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첩 을 만들다] ③ 조작 들통나자 조서 바꿔치기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동훈 제주평화쉼터 대표는 2023년,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 당국은 신 대표가 2017년 캄보디아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촉해 지령과 공작금을 수수하고 국내에 비밀 결사 조직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피의 사실을 공표하며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에게 간첩 낙인을 찍었고,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활동 이력과 엮어 세월호 간첩 이라는 악명까지 붙였다.
하지만 1심과 항소심에 이어 지난 9월 25일, 대법원은 그에게 최종 무죄를 확정했다. 이는 보수 언론이 즐겨 쓰는 증거 불충분 과는 본질이 다르다. 신 대표가 밝혔듯, 수년간에 걸친 내사와 불시의 압수수색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증거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아 무죄 판결을 받은, 증거 자체가 부재 를 확인한 사건이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막대한 인력과 세금을 투입해 한 평범한 시민을 어떻게 간첩 으로 조작하려 했는지, 그 비상식적인 조작의 전 과정을 추적한다.
신동훈 제주평화쉼터 대표가 1일 국가정보원 제주지부 앞에서 국정원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2025.10.1. (신동훈 대표 제공)
신동훈 제주 평화쉼터 대표의 일상은 간첩 이라는 프레임에 맞춰져서 난도질 당했다. 하지만 CCTV 영상 등 객관적 증거가 턱없이 부족했던 국정원과 검찰은 조사실 안에서 더 노골적이고 위험한 방식을 시도했다. 바로 피의자의 심리를 제멋대로 묘사하거나 신빙성 없는 증인을 내세우는 소설 쓰기 였다.
신 대표는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권리인 진술 거부권을 일관되게 행사했다. 그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기 위해 수사관의 질문 내용을 외우려 잠시 생각한 뒤,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방식을 유지했다. 문제는 조서 열람 과정에서 터졌다. 대부분의 질문에는 신 대표의 실제 답변대로 묵묵부답으로 답함 이라고 적혀 있었으나, 유독 사건의 핵심인 북한 공작원을 만났습니까? 공범 석모 씨를 처음 만났던 장면은? 이라는 질문에는 수사관의 주관적인 묘사가 교묘하게 덧붙여져 있었다. 그 질문에, 동공이 좌우로 흔들리고...
신 대표는 객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국정원 요원의 악의적인 기술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내가 언제 동공을 흔들었느냐, 소설 쓰지 마라 며 1시간 넘게 항의한 후에야, 수사관은 마지못해 해당 문구를 삭제했다. 그러나 그것도 속임수였다. 모든 조사가 끝나고 도장을 찍기 직전 신 대표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삭제됐던 동공이 좌우로 흔들리고 라는 문구가 귀신같이 원상 복구되어 있었다.
이 명백한 조서 바꿔치기 에 분노한 신 대표는 수사관들이 자신의 몸에 손대지 못하도록 바닥을 뒹굴며 격하게 저항했다. 그는 방금 꺼버린 수사 기록영상을 다시 켜라고 소리치며 증거 보전을 요구했지만, 국정원 요원들은 끝내 영상을 녹화하지 않았다. 변호인은 즉시 112에 신고했고, 경찰청 안보수사대로 경찰청(조사장소)에서 조서 조작이 벌어지고 있다 는 초유의 신고가 접수돼 경찰 인력이 들이닥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뿐만 아니었다. 조작된 심증만으로는 혐의 입증이 불가능해지자, 국정원과 검찰은 사람의 입 을 통해 사실을 만들어내는 고전적인 수법을 동원했다. 신 대표가 캄보디아에서 만난 인물이 북한 공작원 이라는 유일한 증거는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 소속 A씨와 탈북민 B씨의 증언뿐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증언석에서 자신이 북한 공작원 과 20년 전에 함께 훈련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변호인 반대 신문 과정에서 정작 본인의 직업이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 소속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황당한 해프닝이 벌어졌다. 국정원이 기소한 사건에 국정원 관련 인사가 객관적인 제3자 인 양 위장해 국정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셀프 증인 으로 나선 셈이다.
또 다른 증인 탈북민 B씨도 법정에서 20년 전 북한의 한 시설에서 위병(보초)을 설 때 그 사람(신 대표가 만난 인물)이 들어가는 것을 봤다 고 증언했다. 18년 전 탈북한 그가, 20년 전 스쳐 지나갔을지 모를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의 얼굴을 지금 와서 정확히 기억해 낸다는 말이다. 이는 과학적으로 신뢰하기 힘든 진술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B씨의 정체였다. 신 대표에 따르면, B씨는 정보기관 내에서 이른바 간첩 제조기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불가사의한 인물로, 과거 여러 간첩조작 사건에 단골 증인으로 등장해 왔다고 한다.
신 대표에게 국정원의 증거가 아닌 증거 제조 의 과정에 대해 물어봤다.
신동훈 제주평화쉼터 대표. 사진=한요나 시민기자
-조서 조작 시도와 간첩 제조기 증언, 이 일련의 과정들을 어떻게 보나?
객관적 물증이 하나도 없으니, 수사관은 저의 심리 상태 를 조작해서라도 증거로 만들려 했고, 검찰은 신빙성 없는 말 에 의존해 공작원을 만들어냈다. 만약 내가 유죄를 받았다면, 그 조작된 동공 흔들림 한 줄과 20년 전 기억 이라는 황당한 증언이 유죄를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을지도 모른다. 검찰은 조서 조작을 두고 미미한 사건 이라 축소했지만, 이것이야말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국가보안법 사건의 실체다.
-설령 그들이 북한 국적자라 해도 공작원 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것이 핵심이다. 북한 국적자라는 사실이 곧 100% 간첩임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A씨와 B씨의 신빙성 없는 증언이 북한 사람 이라는 것을 넘어 북한 공작원이 맞다 는 확증으로 쓰였다. 이렇게 증언만으로 공작원 을 만들고, 그를 만난 나는 자연스럽게 간첩 혐의자가 됐다.
객관적 물증이 없자 조서를 조작하고, 신빙성 없는 증인의 입을 빌려 간첩 을 생산해 내려는 시도. 이것이 법정에서 낱낱이 드러난 공안 수사의 악랄한 민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