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떤 날씨인가요?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떤 날씨인가요?
입춘은 늘 조용히 찾아온다. 달력에는 분명 봄의 시작이라 적혀 있지만, 바깥 공기는 아직 겨울의 무게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하늘을 향해 마른 손가락을 뻗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다. 계절은 이미 움직이고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재)숲과나눔(이사장 장재연)이 에서 개최하는 김영미 개인전 ⟪마음의 기후⟫는 바로 그 순간에 문을 열었다. 공간풀숲의 올해 첫 번째 기획전으로, 새봄을 알리는 입춘(2월 4일)에 맞춰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봄이 어디쯤에 있을지,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전시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떤 날씨인가요?”
김영미 작가는 오랜 시간 ‘인간’을 주제로 작업해온 화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작품을 비롯해 드로잉 등 40여 점을 선보인다. 이 전시는 4년 만에 서울에서 열리는 김영미 작가의 개인전으로, 서로 돌봄’과 ‘상생’이라는 주제를 통해 관람객이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돌아보도록 기획하였다.
전시 제목인 ‘마음의 기후’는 낯설면서도 단숨에 이해되는 말이다. 마음에도 계절이 있고, 날씨가 있다. 우리는 종종 기분을 두고 오늘 마음이 흐리다”거나 기분이 맑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마음을 기후처럼 이야기하는 방식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하지만 기후 위기가 현실이 된 지금, ‘기후’라는 단어는 더 이상 단순한 비유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의 위기이자,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체감하는 불안이며, 동시에 서로 연결된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시대의 조건이다.
마음의 기후’는 그런 의미에서 더 복합적이다. 마음은 개인의 내부에만 머무는 감정이 아니다. 나의 마음은 타자에게 전염되고, 공동체의 분위기를 만들며, 때로는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 더 나아가 우리의 선택과 행위는 환경과 기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제는 내 마음이 좋다, 나쁘다”라고만 말할 수 없다. 마음의 상태를 가늠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바라보는 일이다.
김영미, 내면의 기상도 II (Inner weather map II), Oil on canvas, 116.5x91cm, 2025.
⟪마음의 기후⟫는 김영미 작가가 치매를 앓은 어머니를 15년간 직접 돌보며 체득한 삶의 감각에서 출발한다. 돌봄의 시간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그것은 반복되는 일상이며, 때로는 무력감과 피로로 가득한 과정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 시간 속에서 인간의 유한함을 배웠고, 존재의 근원을 마주했다. 매일 반복되는 돌봄의 행위 속에서 삶이 얼마나 연약한지, 동시에 얼마나 깊고 단단한지를 체감했을 것이다. 그 깨달음은 신작 ‘인간풍경’ 연작으로 이어져 이번 전시의 중심을 이룬다.
김영미, 파란 풍경 (Blue Landscape), Mixed media on etching paper, 48.3x33.8cm, 2025.
인간풍경’이라는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풍경이라 하면 흔히 자연을 떠올리지만, 김영미 작가는 인간을 풍경처럼 그린다. 그가 바라보는 인간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개인이 아니라 관계와 기억, 삶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집합적 존재다. 그의 그림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추상처럼 보인다. 색과 선이 자유롭게 얽혀 있고, 화면은 활달한 붓질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추상은 곧 무수한 인간의 형상으로 바뀐다. 그림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손을 뻗고, 어떤 이들은 어깨를 맞대고, 어떤 이들은 서로를 지탱하듯 서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낯선 군중을 발견하면서도, 이상하게 익숙한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김영미, 숨겨진 초상(Great Mom), Oil on canvas, 90.8 x 116.5cm, 2025.
위대한 엄마 , 전시 디스플레이 사진 (최연하 촬영)
위대한 엄마 작품 세부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은 그러한 김영미 회화의 힘이 응축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어머니를 그린 신작 초상으로, 화면은 마치 어머니의 생애 전체를 품고 있는 듯하다. 그림을 바라보면 어머니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가 평생 만나고 스쳐간 사람들의 얼굴과 몸짓이 함께 떠오르는 것 같다. 작가는 두 달에 걸쳐 이 작품을 완성했다. 2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기억이, 그림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리움이 슬픔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다시 불러내는 힘이 되는 순간이다.
김영미, 내면의 기상도 I (Inner weather map I), Oil on canvas, 61x73cm, 2025.
