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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500년 전 마르틴 루터의 못질이 던진 질문들

500년 전 마르틴 루터의 못질이 던진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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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크의 한 교회 문짝에 종이 한 장이 못질되었다. 작성자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서른넷의 신학 교수였다. 그가 붙인 것은 95개조 반박문 으로 불렸다. 내용은? 당시 교황청이 판매하던 면죄부에 대한 신학적 이의 제기였다. 면죄부란 돈을 내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상품이었다. 동전이 헌금함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영혼이 연옥에서 튀어 나온다 는 판매 문구까지 있었다고 하니, 오늘날로 치면 지금 결제하시면 구원 20% 할인! 쯤 되려나. 루터는 이 장사에 제동을 걸었다. 구원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이 대자보가 불과 2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졌다. 당시 막 발명된 인쇄술 덕분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게시글이 실시간 급상승 에 오른 셈이다. 교황청은 발칵 뒤집혔다. 면죄부 판매는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자금을 마련하는 핵심 수입원이었으니까.   1528년 루터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한 사람의 고집, 역사의 분수령이 되다 교황 레오 10세(Leo X, 1475~1521, 재위 1513~1521)는 루터에게 철회를 요구했다. 1521년 보름스 제국 의회에서 신성 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Charles V, 1500~1558, 재위 1519~1556) 앞에 선 루터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여기 내가 섰다. 내가 성경과 분명한 이성으로 설득당하지 않는 한, 나는 철회할 수 없고, 철회하지 않을 것이며, 철회해서도 안 된다. 이 장면은 개인이 거대 권력 앞에서 양심을 지킨 상징적 순간으로 기억된다. 물론 루터는 그 자리에서 목숨이 위태로웠다. 실제로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 1463~1525)의 도움을 받아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 지내야 했다.   마르틴 루터의 부모인 한스 루터와 마르가레테 루터의 초상화 (위키피디아) 성경을 민중의 언어로 루터의 진짜 혁명은 성경 번역이었다. 당시 성경은 라틴어로만 존재했고, 평범한 사람들은 읽을 수 없었다. 사제들만이 신의 말씀을 독점했다. 루터는 1522년부터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신약은 1522년에, 구약을 포함한 전체 성경은 1534년에 완성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큰일인지는 당시 상황을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지식과 정보가 특권층에게만 허락되던 시대, 루터는 모든 사람이 직접 성경을 읽을 권리가 있다 고 외쳤다. 정보 독점을 깬 것이다. 더 재미있는 건, 루터가 번역하면서 민중의 생생한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격식 차린 궁정 독일어가 아니라 시장바닥에서 쓰는 말을 담았다. 민중의 입을 들여다봐야 한다 는 게 그의 번역 철학이었다. 덕분에 루터 성경은 현대 독일어 형성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1505년 7월, 루터는 에르푸르트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들어갔다. (위키피디아) 종교개혁이 바꾼 것들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은 단순히 교회를 둘로 쪼갠 사건이 아니었다. 중세 유럽사회 전체를 뒤흔든 지각변동이었다. 첫째, 권위에 대한 질문이 허용되었다. 교황이 틀릴 수 있다 는 생각은 당시로선 상상을 초월하는 발상이었다. 루터는 성경에 없는 교황의 권위는 인정할 수 없다 고 맞섰다. 이는 절대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고, 이후 민주주의 발전의 씨앗이 되었다. 둘째, 개인의 양심이 중요해졌다. 각자가 신 앞에 홀로 선다 는 루터의 가르침은 개인의 책임과 자율성을 강조했다. 사제가 중간에서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직접 신과 관계 맺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개인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근대적 인간관의 출발점이었다. 셋째, 교육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다. 모두가 성경을 읽어야 한다면, 모두가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했다. 개신교 지역에서 초등교육이 의무화된 건 우연이 아니다.   루터가 1508년에 신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비텐베르크 대학 (위키피디아) 루터, 그는 성인이 아니었다 루터를 영웅으로만 그리는 건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다. 그에게는 어두운 면도 있었다. 1524년 독일 농민전쟁 때, 루터는 처음엔 농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봉기가 격렬해지자 태도를 바꿔 제후들의 진압을 옹호했다. 약 10만 명의 농민이 학살당했다. 