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나비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김혜형 작가, 농부
씨앗을 옮기는 새들
직박구리 한 마리 날아와 낙상홍 가지에 앉는다. 무채색의 겨울, 앙상한 겨울나무 사이로 낙상홍 붉은 열매가 선명하다. 지금은 12월, 감나무의 홍시는 없어진 지 오래고 곤충과 애벌레도 흔치 않은 계절, 낙상홍 열매는 허기진 새들에게 귀한 식량이다. 직박구리가 붉은 열매를 콕콕 쪼아 삼키는 걸 숨죽여 지켜본다. 일찌감치 앞뜰에 낙상홍과 남천, 피라칸타와 좀작살나무를 심었던 건 이런 겨울 풍경을 보고 싶어서였다.
낙상홍 열매를 먹는 직박구리.
새들은 씨앗을 이사시킨다. 뜻하지 않은 곳에 돋아난 어린나무는 새가 심었을 확률이 높다. 새가 삼킨 열매는 과육이 소화된 후 씨앗으로 배설된다. 새똥은 씨앗의 요람이다. 좀작살나무 열매가 섞인 보랏빛 새똥을 돌길에서 심심찮게 발견한다. 심지도 않은 좀작살나무가 정원 여기저기에 돋아나는 건 다 숨은 운반자들 덕분이다. 나무는 새에게 먹을 것을 주고, 새는 나무의 자손을 새 터전에 옮긴다. 먹는 일과 먹히는 일이 연결되고, 죽는 일과 사는 일이 맞물린다.
좀작살나무의 메마른 겨울 열매.
황석영 선생의 신작 『할매』를 읽다가, 죽은 개똥지빠귀의 몸에서 아기 팽나무 싹이 태어나는 장면에서 잠시 멈춘다.
기진맥진한 작은 새의 몸 위에 눈보라가 들씌워졌고 체온이 떨어진 개똥지빠귀는 숨이 끊어졌다. (…) 개똥지빠귀의 뱃속에 팽나무 열매 몇 개가 있었다. 열매의 거죽은 새의 시신과 함께 곧 사라졌지만, 딱딱한 굳은 씨앗은 부드러운 모래흙 속으로 들어가 스며드는 물기와 더불어 차츰 땅속으로 묻혔다. (…) 개똥지빠귀의 분해된 몸이 녹아들어 기름진 땅속으로 뿌리가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나갔고, 어린 팽나무 싹은 여름이 되자 묘목이 되어 몇 개의 가냘픈 가지와 잎사귀가 돋아나와 바람에 팔랑대고 있었다.” - 황석영, 『할매』, 30~31쪽
생명의 역사를 통틀어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개똥지빠귀가 아기 팽나무를 심고, 개미가 깽깽이풀 씨앗을 나르고, 꿀벌이 꽃가루를 옮긴다. 한 목숨이 진 자리에 새 목숨이 태어나고, 탄생의 흙은 죽음의 양분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거대한 연결과 순환이라니. 무상하고 아름답다.
겨울 정원을 밝히는 피라칸타 열매.
없어도 되는 존재는 없다
된서리가 내렸다. 너울너울 푸르던 파초가 하루아침에 데친 시래기처럼 축 처졌다. 밑동을 낫으로 자른 후 왕겨를 두툼하게 덮고 비닐로 여며 놓는다. 느릅나무, 감나무, 층층나무, 벌나무 잎도 다 떨어졌다. 뜰에 켜켜이 쌓인 낙엽은 월동하는 벌레들의 이부자리가 될 것이다.
낙엽 밑에서 벌레들이 겨울을 난다.
아침마다 고개를 쭉 뺀 채 앞마당을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니던 되지빠귀도 보이지 않는다. 여름 철새이니 추위를 피해 벌써 남쪽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되지빠귀의 부리를 피한 지렁이와 벌레들이 낙엽 아래 웅크려 겨울나기를 시작한다. 딱정벌레, 집게벌레, 거미, 노린재, 노래기, 지네 들이 적갈색 낙엽 밑에 숨어서 봄이 오길 기다린다. 하지만 다가올 봄이 모두에게 보장된 것은 아니다.
