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혁신당 ‘한동훈 특검법’이 불러올 선거구도 격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총선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3.12. 연합뉴스
지난 12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갑자기 처음으로 국회에서 ‘총선 관련 기자회견’을 한다며 언론들에 공지했다. 사전에 구체적인 내용을 전혀 공개하지 않은 이 자리에서, 연단에 오른 그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한동훈 특검법’ 공약을 발표했다. 22대 국회가 개원되는 즉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인 한동훈에 대한 특검법을 발의하겠다는 것이다.
“국민 여러분, 검찰독재 조기종식과 사법정의 실현을 위해 조국혁신당은 22대 국회 첫번째 행동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겠습니다. 조국혁신당 1호 특검법 발의입니다. 여러 범죄 의혹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수사조차 받지 않았던 검찰독재의 황태자, 한동훈 대표가 평범한 사람들과 같이 공정한 수사를 받도록 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받드는 행동입니다.”
조 대표가 이날 ‘한동훈 특검법’ 공약 발표에서 일일이 거명한 한동훈의 혐의들은 다음과 같다.
① 고발사주 의혹 관련, 공무상기밀누설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② 윤석열 징계취소 소송 2심 대리인 교체로 패소 초래 및 상고 포기 관련,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혐의
③ 한동훈의 딸 알렉스 한 논문 대필, 에세이 표절, 봉사활동 부풀리기 등 관련 업무방해 혐의
④ 위 세가지 의혹의 수사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추가 혐의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국혁신당은 당 강령 전문에서부터 검찰독재 종식을 가장 먼저 내세웠고 강령 1조 역시 '검찰 개혁'이다. 그런데 이 '한동훈 특검법' 공약 발표로 이런 노선이 더더욱 선명해졌다.
지난 2년간 윤석열 대통령의 무능함∙무도함 못지 않게, 한동훈은 법무부장관에 이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아 특유의 약 올리는 ‘깐족’ 어법으로 야권 지지 국민들로부터 짜증과 분노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런 한동훈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여기에 조국 대표가 나서 전선의 구도를 뒤흔들어놓은 것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한동훈 특검법'은 당장 현실화되지 않는 선거 공약일 뿐이다. 그런데 그 실질은 '단순한 공약'이라고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조국 대표와 조국혁신당의 특수한 상황들 때문이다.
‘한동훈 특검법’ 공약의 선명한 진정성
따지고 보면, 선거에 임하는 유권자들로서는 정당의 공약을 접할 때 오직 다음의 세 가지만이 중요하다.
1. 그 공약이 내가 원하는 것이냐
2. 그 공약 실현을 위해 분투할 '의지'가 있느냐
3. 그 공약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능력'이 있느냐
윤석열 정권에 신물이 나고 구토가 날 지경인 다수 국민은 당연히 1번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문제는 2번 ‘의지’와 3번 ‘능력’이다. 대부분의 선거 공약은 이 둘 중의 하나가 뒷받침되지 않아 거짓 약속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조국혁신당이라는 공적 조직 이전에, 조국혁신당의 대표인 조국이라는 사람은 '한동훈 특검법'에 어떤 거짓도 과장도 없이 온전히 진심이라는 것을, 조국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무관하게 국민 누구라도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조국 사태' 수사 총지휘자가 바로 한동훈 아니었는가.
물론 공당의 대표인 조국 대표가 개인적인 감정으로 사적인 '복수전'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동훈을 수사해야 할 공적 명분이 철철 넘쳐난다. 지금까지 제대로 수사가 되지 않은 것이 상식적으로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 아닌가.
그러면, 조국 대표는 이 ‘한동훈 특검법’ 공약을 실현할 ‘능력’은 있는가. 2주쯤 전에 이런 공약을 내세웠더라면 이 '능력' 문제가 핵심 관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소수정당으로서는 특검법 발의 자체가 큰 관문이 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법안은 10명의 의원이 동의해서 함께해야 발의가 가능하다. 10석이 안되면 법안 하나 발의를 할 때마다 다른 정당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동참을 읍소해야 하게 된다. 조국 대표가 처음부터 이번 총선의 목표를 '10석'이라고 공언한 것도 바로 이 법안 발의 자격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의 조국혁신당 지지율 폭등으로 인해 이 문제가 사실상 거의 완전히 해소됐다. 지난주부터 계속 이어지는 조국혁신당 지지율 급등 추세로 볼 때 원내 의석 10석 정도는 충분히 가능해 보이게 됐고, 오히려 그 이상으로 어디까지 올라갈 것이냐가 이번 총선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됐다.
다시 말해, 조국혁신당은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할 진정성이 넘쳐날 뿐만 아니라 지금 추세로는 특검법을 단독 발의해 밀어붙일 능력도 갖추게 될 가능성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민주당도 당론으로 이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고, 혹시라도 적극적이지 않다면 조국혁신당이 열심히 채근해 동의하도록 만들 것이니 실제 특검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이러니 당장 특검법이 현실화된 것이 아닌 선거 공약이라고 해도, 윤 정권에 반대하는 대다수 국민으로서는 한동훈 특검법이 발의되고 통과되는 그 장면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질 정도가 되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조국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말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앞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4.3.12 [공동취재] 연합뉴스
‘당사자 면전’에서 특검법 공언한 과감함
이 '한동훈 특검법' 공약 발표에는 또 한가지 과감한 '신의 한 수'가 있다. 국회에 들어가면 바로 얼굴 맞대는 관계가 되는 여당 대표를, 유력 야당 대표로 급부상한 조국이 정면으로 '수사 대상'으로 특정해 특검 수사 대상으로 몰아붙여버린 것이다.
