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길 현상 일본 극우화 과정 닮아간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해마다 일본 패전일이자 한국 광복절이면 일본 극우는 기승을 부린다. 사진은 지난 2019년의 그 날 도쿄 야스쿠니신사 앞에서 전범기인 욱일기(旭日旗)를 들고 시위하는 극우 지지자들 2019.8.15 연합뉴스 자료사진
일본의 극우화는 낯설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불편할 만큼 익숙하다. 혐오를 정치적 동원으로 사용하는 언어, 역사 문제를 이미 끝난 일”로 밀어내는 태도, 안보 위기를 과장하며 내부 결속을 도모하는 전략,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국가 정상화”라는 말로 포장하는 방식은 이미 여러 나라에서 반복되어 왔다. 일본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일본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의 미래와 가능성을 마주하게 된다.
일본의 극우화는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전후 체제의 균열 위에서, 장기 불황과 정체성 혼란, 정치 엘리트의 계산, 그리고 시민사회의 무기력이 서로 맞물리며 서서히 굳어져 온 결과다. 일본 사회는 지금 그 응축된 결과물을 살고 있다. 문제는 이 경로가 일본만의 고유한 길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 길은 이미 여러 사회가 지나왔고, 또 다른 사회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진입하고 있다.
1. 반성 없는 출발, 청산되지 않은 전후
일본 극우화의 출발점은 전후 처리 방식에 있다. 일본은 패전국이었지만, 전범 국가로서의 자기 부정과 체제 단절을 끝까지 수행하지 않았다. 독일이 나치 체제를 명백한 범죄 체제로 규정하고 국가 정체성의 전면적 재구성을 선택했다면, 일본은 연속성의 보존을 택했다. 천황은 전쟁 책임에서 면책되었고, A급 전범 상당수는 냉전 체제 속에서 정치·관료·재계의 핵심으로 복귀했다.
이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안정이었으나, 장기적으로는 독이었다. 일본 사회에는 패전은 있었으나 단절은 없었고, 평화는 있었으나 속죄는 없었다. 그 결과 일본 사회에는 묘한 이중 구조가 자리 잡았다. 헌법 9조로 상징되는 평화주의와, 그 이면에서 은폐된 제국의 기억이 공존했다. 전쟁은 잘못이었을 수도 있는 선택” 정도로 흐릿하게 남았고, 침략과 식민 지배는 체계적으로 서술되지 않았다.
이는 일본 사회에 공통의 역사적 부채 의식을 형성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역사적 책임이 집단적 기억으로 내면화되지 못했을 때, 기억은 언제든 정치적으로 재편될 수 있다. 일본 사회에서 역사 문제는 끝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로 남았다. 이 지점에서 극우는 출현한다. 극우는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해지지 않았던 것을 꺼내는 척하며, 억눌린 감정을 정당화한다.
우리는 충분히 사과했다.”
왜 우리만 가해자인가.”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일본인이다.”
이 말은 역사 인식의 공백 위에서 자라났다. 반성이 불완전할수록, 그 반성 자체에 대한 반발은 더 쉽게 조직된다. 일본의 극우는 바로 이 미완의 전후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다.
2. 경제의 몰락과 분노의 방향 전환
극우는 언제나 경제적 몰락의 토양에서 자란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적 약속의 붕괴였다. 노력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신화, 기업이 개인의 삶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신뢰, 국가가 미래를 관리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동시에 무너졌다.
일본 우익의 현대사 ‘극우의 공기’가 가득한 일본을 파헤치다, 야스다 고이치 지음 이재우 번역
문제는 그 붕괴의 책임이 어디로 향했는가다. 일본 사회는 이 실패의 원인을 체제 내부에서 끝까지 추궁하지 않았다. 금융 자유화, 관료와 재벌 유착, 정치의 무능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정면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대신 분노는 우회되었다. 외국인 노동자, 재일 코리안, 중국, 한국, 그리고 ‘자학 사관’에 빠진 좌파 지식인이 표적이 되었다. 극우 담론의 핵심은 단순하다.
우리는 본래 강했고, 잘못되지 않았다. 문제는 외부와 내부의 배신자들이다.”
이 서사는 복잡한 현실을 이해할 필요를 제거해 준다. 대신 감정의 배출구를 제공한다. 일본 사회가 이 서사에 점점 익숙해진 이유는, 그것이 진실이어서가 아니라 편했기 때문이다. 책임을 묻지 않아도 되었고, 구조를 바꾸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극우는 이렇게 실패한 사회의 심리를 포획했다.
3. 교육과 미디어의 후퇴, 기억의 사유화
일본 극우화의 또 다른 축은 교육과 미디어다. 역사 교육은 점진적으로 탈정치화가 아니라 탈책임화되었다. 침략은 진출로, 식민 지배는 근대화 기여로, 위안부 문제는 해석의 차이로 축소되었다. 논쟁은 사라졌고, 질문은 금기시되었다.
동시에 미디어 환경은 급격히 변화했다. 이른바 넷우익으로 불리는 온라인 극우 집단은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으로 이동했다. 알고리즘은 분노와 혐오를 확산시키는 데 최적화되어 있었고, 공영방송과 주요 언론은 이를 적극적으로 교정하지 못했다. 오히려 양비론”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그 결과, 역사 인식은 공적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개인 취향의 문제로 전락했다. 기억은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소비되는 콘텐츠가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극우는 더 이상 급진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의견이며, 때로는 말하기 어려운 진실로 포장된다.