김영미 작가의 회화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화면을 통제하기보다, 살아 움직이게 한다. 붓질은 활달하고, 색은 자유롭고, 화면은 끊임없이 진동한다. 그 생생함은 단순히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 삶의 감각 자체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의 회화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관람객에게 되돌아온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타자와 연결되어 있는가.” 나는 돌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이번 전시는 인간풍경 연작과 함께 드로잉 작품들도 선보인다. 드로잉은 김영미 작가의 또 다른 언어다. 인간풍경이 숭고하고 아름답다면, 드로잉은 더 즉각적이고 역동적이다. 작가는 지난 40여 년 동안 인간의 신체를 주제로 수많은 인체 드로잉을 지속해왔다. 하루 5시간 이상, 어김없이 이어온 작업의 시간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가깝다. 드로잉 속 인물들은 순간의 움직임을 품고 있다. 선은 빠르고 거침없지만, 그 안에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관찰과 감각이 숨어 있다. 드로잉을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의 몸이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는 늘 몸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정작 몸의 움직임과 존재를 깊이 들여다볼 기회는 많지 않다. 김영미의 드로잉은 그 경이로움을 되살려준다.
김영미 작가의 드로잉 작품들, 공간풀숲 전시 디스플레이 장면 (최연하 촬영)
전시는 결국 ‘돌봄’이라는 주제로 수렴한다. 김영미 작가에게 돌봄은 단순히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는 매일 산책을 하고, 밥상을 차려 이웃과 함께하며, 자기의 몸을 살피고 나눔을 실천한다. 돌봄은 삶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자, 타자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다. 작가는 ‘타자를 돌보는 행위’를 통해 결국 자신을 돌보고, 더 나아가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공적이고 정치적인 책임으로 돌봄의 의미를 확장한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새롭게 생각해야 할 윤리이기도 하다. 돌봄이 개인의 희생이나 의무로만 남을 때, 그것은 쉽게 고립되고 소진된다. 하지만 돌봄이 공동체의 가치로 확장될 때,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김영미, 숲. 숨_메디치 블루 (Medici Blue), Mixed media on etching paper, 54.3x78.3cm, 2025.
전시가 열리는 은 (재)숲과나눔이 운영하는 환경·예술·문화의 거점 공간이다. 숲과나눔이 구축한 ‘환경아카이브풀숲’에 탑재된 자료를 바탕으로, 환경문제를 예술과 결합해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전달하고자 탄생한 공간이다. 그동안 《기록과 기억-함께사는길 30년》을 통해 한국환경운동사의 30년을 조명했고, 강홍구 작가의 개인전 《두 개의 바다》, 노순택 사진전 《흑산, 멀고 짙고》 등을 개최하며 환경과 예술이 만나는 장을 꾸준히 열어왔다.
숲과나눔은 이미 여러 차례 전시를 통해 사회적 반향을 이끌어낸 바 있다. 2019년에는 《크리스 조던: 아름다움 너머》를 개최해 환경 문제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했고, 2021년에는 코로나19 사진 아카이빙 전시 《거리의 기술》을 전국 순회하며 동시대의 기록을 남겼다. 2024년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가구 형태를 사회학과 문화인류학의 관점으로 접근한 《41.6% 1인가구》를 통해 생활과 환경, 사회 구조의 연결을 조명했다. 또한 환경박사 장재연의 바다 생물 이야기를 담은 《800번의 귀향》 전시회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처럼 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장소다. 그리고 이번 김영미 개인전 ⟪마음의 기후⟫는 그 공간이 가진 의미를 더욱 깊게 확장한다. 기후 위기의 시대, 우리는 물리적인 기후뿐 아니라 마음의 기후를 함께 살펴야 한다. 서로를 돌보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자연도 돌볼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이 메말라가면 공동체도, 생태계도 함께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마음의 기후를 가늠하는 일은 결코 사적인 성찰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와 세계를 향한 태도를 새롭게 세우는 출발점이 된다.
입춘의 문턱에서 시작된 이번 전시는,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봄의 연습’일지도 모른다. 아직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변화의 기운을 감지하고,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 배우는 시간. 김영미 작가의 그림은 그 연습을 조용히 돕는다. 그림 속에 켜켜이 쌓인 수많은 인간의 형상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는 혼자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서로의 삶 속에서 관계로 살아간다고.
⟪마음의 기후⟫는 관람객에게 묻는다. 지금 내 마음은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방식으로 타자를 돌보고 있는가. 전시는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그림을 통해 마음의 온도를 상상하게 하고, 자신과 세계의 연결을 다시 느끼게 한다. 에서 펼쳐지는 이번 전시가, 예측 불가능한 기후변화 속에서 도시의 삶에 작은 숨구멍이자 신선한 활기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봄은 멀리 있지 않다. 마음의 기후가 조금이라도 따뜻해지는 순간, 우리는 이미 봄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김영미, 수면 위의 존재들, Oil on canvas, 52.7x65cm, 2025.
** 김영미 개인전 ⟪마음의 기후⟫는 공간풀숲(서울시 종로구 사직동 181-3)에서 오는 2월 28일까지 열린다. 관람시간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후 12시부터 6시까지이다. 2월 21일(토) 4시에는 프로그램을 전시장에서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