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23년 톺아보기: ESG가 주인공 아니다?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지속가능성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공정전환을 요구하는 전미자동차노조원(좌)/ 화석연료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자 (우)
지속가능경영 분야에 몸담은 한사람으로서 2023년은 혼란스러운 한 해였습니다. COP28에서는 화석연료 단계적 폐지가 논의되고, EU의회는 공급망 실사지침(CSDDD)을 통과시킨 반면, 전미자동차노조는 전기차 전환에 반발해 대규모 파업을 강행하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그린래시(Greenlash·친환경 정책에 대한 반발(백래시)을 일컫는 신조어)움직임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대립이 심화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와 관련한 글로벌 동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논의를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2013년, CSV(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의 창시자이자 저명한 경제학자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로 유명한 정치 철학자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기업과 시장경제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바 있습니다. 두 석학이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점은 오늘 날 지속가능성을 둘러싼 대립과 사회적 흐름을 이해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포터 “자본주의 사회에서 변화에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적
자본… 기업이 움직여야 세상이 바뀐다”
TED강연장에서 토론을 펼치고 있는 마이클 포터와 마이클 샌델/TED blog
마이클 포터의 논리는 간단명료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글로벌 경제 자본의 75%를 보유한 기업이 움직여야 사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영리단체와 정부 또한 맡아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고 포터 본인도 비영리단체를 4곳이나 설립했지만, 의미 있는 규모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업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대학에서 ‘지속가능경영학’ 수업을 들었을 때도 비슷한 논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해당 수업에서는 ‘어떤 곳이 가장 지속가능한 기업이 될까’라는 논의가 있었는데, 담당 교수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월마트’를 꼽았습니다. 당시 월마트는 자사의 상품에 지속가능성 점수를 부여하는 제도(높은 비용과 복잡한 절차로 인해 실현되지 못함)를 테스트 중에 있었는데, 만약 해당 제도를 통해 수많은 협력사 제품의 지속가능성 정보를 공개한다면 엄청난 파급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특히, 월마트는 단일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8번째 큰 무역 파트너였기 때문에(2004년 기준), 지속가능성 점수가 도입된다면, 중국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개선을 위한 물꼬를 틀 수 있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사회 문제 해결의 스케일링(Scaling)에 입각한 논리는 ESG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난 2020년, 블랙록의 래리 핑크(Larry Fink) 회장이 지속가능투자를 선언한 이후, 투자자 관점의 SASB, TCFD 공시가 확산되었고 거대 자본의 ESG투자는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이에 맞춰 기업들은 탄소중립과 RE100을 선언하면서 모든 것이 순탄해보였습니다.
투자자 관점의 ESG, 긍정적 결과 만들지 못해...
이해관계자 반발 불러일으켜
2030 SDGS 달성 중간경과 (좌), 미국 연간 파업 참여 노동자 숫자/ SDSN, CNBC
하지만, 이러한 ESG활동이 환경과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았을까요?
유엔 지속가능개발 솔루션 네트워크(SDSN)의 지속가능개발 2023 보고서에 따르면, SDGs 수립 이후, 169개 목표 중 이미 달성되었거나 긍정적 경과가 보이는 목표는 18%에 불과했으며, SDGs수립 이전보다 경과가 약화된 목표는 15%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발전 경과가 제한적이거나 진전이 없는 경우는 무려 6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실상 산업계의 ESG 활동이 글로벌 지속가능개발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한 셈입니다.
다른 지표들을 살펴봐도 부정적인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노르웨이 국제기후 연구센터(CICERO)에 따르면, 2023년 글로벌 탄소배출량은 37.2기가톤을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미국에서는 2023년 급격한 산업전환 및 노동인권 약화에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이 대거 파업을 강행하면서 파업 참여 노동자 수가 36만2000명을 돌파, 2021년 대비 약 10배 가량 폭증했습니다.
