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TalkTalk】유니레버, 머스크, 지니 [교육] 안녕하세요. 어김없이 뉴스레터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예전에는 분명 기사를 찬찬히 쓰는 시간이 확보됐는데, 왜 직원도 많이 늘어났음에도 기사를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사쓰는 일은 조직의 장기브랜드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미팅이나 용역컨설팅 업무는 단기실적에 관련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급한 후자 쪽을 더 신경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업 ESG 업무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중요하지만 덜 급한’ 일이다보니, CEO한테 이 업무를 강제로라도 맡길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겠지요. ISSB 공시항목 중에 CEO나 경영진와 보수와 연계성을 묻는 항목이 들어가던데, 그런 공시철학이 이해가 되는 순간입니다. 여튼 저한테는 뉴스레터가 이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유니레버, 지속가능성 전략 축소?
최근 제 눈에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졌음에도 아무도 다루지 않았던 주제는 ‘유니레버의 지속가능성 전략 축소’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유니레버의 신임 CEO인 하인 슈마허(Hein Schumacher)는 “지속가능성은 브랜드관리자의 성과를 평가하는 종합점수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급진적 변화를 밝혔습니다. 그린비즈와 몇몇 외신을 종합하면, 지난 10월말 3분기 IR보고회에서 취임 100일을 넘긴 그는 “수백명의 직원, 고위관리자, 파트너, 정책입안자들과 인터뷰한 결과 지속가능성이 특정 제품범주에서 ‘놓칠 수 없는 경쟁우위(unmissable superiority)’의 핵심동인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지만, 모든 브랜드에 강제로 적용시킴으로써 목적을 이뤄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지구의 날을 맞아 '이지그린' 친환경 제품을 출시한 유니레버/ Unilever
슈마허의 비전에 따라, 유니레버는 기후, 자연, 플라스틱, 삶(climate, nature, plastic, livelihoods)이라는 4가지 축을 중심으로 지속가능성을 재구성합니다. 특히 부서장과 브랜드 관리자에게 진행상황을 추적할 수 있는 지표를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계획입니다. 슈마허는 “너무 장기적이어서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열망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게 아니라, 분기별로 꾸준하고 의미있는 진전을 이뤄내도록 우리의 작업을 단축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유니레버는 이를 검증하기 위해 과학기반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에 업데이트된 목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유니레버 신임 CEO의 심정이 십분 이해되고, 매우 적절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유니레버는 2039년 스코프1,2,3 배출량을 넷제로화하고, 이 노력을 위해 10억유로의 기후 및 자연기금을 조성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유니레버는 최근 1~2년 동안 주주행동주의로부터 주가를 올리라는 압박과 함께 “사업의 펀더멘털(fundamental)에 집중하는대신, 지속가능성 자격증(credentials)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는데 집착하고 있다”는 유명투자자 펀드스미스의 대표 테리스미스의 공격을 받기도 했지요. 제가 한양대 ESG MBA 학생들과 함께 유니레버와 파타고니아의 ESG 커뮤니케이션 및 브랜드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대다수가 “파타고니아는 브랜드의 본질(의류제품의 질)에서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았으며 지속가능성은 거기에 플러스가 되지만, 반면 유니레버는 브랜드의 본질보다는 지속가능성으로 더 많이 어필했다”며 인식이 같더군요.
유니레버는 2009년부터 2019년까지 CEO를 맡았던 폴 폴먼(Paul Polman)의 지속가능성 전략에 이어 향후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업(재무성과)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 성장을 이뤄낼 지에 대한 전략과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유니레버는 전사적인 목표를 가진 캠페인으로 지속가능성을 접근하는 게 아니라, 개별 부서장과 브랜드팀에서 진행상황을 평가하는 ‘지속가능성의 일상화(내재화)’에 더 집중할 전망입니다. 홍보 전략이 아니라 사업 전략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과한 분석인가요? 한국에는 번역되지 않았지만 제가 재밌게 본 CSO 관련 책에 등장한 코카콜라의 CSO의 전략과도 일치합니다. 베아트리스 페레즈 수석부사장 겸 CSO인 그녀는 2011년부터 이 역할을 담당해왔는데 그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코카콜라가 공개적으로 한 약속이 75개였다. 종료 날짜가 없고 너무 많은 일을 했지만, 사업과 직접 연관되는 목표는 많지 않았다. 지금은 지속가능성 관련 지표가 10개 이하이다. 새로 시작하는 조직이라면 비즈니스에 중요하고, 사회에 중요하며,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3~10개 목표를 만들고 여기에 집중해볼 것을 추천한다.”