루터는 사회 혁명까지 원한 건 아니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말년의 반유대주의다. 1543년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 대하여 라는 글에서 루터는 유대교 회당을 불태우라는 등 끔찍한 주장을 펼쳤다. 400년 후 나치는 이 글을 반유대주의 선전에 이용했다. 현대 루터교회는 이에 대해 공식 사과했지만, 이 오점은 지울 수 없다.   삭발한 수도사 루터의 모습을 묘사한 1520년의 판화 (위키피디아) 500년 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루터 이야기가 2026년 한국에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권력의 투명성과 책임. 루터가 면죄부 판매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권력의 투명성 문제였다. 교황청은 우리를 믿어라 고 했지만, 루터는 근거를 보여 달라 고 요구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필요하다. 정부든, 기업이든, 종교 단체든  우리를 믿으라 고만 할 게 아니라 투명하게 설명하고 책임져야 한다. 특히 대형교회의 세습과 재정 불투명 문제는 500년 전 면죄부 판매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지식과 정보의 접근성.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것은 정보 독점을 깬 사건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법률 용어는 여전히 어렵고, 행정 문서는 알아보기 힘들며, 전문가들은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말을 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정보에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공공정보의 쉬운 말 쓰기는 루터 정신의 현대적 계승이다. 개인의 양심과 용기. 여기 내가 섰다 는 루터의 선언은 조직과 권위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외로운지를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내부고발자들이 겪는 고통, 불의를 지적했다가 왕따당하는 직장인들을 생각해보라. 루터가 500년 전에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양심을 지키는 것과 조직의 평화,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비판적 사고의 힘. 루터는 교황도 틀릴 수 있다 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어떤가? 교수가, 선배가, 상사가, 어른이 말했다고 무조건 맞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비판은 불손함이 아니라 건강한 사회의 필수 요소다. 질문하는 것을 장려하지 않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사후에 그려진 루터의 초상화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수도사 모습을 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현재 한국 상황과의 접점 요즘 한국에서 가짜 뉴스 나 허위 정보 논란이 뜨겁다. 루터 시대로 치면 면죄부가 바로 그런 거였다. 근거 없는 약속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돈을 뜯어낸 사기. 루터는 성경 어디에 그런 게 있느냐 며 근거를 요구했다. 오늘날에도 필요한 건 팩트 체크와 근거 요구다. 또 한국 개신교 일부의 세습 문제, 대형 교회의 불투명한 재정 운영은 루터가 맞섰던 부패와 다르지 않다. 루터가 지금 한국에 온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 다시 한 번 교회 문에 대자보를 붙이지 않았을까.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믿고 따르라 는 식의 권위주의는 루터가 반대했던 교황의 무오류설과 다를 바 없다. 시민들이 정책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소통해야 한다.   1861년 조셉 노엘 패튼이 그린 에르푸르트의 루터 초상화는 루터가 오직 믿음으로만(솔라 피데)이라는 교리를 발견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개혁은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다 루터의 종교 개혁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가 던진 질문들이다. 권력은 정당한가? 권위는 근거가 있는가? 개인의 양심은 존중받는가? 정보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질문들은 유효하다. 아니, 더 절실하다. 루터가 교회 문에 못질한 건 답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그 질문들은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의 문에 못질되어야 한다. 개혁은 한 번의 극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완벽한 교회, 완벽한 사회는 없다. 중요한 건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하고, 개선하려는 태도다. 마르틴 루터가 남긴 진짜 유산은 새로운 교리가 아니다. 그것은 질문할 권리 이고, 의심할 용기 이며, 양심을 지킬 결단 이다. 이 유산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는 우리의 몫이다. 망치와 못 하나로 세상을 바꾼 남자. 그가 던진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우크스부르크 출신의 요르크 브로이 대가가 1530년쯤 제작한 목판화에 묘사된 가톨릭 면죄부 판매 모습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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