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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밀월, 반목, 40년 제재, 결국 전쟁? 미-이란 관계 100년

밀월, 반목, 40년 제재, 결국 전쟁? 미-이란 관계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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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팔레비 왕조를 타도한 이란 테헤란 시민들이 혁명 기념탑 근처에 운집한 가운데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초상이 담긴 포스터를 한 청년이 들어보이고 있다. 지난달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기습 군사작전으로 생포해 압송하는데 성공한 트럼프 행정부가 2월의 마지막 날,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 전역을 향해 대대적인 군사 공격에 나섰다. 마두로 체포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세 차례에 걸친 이란과의 핵 협상에서 이렇다할 진척이 없자 다시 군사 개입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미국과 이란 관계의 100년을 돌아보면, 처음부터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20년대만 해도 두 나라는 사이가 좋았다. 쿠데타로 집권한 레자 칸의 팔레비 왕조는 서구식 근대화를 추구했고, 중동 원유에 눈독을 들인 미국은 팔레비 정권을 교두보로 여겨 뒷배 를 자처했다.  그러나 1950년대 초 반외세와 민족주의를 내세운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국민적 인기를 끌며 권력을 거머쥐자 미국과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모사데크가 석유산업을 국유화했고, 2차대전 종전 후 소련의 영향으로 힘을 키운 이란 공산당(투데당)의 영향력이 커지자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영국과 함께 이란의 왕정 복고 쿠데타를 부추겼다. 모사데크는 결국 반역 혐의로 체포돼 1953년 실각했고, 미국을 등에 업고 재집권에 성공한 팔레비 왕조는 1959년 미국과 군사안보 협력을 시작하는 등 강력한 친미노선을 표방했다.  하지만 팔레비 왕정은 20년밖에 지속하지 못했다. 왕정 체제의 비민주성과 빈부 격차, 이슬람 전통을 무시한 서구화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늘었다. 이런 민심 이반을 바탕으로 아야톨라 호메니이는 1979년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키며 신정일치 체제를 마련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이란의 밀월 관계도 막을 내렸다. 이슬람 혁명 1년 전만 해도 팔레비 국왕이 테헤란을 찾은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 건배했을 정도로 미국은 이란의 굳건한 동맹이었지만, 이슬람혁명 이후엔 중동의 강력한 적대국으로 부상했다. 이런 상황에 1979년 11월 이란 대학생들의 테헤란 미국 대사관 점거 사건이 일어나 양국 관계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슬람혁명이 일어나자 국외로 도주한 팔레비 국왕 모하마드 레자가 암 치료를 이유로 미국에 입국했는데, 이란의 혁명지도부는 신병을 인도할 것을 요구했고 미국은 거부했다. 분노한 이란 대학생들이 대사관을 점거하고 미국인 외교관과 직원 52명을 억류했다.  인질 사태가 장기화하고 대선이 다가오자 카터 행정부는 이듬해 4월 육군 최정예 특수부대인 델타포스 등을 동원한 독수리 발톱 작전을 감행했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억류됐던 미국인 인질들은 이란과의 협상 끝에 무려 444일만인 1981년 1월 20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일에야 겨우 풀려났다. 결국 국교를 단절했고, 이 사건으로 미국인들의 이란에 대한 반감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1980년부터 8년간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은 미국과 이란의 갈등을 더 극한으로 몰아넣은 도화선이 됐다. 반미 이슬람주의 확산을 우려한 미국은 이란의 적인 이라크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이런 상황에 1988년 7월 페르시아만에 있던 미 해군 순양함 빈센스호가 이란 여객기를 군용기로 오인해 격추, 290명이 목숨을 잃으면서 두 나라 관계는 한층 심각한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1996년 8월 미국은 이란과 리비아를 테러 지원국으로 분류, 이들 국가의 원유와 가스 개발 투자를 금지하는 법을 발표하면서 이란에 대한 경제재제에 착수했다. 또 2002년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란을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 국가로 지목하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후 2003년 수면 위로 떠오른 이란의 핵 개발 문제와 이라크 저항세력에 대한 이란의 지원 의혹은 양국의 심각한 갈등에 더 불을 지폈다. 이런 두 나라 관계에 변화 의 전기가 마련된 것은 2009년 출범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다.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던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통화하고 이란 핵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했는데, 30년 만에 이뤄진 양국 정상의 통화였다. 그 뒤 두 나라는 핵문제 해결에 머리를 맞댔고 2015년 화해 기류가 급물살을 타면서 그 해 7월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이란이 우라늄 농축 등 핵무기 관련 작업을 중단하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단계적으로 경제제재를 푼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화해 무드도 오래 가지 못했다.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양국 관계는 다시 급랭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정책을 폐기한 트럼프 행정부는 곧바로 이란과의 대결 모드를 택했고, 2018년 5월엔 이란 핵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경제 제재를 부활시켰다.  그러다 2020년 1월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혁명수비대(IRGC) 최정예 쿠드스군 사령관이었던 가셈 솔레이마니를 드론 암살 공격으로 제거했고, 지난해 6월엔 이란의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 등 이란 내 주요 핵시설들을 B-2 스텔스 폭격기 등을 동원해 파괴하는 미드나잇 해머 작전을 벌이며 다시 한번 무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다시 8개월이 지난 뒤에도 이란은 핵무장의 의지를 내려놓지 않았고, 미국과의 세 차례 핵협상에서도 실질적인 진전이 미흡하다고 판단한 트럼프 대통령은 확실한 손보기 에 나서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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