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수소는 공돈, 원전 수소는 생돈 [환경] 에너지의 원리를 이해하자
수소는 그 자체로 에너지원이 아니다. 전기로 물을 분해해 만드는 전기의 저장 형태 일 뿐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해진다. 어떤 전기로 수소를 만들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두 갈래로 갈린다. 낮 시간에 남아도는 태양광 전기로 만드는 수소와, 원자력발전소가 24시간 돌리는 전기로 만드는 수소다. 둘 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니 똑같은 청정 수소 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두 세계가 있다.
공돈과 생돈
집안 살림에 빗대어 보자. 한 달을 다 살고 나서 우연히 남은 돈이 있다면, 그것은 공돈이다. 어차피 쓸 데가 정해져 있지 않았던 돈이니, 적금에 넣어도 아쉬울 것이 없다. 반면 매달 들어오는 월급을 통째로 적금에 넣어버린다면 어떨까. 적금은 잘 쌓이겠지만, 당장 써야 할 생활비는 어디서 나오는가. 결국 누군가는 그 구멍을 다른 돈으로 메워야 한다. 이것이 생돈이다.
낮 시간 태양광 잉여 전기는 공돈이다. 한국의 전력망은 봄가을 한낮에 태양광 발전량이 급증해 수요를 넘어서는 일이 잦다. 이 전기를 그대로 흘려보내면 전력망이 과부하에 걸리므로, 발전기를 강제로 멈추는 출력제어(curtailment)를 시행한다. 즉 이 전기는 쓰지 않으면 그냥 버려진다. 0원의 가치다. 이 전기로 수소를 만든다면, 버려질 돈을 적금에 넣는 것과 같다.
원전의 전기는 생돈이다. 원전은 24시간 일정한 출력을 내는 발전기다. 이 전기를 수소 생산에 쓴다는 것은, 전력망에 공급할 수 있었던 멀쩡한 전기를 수소공장으로 돌리는 일이다. 그 전기가 빠진 자리는 다른 발전소가 메워야 한다. 수소는 만들어지지만, 그 대가로 어딘가에서는 비용이 발생한다.
경기 화성시의 어느 공공도서관 주차장의 태양광패널과 그늘. 요즘은 어디에나 깨끗하고 공짜인 태양광이 급증하고 있다. @이원영
가동률이라는 반론, 그리고 그 반론의 함정
물론 반론이 있다. 수소를 만드는 수전해 설비는 초기 투자비가 크기 때문에, 하루 종일 돌려야 단가가 낮아진다. 원전은 24시간 전기를 공급하니 설비 가동률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고, 태양광 잉여는 하루 3~5시간뿐이니 가동률이 낮아 수소 단가가 비싸진다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반론을 따라가면 더 근본적인 모순에 부딪힌다. 원전 전력을 24시간 수소 생산에 묶어둔다는 것은, 그 원전이 더 이상 전력망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가 아니라 수소공장에 전기를 파는 발전소 가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애초에 원전 수소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원전은 안정적인 기저전원이니 그 가치를 활용하자 는 것이었다. 그 원전이 전력망에서 완전히 이탈해 수소 전용 발전소가 되어버리면, 기저전원의 가치를 활용한다 는 말 자체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게다가 최근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나면서, 원전조차 출력을 줄여야 하는 부하추종(load-following) 요구를 받기 시작했다.
원전의 기저전원 지위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전력을 수소라는 또 하나의 고정 수요에 묶어버리면 원전의 경직성과 수소공장의 경직성이 겹쳐, 전력망은 두 개의 경직성을 동시에 떠안게 된다.
부하추종, 즉 전력망과의 호흡
여기서 두 수소의 차이는 비용 문제를 넘어선다. 태양광 잉여 전력을 흡수하는 수전해 설비는, 갑자기 불어난 강물을 옆 저수지로 흘려보내 강의 범람을 막는 둑과 같다. 태양광 출력이 치솟을 때 수소공장이 그 전기를 받아주면, 전력망은 그만큼 숨통이 트인다. 수소 설비가 전력망의 변동성을 흡수하는 완충재로 작동하는 것이다.
반대로 원전을 수소 생산에 묶으면, 평소 잘 흐르던 수로의 물을 통째로 다른 곳으로 빼버리는 것과 같다. 전력망의 수급 조절은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비용 측에서는 원전 수소가 유리할 수 있어도, 전력망의 호흡이라는 차원에서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정태적(static) 경제성과 동태적(dynamic) 계통 안정성은 서로 다른 차원이며, 한쪽에서의 우위가 다른 쪽에서의 우위를 보장하지 않는다.
이미 시작된 공돈의 활용
이것이 이론에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네덜란드에서는 2025년 11월, 기존 115M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에 5MW 전해조를 연결하는 H2 Hollandia 프로젝트가 착공했다. 이 전해조는 연간 약 30만kg의 그린수소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해당 태양광 발전소에서 발생하던 출력제어량의 절반가량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돌아가던 태양광 단지에 수소 설비를 더해, 그동안 버려지던 전기를 잡아낸 것이다.
영국은 재생에너지를 계속 늘려갈수록 출력제어 수준이 함께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5~20MW급 전해조를 최대 100MW급 태양광 단지와 짝짓는 방식이, 버려질 전력에서 새로운 수익을 끌어내는 이상적인 조합으로 떠오르고 있다.
브라질은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비율이 전국적으로 8%, 동북부 지역은 최대 11%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재생에너지가 늘어날수록 버려지는 전기 의 총량 자체가 커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보레고 스프링스 마이크로그리드 사업은 한 걸음 더 나간다. 수소 자원을 지능적으로 제어해 마이크로그리드를 안정시키고 태양광 출력제어를 줄이는 것이 핵심 목표다. 수소 설비가 단순히 잉여 전력을 받아주는 그릇이 아니라, 전력망의 안정화 장치로 설계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던지는 질문
한국은 아직 출력제어가 제주도 등 일부 지역에 국한된 문제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날수록 이 문제는 전국적인 과제로 떠오를 것이고, 그때 수소는 버려지는 전기 를 받아주는 그릇으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동시에 한 지역의 잉여만으로는 수소 설비의 가동률이 낮다는 한계도 분명하다. 이 한계를 넘어서는 길은, 시차를 두고 발생하는 여러 지역의 잉여 전력을 광역 전력망으로 연결해 모아내는 것이다. 햇빛은 연결을 부른다.
원전 수소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좁혀진다. 수소는 전력망을 살리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흔들리는 원전을 떠받치기 위한 것인가.
공돈으로 적금을 들 것인가, 생돈을 헐어 적금을 들 것인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하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leewy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