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고 □□□□ 전환하라… 생명평화운동 한자리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 2월 24일, 핀란드 헬싱키의 세나트 광장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4주년 기념 집회에서 촛불들 사이로 평화의 상징이 세워져 있다. 우크라이나는 이날 2022년 러시아의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된 지 4주년을 맞았다. 2026.2.24. EPA 연합뉴스
2026년 3월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 서울 홍대 인근의 ‘청년문화공간 JU’에서 한국 생명평화운동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새로운 장이 열린다. 이름하여 2026 제1회 생명평화 전환 한마당”이다. 핵심 슬로건은 멈추고 □□□□ 전환하라”이다. 생명평화를 기반으로 문명적 전환사회를 도모해온 전국의 70여 개 단체들이 모여 함께 연결하고 대화하는 한마당이다.
생명에 해로운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3월 6일 대구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간호대학 존슨홀에서 열린 나이팅게일 선서식에서 임상실습을 앞둔 3학년 학생 158명이 촛불점화를 하고 있다. 2026.3.6. 연합뉴스
40여년 생명운동을 연결하고 이어가다
1980년대 초 원주에서 시작된 생명운동 논의는 산업화·개발주의의 그늘 속에서 성장과 발전” 일변도의 국가 담론에 가장 먼저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던진 흐름이었다. 물론 이 생명운동은 동학의 개벽운동으로부터 사상과 실천적 뿌리를 도도히 이어왔지만, 1980년대 이후 생활협동과 먹거리, 농민·소비자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한 한살림운동과 사회주의 붕괴 이후 전 세계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때 녹색적 사유를 기반으로 생태·문명 비판을 꾸준히 제기해온 『녹색평론』, 그리고 실상사와 생명평화결사로 이어지는 종교계의 생명평화운동의 노력과 실천이 이 흐름을 넓혀 왔다. 이후 협동조합운동을 비롯하여 마을공동체와 지역운동, 대안교육, 대안사회운동, 최근의 『사상계』까지 각기 다른 장에서 생명평화운동을 공개적으로 또는 내용적으로 실천해 왔다. 그렇게 긴 시간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듭했지만, 각 단체와 개인들은 서로 존중하고 연대의 의식을 공유하면서도 공식적인 공동 조직과 네트워크를 갖추지 못한 채 서로의 존재를 소중히 하며 격려의 눈빛만 나누던” 상태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2026 생명평화 전환 한마당 개최를 알리는 포스터
이번 2026년 생명평화 전환 한마당은 이러한 흩어진 각각의 노력들을 한자리에 모아, 각자의 기치와 이름을 넘어 생명평화 전환사회”라는 공통의 과제와 함께 ‘생명평화회의’라는 이름으로 연결하여 나아가려는 시도이다. 기후 위기, 전쟁과 폭력, 혐오와 차별, 경제적 불평등은 문명적 위기라는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 여러 얼굴이라는 자각 속에서, 생명평화운동의 역사와 사유, 실천을 큰 공동의 네트워크 마당에서 함께 펼치는 것이다.
2026 생명평화 전환 한마당 의 사흘간에 걸친 행사 일정표
멈추고 □□□□ 전환하라”라는 주제의 의미
이번 한마당의 주제는 멈추고 □□□□ 전환하라”로 제시된다. 이 문장 가운데 비워진 네 글자는 슬로건의 미완성이 아니라, 각 단체와 개인이 자신의 언어로 채워 넣어야 할 실천의 자리를 상징한다. 무엇을 멈출 것인가, 무엇으로 전환할 것인가는 단일한 정답이 아니라, 서로 다른 현장과 관점이 만나 토론하고 다시 써 내려가야 하는 집단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멈추고 파괴적 성장을 전환하라”고 말할 수 있고, 또 다른 이는 멈추고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전환하라”, 멈추고 돌아보고 전환하라”, 전쟁국가 체제를 전환하라”, 인간중심 문명을 전환하라”고 채워 넣을 수 있다. 준비위원회가 이 네 글자를 공란으로 남겨둔 것은, 생명평화운동이 정해진 구호를 따르는 동원적 슬로건이 아니라, 각자의 목소리를 들고 나와 차이를 조율하며 새로운 공통어를 창조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한마당의 여러 세션 구성은 바로 이 비어 있음”을 둘러싼 저마다의 집단적 사유와 토론의 메시지를 촘촘히 배치해 놓은 구조라고 볼 수 있다.
