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아래 태어나 세상을 바꾼 도시 브리스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국 남서부에 브리스틀(Bristol)이라는 도시가 있다. 런던에서 기차로 두 시간도 채 안 걸리는 곳인데, 어떤 이들은 이 도시를 영국에서 가장 쿨한 도시 라 부르고, 또 어떤 이들은 가장 위선적인 도시 라 부른다. 재미있는 것은 두 평가 모두 맞다는 점이다.
브리스틀의 클리프턴 현수교(위키피디아)
천 년의 다리, 브리스틀의 기원
브리스틀이라는 이름은 고대 영어 브리그스토 (Brycgstow), 즉 다리 곁의 집합장소 에서 왔다. 서기 1000년경 이미 존재했고 1155년 왕실 허가를 받았으며, 북쪽의 글로스터셔와 남쪽의 서머싯에 걸쳐 있다가 1373년 자체 자치권을 가진 독립 주(州)가 됐다. 한마디로, 다리 하나로 시작해서 나라 안에 나라를 만들었다. 다리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는 대목이다. 한강 다리도 몇 개 더 있었으면 서울이 더 다양해졌을까?
중세 시절 브리스틀은 지금의 서울이나 부산 격이었다.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 근 400년 동안 영국에서 두세 번째로 큰 도시였고, 양모, 생선, 포도주, 곡물 무역으로 번성했다. 에이번 강의 드라마틱한 밀물과 썰물이 배를 항구 깊숙이 들여보내줬으니, 자연이 공짜 하역인부 역할을 한 셈이었다.
브리스틀 항구(위키피디아)
노예의 피 위에 세워진 번영
그러나 영광은 언제나 그림자를 데리고 온다. 브리스틀의 근대적 번영은 노예무역이라는 끔찍한 기반 위에 놓여 있었다. 1700년부터 1807년까지 브리스틀은 영국의 노예무역 중심지였다. 1698년, 브리스틀에서 출항한 첫 노예선의 이름은 더 비기닝 (The Beginning, 시작)이었다. 이름 하나가 이 모든 역사의 서늘함을 대변한다. 시작이라니. 무엇의 시작인지는 역사가 증명했다.
이 무역의 핵심인물이 에드워드 콜스턴(Edward Colston, 1636~1721)이다. 그는 영국의 유일한 공식 노예거래 회사인 왕립 아프리카 회사의 핵심 임원이었고, 이 회사는 수만 명의 아프리카인을 대서양 너머 아메리카 대륙으로 실어 날랐다. 그는 죽으면서 자기 재산을 자선사업에 기부했다. 이 덕분에 수백 년간 브리스틀에는 그의 이름을 딴 학교, 거리, 음악당, 동상이 넘쳐났다. 피 묻은 돈으로 세운 동상 이라고 누군가 말해도, 도시는 오랫동안 못 들은 척했다.
그러다 2020년 6월 7일,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 들불처럼 번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물결 속에서 약 1만 명의 시위대가 콜스턴의 동상에 밧줄을 걸어 끌어내리고, 0.5마일을 끌고 가 브리스틀 항구에 던져 버렸다. 브리스틀 시장 마빈 리스는 콜스턴은 노예를 바다에 던졌는데, 결국 그 자신도 바다에 가게 됐다 고 말했다. 역사는 가끔 이렇게 시적이다.
동상을 끌어내린 콜스턴 네 명 은 2022년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동상은 건져 올려져 현재 브리스틀의 엠 셰드(M Shed) 박물관에 낙서가 그대로 남은 채 쓰러진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2025년 4월에는 빈 받침대에 새 안내판이 설치돼 도시의 은인 이라는 표현이 삭제됐다.
우리도 역사적 인물의 동상과 거리 이름을 두고 오랫동안 논쟁해 왔다. 차이가 있다면, 브리스틀에서는 시민이 먼저 움직였고, 법원이 그것을 이해했다는 점이다.
에드워드 콜스턴 초상화(위키피디아)
다리를 설계한 남자, 브루넬
어두운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브리스틀에는 역사상 가장 놀라운 기술자 중 하나가 살다 갔다.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Isambard Kingdom Brunel, 1806~1859)이다. 그는 공학 역사상 가장 독창적이고 다작한 인물 중 하나 로 평가받는다.
브루넬은 24살에 에이번 협곡을 가로지르는 현수교 설계 공모에 당선됐다. 이것이 오늘날도 브리스틀의 상징인 클리프턴 현수교(Clifton Suspension Bridge)다. 공사는 1831년 시작됐지만 재정 문제와 폭동으로 중단을 거듭했고, 브루넬이 사망한 뒤인 1864년에야 완공됐다. 자기 첫 작품이 완성되는 것도 못 보고 눈을 감은 것이다. 53세라는 나이에. 너무 열심히 일했다. 하루 네 시간밖에 안 잔 것으로 알려졌으니, 번아웃의 선구자였던 셈이다.