어떤가요? 유니레버의 바뀐 전략이 다른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지 두고보겠습니다.
가뭄과 해운 물류 비즈니스
또 하나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가뭄과 기업 초비상 관련 내용입니다. 올 여름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유럽의 해상운송을 책임지는 라인강의 수위가 낮아져 비상이 걸린 소식이 외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있습니다. 유럽의 많은 기업들이 제조공장을 벨기에 등 북쪽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거나 기차나 트럭과 같은 대체운송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에서도 비슷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미국 미시시피강의 수위가 너무 낮아져서 해상 운송에 지장을 빚자 미 공병대(Army Corps of Engineers)가 준설선을 이용해 미시시피주 빅스버그 근처의 강에서 진흙을 퍼내고 있다고 CNBC가 30일(현지시각) 보도했습니다. 공병대의 항해 책임자는 낮은 강의 수위는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CNBC는 “2050년까지 기후변화와 씨름하는 해운업이 연간 100억달러(약 13조원)의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당장 RTI 인터내셔널의 연구에 따르면, 2019년만 해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는데 당시 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발생한 운송비용이 3억7000만달러(약 4800억원)에 달했습니다.
올 여름 파나마운하에서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운하를 지나는 선박들의 일일 운항 횟수를 줄였고, 이로 인해 극심한 공급망 운송 차질이 발생한 바 있습니다. 9월에도 가뭄이 해갈되지 않아, 비슷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미시시피강에서는 기록적인 낮은 수위로 인해 농산물 수송에 차질이 벌어졌고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하네요.
교역물량의 약 90%가 해운을 통해 이동하고 있고, 2050년까지 해상교역량은 3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해상운송은 열대성 폭풍, 내륙 홍수, 해수면 상승, 가뭄 및 극심한 더위로 인해 리스크가 무척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9월 세계 최대 해운사 중 한곳인 머스크는 전통적인 선박보다 탄소배출량이 적은 그린메탄올로 구동되는 첫번째 컨테이너선을 공개했습니다. 24척이 추가로 출시될 예정이지만, 연료가 비싸고 또 부족하다고 합니다. 머스크는 이상 기후에 대비해 선박 디자인도 바꾸고 기상관측 시스템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고 하네요. 일기예보, 기후데이터, 물류데이터와 AI가 결합한 재해 리스크 예측이 매우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강의 수위가 향후에도 낮아질 것을 대비해 바지선 자체를 이에 맞게 새로 주문하는 업체들도 있다고 합니다.
'지니'가 필요한 세상?
사실 기후변화가 기업,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 외신 기사 일주일치만 봐도 다 파악됩니다. 피해는 다 같이 받는데, 해결책은 다 똑같이 할 수가 없는 게 문제이지요. 전 세계는 학급이 아니니 담임도 반장도 없고, 사회가 아니니 경찰도 판사도 없습니다. 그러니 오로지 자율성과 양심, 선의에 기대야 하는 것이지요. 최근 정부의 일회용품 사용 규제 철회를 보니, 무능한 정부가 철학이 없으면 어떤 결과를 빚는지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이 규제 철회의 학습효과는 우리 시장에 또 어떻게 나타날까요? 역사적으로 재난상황을 유심히 보면, 반드시 누군가는 희생을 통해 더 큰 재난을 막아냅니다. 단기성 재난이 아닌 장기성 재난일 때에도 영웅이 나타날까요? 어이없게 ‘지니’와 같은 영웅이 나타나서 획기적인 탄소제거 기술을 만들어내는 미래를 기대해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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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란희 대표 &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