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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아침이슬, 독재자가 키우고 금지한 노래

아침이슬, 독재자가 키우고 금지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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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 시절 노래는 노래로 평가받지 못했다. 누가 불렀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됐다. ‘아침이슬’이 대표적이었다. 1972년 4월 김민기의 앨범은 판매 금지와 함께 전량 회수됐다. 직접적인 이유는 이 앨범에 포함된 ‘꽃 피우는 아이’ 때문이라지만, 서울 문리대 진학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데모 노래를 가르친, 괘씸죄가 컸다. ‘아침이슬’을 포함해 김민기의 노래 두 곡이 포함된 양희은 앨범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1973년 양희은의 ‘아침이슬’은 유신정권으로부터 ‘고운 노래 상’을 받았다. 건전가요로도 지정돼 서울시 문화상까지 받았다. 유신 정권 초기 정권의 사랑을 받은 노래가 바로 ‘아침이슬’이었다. 잠깐 양희은의 앨범 타이틀에 대해 돌아보자. 그의 첫 앨범 타이틀은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이었다. 1972년 나온 2집, 1973년 나온 3집까지 모두 ‘고운노래 모음’이라는 희한한 말이 포함돼 있었다. 아무리 수준이 떨어진 제작자라도 이런 제목을 붙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이 어처구니없는 타이틀은, 당시 박정희 정권의 유치찬란한 사고방식과 저질 폭력성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창이었다. 2004년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김민기. 사진: 학전 제공 당시 정권은 국민이 봉건시대의 백성처럼 무조건 순하고 고분고분하기를 요구했다. 대북 관계에서 호전성을 강조하는 것 이외에, 만화고 그림이고 노래고 간에 등장하는 인물은 양처럼 양순해야 했다. 대중가요 앨범, 특히 여성 가수의 앨범 타이틀에 ‘건전’이라거나 ‘곱다’라는 표현을 넣도록 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요컨대 문화는 ‘건전하고’ ‘고와야’ 했다. 북한에서 아이들이 배우고 노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구호의 남한판, 아니 박정희 판이 그것이었다. 남이건 북이건 자극적이고, 비판적이고, 뒤틀린 표현은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간주했다. 당시 출시한 여가수의 앨범 타이틀에는 그래서 ‘고운 노래’ 혹은 ‘밝은 노래’라는 표현을 넣지 않을 수 없었다. 양희은의 1~3집 앨범은 물론이고, ‘끝이 없는 길’ ‘해님 달님’ 등으로 70년대 중반을 풍미했던 박인희의 1, 2, 3집 앨범 타이틀도 모두 ‘박인희 고운 노래 모음’이었다. 드문 예외 가운데 하나가, 1972년 발매한 방의경의 ‘내 노래 모음’이었다. 방의경은 제목에서 ‘고운’이라는 형용사를 빼버렸다. 정권은 방의경의 이 불온한 태도에 격분했던지, 앨범이 나오자마자 판매를 금지하고, 거기에 실린 노래들의 방송을 금지했다. 시중에 깔린 음반은 회수해 면도날로 그어버렸다. ‘양희은의 고운노래 모음’에 포함된 건전가요 ‘아침이슬’과 박정희 정권의 밀월은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2년 뒤인 1975년 대중가요 정화 조치 때였다. 유신정권은 안면을 180도 뒤집어 ‘아침이슬’을 김민기가 작곡한 다른 모든 노래와 함께 공식적인 금지곡 목록에 올렸다. 엄혹한 시대 양희은 1집 앨범에  고운노래 모임이라는 타이틀이 눈길을 끈다. 사진출처: 위키백과 정권은 이때 사회 통념 위반, 근로 풍토 저하 등의 이유를 들어 223곡의 방송, 판매 그리고 노래를 금지했다. 그런데 정부가 건전가요 지정은 물론 각종 상까지 줬던 ‘아침이슬’을 금지하는 게 민망했던지, 근거는 대지 않았다. 심사할 때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라는 가사가 불순하다느니, ‘붉은 태양’이란 김일성을 뜻하는 것 아니냐는 따위의 이야기가 오갔다는 소문이 세간에 떠돌았지만, 확인된 것은 없다. 당시 한 심사위원(황문평)은 스스로 ‘왜 그 노래가 금지곡에 포함됐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며, 남산 쪽(중앙정보부)를 넌지시 쳐다보더란다. 