이런 전례가 있었던가? 한 정당 대표가 다른 정당 대표를 검찰에 고발하거나 수사 촉구를 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게 있었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장 같은 날에도 그 일이 있었다. 진보당이 한동훈을 허위사실공표죄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발, 수사 의뢰, 수사 촉구 등의 행위는 일단 강제성이 없다. 윤석열정권의 휘하에 있는 수사기관들이 눙쳐버리면 그만이다. 그래서 진보당이 경찰에 한 한동훈 고발이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다.
(한편 공수처의 경우 그동안 꽤 선전해왔지만 새 공수처장이 부임하면 성향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특검법은 다르다. 국회에서 통과되면 아예 수사를 강제하는 절차다. 눙쳐지지가 않는다.
더욱이 한 정당이 다른 정당의 대표를 특검법으로 수사대상으로 규정해 정면으로 들이받아버리는 장면은 조국혁신당의 등장 이전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국회 내에서는 여야를 떠나 '동료 정치인'으로 최소한의 존중을 해주는 관례가 있다. 그런 관례를 모를 수 없는 조국 대표가, 관례고 뭐고 깡그리 무시하고 '한동훈은 수사대상'이라고 규정하고 수사를 강제하는 법률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쇼킹한가. 얼마나 기가 질리도록 선명한가.
조국 대표가 당사의 기자실이 아닌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한 이유도 이것이다. '한동훈 면전'에서 '너는 수사대상'이라고 공식화한 것이다. 이날 조국 대표는 바로 이어지는 11시로 예정된 입당식 행사로 인해 당사로 이동해야 하는데도, 일정이 매우 촉박해지는 것을 감수하고 10시에 일부러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회 공간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현역 의원인 황운하의 합류 덕분이다. 조국 대표는 가용한 모든 유리한 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필자가 지난 5년 동안 개인적으로 알게 된 조국이라는 사람은 극악스러운 상황에 내몰려서도 그 자신의 품격을 잃지 않고 절차와 예의, 절도를 반사적으로 챙기는 인물이었다. 그런 태도가 몸에 완전히 배어 있어서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는 기가 질릴 정도의 사람이다.
그런 조국이 정치인들 사이의 ‘최소한의 예의’ 따위는 일체 무시하고 곧 ‘동료 정치인’이 될 상대 당대표의 이마에 '수사 대상자'라고 써 붙인 셈이다. 조국 대표의 결기가 얼마나 매서운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늘 봐오던 얼굴, 자주 듣던 목소리에서 핏발이 터져나오고 불꽃이 번쩍번쩍 튀는 것 같았다.
당장 이 특검법의 수사대상자로 정면 지목된 한동훈은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못했다. 더욱이 ‘원톱’ 선대위원장을 공언했던 한동훈은 다음날 하루 종일 칩거하며 기자들을 피하다가, 일과시간이 끝난 저녁이 되어서야 ‘정국 구상 중’이라는 짤막한 면피성 기사가 나왔을 뿐이다.
‘조국 vs. 한동훈’ 구도 형성으로 정권심판론 재부상
그래서, 조국 대표에게 '한동훈 특검법'은 선거 공약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단순히 공약이 아닌 것이다. 이 특검법은 22대 국회 시작과 함께 무조건 현실화되는 확정적 미래다. 지지자든 아니든, 지켜보는 모든 국민이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한동훈 특검법' 공약 발표가 사실상 대한민국의 모든 크고 작은 언론에 대서특필 된 이유가 이것이다. 총선 국면에서의 선거 공약이지만 단순히 인기몰이 목적이라거나 현실화 가능성이 불투명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언론 기자들도 느낀 것이다.
한편, 조국혁신당이 이렇게 강하게 한동훈을 밀어붙임으로써 민주당으로서도 선거 전략 면에서 운신의 폭이 넓어지는 효과가 생겼다.
민주당으로서는 여당 비대위원장인 한동훈보다는 정권의 총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실정의 책임을 묻고 전선을 쳐야 했지만, 한동훈이 전면에 나서서 이재명 대표를 연일 공격해대면서 ‘윤석열 vs 이재명’ 구도가 아닌 ‘한동훈 vs 이재명’ 구도로 ‘격하’되어버리는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여러날 전부터 한동훈에 대한 문제 제기에 적극적이었던 조국혁신당이 한동훈에게 특검법이라는 핵펀치를 날림으로써, 한동훈의 정국 주도력이 대폭 약화된 동시에 ‘한동훈 vs 이재명’ 구도는 사실상 흩어져버렸다.
이로써 민주당은 원래 바랬던 ‘윤석열 vs 이재명’ 구도를 복구하고 선거판의 방향을 ‘정권심판’ 프레임으로 다시 돌려놓을 좋은 기회가 생겼다.
이를 더 크게 바라보자면, 이재명의 민주당과 조국의 조국혁신당이 윤석열과 한동훈을 각각 분담해 공격하는 ‘공동전선’이 열리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