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제시하는 사법개혁 방향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사법부와 검찰에 대한 국민 불신이 극에 달했다. ‘권력 가까우면 무죄, 멀면 유죄’라는 냉소가 현실이다. 반복된 개혁 논의는 인적 쇄신과 기구 개편에만 머물렀고, 권력의 근원인 ‘국민의 직접 통제’는 여전히 외면됐다. 이때, 캘리포니아의 사법제도는 구체적 실천 가능성을 보여준다.
미국 연방 사법제도에서 판사는 사실상 종신직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의(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 대법관을 포함한 연방 판사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평생 직위를 유지하며, 해임은 극히 예외적인 탄핵(Impeachment) 절차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제도는 사법 독립을 강하게 보장한다는 의미를 지니지만, 사법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이곳의 사법제도는 판사에 대해 정치적 통제와 직업적 통제라는 이중 구조를 갖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콘트라 코스타 카운티 법원 건물. 사진 위키미디어 코먼스
판사에 대한 통제가 작동한다
우선 정치적 통제 장치가 있다. 캘리포니아의 1심 법원(Superior Court) 판사는 주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다. 또한 판사는 임기 중에도 주민소환(Recall) 선거를 통해 해임될 수 있다. 판사가 퇴임이나 사망 등으로 공석이 발생하면 주지사가 후임자를 임명하지만, 그 역시 다음 일반선거에서 유권자의 유임투표(retention election)를 거쳐야 한다.
항소법원 (Court of Appeals) 판사와 주 대법원 (Supreme Court of California) 대법관도 마찬가지다. 주지사가 임명하지만 이후 유권자가 ‘유임(Yes)’ 또는 ‘해임(No)’을 선택하는 유임투표를 (retention election)통해 평가를 받는다. 과반수가 반대하면 직을 상실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장치는 직업적 통제다. 캘리포니아에는 판사의 비윤리적 행위를 조사하는 독립기관인 캘리포니아 판사징계위원회 (California Commission on Judicial Performance)가 존재한다. 이 기관은 판사의 부패, 직무유기, 비위 행위 등을 조사해 견책, 정직, 심지어 해임까지 결정할 수 있다.
이처럼 캘리포니아의 제도는 사법 독립을 유지하면서도 사법 권력에 대한 민주적 책임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려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의 사법제도는 구조적으로 미국 연방제도와 유사하다. 판사의 해임은 탄핵 등 극히 제한적인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부폐한 판사를 해임할 수 있는 민주적 통제 장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캘리포니아와 같은 제도가 한국에 존재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사법부 인사들, 예컨대 조희대나 지귀연과 같은 사례도 논란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제도 아래였다면 이러한 사안은 캘리포니아 판사징계위원회에 고발되어 조사와 징계를 받거나, 경우에 따라 주민소환(recall) 절차를 통해 유권자의 판단을 받았을 것이다.
판사에 대한 주민소환제도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캘리포니아의 주민소환(Recall) 사유가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 헌법 (California Constitution) 제2조에 따르면 주민소환은 법률적 판단이 아니라 유권자의 정치적 판단에 맡겨진 제도이므로, 특정한 법적 위법 행위를 반드시 입증할 필요가 없다. 유권자들이 이 판사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판단만으로도 소환 절차를 시작할 수 있으며, 검찰총장이나 58개 카운티의 검사장 등 선출직 법집행기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물론 소환 청원서에는 이유를 기재해야 하지만, 그 이유의 타당성이나 진실 여부를 법원이 심사하지는 않는다.
참고로 1심판사뿐 아니라 캘리포니아 검찰총장이나 58 카운티의 검사장들도 선거로 선택되며 주민소환(recall)에 의해 해임될 수 있다.
실제로 주민소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해임 사유보다 유권자 서명이다. 판사를 소환하려면 일정 수의 유권자 서명을 모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해당 직위에 대한 최근 선거에서 투표된 총표의 20%에 해당하는 서명이 필요하며, 이는 160일 이내에 제출해야 한다. 1심 판사 (superior court judge)나 카운티 검사장(district attorney)의 경우 카운티 선거관리기관(county election office)에, 대법원 및 항소법원 판사(a justice of the Supreme Court or the Court of Appeal), 또는 검찰총장(attorney general)의 경우 캘리포니아 주 국무장관 (California Secretary of State)에 제출한다.
사법 권력 역시 공적 권력이라는 점에서 민주적 책임성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19세기 미국 서부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당시 캘리포니아에서는 철도회사인 서던 퍼시픽 철도회사 (Southern Pacific Railroad)가 정치와 사법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이 강했다. 이에 개혁가들은 정치인뿐 아니라 판사 역시 시민이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1911년 하이람 존슨 (Hiram Johnson) 주지사의 개혁으로 Recall(주민소환), Initiative(주민발의), Referendum(주민투표) 제도가 도입됐다. 이 제도들은 지금도 캘리포니아 정치의 중요한 특징으로 남아 있다.
사법 독립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다. 그러나 독립이 곧 책임의 부재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이제 한국에서도 사법 독립과 민주적 책임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보다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캘리포니아의 경험은 그 논의를 시작하는 하나의 유용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