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수출 관련 대통령 보고, 잘못됐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17일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웨스팅하우스(WEC) 간 협약과 갈등을 두고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미국과의 지식재산권 문제라면, 통상 특허는 20~25년의 보호기간을 갖는데 그 유효기간이 이미 지난 사안이 아니냐는 취지의 질의였다. 이는 대통령이 이 사안을 ‘지재권(IP) 문제’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산업부 장관과 지식재산처장의 답변은 대통령의 인식을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소지가 크다. 이들은 이 문제가 특허가 아니라 ‘영업비밀’에 해당하며, 영업비밀은 보호기간의 제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답변은 겉으로는 법률적 설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동시에 대통령의 원자력 정책 판단에 중대한 왜곡을 초래할 수 있는 설명이다.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산업부, 중기부, 지재처 업무보고에서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이재명 대통령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5. 12. 17 연합뉴스
기업 간 계약 분쟁’ 아닌 ‘국가 간 기술주권 문제’
이 문제의 본질은 지식재산권이나 영업비밀이냐의 문제보다 미국의 원자력 기술 수출통제 제도, 즉 미 연방규정 ‘10 CFR Part 810’에 있다. 이 내용은 웨스팅하우스가 2022년 10월 미 컬럼비아 특구 연방법원에 한전,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소장에 나오는 내용이기도 하다(Case 1:22-cv-03228-APM Document 1). ‘Part 810’은 미국 기원의 원자력 기술이 외국으로 이전되거나 외국인이 접근하는 행위를 미국 에너지부(DOE)의 승인 대상으로 규정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특허 존속기간과 무관하고, 기술의 공개 여부 또는 영업비밀 형태로의 관리 여부와도 별개로 작동한다. 미국 정부의 기본 판단 기준은 기술의 미국 기원 여부와 원자로 설계·안전해석·연료·주요 계통 등 민감 기술 영역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따라서 대통령의 25년이 지나면 끝난 것 아니냐”는 질문은 지재권 관점에서는 합리적일 수 있지만, ‘Part 810’ 체계에서는 성립될 수 없는 질문이다. 문제는 이 지점을 명확히 설명해야 할 산업부 장관이 ‘Part 810’을 언급하지 않고, ‘영업비밀’이라는 전혀 다른 법적 틀을 들고 나왔다는 데 있다.
영업비밀은 기업 간의 민사적 권리 보호 개념이다. 반면 ‘Part 810’은 국가 안보와 외교, 기술 이전을 다루는 공법적 수출통제 규범이다. 두 개념은 법적 성격도, 정책적 의미도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게 본질과 다른 영업비밀을 강조하는 설명은 이 사안을 ‘국가 간 기술주권 문제’가 아니라 ‘기업 간 계약 분쟁’으로 이해를 축소시킨다.
한국의 원전 수출 역량에 또다른 결정적 제약 ‘간주수출’ 규정
여기에 더해, 산업부의 설명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또 하나의 중대한 제약이 있다. 바로 미국의 ‘Deemed Export(간주수출)’ 규정이다. ‘Deemed Export란 미국 내에서 발생한 기술 정보가 국적을 기준으로 외국인에게 제공될 경우, 실제 국외 반출이 없더라도 이를 ‘수출’로 간주해 통제하는 제도다. 이 규정은 ‘Part 810’과 결합될 경우, 한국의 원전 기술 참여와 투자 전략에 결정적인 제약으로 작용한다.
‘Deemed Export’ 규정 하에서는 한국이 미국 원전 사업에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더라도,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한국 기술자들이 미국 기원의 원자력 기술에 접근하거나 공동 설계, 해석, 운영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제한될 수 있다. 즉, 돈은 내지만 기술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그 결과 수출 역량도 축적되지 않는 구조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절차상의 불편이 아니다. 향후 한국의 미국 원전 투자 전략이 자칫하면 재무적 투자자” 역할에 머무른 채, 기술적 참여와 수출로 이어지지 않는 수확 없는 투자가 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산업 정책 차원에서도, 기술 자립 전략 차원에서도 심각한 장애물이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이 사안을 영업비밀 문제로 설명하는 것은 단순한 개념 오류를 넘어 정책 판단의 방향 자체를 흐리게 만든다. 대통령이 한국 원전의 국제 경쟁력을 판단할 때, 지재권 분쟁이 아니라 미국의 수출통제와 간주수출 체계 속에서 한국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산업부, 중기부, 지재처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2025. 12. 17 연합뉴스
원전 수출과 해외 투자 전략은 정확한 정보 위에 세워져야
왜 산업부장관과 지식재산처장은 ‘Part 810’과 ‘Deemed Export’를 함께 설명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이 제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순간 제기될 질문들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한국의 원전 수출과 투자는 WEC와 지재권 문제를 넘어 미국 정부의 승인과 통제 없이 가능한가, 그 리스크를 국회와 국민, 그리고 투자 대상국에 충분히 설명해 왔는가 하는 질문은 산업 정책을 넘어 외교와 주권의 문제로 확장된다.
그러나 불편하다고 해서 사실을 다른 개념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영업비밀이라는 설명은 정책적 편의일 수는 있지만, 정확한 보고는 아니다. 대통령의 정책 판단은 정확한 정보 위에서만 가능하다. 원전 수출과 해외 투자가 진정한 국가 전략이라면, 그 제약과 위험 역시 있는 그대로 보고되고 논의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누군가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만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정보가 정확해야 하고, 국가 핵심 산업의 구조적 현실이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지식재산권 문제가 아니라 기술주권과 수출통제, 그리고 간주수출의 문제라면, 그렇게 보고하고 그렇게 토론해야 한다. 그것이 정책을 바로 세우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