폐기물처리 산업단지를 이루고 영업을 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3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었는데도 비집고 들어와 자리잡은 것이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오염물질 배출업소들이 모여 있을까 싶다. 이런 불균형을 고치지 않고 알아서 인구가 늘어나가기를 바랄 수는 없다.
둘째, 폐기물처리사업이 무엇을 망치는가를 보라. SRF소각시설로부터 직선거리 60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의 생활은 환경오염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미 암 발병에 의한 사망건수가 높아졌음을 호소하고도 있다. 생활터전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청정하던 자연환경이 당연히 오염될 수밖에 없다. 생태계에의 영향은 인간이 단기간 내에 알아챌 수 없다. 지금의 오류는 서서히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그 영향을 나타낸다. 그래서 환경은 미래세대의 것이라고 한다. 연천이 물려받은 천혜의 자연유산과 선조 때부터 살아오던 삶의 터전이 폐기물업체 난립이라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유린당하고 있다.
셋째, 님비(Not in my backyard)가 아니다. 폐기물은 발생지에서 책임지고 처리해야 한다. 이 원칙이 지켜져야만 폐기물 발생에 대한 책임도 지울 수 있고, 결국에는 줄이려는 노력도 하게 된다. 문제는 폐기물을 스스로 처리하는 자가처리 대신 위탁처리하는 경우이다. 산업폐기물매립의 경우 공공이 아닌 민간 매립시설에 맡기는데, 50~60% 이익률을 거둘 정도로 산업폐기물 처리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다. 그러다보니 폐기물업체는 땅값이 싼 인구소멸지역 같은 곳에 땅을 사두고 매립장을 지으려 한다. 대개 소멸지역엔 산업폐기물 발생량이 얼마 되지도 않은데 폐기물매립장에 땅을 내주는 꼴이 된다. 일단 한번 들어서면 사유재산이다보니 주민감시나 감독이 자유롭지 못하며 법적 강제성을 가질 수도 없게 된다.
넷째,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폐기물사업이라도 유치해야 하는가? 단기간의 성과에 집착한 성급한 지자체장이라면 이런 상상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한 지역구 국회의원이 "가난한 양반이 가족을 굶주리니 뭐라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논리에 연천 주민은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의 눈에는 연천이 그저 가난한 양반의 처지로 보이는가. 그런 인식은 연천의 생태적 자산의 가치와 잠재력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부여받지 못한 빛나는 선사유적에, 아무에게나 허용하지 않을 자연유산에, 통일시대의 첫 관문이 될 이 땅의 가치를 못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기후위기시대에 대응하는 지역발전의 모델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다섯째, 이 지역에 필요한 것은 건강한 생산과 제조이지, 죽은 폐기물 처리가 아니다. 죽어가는 폐기물을 처리하는 사업이 이 땅에 건강한 순환을 불러올 수 없다. 오히려 건강한 생산을 위축시킬 뿐이다. 폐기물 처리를 쉽게 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제조업체가 몰릴 것이다? 그것은 착각이다. 쓰레기통 주변에는 아무렇게나 던져진 쓰레기만 많아질 뿐이다. 쓰레기 버리기 쉬우니,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폐기물사업 받아서 연천의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지역 국회의원과 군수를 보면서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임진-한탄강 생물보전지역 폐기물처리업체 난립 막기 위한 1만 명 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