4. 정치 엘리트의 선택, 극우의 제도화
아베 신조를 비롯한 일본 정치 엘리트들은 극우화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관리하고 활용했다. 개헌 논의는 언제나 선거 국면에서 재가동되었고, 안보 위기는 과장되었으며, 주변국과의 갈등은 국내 결속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이념적 확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철저히 전략이었다.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공포와 분노를 동원하는 것이다. 극우 담론은 복지나 분배처럼 예산이 들지 않는다. 대신 상징과 적을 제공한다.
이 선택이 반복되면서, 극우는 점차 제도 안으로 들어왔다. 그 결과 일본 사회는 더 이상 극우를 경계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상 정치의 일부가 되었다. 이 순간부터 극우화는 가속된다. 저항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27일 도쿄에서 진행된 중의원 선거 유세 연설에서 유권자들에게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AFP 연합뉴스
최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듯한 행보를 연일 보이는 것은 일본의 극우화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다가오는 정치적 선택지임을 보여준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과 비슷한 포퓰리즘 흐름에 호응하며, 이를 통해 일본을 더욱 우경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다카이치의 언어는 새롭지 않다. ‘강한 일본’, ‘자존의 회복’, ‘굴욕 헌법의 탈피’라는 표현들은 이미 아베 체제에서 충분히 예열된 레퍼토리다. 그러나 차이는 분명하다. 아베가 전략적 계산 속에서 수위를 조절했다면, 다카이치는 그것을 정체성 정치의 전면으로 끌어올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은 일본 극우화의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한다. 극우 담론이 더 이상 비공식적 동원 수단이 아니라, 총리 개인의 정치적 브랜드가 될 가능성 때문이다. 트럼프가 그랬듯, 다카이치의 득세는 일본에서도 ‘분노를 대표하는 지도자’를 제도 정치의 중심으로 이동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이때 극우는 더 이상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통치의 언어가 된다.
5. 피해자 일본, 선택된 기억의 정치
일본 극우 담론의 정서적 중심에는 ‘피해자 일본’이라는 서사가 있다. 원자폭탄, 공습, 점령의 기억은 강조되지만, 그 원인이 된 침략과 가해는 배경으로 밀려난다. 이 선택적 기억은 일본을 도덕적 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연민의 대상으로 재구성한다. 피해자는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분노할 권리를 가진다. 극우는 이 감정을 정치화하며 말한다.
우리는 아직도 처벌받고 있다.”
평화헌법은 굴욕의 상징이다.”
이렇게 해서 군사력 강화와 역사 수정은 자존심 회복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질문은 배신이 되고, 비판은 반국가가 된다.
6. 일본을 통해 한국을 본다는 것
이제 질문을 돌려야 한다. 일본은 왜 극우화되었는가가 아니라, 왜 이 과정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가다. 한국 역시 경제적 불안, 세대 갈등, 정치 불신, 혐오의 일상화를 경험하고 있다. 역사 문제는 정파적으로 소비되고, 안보 담론은 반복적으로 동원된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은 아직 기억을 둘러싼 투쟁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그 투쟁이 피로해졌고, 결국 포기되었다. 극우화는 어느 날 갑자기 승리하지 않는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침묵할 때, 그것은 자연스럽게 상식이 된다.
다카이치 현상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 이후 미국이 보여주었듯, 포퓰리즘과 극우는 국경을 넘나드는 학습 효과를 지닌다. 성공한 극우는 복제된다. 실패한 민주주의의 패턴은 수입된다. 일본은 미래의 타자가 아니라, 조금 앞서 가고 있는 현재의 이웃이다.
7. 이미 시작된 장면
전한길 전 강사가 지난 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장동혁, 누구와 갈지 선택하라 고 귀국 소감을 밝혔다. 2026.2.3 연합뉴스
지난 3일 전한길이 귀국했다. 그는 여전히 선동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맥락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발언이 박수와 환호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이 장면은 일본에서 이미 목격된 장면이다. 처음에는 소수의 과격한 목소리였다. 사회는 극단적이지만 표현의 자유”라며 방치했다. 그 결과 선동은 일상이 되었고, 과장은 정치가 되었으며, 분노는 조직되었다.
문제는 인물이 아니다. 그를 가능하게 한 사회적 조건이다. 피로, 불안, 질문을 포기한 분위기. 일본 극우화의 출발점과 너무도 닮아 있다. 일본 사회의 극우화는 특정 집단의 광기가 아니다. 그것은 질문을 멈춘 사회의 귀결이다.
왜 실패했는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이 질문들이 사라질 때, 가장 쉬운 대답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일본의 극우화를 주목한다는 것은 일본을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경고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기억하고, 질문하고, 불편해하는 시민이 있을 때만 작동한다.
극우는 언제나 그 반대편에서 자란다. 침묵 속에서, 피로 속에서, 그리고 이쯤이면 됐다”는 체념 속에서. 일본의 오늘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어디까지 침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