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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압수수색, 우리가 멈추지 않아야 할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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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신천지의 정교 유착 의혹을 수사 중인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30일 오전 경기 과천시 신천지 총회본부를 압수수색한 가운데 출입문 앞에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교와 신천지의 정치-종교 유착 의혹을 수사 중인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30일 경기 과천시의 신천지 총회본부를 압수수색했다. 이 교회가 2021년 20대 대통령선거경선과 2024년 22대 국회의원 총선거 경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신도들을 국민의힘 책임당원으로 가입하도록 조직적으로 동원한 혐의와 관련해서다. 수사 결과를 예단할 수 없지만, 이 장면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종교와 권력, 조직과 진실’이라는 오래 된 문제를 통과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천지는 폐쇄적 조직 운영, 교주 중심의 절대 권위, 왜곡된 성경 해석을 이유로 한국 개신교로부터 오랫동안 이단으로 규정되어 왔다. 교회는 이런 이유로 신천지를 향해 강한 도덕적·신학적 비판을 가해 왔다. 그러나 질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신천지를 향해 적용했던 기준이 오늘의 정치 권력과, 그 권력을 축복해 온 교회의 태도를 향해서도 똑같이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신앙은 특정 집단을 단죄하는 것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기준이 스스로와 자신이 지지하는 권력 앞에서도 작동하는지를 통해 시험 받는다. 이 지점에서 오늘의 압수수색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거울이다.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이 신천지를 비판해 온 언어가 왜 전광훈식 정치 선동과 윤석열 권력 앞에서는 침묵하거나 축복의 언어로 바뀌는가. 이 모순은 종교의 정치 개입이라는 오랜 논쟁을 넘어 신앙의 자기상실이라는 더 근본적인 위기를 드러낸다. 신앙은 본래 권력의 시녀가 아니다. 신앙은 시대의 폭력과 거짓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자리에서 태어났고, 그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용기 속에서 자라 왔다. 예언자 전통이 그러했고, 예수의 길이 그러했다. 그런데 오늘 한국 개신교의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이 전통과 너무도 멀다. 그들은 신앙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권력에 봉사하고, 교회를 지킨다는 이유로 양심을 유보한다.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1. 이름의 문제는 상징의 문제 ‘새누리’가 ‘신천지’의 순우리말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명명 과정에 이만희가 관여했다는 의혹과 증언이 공적 영역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는데 많은 목사들은 이를 정치의 문제”라며 회피해 왔다. 그러나 이름은 단순한 표식이 아니다. 이름은 세계관의 압축이며, 권력의 자기정당화 장치다. 신앙이 상징을 가볍게 여기기 시작하는 순간, 신앙은 이미 자기 기준을 내려놓은 것이다.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논리가 살아 있다면, 그 논리는 상징과 계보의 문제 앞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해야 한다. 선택적 엄격함은 신학이 아니라 편의다. 편의는 신앙을 파괴한다. 이단을 비판하는 언어가 어느 순간 권력을 지지하는 언어로 바뀔 때, 신앙은 가장 위험한 상태에 들어선다. 비판의 칼은 아래로만 향하고, 위로는 무뎌진다. 신천지를 맹비난하면서도 그 정치적 상징과 후신을 지지하는 태도는 ‘원칙의 배반’ 이전에 ‘원칙의 부재’를 고백하는 셈이다. 원칙이 있었다면 비판은 일관되었을 것이다. 일관성이 없다면,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언제나 권력이다. 그리고 권력은 결코 공짜로 신앙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 권력은 신앙을 이용할 뿐이다.   30일 신천지의 정교유착 의혹을 수사 중인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신천지를 상대로 첫 압수수색에 나섰다. 연합뉴스 2. 전광훈 현상, 신앙의 언어를 탈취한 정치 전광훈은 신학자가 아니다. 그는 신앙의 언어를 정치적 동원으로 바꿔친 선동가다. 문제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그를 ‘필요한 악’ 혹은 ‘어쩔 수 없는 동맹’으로 용인해 온 교회 지도자들의 태도다. 복음의 언어가 증오와 공포의 확성기가 되는 순간,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공산주의”, 반국가”, 종북” 같은 낡은 낙인이 신앙의 이름으로 남발될수록, 교회는 복음을 잃고 동원만 남는다. 이것은 신앙의 승리가 아니라 신앙의 패배다. 정치적 선동은 언제나 단순한 구호를 원한다. 그러나 신앙은 단순함을 경계한다. 신앙은 질문을 요구하고, 맥락을 묻고, 피해자의 얼굴을 확인하라고 요구한다. 권력자는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은 지지의 이유를 묻는다. 법치, 공정, 정의라는 말이 실제 정책과 삶의 결과로 검증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노동의 조건은 나아졌는가. 약자의 삶은 안전해졌는가. 생명과 평화의 가치는 보호받았는가. 검찰 권력의 비대화와 정치의 사법화는 민주주의를 성숙시켰는가. 