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주춤하는 에너지 전환, 투트랙 전략이 해답일까?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 3년간, 재생에너지ETF(연청색), S&P500(청색), 화석연료 ETF(분홍색) 수익률 추이/Tipranks
“에너지 전환에 대한 현실 직시가 필요하다.”
지난 4월, 세계최대 투자은행 JP모건이 글로벌 에너지 전략보고서를 통해 클라이언트들에게 전한 말이다. JP모건은 지금까지 무려 2000억달러(274조원에)에 달하는 금액을 친환경 부문에 투자하면서 에너지 전환을 이끄는 금융계의 ‘큰손’으로 여겨졌다. 이들이 입장을 바꾸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JP모건이 제시한 가장 큰 이유는 ‘매크로 환경의 변화’다. 높은 금리, 지정학적 리스크, 공급망 이슈 등 글로벌 투자 환경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수익성 높은 전통 에너지원을 배제한 채 친환경 투자에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재생에너지 산업은 고금리 등 매크로 환경에 굉장히 취약한데, 이로 인해 최근 몇년 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 세계최대의 재생에너지 ETF 아이셰어즈 글로벌 청정에너지 ETF(ICLN)는 지난 3년 간 -32.45%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92%의 수익률을 기록한 화석연료 ETF에 비해 부진한 재무 성과를 기록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곤란한 상황이다. 장기적인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에너지 전환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해야하는데, 클라이언트의 선관의무 및 충실의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수익률을 포기하면서까지 에너지 전환을 추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 또한 마찬가지다. 장기적 탄소중립을 위해 단기적 재무성과를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에 주요 금융기관 및 기업들은 화석연료와 친환경 산업에 동시에 투자하는 ‘투트랙 전략’을 취하고 있다. 실제 지난 4월, JP모건의 모회사 JP모건 체이스 또한 2030년까지 지속가능개발에 대한 투자에 2.5조달러(342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투트랙 전략 통해 수익 꾀한 정유 및 자동차 업계
토탈 에너지스는 에너지 다각화 전략을 통해 화석연료와 저탄소에너지 투자를 동시에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Total Energies
먼저 글로벌 정유업계를 살펴보면, 이들은 친환경 부문 투자 확대와 원유 생산 증가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는 모양새다.
토탈에너지스의 경우, 2023년 저탄소 에너지 부문에 168억달러의 금액을 투자했는데, 2024년에는 투자금액을 17~18%가량까지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BP의 경우에도 2023년 12억6000만달러(약 1조7000억원)의 친환경 부문 투자 규모를 전년 대비 25% 가량 늘렸고, 엑손모빌 또한 작년 12월 기업경영계획 발표를 통해 향후 3년간 저탄소사업에 대한 투자 목표를 150억달러(약 20조원)에서 200억달러(약 27조원)로 늘리겠다고 선언한바 있다.
반면 원유 및 천연가스 증산에 대한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셸(Shell)은 2024 에너지 전환전략을 통해 기존의 탄소중립 목표를 하향하고, 수익성 증대를 위해 원유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토탈에너지스 또한 이번 달 초 에너지 전환계획을 업데이트 했는데, 이들은 ‘에너지 다각화’(Multi-Energy Offer) 전략을 제시하며 천연가스와 원유 생산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투트랙 전략 하에 정유업계는 원유 생산을 지속하면서 높은 재무 성과를 보이고 있다.특히 2022년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인해 반사이익을 보면서 무려 4조달러(5475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고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2024년 들어 글로벌 전기차 Top 2 테슬라와 BYD의 판매량이 급감했다./Chartr
자동차업계에서도 투트랙 전략이 효과를 보고 있다.
부진했던 재생에너지 시장과 달리, 전기차 기업들은 지난 몇년간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해왔으나 올해 들어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한 신호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하이브리드 차를 중심으로 투트랙 전략을 수립한 토요타와 현대자동차는 높은 매출성장세를 기록하며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실제 전기차 시장에서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는 테슬라와 BYD는 2023년까지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했으나, 올해 들어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투자자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이외에도 전기차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통계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일례로 미국 자동차 시장 정보 전문회사 에드먼즈(Edmunds)에 따르면, 지난 1년새 미국에서 전기차 출고 후 판매에 소요되는 시간이 25일에서 65일로 크게 늘며 전기차 재고가 쌓이고 있다. 또한 에너지 전문 리서치 기관 SNE리서치는 올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 대수가 1641만대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16.6% 성장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2년과 2023년 성장률이 각각 56.9%와 33.5%였던것에 대비하면 성장 둔화세가 두드러지는 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전기차 시장이 캐즘 (Chasm⋅첨단제품이 얼리어답터 중심의 초기시장에서 대중화로 넘어가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수요가 줄거나 정체하는 현상)에 빠졌다며 부정적인 미래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반면 하이브리드 차는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하며 산업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실제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2024년 2월 기준 미국 시장에서 하이브리드 차의 성장세는 전기차에 비해 무려 5배나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지프 랭글러 하이브리드와 포드의 하이브리드 모델은 전년 동월 대비 37%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현대차 또한 지난달 미국에서 사상 처음으로 하이브리드 모델 판매량 1만대를 돌파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주력 차종으로 내세웠던 토요타와 현대자동차는 역대 최대 매출기록을 갈아치우며 매출기준 글로벌 자동차 시장 1,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재생에너지 산업 부진은 단기적...장기적 전망은 밝아
미국의 2024년 발전원별 신규발전계획/ EIA
현 시점에서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친환경 전환에 대한 대응 전략이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 배터리, 수소, LNG선박 등 친환경 전환과 관련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데, 고금리 및 공급망 이슈로 인해 친환경 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미래 사업계획 수립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글로벌 전문가들은 현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투자자, 에너지업계, 싱크탱크 등 주요 기관들이 동의하는 부분은 재생에너지 시장이 다시 회복세에 들어설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 재생에너지 기업들의 재무적 성과는 좋지 못했지만, 글로벌 재생에너지 설치량은 꾸준히 성장세를 보여왔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풍력에너지의 전력생산이 천연가스를 넘어섰고, 미국 에너지관리청(EIA)는 미국의 올해 신규발전량 중 태양광에너지가 58%를 차지하며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즉, 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탄탄하다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친환경 사업의 주된 장애물은 높은 금리와 과공급 문제다.