때문에 많은 이해관계자들은 안티ESG, 워크 워싱 (Woke-washing⋅사회적으로 깨어있는 척하지만 이와 상반된 행동을하거나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 그린 래시와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렇게나 뜨거웠던 ESG열풍이 이러한 결과를 맞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속가능성의 본질 되찾고 불평등 해소돼야”...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지속가능성
TED강연을 하고 있는 마이클 샌델/ TED Blog
마이클 샌델은 한 가지 사회실험을 통해 현재 ESG가 가진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텍사스에서는 어린이의 독서를 촉진하기 위해 8살 아동들에게 책을 한 권 읽을 때 마다 2달러의 인센티브를 주는 사회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실험 초기에는 이러한 매커니즘이 잘 작동합니다. 인센티브가 긍정적인 유인책으로 활용되면서 실제 독서량도 늘어난 것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동들은 독서를 통해 지식을 쌓는 것보다 보상을 얻는데 집중하게 되고, 그 결과 분량이 짧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만 읽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아동의 독서량은 늘어났지만, 인센티브로 인해 본말이 전도돼 ‘독서를 통한 지식 함양’이라는 의미가 퇴색되어버린 것입니다.
ESG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투자계의 금융 자본이라는 ‘인센티브'는 분명 기업 ESG활동의 촉매제가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들이 ‘환경과 사회의 지속가능성 도모’라는 본질적 가치보다 ESG평가 등급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등 투자자들의 눈치를 보게 된 것입니다.
결국 ESG는 이해관계자라는 폭넓은 주체를 포용하지 못하고 주주자본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셈입니다.
이러한 양상에 대해 옥스팜과 같은 비영리 단체는 산업계의 자발적 ESG활동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경고합니다. 때문에 EU공급망 실사지침 (CSDDD)은 기업들의 공급망 관리 책임을 강화하고 ESRS는 이중중대성(Double Materiality)을 강조하며, COP28은 상세 행동계획을 담은 탄소중립 선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인센티브만을 좇는 행위를 방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이클 샌델이 지적하는 두번째 부분은 불평등에 대한 문제입니다.
선진국의 전기차 생산을 위해 개발도상국 광물채굴 과정에서 대량의 환경오염이 발생하거나 아동노동이 만연한다면 이를 지속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에너지 전환을 위해 서민들이 2배 상승된 전기료을 납부해야하고 굴뚝산업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다면, 이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샌델은 기업 주도의 사회적 문제 해결 방식이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중대성 평가를 통해 이해관계자 니즈를 파악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해관계자의 니즈가 시장주의적 사고에 기반한 기업 의사결정에 반영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정치권, 농민, 노동자 등 다양한 글로벌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의 ESG활동에 공감하지 못하고 반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회적 고려와 이해관계자 포용이 핵심...
새로운 지속가능성 흐름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공정전환(Just Transition)은 협력사 노동자, 취약계층, 지역사회 주민 등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공정'한 산업전환을 도모한다./ ERG
최근 마이클 샌델이 지적한 ESG의 문제점을 타파하기 위한 움직임이 커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글로벌 금융계는 임팩트 공개 협의체 (Impact Disclosure Task Force·IDT)를 창설해 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IDT의 공동 의장 세드릭 메를(Cédric Merle)은 “기존의 ESG 데이터 프레임워크가 사회적 고려를 포함하지 않고, 기후변화 부문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지속가능개발의 많은 부분에서 퇴보가 있었다”며 “ESG 정보공개 표준이 ESG리스크 회피에 대한 규범이나 기준 제시에 집중한 반면, IDT는 SDGs를 중심으로 임팩트 창출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제사회도 ‘공정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어젠다를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나 아시아 개발은행(ADB) 과 같은 국제기구는 ‘아무도 소외되지 않게 하겠다(Leave No One Behind)’라는 슬로건 하에 지역사회, 개발도상국 노동자, 취약계층 등을 고려한 지속가능개발을 도모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에니(Eni) 등의 선도기업들도 공정전환보고서나 직무전환 플레이북 등을 발간해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전환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2024년에는 지역사회와 정부, 노사가 화합해 지속가능성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관심있게 지켜볼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임팩트온 송선우 에디터
임팩트온 송선우 에디터는 분석 기사를 통해 ESG 공시, 프레임워크, 트렌드 등 글로벌 ESG 주요 현안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네이버의 ‘E커머스 ESG전략 사내 세미나’, SK경영경제연구소의 ‘탄소중립 사례연구’ 등 ESG 관련 리서치와 국제 표준 분석 등의 연구작업도 함께 참여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에서 지속가능경영과 재생에너지 분야를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