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당’과 ‘첨벙’ 사이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재즈가 아닌데도 마치 즉흥곡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드는 시와 그림이 있다. 좀 전에 일어난 상황에 대한 무한한 상상이 긴 여운을 남기는 그런 작품들 말이다. 예를 들면 바쇼의 유명한 하이쿠 중 하나인 ‘개구리’.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퐁당
단 세 줄의 시를 읽고 퐁당! 물소리가 들리는 이유는 뭘까. 아무도 찾지 않는 연못이 너무 슬퍼 개구리가 뛰어든 것인가. 그렇다면 그곳은 과연 연못이었을까. 간결한 시어에서 이처럼 상상이 일어나는 것은 빛나는 여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일즈 데이비즈가 말한 ‘음표 사이의 침묵’이 다양한 해석으로 기능하게 하는 것과 같다. 하이쿠에서 ‘17자의 음절’로 독창적이고 심오한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처럼, 블루스는 12마디의 패턴 안에서 솔로 연주를 얼마나 자유롭게 펼쳐 나갈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하이쿠와 블루스 모두 짧고 단순한 형식에서 피어나는 무한한 변주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형식 안에서의 무한 자유.
하이쿠 시인 바쇼
에도 시대의 방랑시인 ‘마츠오 바쇼’는 본명이 ‘후네무사’였으나 ‘바람에 잘 꺾이는 파초’의 의미를 지닌 ‘바쇼’라는 호로 바꾼 이후 바쇼로 알려지게 되었다. 5-7-5 음절의 3행으로 구성되는 짧은 시(반드시 계절에 관한 말이 들어 가야 하며 음절에 맞게 끊어 읽을 수 있어야 한다)인 하이쿠는 단순하고 명료한 바쇼의 삶과 세계를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다. 그가 ‘하이쿠의 성인’으로 불리는 것은 이전의 하이쿠에서 다뤄지던 언어 유희가 아닌 삶의 본질, 자연에 대한 사상, 삶의 무상함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바쇼는 하이쿠 시인으로서 명예를 얻고 성공을 거두었으나 모든 걸 내려놓고 은둔과 방랑으로 수행자의 삶을 실천해나갔다. 그 후 방랑 시인으로 살아간 바쇼는 ‘들판에 해골이 되리라’던 자신의 하이쿠처럼 길 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오지를 찾아 수천 킬로미터를 도보 여행하며 삶과 자연을 노래한 방랑시인 바쇼는 영원히 빛을 잃지 않는 하이쿠가 되었다. 그는 ‘제대로 표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언어(예술)의 우주적 법칙을 일찍이 터득했다. 그것이 바쇼의 하이쿠에서 봄이라는 계절이 들리는 이유다. 조금 전처럼 퐁당!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 A Bigger Splash 1967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 이것은 영국 팝 아트의 거장으로 불리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제목이다. 그림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수영장의 빈 다이빙대 위에는 물이 튀어 물보라가 일어난 흔적이 그려져 있다.
제목을 읽고 그림을 보면 조금 전 누군가 물 속으로 다이빙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중에 물보라 그려져 있을 뿐인데 물방울이 금방이라도 내게 튈 것 같은 기세다. 다이빙을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물에서 나왔을까. 물거품이 공중에 치솟았는데 물이 깊은 걸까? 공중에 흩어진 물보라는 보는 이로 하여금 끝없는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캘리포니아의 전형적인 저택, 빈 의자, 아무도 없는 수영장,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야자수 두 그루가 배경인 그저 한 장의 그림일 뿐인데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아무래도 이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영화의 한 장면이거나 조금 전 셔터를 누른 사진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곳이 그림 앞이 아니라 수영장인 듯한 착각마저 든다. 이처럼 호크니의 작품들은 보는 이에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을 준다. 밝고 대담한 컬러는 그의 일상과 주변 사람들을 등장시킴으로써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회화는 단지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감정을 함께 담아야 한다’는 그의 말은 모든 작품 속에 그대로 전해진다.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 1967)이 있기 전에 ‘작은 첨벙(A Little Splash1966)’, 그보다 커진 ‘첨벙’(The Splash1966)’이 있었다. 1년 후 호크니는 드디어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 1967)’을 완성한다. 작업의 시기에 따라 물보라가 커지는데 이는 호크니의 작업 과정을 공간이 아닌 시간으로 체험하게 한다.