3월 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국회의사당 앞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미국이 지원하는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의 회원 자격을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2026.3.6. EPA 연합뉴스
기후 · 전쟁 · 불평등 등은 분리된 의제가 아닌 하나의 문명위기
초청 제안문은 오늘의 위기를 기후 생태계의 붕괴와 지속가능성 위기”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거기에 전쟁과 폭력, 혐오와 차별, 경제적 불평등”을 함께 호명하며, 이것들이 따로 떨어진 이슈가 아니라 하나의 문명적 위기의 다른 얼굴들”이라고 분명히 못 박는다. 즉, 문제는 탄소 배출량이나 특정 정책의 실패를 넘어, 성장과 경쟁, 지배와 착취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온 근대 문명 그 자체의 구조와 가치관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제안문은 단순히 환경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별 국가의 정치 개혁만으로는 근본적인 전환을 이뤄낼 수 없다”고 말하며, 정치·경제·문화·생활양식·가치관을 포괄하는 문명적 전환”을 기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생명평화운동은 특정 부문 정책을 고치는 ‘개혁’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관계 맺기의 방식을 근본에서 다시 짜는 운동으로 제기된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프로그램 구성에도 분명히 드러난다. 전환의 정치: 무엇을, 어떻게”에서는 체제 전환과 문명 전환, 연대와 세력화라는 정치적 전략을 논의하며 , 2026 격변하는 국제질서와 한반도 생명평화운동”에서는 ‘적대적 두 국가론’과 ‘통일회의론’을 넘어서는 생명평화적 전망을 모색한다. 또한 이스라엘-가자 전쟁, 군비 축소와 무기 산업 비판, DMZ 생추어리 국민운동 등은 생명평화의 관점이 국경을 넘어 전쟁 체제와 군산복합체, 국토와 생태의 군사화를 함께 겨누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별 현장을 잇는 거대한 연결망의 실험
그동안 생태적 전환을 꿈꿔온 수많은 단체들은 서로를 응원하면서도, 각자의 현장과 과제에 몰두하느라 공식적 네트워크 없이 활동해 왔다”는 것이 준비위원회의 진단이다. 그러나 기후·생태 위기가 심화되는 지금, 서로 메시지로만 존재해온 단체들끼리 본격적인 연결망이 필요하다”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생명평화회의”라는 ‘연결망 만들기’를 중요 목표로 내세운다.
행사의 진행은 다섯 가지 키워드(연결, 성찰, 전환, 공유, 실천)로 이 네트워크의 성격을 압축한다.
⚫ 연결 : 분야·세대·지역·조직을 넘어 생명평화운동 주체들 간의 실질적인 연결망을 형성한다.
⚫ 성찰 : 기존 운동의 사상과 방법을 돌아보고, 구조의 변화와 개인들의 변화를 함께 성찰한다.
⚫ 전환 : 생태적 전환, 커먼즈, 지속가능성, 비인간·미래 존재 등을 위한 전환적 관점을 갖는다.
⚫ 공유 : 현장의 사례, 실패와 성공의 경험, 실천 도구와 방법을 공유한다.
⚫ 실천 : 개별적 또는 공동의 실천, 연대의 캠페인 등 느슨하지만 지속적인 실천 네트워크를 만든다.
이를 위해 이번 한마당은 환경운동, 지역운동, 마을운동, 협동조합·의료사협, 교육·에너지운동, 성평등·페미니즘, 남북 평화운동, 종교·영성, 학문·연구자 커뮤니티 등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는 70여 개 이상의 단체가 협력·공동주최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여성환경연대, 한국 YMCA 전국연맹 같은 대표적 환경·시민단체뿐 아니라, 한살림의 모심과 살림연구소, 전국귀농운동본부,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우프코리아 등 농업·생협·귀농·먹거리 커먼즈를 실험해온 조직들이 함께한다. 생태영성연구소, 예수살기,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불교환경연대의 녹색불교연구소, 오대산 생명문화원 같은 종교·영성 기반 단체들, 그리고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 생태적지혜연구소,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한신대 생태문명원 등 학문·연구 기반 조직들도 이 장에 합류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운동의 언어와 방식이 한 공간에 모여 서로를 소개하고, 비판하고, 배우며 앞으로의 공동 과제를 찾는 과정 자체가 생명평화운동의 생태계를 회복하고 재구성하는 살아있는 교류의 장”이 된다.
지난 1월 12일, 파키스탄 길기트-발티스탄의 훈자 계곡에서 눈이 내리지 않아 산이 황량해 보이는 모습. 2026.1.12.로이터 연합뉴스
지구 온난화 속 발생 빈도와 지역이 급증하고 있는 산불. 2020년 2월 1일, 호주 수도 캔버라 남쪽 범발롱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산불. 2020.2.1.AP 연합뉴스
수평성과 몸의 감각, 돌봄을 앞세운 새로운 운동 문화
이번 한마당의 진행 원칙에서 눈에 띄는 것은 수평성”, 다양성”, 몸과 감각”, 지역성과 생태성”, 환대와 돌봄”이다. 준비위원회는 위계적·수직적이 아닌 참여적·관계적 대화”를 지향하며 , 하나의 목소리로 모으는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한 소리, 차이나는 가치를 존중”하는 장을 만들겠다고 밝힌다. 이는 생명평화운동이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비위계적 조직문화’와 ‘민주적 소통’의 가치를 실제 프로그램 설계와 운영 방식에 구체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의지이다. 또한 토론뿐 아니라 걷기, 명상, 예술, 노동, 놀이 등 몸의 감각”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도 강조된다. 이는 생명·평화라는 말이 추상적인 사상과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몸의 호흡과 리듬, 생활의 리듬, 관계의 감각 속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인식의 표현이다. 예컨대 (우주)생명학과 난세 읽기” 프로그램에서는 춤 명상 퍼포먼스와 토론이 함께 구성되고 , 워킹플레이 방식의 생명평화 전환사회를 여는 워크숍”에서는 춤과 몸의 감수성을 높이며 참가자들이 움직이며 과제를 찾고 논의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가뭄으로 말라가는 레바논 최대의 저수지. 2025년 8월 6일, 레바논 동부 카라운 마을에 있는 레바논 최대 저수지 중 하나인 카라운 호수의 수위가 낮아진 모습. 2025.8.6.. AP 연합뉴스
길틔움과 살림공사 : 사상과 실천을 엮는 세 가지 축
한마당의 프로그램은 크게 ‘살림공사(참가자 전체토론)’와 ‘길틔움(주제토론)’으로 구성된다. ‘살림공사’는 전체가 함께 모이는 공동 마당으로, 사상과 비전의 큰 물줄기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장이다.
