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기번이 20년 매달린 로마는 왜 무너졌나 [사회혁신] 혼자 살아남은 외아들, 폐허에서 운명을 만나다
영국 서리주 퍼트니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1794)은 일곱 남매 중 한 명이었다. 나머지 여섯은 모두 어릴 때 죽고 기번 혼자 살아남았으니 출발부터 생존왕이었다. 몸이 약해 학교에도 자주 결석했다.
모친 대신 이모 캐서린의 돌봄을 받았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열두 살에 자신에게 꼭 맞는 음식 을 찾았다고 했다. 역사를 음식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처음에 이모의 지도를 받은 것을 제외하면 기번은 늘 혼자서 공부했다. 이런 특징은 일생에 계속됐다. 기번의 위대한 작품은 다른 학자들의 자문을 전혀 받지 않고 쓴 것이어서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다.
옥스퍼드 모들린 칼리지에 들어가서는 얼마 못 가 가톨릭으로 개종해 아버지의 속을 뒤집어지게 만들었다. 순전히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는데 화가 잔뜩 난 아버지는 아들을 스위스 로잔으로 보냈다.
여기에서 개신교로 돌아오고 프랑스어와 그리스 고전을 파고들며 인생 진로가 완전히 바뀐다. 로잔에 망명 중이던 볼테르(Voltaire, 프랑수아마리 아루에 1694~1778)를 만나 그의 파티에 드나들었다니, 10대의 유배 생활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결정적 장면은 1764년 로마에서 나온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폐허가 된 카피톨리노 언덕에 앉아 있는데 근처 유피테르 신전 자리에서 수도사들이 저녁 미사를 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제국의 심장부에서 울려 퍼지는 수도사들의 노랫소리라니, 이 아이러니한 풍경이 그의 머릿속에 필생의 프로젝트를 심어버렸다. 로마는 왜 무너졌는가. 이 질문 하나에 그는 20년 넘게 매달리게 된다.
헨리 월턴이 1773년에 그린 기번 초상화(위키피디아)
국회의원 나리, 사실은 아무 말도 안 함
기번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재산 덕에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았다. 리스커드 지역구 하원의원도 지냈는데, 8년 동안 단 한 번도 의회에서 발언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그냥 조용히 앉아 휘그당 노선에 자동으로 손을 들어주는 벙어리 뒷줄 의원 이었다. 정치인으로서는 낙제점이지만, 덕분에 남는 시간에 로마사를 썼으니 인류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다. 정치를 하면서 정치를 논하지 않고, 대신 1400년 전 제국의 몰락을 논하는 것으로 시대를 우회 비평한 셈이다.
기번은 몸이 약해 학교도 자주 결석하고 옥스퍼드 모들린 칼리지에 들어가서는 얼마 못 가 가톨릭으로 개종해버려 아버지를 뒤집어지게 만들었다. 옥스퍼드 모들린 칼리지.(위키피디아)
각주에 독을 숨긴 남자
1776년 첫 권이 나온 『로마제국쇠망사』는 대박이 났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마저 극찬했을 정도다. 문제는 15장과 16장이었다. 기번은 기독교의 급속한 확산이 로마의 시민정신과 군사력을 갉아먹었다고 주장했는데, 이걸 아주 점잖은 문장 밑에 살벌한 풍자를 깔아서 썼다. 겉으로는 예의 바르지만 각주로 내려가면 은근슬쩍 성직자들을 비꼬는 문장이 튀어나오는 식이다. 당대 성직자들은 뒤집어졌고, 반박문이 쏟아졌다. 그는 이 일로 영국의 볼테르 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종교를 정면으로 들이받지 않고 각주와 문체의 아이러니로 조롱하는 이 화법, 지금 봐도 상당히 세련된 저격 기술이다.
기번은 사우스 햄프셔 민병대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잠시 동안 포트체스터 성의 지휘를 맡았다.(위키피디아)
문명은 왜 무너지는가, 그가 남긴 질문
기번의 논지 핵심은 단순하다. 로마는 외부의 야만족 침입 때문에 무너진 게 아니라, 내부에서 먼저 곪았다는 것이다. 지나친 사치, 시민정신의 실종, 군인정신의 소멸, 그리고 현세의 책임을 방기하고 내세로 눈을 돌리게 만든 종교의 확산까지. 그는 무려 여섯 권 분량으로 위대한 제국도 결국 내부부터 썩는다 는 명제를 증명해 보였다.
이 책이 무서운 건, 로마 얘기를 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18세기 영국을 향해 거울을 들이대고 있었다는 점이다. 로마제국의 이야기지만 독자들은 자기 나라의 미래를 자연스럽게 겹쳐 읽었다. 훗날 윈스턴 처칠(1874~1965)도 젊은 시절 이 책을 정신없이 읽었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세대를 넘어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다 는 불안과 경고를 심어준 텍스트였다.
근대의 어떤 역사가는 독서를 한다면 반드시 기번의 책을 읽어야 한다 고 말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위대한 역사학자 J. B. 베리는 기번이 여러 부분의 세부적인 내용과 몇몇 중요한 분야에서 시대에 뒤져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와 선조들이 전적으로 무능한 세계에서 살아오지는 않았음을 뜻할 뿐이다. 전반적인 면에서 그는 여전히 시대 를 초월해 있는 우리의 스승 이라고 말했다.
조슈아 레이놀즈 경이 1779년에 그린 기번 초상화(위키피디아)
아직도 계엄의 밤, 우리는 기번을 읽어야 한다
2024년 12월 3일 밤, 한국은 뜬금없이 계엄령이라는 낯선 단어를 다시 마주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듯, 그날 밤도 사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긴 사건이 아니었을 것이다. 기번이 말하고 싶었던 건 결국 이거다. 제도가 껍데기만 남고, 견제장치가 조용히 무력화되고, 정작 당사자들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한 채 관성으로 굴러가다가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
리스커드 지역구의 벙어리 의원이 정작 의회에서는 입을 닫고 서재에서만 진실을 말했다는 사실도 곱씹을 만하다. 지금 한국 정치권에도 할 말은 많은데 정작 필요한 순간엔 침묵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기번이 각주에 독설을 숨겼듯, 권력을 정면으로 들이받기 어려운 시대엔 풍자와 우회가 오히려 더 날카로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새삼 유효한 교훈이다.
무엇보다 기번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실용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의 공동체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무관심과 침묵 때문에 더 위태로운 건 아닌가. 로마는 야만족이 성문을 두드리기 훨씬 전부터 이미 안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계엄의 밤을 겪은 한국이 곱씹어야 할 건 바로 그 지점이다.
런던 벤틴크 거리에 들어선 기번이 1773년부터 1783년까지 살았음을 알리는 푸른 명판(위키피디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