신앙은 질문을 멈추지 말라고 가르친다. 질문을 멈춘 지지는 신앙이 아니라 충성이다. 충성은 언제나 권력자에게는 달콤하지만, 신앙 공동체에는 독이다. 3. 윤석열 권력과 선택적 침묵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은 윤석열 정권을 기독교적 가치에 우호적인 권력”으로 포장해 왔다. 그러나 신앙은 권력의 자기평가를 그대로 받아 적는 종교가 아니다. 신앙은 권력의 언어를 의심하는 자리에서 시작한다. 권력의 방향이 정의와 멀어질 때, 신앙은 그 곁을 떠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 한국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비판해야 할 순간에 침묵했고, 거리를 두어야 할 지점에서 축복했다. 그 결과 교회는 영향력을 얻었을지 모르나 신뢰를 잃었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침묵은 현상 유지에 대한 동의다. 특히 영향력이 큰 대형 교회의 침묵은 개인적 선택이 아니라 공적 메시지다.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할 때 사용했던 기준—성경 해석의 왜곡, 지도자의 절대화, 폐쇄적 추종 구조—을 정치 권력과 그 주변의 지지 구조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보라.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 기준은 신학이 아니라 도구였을 뿐이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연합뉴스 4. ‘종교의 정치개입’이 아니라 ‘종교의 자기상실’ 정치에 발언하는 종교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무엇을 위해, 어떤 언어로 개입하느냐다. 예언자적 개입은 언제나 권력의 편이 아니라 피해자의 편에서 말한다. 오늘의 문제는 종교가 정치에 개입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가 종교의 언어를 점령했고 교회가 그 점령을 허락했다는 데 있다. 신앙의 자리를 권력에 내준 대가로 교회는 도덕적 권위를 잃었다. 더 많은 발언권을 얻었지만, 귀 기울이는 이는 줄어들었다. 교회가 잃어버린 것은 숫자가 아니라 무게다. 신앙의 언어가 더 이상 위험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것은 이미 복음이 아니다. 5. 예수의 길과 권력의 길은 다르다 예수는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아래로 내려갔다. 병든 자, 가난한 자, 배제된 자의 곁에 섰다. 오늘 교회 지도자들이 서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대통령실 문 앞인가, 아니면 비정규직의 쉼터 옆인가. 신앙은 선택이다. 어디에 설 것인가의 선택이다. 첫째, 정치적 지지의 언어를 신앙의 언어와 분리하라. 강단에서 특정 정치인과 정당을 축복하는 행위를 중단하라. 둘째, 비판의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하라. 이단을 규정하는 잣대를 권력과 교회 자신에게도 들이대라. 셋째, 피해자의 목소리를 우선하라. 노동, 여성, 이주민, 장애인, 청년의 삶을 설교의 중심으로 가져오라. 넷째, 질문을 복원하라. 신앙 공동체 안에서 권력 비판이 가능한 토론의 공간을 열어라. 다섯째, 회개하라. 잘못된 정치적 결탁에 대해 공개 사과하라. 회개는 패배가 아니라 회복의 시작이다. 6. 신앙은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버티는 윤리 신앙은 권력을 이기는 힘이 아니다. 신앙은 권력을 차지하려는 욕망과 경쟁하지 않는다. 신앙의 힘은 권력 앞에서도 침묵하지 않는 양심이며, 이익과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진실을 흥정하지 않는 내적 기준이다. 신앙은 승리의 언어가 아니라 굴복하지 않는 태도다. 박수와 특권이 사라질 때도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신앙은 정치와 구별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신앙은 정치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7. 말하기 전에 멈추고, 외치기 전에 돌아보고, 동원하기 전에 성찰을 교회가 다시 존경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큰 스피커가 아니다. 더 자극적인 구호도, 더 공격적인 정치 언어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말하기 전에 멈추는 법, 외치기 전에 돌아보는 법, 동원하기 전에 성찰하는 법이다. 깊은 침묵 속에서 자신이 무엇과 결탁해 왔는지, 무엇을 외면해 왔는지, 누구의 고통을 불편하다는 이유로 지나쳐 왔는지를 정직하게 묻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침묵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나올 수 있는 말—환호를 얻지 못하더라도 진실을 향한 말, 권력의 귀가 아니라 양심의 귀를 향한 말—이 필요하다. 교회가 잃어버린 것은 발언권이 아니라 신뢰이며, 영향력이 아니라 도덕적 무게다. 신천지와 전광훈과 윤석열을 지지해 온 대형 교회 목사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지켜 온 것은 신앙의 본질이었는가, 아니면 신앙을 매개로 확보한 영향력이었는가. 복음을 말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권력의 언어를 반복하고, 질서를 말하면서 약자의 삶을 무너뜨리는 구조에 눈감아 온 것은 아닌가. 선택의 시간은 이미 왔다. 아니, 이미 지나쳤다. 다만 아직 돌아설 기회가 남아 있을 뿐이다. 권력의 편에서 박수 받는 길을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복음의 자리로 돌아갈 것인가. 영향력을 유지하는 대신 신뢰를 잃는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영향력을 내려놓더라도 신앙의 정직함을 회복할 것인가. 역사는 권력의 편에 섰던 종교를 기억하지 않는다. 다만 늦었지만 돌아섰던 양심과, 끝내 굴복하지 않았던 용기를 오래 기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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