김민기와 한때 작업을 함께하기도 했던 가수 이수만은 1978년 겁도 없이 이 노래를 밤무대에서 불렀다가 가수 생활을 종 칠 뻔했다. 이수만이 그때 가수 생활을 접었다면 오늘날의 ‘K-팝’ 신화가 나오기까지는 더 오래고 험한 길을 걸어야 했을 것이다. ‘아침이슬’은 북한에서도 남한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 이상할 정도로 열심히 ‘아침이슬’을 보급했다. 그러나 남쪽에서 이 노래가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가요의 상징이라는 사실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 알려지기 시작하자 1996년 방송 및 가창을 금지했다. 북한에서 ‘아침이슬’이 불릴 때 ‘이등병의 편지’를 북한식으로 번안한 ‘상등병의 편지’도 보급했는데 젊은이들에게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탈북자인 주성하에 따르면 ‘군 생활 당시 훈련받을 때 이 노래를 합창’할 정도였다고 한다. 북한의 대표적인 경음악단인 칠보산음악단도 이 노래를 주요 레퍼토리로 삼기도 했다. ‘이등병의 편지’도 ‘아침이슬’이 ‘숙청’될 때 함께 금지됐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에 이르는 군사정권의 철통같은 봉인에도 ‘아침이슬’은 1990년대 초까지 한국의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이한열의 장례식 시청 앞 노제 때 그곳에 운집한 1백 만여 명의 군중이 함께 부른 노래는 애국가와 ‘이침이슬’이었다. 2016년 11월 26일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 때 운집한 100만 인파가 양희은과 함께 부른 노래도 ‘아침이슬’이었다. 이 노래는 김민기가 세상을 떠난 뒤인 2024년 11월, 우당 이회영 선생 교육문화재단이 주는 ‘우당 상’을 수상했다. ‘전 국민을 화합하는 정서적 토대가 되었다’라는 게 그 이유였다. ‘아침이슬’은 음악적으로 파격이었다. 보통 노래는 도, 미, 솔을 주 화음으로 하는 장조로 시작하는데, ‘아침이슬’은 ‘파’로 시작한다. ‘메인 테마’로 시작해 ‘메인 테마’로 돌아오는 일반적인 대중가요의 패턴도 거부했다. a-a-b-a 구조가 아니라 a-a-b-c로 구성한 것이다. 이런 구조는 오랜 모색과 힘겨운 고뇌에서 광야로 내딛는 결단의 노랫말 내용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절정 부의 장중하면서도 화려한 장면과 끝날 때의 이른바 찬송가의 ‘아멘 마침’ 형식은 종교적 분위기까지 자아낸다. 서울 강북구 수유리 아침이슬 노래비에 새겨진 아침이슬 악보. 사진출처:강북구청 블로그 캡처.  2절도 b부터 시작하여 또 다른 c로 끝난다. 장조로 시작해 ‘시련을 예감하는 부분’에서는 단조로 전조(轉調, 조바꿈) 했다가, ‘광야’로 나아가는 결단의 부분에서는 다시 장조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런 파격적이면서 서사적인 구조는 우리 노래에서는 일찍이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노랫말의 담담한 어조와 후반부의 선지자적인 결단 역시 음악 전체에 흐르는 절제된 감정과 ‘아멘 마침’의 화성과 조화를 이뤄, 부르는 이와 듣는 이의 감정을 고양했다. 이런 음악적 구조는 1980년대 민중가요가 본격적으로 나올 때 문승현의 ‘그날이 오면’ 등으로 이어진다. ‘한국 대중음악을 세계 수준에 올려놓은 곡’이라거나 ‘김민기의 아침이슬과 함께 1970년대는 시작했다’라는 평가는, 이런 전혀 새로운 형식과 내용 그리고 음악적 완성도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아침이슬’은 시대 상황, 젊은이 고뇌 그리고 시대정신만을 반영한 게 아니었다. ‘아침이슬’은 종교인, 정치인, 좌파, 우파를 막론하고 애창했던 것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오랜 애창곡이었고, 그가 선종했을 때 조문객들이 함께 불렀던 노래이기도 했다. 12·12 군사반란의 2인자 노태우는 민정당 대통령 후보 시절 자신의 애창곡으로 ‘아침이슬’을 꼽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 때 시민 수십만여 명이 광화문 광장에서 부르던 ‘아침이슬’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친위 쿠데타를 도모했다가 탄핵당하고 감옥살이를 하는 윤석열 전 대통령도 자신의 18번이 ‘아침이슬’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궁금했다. 대중가요도 아니고 가곡도 아닌 이 노래가 왜 이 나라에서 수십 년간 ‘애국가’보다 더 많이 불리며, 위로와 희망으로 시민적 일체감을 느끼게 했는지,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노랫말과 선율의 음악적 구조와 파격적인 요소들에 대한 분석 말고는 속 시원한 대답은 없었다. 