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 데이 참사 재벌총수 격노가 부르는 국민의 격노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스타벅스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 ‘탱크 마케팅’ 참사에 대해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19일 오전 긴급히 사과문을 냈다. 어제 신세계그룹의 계열사인 스타벅스코리아가 있어서도 안 되고 용납될 수도 없는 부적절한 마케팅을 진행했다”며 이로 인해 5·18민주화운동 영령과 유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깊은 상처를 드렸다. 그룹을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 드린다”고 말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지난 18일에 진행된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진은 19일 서울 시내의 한 스타벅스 매장 모습. 2026.5.19 연합뉴스
사고 당일인 18일의 계열사를 향한 ‘격노’와 그 대표에 대한 문책에서 사과와 ‘저의 책임’으로 말이 바뀌었다. 황급한 사과문을 내놓은 것이 그의 심경의 변화인 것인지 여론의 거센 비난 때문인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X(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대한민국 공동체와 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비인간적 막장 행태에 분노한다”고 밝힌 것이 정 회장과 신세계의 태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친 것인지도 알기 어렵다.
다만 그의 사과문이 제대로 된 사과인 것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번 사안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 온 모든 분들의 고통과 희생을 가볍게 여긴 잘못”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먼저 살폈어야 할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민주주의에 대해 가볍게 여긴 것이 아니라 정 회장이 자신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지 않은 것, 대기업의 총수로서 자신이 ‘적절한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는 것에 있어 보인다. 그는 대한민국 공동체의 역사적 아픔에 대한 그룹 전체의 역사인식과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했지만 그룹 전체의 역사인식과 감수성 부족 이전에 한 그룹의 대표로서의 자격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부터 스스로 무겁게 받아들이는지 의문이다.
이재명 대통령 X 갈무리
하룻만의 황급한 사과문보다 첫날 반응에서 이 사태에 대한 정 회장의 ‘솔직한’ 태도가 드러났다. 일이 터지자 신세계그룹이 낸 성명은 정용진 회장은 이번 사고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기념일에 일어난 것에 대해 격노하고, 그룹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징계를 주문했다 고 했다. 그러나 먼저 격노가 향해야 할 것은 정 회장 자기 자신에 대해서였다. 우선 징계를 해야 할 것은 그 자신이었다. 그러나 자신은 이 사태와 무관한 듯 직원과 고용 경영인에 격노하는 그를 보며 많은 사람들은 ‘격노’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의 격노가 국민들의 격노를 부르는 것은 그 자신이야말로 이번 사태를 초래한 데 큰 책임을 져야 할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SNS에서 세월호 추모 문구를 조롱조로 패러디했고, 멸콩 해시태그를 연달아 게시했다. 극우 개신교 단체 빌드업코리아 행사에 직접 축사를 했고 스타벅스 코리아는 그 단체의 2025년 행사에 커피를 무료로 제공했다. 그 자신이 조직 전체의 역사적 감수성을 마비시킨 당사자였다. 그런데도 자신의 반복된 언동이 상당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이는 이번 사태에 대해 ‘격노’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문제를 만들어놓고 그 책임을 밑으로 내려보내려 했다. 많은 이들은 자신을 책임에서 빼돌리는 이 같은 행태에 격노하게 되는 것이다.
정 회장은 사태 발생 경위와 승인 절차를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했지만 사실 그 원인은 이미 상당히 드러나 있다. ‘있어서도 안 되고’ ‘용납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했지만 있어서도 안 되는 일들이 이미 반복적으로 있어 왔고,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이 용납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오히려 권장돼 온 듯하다.
이번 사태를 단순한 우연이나 실무진의 실수로 치부하기 힘든 몇 가지 대목에서 그같은 실상이 보인다. ‘탱크’라는 말, 4월 16일과 5월 18일이라는 날짜, 박종철 열사를 연상케 하는 문구가 하나의 기획 안에 담겼을 때, 그것을 우연의 조합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 기일에 탱크 시리즈 첫 마케팅을 내건 것이 논란이 일었음에도 이번 기획을 밀어붙인 것은 단지 실수라고도 우연이라고도 보기는 어렵다.
스타벅스코리아가 18일 46주년을 맞은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탱크 데이 이벤트를 진행한 데 대해 사과하고 행사를 즉각 중단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5월 15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되는 버디 위크 이벤트의 일환으로 단테 , 탱크 , 나수 텀블러 시리즈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문구를 발견했다 면서 고객분들에게 불편과 심려 끼쳐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고 밝혔다. 이어 해당 행사는 즉시 중단했으며 향후 유사 사례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내부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개선해 나가겠다 고 강조했다. 2026.5.18. 연합뉴스
스타벅스와 같은 초대형 브랜드의 프로모션은 하루아침에 급조되지 않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실무자의 아이디어는 수 차례의 회의, 관련 부서들 간의 협의, 중간 및 상위 관리자들의 결재를 거쳐야 한다. 그 긴 결재 라인 어디에서도 문제제기가 없었거나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담당자 한 명의 부주의가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조직 문화의 문제이고, 무엇보다 최고경영자의 문제다. 총수의 생각과 감수성이 계열사에 일종의 사내 방침으로, 결재 라인을 타고 내려와 실무자의 판단 기준이 된 결과일 수 있다.
적잖은 SNS 댓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평소 회장이 멸콩이라며 자신의 극우적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고 젊은 층 일부가 그에 환호하는 모습을 본 데다가 20대가 극우화되고 있다는 뉴스가 많다는 걸 겨냥한 것이 아닌가 라는 추측이 전적으로 근거가 없어 보이지 않는다고 할 때, 그렇다면 이번 사태는 정밀하게 설계된 기획이라고까지 단정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미필적 고의’ 내지는 ‘조직적으로 기획된 실수’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면 정 회장이 사과문에서 말했듯 철저한 조사 가 필요하다면 조사해야 할 것은 누가 잘못을 하고 어떤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느냐 이전에 대체 무엇을 잘못이라고 보고 실수라고 보느냐는 점에 대한 것이라야 할 것이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세련된 커피 문화의 공간으로 통한다. 이 브랜드의 명칭 스타벅은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의 1등항해사의 이름을 따 온 것이다. 소설 속에서 광기에 휩싸인 선장 에이허브와 대비되는 스타벅은 냉철한 이성과 도덕적 감수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나 정작 스타벅스 커피는 총수로 불리는 인물의 극우적 가치관과 감수성의 마당이며 실험장이 돼 있다는 비판을 살 만한 상황이다. 정 회장과 신세계에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건 바로 스타벅의 이성과 감수성의 최소한이라도 갖추는 것이다.
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