그는 런던과 브리스틀을 잇는 대서부 철도(GWR)를 설계했고, 당시 세계 최초의 대양 횡단 증기선 SS 그레이트 웨스턴(1837년), 세계 최초의 금속 선체 여객선 SS 그레이트 브리튼(1843년)을 만들었다. 기차도, 배도, 다리도, 항구도 한 사람이 만들었다. 2002년 영국 공영방송 BBC 여론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국인 2위에 뽑혔다. 1위는 윈스턴 처칠이다. 공학자가 2위라니, 영국인들의 안목을 칭찬해야 할 것 같다.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위키피디아)
담벼락의 혁명가, 뱅크시
브루넬이 19세기 브리스틀을 대표한다면, 20세기 말과 21세기의 이 도시를 대표하는 이는 정체불명의 벽화 작가 뱅크시(Banksy)다. 이름도 가명이고, 얼굴도 모르고, 생년도 불확실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전 세계 도시 담벼락에서 권력과 전쟁과 자본주의를 비웃고 있다.
그는 1990년대 초 브리스틀의 지하거리 그림 창작 집단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경찰을 피해 쓰레기차 밑에 숨어 있다가 차량 외벽의 본떠찍기(스텐실) 번호를 보고 기법을 바꿨다고 한다. 위기가 창의성을 낳은 것이다. 한국에도 경찰을 피해 창의적이 된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2026년 3월, 로이터 통신의 심층보도로 뱅크시의 정체가 브리스틀 태생 로빈 거닝엄(Robin Gunningham, 1973년생)으로 밝혀졌다. 그는 이후 데이비드 존스로 이름을 바꿨으며, 2022년 러시아 침공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건물 벽에도 그림을 그렸다. 정체가 드러났어도 작품의 힘은 달라지지 않는다. 누가 그렸느냐보다 무엇을 말하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브리스틀 파크 스트리트 아래쪽에 있는 뱅크시의 벽화(위키피디아)
현재의 브리스틀, 실험도시
오늘의 브리스틀은 과거의 영광과 과오를 동시에 끌어안고 꽤 잘 살고 있다. 2009년 유럽 올해의 도시 , 2013년과 2017년 영국 최고 살기 좋은 도시 로 선정됐고, 2015년에는 유럽 녹색 수도 칭호를 받았다. 항공기 산업과 첨단기술, 두 개의 대학교, 그리고 활발한 문화산업이 도시를 지탱하고 있다.
특히 2016년에는 지역공동체가 직접 에너지를 공급하는 브리스틀 에너지 회사를 세워 에너지 민주주의를 실험했다. 동네사람들이 힘을 모아 전기를 만들고 파는 것이다. 중앙에 다 맡기지 않고 지역이 직접 해보는 것. 한국의 에너지 전환 논의에서도 이런 모델이 자주 거론되지만, 실제로 실현되기 시작됐다.
브리스틀 대성당(위키피디아)
브리스틀이 한국에게 하는 말
브리스틀의 역사를 훑다 보면, 이상하게도 한국의 어느 도시, 어느 시대가 자꾸 겹쳐 보인다.
노예무역으로 쌓은 부를 자선사업으로 세탁해 동상까지 세웠다가, 수백 년 후 시민들에게 끌어내려진 콜스턴 이야기는, 불법으로 재산을 쌓았지만 기부도 좀 하고 이름도 걸어 기억되고 싶어 하는 어떤 기업가들의 자화상과 닮지 않았는가.
콜스턴의 동상이 박물관에 쓰러진 채로 전시되는 방식은 영리하다. 없애지도, 복원하지도 않는다. 그냥 낙서가 덕지덕지 붙은 채로 눕혀 놓는다. 이게 이 인간의 진짜 모습이다 라고 말하면서. 한국의 역사청산 논의에서 이런 식의 창의적 기억 을 더 고민해볼 만하다.
브루넬은 평생 예산 초과, 일정 지연, 투자자 불만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가 만든 것들은 160년 후에도 쓰이고 있다. 단기 수익이 아니라 길게 내다본 기반시설 투자의 가치. 대한민국의 공공사업예산이 해마다 흥정거리가 되는 현실 앞에서, 브루넬의 고집이 새삼 달라 보인다.
뱅크시는 익명으로 세상을 바꿨다. 누가 그렸는지 몰라도 메시지는 살아남았다. 요즘 한국에서도 이름 없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광장을 채우고 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힘은 있다.
브리스틀은 완벽한 도시가 아니다. 노예무역의 도시였고, 반성이 늦었고, 여전히 해결 못한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숨기지 않고 박물관에 눕혀 전시하는 용기, 잘못된 이름을 지우고 새 안내판을 다는 성실함, 그리고 시민이 먼저 움직인 뒤 법원이 이해하는 순서, 이것들이 브리스틀을 흥미롭게 만든다.
다리 곁의 집합장소 라는 뜻의 이름답게, 브리스틀은 지금도 서로 다른 역사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우리도 어디선가 그런 다리를 놓고 있는 중인지, 아니면 아직 밧줄만 들고 있는 중인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브리스틀 대성당 앞에서 김성수 시민기자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