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업고 호가호위 카다피 아들 총 맞아 숨져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이프 알이슬람 카다피의 생전 모습 (AFP 자료사진 연합뉴스)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때 권좌에서 쫓겨나 분노한 군중들에게 맞아 숨진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 카다피(53)가 3일(현지시간) 무장 괴한들의 습격을 받고 숨졌다.
한때 아버지의 후계자로 널리 여겨졌던 그의 사망 소식은 이날 그의 정치팀장에 의해 확인됐다고 리비아 뉴스통신이 보도했다. 그의 변호사는 서부 진탄 시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4인 특공대 가 암살을 감행했다고 밝혔으나, 누가 공격의 배후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의 여동생도 오빠가 알제리 국경 근처에서 사망했다고 리비아 TV에 확인했다.
1972년생인 사이프는 부친이 권력을 장악한 1969년부터 2011년 축출 때까지 아버지 못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고, 민중들에게 두려운 지도자였다. 그는 2000년부터 리비아와 서방의 화해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공식적인 정부 직책은 없었지만, 정책을 형성하는 데 주도적이었으며 고위급 협상을 중재했다. 부친이 밀어붙이던 핵무장프로그램을 단념하도록 설득한 것도 그였다.
이 합의 덕에 리비아에 대한 국제 제재가 해제됐고, 일부는 카다피를 변화하는 리비아를 상징하는 인물로 여겼다. 하지만 사이프는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고 싶지 않다고 항상 부인하며, 권력의 고삐는 물려받을 농장이 아니다 라고 못박곤 했다.
그러나 이런 온건하고 개혁적인 이미지와 달리. 아랍의 봄이 일어나 부친을 향해 포위망이 좁혀오자 피의 강을 이루더라도 반정부 시위를 진압해야 한다고 공언했다. 아버지 축출 후, 그는 진탄 시에서 민병대에 붙잡혀 거의 6년을 투옥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2011년 그를 인도에 반한 범죄로 기소하려 했는데 리비아 법원이 선제적으로 그를 법정에 세웠다. 2015년, 그는 리비아 법원에서 궐석 재판 끝에 사형이 선고됐지만 곡절 끝에 사면돼 202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선거는 무기한 연기됐다.
이번 사건의 배후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그의 피살이 향후 리비아 대선 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리비아 문제 전문가인 에마데딘 바디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아들 카다피가 상당수 리비아 국민에게 순교자로 기억될 것이라며 대선의 주요 장애물이 제거돼 선거 역학을 바꿀 것 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