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간 합당과 조국혁신당에게 주어진 길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가 8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 도중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겨 있다. 2026.2.8 연합뉴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합당은 정확히 말하면, 끝난 지 오래다. 더 이상 기다려볼 명분도, 기대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마치 무언가가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시간을 끌어왔고, 그 사이 상처를 입은 것은 정치가 아니라 지지자들이었다. 특히 조국혁신당을 지지해 온 시민들이었다.
정치는 결단의 예술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임의 윤리다. 결단을 내리지 않기로 결단하는 것, 입장을 밝히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 역시 하나의 정치 행위이며, 그에 따른 책임은 반드시 따라온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준 태도는 결단의 유보가 아니라 책임의 방기였다.
조국혁신당이 민주당에 요구한 것은 무리한 조건이 아니었다. 흡수도 아니었고, 굴복도 아니었다. 합당을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한다면 어떤 가치와 비전을 공유할 것인지, 하지 않는다면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지—이것은 정당 간 논의에서 너무도 당연한 질문이었고, 오히려 상식에 가까운 요구였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아니, 답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그 선택은 침묵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민주당은 조국혁신당을 동등한 정치 주체로 대하지 않았다. 필요할 때는 연대의 대상으로 불러 세우고, 불리해지면 내부 권력 투쟁의 도구로 삼았다. 혁신당을 향한 비판과 조롱, ‘흡수 대상’ 혹은 ‘문제적 변수’로 취급하는 태도는 합당 논의 이전에 이미 정치적 신뢰를 파괴하는 행위였다. 이것은 통합을 향한 과정이 아니라 상대를 소모시키는 과정이었다.
정당 간의 합당은 숫자의 결합이 아니다. 그것은 노선과 가치, 역사와 책임을 함께 짊어지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사회권 선진국 이라는 비전에 대해서도, 정치개혁에 대해서도, 토지공개념과 개헌이라는 오래된 과제에 대해서도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질문을 받았지만 답하지 않았고, 답을 요구받자 오히려 질문하는 쪽을 문제 삼았다. 이 무책임이야말로 오늘의 민주당이 처한 위기의 본질이다.
조국혁신당은 왜 만들어졌는가. 그것은 단지 검찰개혁 하나 때문이 아니었다. 민주당이 말해 왔으나 실행하지 않았고, 약속했으나 미뤄 왔고, 필요할 때는 꺼내 들었다가 불편해지면 접어두었던 의제들—사회권, 정치개혁, 권력기관 개혁, 헌정 질서의 재구성—이 모든 것에 대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시민적 결단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 결단을 존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혁신당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했고, 내부 균열을 덮는 방패나 정치적 협상 카드로 다루었다. 이것이 과연 동지적 관계인가. 이것이 과연 통합을 논의하는 태도인가. 합당은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 그리고 신뢰는 말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 지금까지 민주당이 보여준 태도는 한마디로 무책임했다.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내부 논쟁을 정리하지 않았으며, 대표 간의 공식적 대면조차 미뤘다. 시간만 흘러가기를 기다렸고, 그 사이 혁신당과 그 지지자들이 지쳐 포기하길 기대한 듯 보였다.
이 지점에서 이언주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은 하나의 상징적 장면이다. 이언주 의원은 합당 논의 과정에 조국혁신당을 향해 ‘결단을 촉구’하고 ‘현실 정치’를 강조하는 발언들을 이어갔다. 표면적으로는 통합을 위한 현실론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언어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뚜렷한 전제가 깔려 있다. 민주당 중심, 민주당 기준, 민주당의 시간표에 맞춰야 한다는 사고다.
이언주식 정치의 문제는 명확하다. 그 정치에는 ‘존중’이 없다.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이 만들어낸 분파도 아니고, 민주당에서 이탈한 일시적 현상도 아니다. 민주당이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으려 했던 일을 하겠다는 시민적 요구 속에서 탄생한 독자적 정당이다. 그럼에도 이언주 의원의 발언에는 이 당을 하나의 정치 주체로 대하는 인식이 아니라, 정리해야 할 변수,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
이것은 단지 한 의원의 말실수가 아니다. 민주당 주류 정치가 오랫동안 가져온 태도의 집약이다. 큰 당이 작은 당을 대할 때 흔히 드러나는 오만, ‘어차피 결국 우리 쪽으로 와야 한다’는 자기중심성, 그리고 정치적 다양성에 대한 불편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언주 의원의 발언이 특히 불쾌한 이유는, 그것이 합당 논의를 정책과 비전의 문제에서 권력과 계산의 문제로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합당이 왜 필요한지, 어떤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결합인지에 대한 질문은 사라지고, ‘언제까지 버틸 거냐’, ‘결단하라’는 식의 압박만 남는다. 이것은 설득이 아니라 통보다.
정치는 통보로 확장되지 않는다. 민주당은 덩치는 커졌지만 정치의 결은 오히려 더 좁아졌다. 몸집이 커질수록 더 많은 목소리를 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더 단일한 언어, 더 중앙집중적인 사고만 강화되고 있다. 이언주 의원의 발언은 바로 그 축소된 정치의 전형이다. 연대는 존중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민주당의 일부 정치인들은 연대를 ‘정렬’로 이해한다. 민주당의 방향에 줄을 맞추는 것이 연대라고 믿는다. 이런 사고방식 아래에서 합당은 통합이 아니라 흡수가 되고, 다양성은 귀찮은 잡음이 된다.
조국혁신당 지지자들이 분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합당 자체보다 합당을 대하는 태도에 분노한다. 왜 남의 당을 흔드는가. 왜 가만히 있는 정당을 내부 권력투쟁의 재료로 삼는가. 왜 동지를 말하면서도 존중의 언어는 없는가.
정치는 체면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다. 지금 체면을 잃고 있는 쪽은 조국혁신당이 아니라, 결단을 미루고 책임을 회피하며 다른 정당을 압박하는 민주당이다. 조국혁신당은 이제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가야 한다. 더 단단하게, 더 분명하게, 더 솔직하게. 민주당을 향한 미련을 버릴 때 비로소 혁신당은 자기 언어로 말할 수 있고, 자기 시간으로 정치할 수 있다. 그것이 지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나는 조국혁신당 당원으로서 이처럼 쪼잔한 정치, 이언주식으로 상징되는 민주당 중심주의 정치와의 합당에 반대한다. 조국혁신당은 멀리 내다보고, 꿋꿋하게 자기 갈 길을 가야 한다. 합당은 이미 끝났다. 조국 대표는 13일까지 민주당의 입장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더 기다릴 것도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정리된 비판과 단단한 전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