재생에너지 사업의 경우, 많은 초기자본비용아 요구되나 보니 부채비율이 높다. 때문에 높은 금리는 재생에너지 사업의 수익 약화에 직결된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중국이 자국을 제외한 글로벌 재생에너지 설치량보다 더 많은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해외에 수출하면서 과공급 현상이 발생했다.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공급하는 발전사업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재생에너지를 설치할 수 있었지만, 제조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게됐다.
글로벌 에너지 조사기관 라이스타드 에너지, 금융시장 리서치 업체 모닝스타, 딜로이트 컨설팅의 글로벌 재생에너지 시장 분석을 종합해보자면,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시장의 불황이 단기적이며, 장기적 전망은 밝다고 보고 있다.
라이스타드 에너지는 “내년 글로벌 태양광 및 풍력에너지 설치량은 510GW를 돌파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며 “적절한 정부 정책과 인센티브가 따라준다면 재생에너지 시장은 다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스레드니들(Threadneedle) 또한 “단기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전환에 대한 투자 접근방식은 변하지 않았으며, 긍정적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며 “공급망 이슈, 높은 금리 등의 단기적 노이즈가 없어진다면 청정에너지 부문이 다시 활력을 띌 것”이라고 분석했다.
“투트랙 전략 어디까지 유효할까… 글로벌 에너지 전환의 미래는?”
주요 글로벌 기관이 예측한 2030년 이후 화석연료 수요 시나리오/RFF
다만, 전문가들이 재생에너지 시장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내놓은 것과 별개로, 글로벌 차원에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이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에너지 전환에 대해 가장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곳은 국제에너지기구(IEA)다. 이들은 에너지 전환의 가속화에 대한 주요 이유로 ▲재생에너지의 가격경쟁 우위 ▲친환경 기술의 빠른 발전 ▲글로벌 차원의 친환경 정책 및 투자 강화 움직임을 꼽았다.
특히, IEA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 경제적인 측면이다. IE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중국, 인도, 미국에서 태양광의 균등화발전비용(LCOE⋅ 발전설비의 수명주기에 걸친 비용을 집계한 것)은 기존 화력발전소 대비 소폭 높은 편이다. 하지만 2030년에는 화력발전소의 LCOE가 현재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재생에너지의 LCOE는 대폭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IEA는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지능형 전력망, 가상발전소(VPP) 등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면 정유업계는 재생에너지로 급증하는 에너지를 충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셸, 엑손모빌, 에넬 등은 2050년까지 석유 사용량이 소폭하락하거나 오히려 상승해 파리기후협약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봤다. 재생에너지 산업의 과도한 중국 의존도, 전력망 부족 문제가 고질적 이슈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상황에서, 단기적으로 투트랙 전략이 계속해서 유효할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재생에너지 업계가 AI 혁명으로 인한 에너지 수요 급등을 충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다.
최근 AI기술이 빠르게 도입되면서 데이터 센터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는 대량의 전력을 필요로하기 하기에 대규모 에너지원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에 IT업계는 친환경 에너지를 우선시 하는 모양새다. 실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카본 프리(Carbon-Free)’ 에너지 사용을 강조하며 제3자 전력구매계약(PPA)시장의 ‘큰손’으로 민간 전력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세계최대 사모펀드 KKR 또한 “대규모 친환경 투자를 통해 사업기회를 선점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며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공격적 투자활동을 예고했다.
반면 화석연료업계는 재생에너지 업계의 한계로 인해 화력발전시장에 비즈니스 기회가 돌아갈 것으로 보고있다. 실제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발간한 2024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탄소발자국은 2020년 대비 약 30% 증가했는데 이는 데이터센터 확대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생에너지를 통해 데이터 센터의 모든 전력수요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재생에너지 업계와 화석연료업계의 경쟁구도가 형성된 가운데,에너지 전문가들은 AI 혁명이 미래 에너지 전환의 방향성을 가를 전초전이 될 수 있다고 보고있다.
2020년 마이너스 유가 사태에서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대란, 고금리로 인한 재생에너지 침체까지, 에너지 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미래시장을 예측하고 장단기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2020년 재생에너지 산업이 강세를 보인 후, 상황이 급변해 최근 투트랙 전략이 대세가 되었듯 매크로 환경에 따라 에너지 전환에 대한 사업 기회와 리스크가 또 다시 달라질 수 있다. 이에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대한 트렌드를 선제적으로 파악해 대응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임팩트온 송선우 에디터
임팩트온 송선우 에디터는 분석 기사를 통해 ESG 공시, 프레임워크, 트렌드 등 글로벌 ESG 주요 현안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네이버의 ‘E커머스 ESG전략 사내 세미나’, SK경영경제연구소의 ‘탄소중립 사례연구’ 등 ESG 관련 리서치와 국제 표준 분석 등의 연구작업도 함께 참여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에서 지속가능경영과 재생에너지 분야를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