⚫ 살림공사 1 선지식과의 대화”에서는 도법스님(실상사 생명평화결사), 정성헌(DMZ평화생명동산), 강대인(대화문화아카데미) 등이 40여 년 생명운동의 역사와 성찰, 전환의 과제를 나눈다.
⚫ 살림공사 2는 생명평화 전환사회를 여는 공동 워크숍”으로, 참가자들이 오픈스페이스 형식으로 과제를 찾고 전환의 바람을 일으키는 실험적 장이다.
⚫ 살림공사 3 생명평화 운동의 미래를 위한 모색”에서는 각 참여 단체 대표들이 직접 생명평화운동의 방향과 활동을 발표하고, 함께 향후 공동 실천을 모색한다.
한편 ‘길틔움’은 다양한 주제를 가진 분과 세션들이다. ● 전환의 정치, ● 국제질서와 한반도, ● 혐오와 차별, ● 사물의 의회와 가이아 민주주의, ● 농사와 전환, ● AI와 생태, ● 먹거리 커먼즈와 영성, ● 이스라엘-가자 전쟁, ● 지구문명위기와 생명평화물결혁명, ● 공동자원의 용법과 탈성장, ● (우주)생명학, ● DMZ 생추어리, ● 에코페미니즘과 돌봄, ● 21세기 생명사상 등 총 14개의 의제를 중심으로 토론하고 대화한다.
이 사상과 실천의 장들은 1980년대 원주에서 시작된 생명”이라는 단어가 오늘날 어떤 철학과 언어, 어떤 정책·운동·문화의 형태로 번역될 수 있는지를 다각도로 탐색하게 한다. 예컨대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의 생태사회 전환을 위한 공동자원의 용법”은 탈성장과 커먼즈, 시민배당, 과소이용 등 새로운 경제·제도적 상상력을 제안하고,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달과나무’의 생태적 전환과 에코페미니즘: 돌봄, 지역, 농업”은 돌봄 중심 전환과 개발주의 비판, 지역 공동체와 젠더 정의를 엮어낸다. 이는 생명평화운동이 더 이상 ‘환경’에 한정되지 않고, 생명과 평화의 관점에서 정치·경제·젠더·기술·국제질서까지 통합적으로 다시 묻겠다는 선언이다.
역사적 연결 마당, 그 이후를 향해
준비위원회는 이번 역사적인 회합의 장”이 이제야 마련된 점에 대해 아쉬움과 송구함을 밝힌다. 재정과 역량의 제약 속에서 모든 단체가 초기 기획부터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그렇기에 이번 한마당은 더욱 조촐하지만 절실한 시작의 문”으로 기획되었다.
생명운동은 저항과 감시 운동과 더불어 대안과 창조의 운동이며, 외부 사회의 변화와 자기 내부의 영성적 각성을 함께 도모하는 운동이다. 또한 근대사회에서 탈근대의 틈을 발견하고 비집고 확장해 나가며 중심을 이동시키는 틈새운동이다. 이 한마당을 계기로 이후 여러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첫째, 살림공사와 여러 길티움에서 나온 논의와 제안들이 단발성 주제로 소멸되지 않고, 이후 여러 단체의 공동 실천과 캠페인, 상설 네트워크로 이어져야 한다.
둘째, 수평성과 다양성, 몸과 감각, 돌봄의 원칙이 실제 한국 생명평화운동의 새로운 운동 문화와 네트워크 형성을 발전시켜 나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셋째, 문명적 전환이라는 거대한 방향이 마을과 지역이라는 구체적 현장 속에 어떻게 전환의 모델을 만드는 실천으로 나아가야 하는지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유정길 불교환경연대녹색불교연구소 소장
2026년 제1회 생명평화전환한마당은 그 자체로 완결된 답을 제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멈추어 질문을 새로 쓰고 비어 있는 글자를 각자의 언어와 실천으로 채워 넣기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100년 전 개벽을 꿈꾸던 보은취회의 동학혁명 이후, 40여 년 전 원주에서 다시 발아된 생명운동의 씨앗이 오늘 한국에서 가장 젊고 역동적인 거리 홍대 앞에서 생명평화 전환사회의 나무가 거대한 숲을 이루어 세상을 새롭게 만드는 역동적인 장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