지은이야말로 궁금할 텐데, 그는 굳이 따지려 하지 않았다. 그런 물음이 나오면 마지못해 이렇게 한마디 했을 뿐이다. 일단 작곡자의 손에서 떠나면 노래는 듣고 부르는 사람의 것이지, 작곡자의 것은 아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감정 상태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 다른 것 아닌가…?” 양희은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털어놓곤 했다. 노래는 불리는 순간 이미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것이 된다. 따라서 이 노래의 역사적인 힘을 만든 장본인은 노래를 듣고 부르는 사람이었다.” 김지하의 평가는 시적(詩的)인 것을 넘어 신앙고백에 가깝다. 그의 노랫말에는 죽음이 배어 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들으면 부활의 기쁨이 느껴진다. 밑을 흐르는 세계와 삶에 대한 짙은 사랑, 잃어버린 유년의 고향으로 이끌어주는 듯한 강렬한 종교성도 느껴진다. 이것은 죽음과 고문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 자체로서 하나의 저항이고 대안이다. 그 절정에 ‘아침이슬’이 있다. 미지의 삶의 광야로 무한히 열리는 ‘아침이슬’의 마지막 소절은 약속과 창조의 땅으로 나아가는 고달픈 유랑민의 복음이었다.”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 민주묘지 정문 앞에는 아침이슬 공원이 있다. 이 노래가 포함된 첫 앨범 가 발매된 지 50년을 기념해 2021년 9월 조성한 공원이다. 공원 안에는 ‘아침이슬 노래비’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한글 가사와 영문 가사가 나란히 새겨진 비가 있다. 영문으로는 하버드 대학 한국학 교수 카터 에케르트가 번역했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동고동락한 이 노래에 대해 시민들이 전하는 감사의 표시였다. 2021년 아침이슬 50년을 기념해 강북구 수유리에 조성된 아침이슬공원에 설치된 아침이슬 기념비. 사진출처:강북구청 블로그 캡처. 김민기는 ‘아침이슬’을 지을 즈음 짧지만, 깊은 모색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를 상징하는 노래로는 ‘아침이슬’ 이외에 ‘잘 가오’가 있다. ‘아하 누가 그렇게’와 함께 1970년 말 지어진 이 노래 역시 제 몸을 불사른 청년 노동자 전태일을 추모한 것으로 읽히고 또 불렸다. 먼 길 가는 친구야 이 노래 들어요/ 나, 가진 것 하나 없이 이 노래 드려요// 언제 나 또다시 만나게 될는지/ 잘 가시오, 친구여 부디 안녕히// 언제 나 또다시 만나게 될는지/ 잘 가시오, 친구여 부디 안녕히”. 이 노래는 ‘아침이슬’처럼 다양한 상황, 다양한 감정 속에서 다양한 발언으로 변주돼 불렸다. 대학가에서는 시위하다가 붙잡혀 유치장이나 구치소로 끌려간 친구를 기억하는 자리, 강제로 징집당하는 친구를 떠나보내는 자리, 불귀의 객이 되어 버린 친구를 기억하는 자리에서 많이 불렸다. 일반 대중도 유학이나 입대 혹은 졸업 등으로 먼 길을 떠나는 친구를 보내는 자리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이와 함께 자신이 처한 현실에 감정이입 하면, 끝없이 되풀이되는 모색과 고뇌의 반복에서 탈출하고 싶은 심정을 담은 노래가 되기도 한다. ‘잘 가오’는 1973년에야 윤지영의 독집 앨범에 처음 수록됐다. 다음은 이 노래와 관련한 짧지만 여운이 긴 에피소드다. 신군부가 폭주하던 시절,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와 이화여대 노래패 한소리가 어울려 함께 작업할 때였다. 뒤풀이에서 후배들은 김민기에게 노래해달라고 아우성쳤고, 김민기는 빼고 빼다가 더 뺄 수 없어 마지못해 부른 노래가 ‘잘 가오’였다. 김민기의 노래가 끝나자 한 총기 넘치는 후배가 그 자리에서 답가를 불렀다. 같은 노래에 가사만 바꿔 부른 것인데, 1절과 멋진 대구를 이뤘다. 그대만큼 먼 길을, 나 역시 떠나오, 어둠 속에 발걸음들, 언제나 쉬려나, 새벽이 밝아와, 푸른 강 보이면, 종이배로 소식을, 띄워 보겠소.” 이 송사와 답사는 전두환 군부정권 시절 수도 없이 이루어졌던 ‘떠남과 보냄’을 슬프면서도 의젓하게, 비장하면서도 따듯하게 정리하는 노래가 되었다. 참담한 상황에서도 노래로 말미암아 청춘의 창조적 열정은 약동했고, 낭만은 생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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