먹을 것이 부족한 겨울,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와 박새, 솔새와 노랑턱멧새가 온종일 포르릉포르릉 날며 메마른 풀더미와 젖은 낙엽을 헤집는다. 뒷산 숲에 떨어진 도토리는 어치가 먹고, 테라스에 놓아둔 땅콩은 곤줄박이가 먹고, 낙엽 아래 딱정벌레는 멧새가 먹고, 뜰의 풀씨는 뱁새와 박새 차지다. 지난 가을, 바쁜 일거리에 치여 뽑지 못한 풀들이 씨앗을 가득 매달고 누렇게 시들었다. 잡초라 불리는 바랭이와 강아지풀, 여뀌와 쇠무릎 씨앗이 혹독한 추위에 떠는 작은 새들의 겨울 식량이다. 하찮은 풀씨가 새의 목숨을 살린다. 세상에 없어도 되는 존재는 없다.
강아지풀 씨앗.
나의 마지막 나비
거실 창밖을 무심코 내다보다 깜짝 놀랐다. 뜰의 마른 잎 사이로 남방노랑나비 한 마리, 팔랑팔랑 날고 있다. 거짓말 같다. 12월 중순에 나비라니. 서리 내리고 첫눈도 왔지만 다시 영상의 기온, 일부 국화는 아직도 피어 있다. 막바지 국화가 나비의 생명수다.
오전에 봤던 나비가 오후에도 뜰 위를 날고 있다. 손톱을 포갠 듯한 노란 점이 마른 가지와 풀더미 사이로 팔랑팔랑 떠다닌다. 가까이서 나비를 보려고 뜰로 내려섰다. 국화 사이를 헤엄치듯 떠다니던 나비가 테라스로 다가와 내 앞을 스쳐 지난다. 나는 천천히 나비를 따라간다. 나비가 동쪽 화단의 키 작은 국화에 앉더니 꽃술에 주둥이를 대고 한참을 머문다. 곁에 쪼그려 앉아 사진 몇 장을 찍었다. 꿀을 마신 나비가 날개를 펼치고 지붕 위로 날아간다.
국화 꽃의 꿀을 빠는 노랑나비.
집을 에돌아 다시 앞마당에 나타난 노랑나비, 마른 국화 위를 지나 장독대와 텃밭을 거쳐 뒷마당 쪽으로 날아간다. 한들한들 떠다니는 조그만 은행잎 같다. 나비를 따라서 천천히 걷는다. 움직이는 노란 점에 시선을 고정한 채. 사방은 고요하고 바람 한 점 없다. 나를 의식하지 않는 나비, 나비를 바라보는 나, 세상에 우리 둘뿐인 듯하다.
노랑나비가 뒷마당의 오리나무 가지 사이로 팔랑팔랑 날아오른다. 그때, 잿빛 새 한 마리가 오리나무를 향해 빠르게 날아든다. 직박구리다. 난 그 자리에 붙박인다. 설마, 하는 순간 노란 점을 향해 직진하는 직박구리. 나비가 팔랑, 아래쪽으로 피한다. 화급한 순간, 도망의 몸짓조차 부드러운 곡선이구나. 나비를 따라다니던 잠깐의 시간이 뭐라고, 나는 떨리는 심정으로 직박구리의 실패를 빈다. 그러나 직박구리는 다시 오리나무 가지를 박차고 날아올랐고, 팔랑팔랑 두어 번의 노란 날갯짓은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겨울나무에 앉은 직박구리.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직박구리의 뾰족한 부리 양쪽으로 연약한 노란 날개가 삐져나와 있다. 눈을 부릅뜨고 그것을 쳐다본다. 직박구리가 부리를 몇 번 쩝쩝거리자 노란 날개가 직박구리 입속으로 조금씩 사라진다. 직박구리가 식사를 마치고 날아갈 때까지 나는 꼼짝 않고 새를 지켜보았다. 새 속으로 사라진 내 마지막 나비를 지켜보았다.
꽃이 꿀이 되고, 꿀이 나비가 되더니, 나비는 오늘 새가 됐구나.
(‘함께 사는 생명’ 연재를 이것으로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주시고 댓글로 응원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