영국 팝 아트의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이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품이다. 단순한 구도, 대담한 색상, 유머가 가득한 그의 많은 작품들은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새롭다. 영국의 팝 아트는 런던의 예술문화 운동인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 런던은 모든 것이 급변하는 전환기의 시기로 에너지 넘치며 도전과 모험정신으로 뭉친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장이었다. 전후 세대들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가치에 반기를 들었다. 그들은 모험과 창의성, 개방성으로 새로운 기법, 과감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런던의 화가들은 팝 아트로 전개될 새로운 재료와 기법, 일상적인 주제, 그리고 대담한 색상을 사용했는데 이러한 도전 정신을 기반으로 한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을 정의 하고 이끌어간 대표적인 주자가 바로 ‘리처드 해밀턴’과 ‘데이비드 호크니’이다. 패션에서는 미니 스커트가 처음으로 세상에 선을 보이고,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의 음악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소호, 첼시, 노팅힐은 예술 창작자들의 신전이 되었다. 예술의 감각이 대중문화에 흡수된 런던의 디자인, 패션, 음악은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젊은 작가들의 끊임없는 저항과 도전 정신으로 거대한 흐름이 된 이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이 마침내 런던을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도시’(1966 타임지)로 만들어준 것이다.
데이비드 호크니
이 시기의 패션, 영화, 음악, 예술은 지금도 대중 예술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언제나 새롭고 힙한 감각, 이것이 팝 아트의 힘이다. 호크니는 일러스트, 패션, 드로잉, 무대 디자인, 사진, 판화에서 영화까지 그야말로 장르를 종횡무진 오가는 멀티 아티스트다. 그의 작품 은 2018년 생존 작가 중 최고의 경매가로 팔렸다고 한다
대중문화의 예술적 문화운동은 1960년을 전후로 ‘스윙잉 런던(Swinging London) 뿐만 아니라 파리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 브라질의 ‘보사노바’(Bossa Nova)로 퍼져 나갔다. 이는 전통과 현대의 다양한 예술 문화를 포용하고 재구성하는 새로운 물결(누벨바그, 보사노바)이 되었다. 런던에서는 팝 음악과 패션과 디자인이 세계적인 영향을 미치며 일상의 리듬을 바꾸어놓았다. 프랑스 영화 혁명을 일으킨 ‘누벨바그’는 기존의 형식을 거부한 영상 언어( 즉흥적이고, 파편적인 기법, 스토리의 해체)로 젊은이들의 불안과 자유를 표현했다.
리우에서 출발해 세계로 확산된 브라질의 ‘보사노바’는 삼바의 리듬에 재즈의 화성이 더해진 세련된 감각으로 일상의 시적 순간들을 담아내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문화의 토양에서 전후 세대의 창작자들이 추구한 것은 그들의 자유 정신과 다양성의 미학이었다. 독특한 시각, 유머와 심오함, 즉흥성, 세련되고 절제된 감각, 리듬의 재해석, 새로운 사유는 대중문화와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작품과 감상자와의 ‘공감’과 ‘소통’은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더 큰 첨벙’이 여전히 놀라운 것은 그림 속에서 표현된 ‘정지된 순간의 역동성’이다. 허공에 그려진 물보라는 물속으로 뛰어든 누군가의 흔적이다. 지금 여기에는 없으나 조금 전까지 존재했던 누군가를 계속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호크니는 물의 유동성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일주일 동안 ‘튀는 물’을 그렸다고 한다. 허공의 물보라는 단순한 흔적이 아닌 ‘부재의 미학’인 것이다. 그림으로 표현된 하이쿠의 ‘여백의 미’.
콜라주와 조립 기법, 판화,디지털 페인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상상력의 선율을 선사하는 호크니는 분명 캔버스 위의 즉흥 연주자다. 그가 보여주는 솔로는 화려하지만 쉽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철학이 담긴 그의 말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마음이 숙연해진다.
”나는 그림을 그린 지 60년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그림을 그린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이 일을 무척 즐기고 있다”
바쇼의 ‘퐁당’과 호크니의 ‘첨벙’ 사이엔 아무것도 없다. 17세기의 방랑 시인과 20세기의 팝 아티스트라는 구별 외엔 .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부재의 미’와 ‘여백의 미’에 집중했다. 일상의 작은 소재도 그들에게는 화두가 되었다. 그들은 단순함에서 비롯되는 심오함의 세계를 다룰 줄 알았다. 무엇보다 한두 음절, 정지된 순간 안에 ‘삶의 본질’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퐁당’과 ‘첨벙’ 사이엔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다.
바로 이것, 부재(不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