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를 다시 보며 이선균을 기억한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 총선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나고 나서 이태원 참사, 채해병 순직 사건 등의 죽음들이 더 크게 조명받고 억울함을 풀기 위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잊을 수 없고 기억해야 할 억울한 죽음이 있다. 지난해 연말 이선균 배우의 죽음이다. 이선균 배우는 내사 단계에서 피의 사실과 사생활이 유출·보도되면서 죽음으로 내몰렸다. 수사 자료와 사건 보고서를 언론에 넘긴 경찰관과 검찰수사관은 최근에야 체포되거나 입건됐다.
수사기관과 주류언론이 보기에 이선균 배우는 힘없고 만만한 연예인이었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박영선 민생경제연구소 언론위원장에 따르면 당시에 KBS, MBC, SBS, YTN 지상파 4사의 이선균 관련 보도는 1000건이 훌쩍 넘었던 반면에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의 명품백 뇌물수수에 대한 보도는 50여 건에 불과했다. '가세연' 같은 유튜버들도 앞다퉈 이선균을 욕하며 조회수를 높였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에서 - 박동훈(이선균)은 이지안(아이유)에게 '행복하게 살 것'을 다짐했지만, 현실은 비극으로 끝났다.
결국 그는 영화나 드라마, 광고에서 하차하고, 출연했던 작품들은 상영이 중단되거나 취소됐다. 손해배상액만 100억에 달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가족까지 고통의 수렁으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그는 삶을 포기했다. 이선균 배우와 비슷한 공격을 겪어 온 윤미향 의원은 올해 초 촛불집회에서 추모 발언을 통해서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묘사하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렇게 온갖 모욕과 조롱 위협을 견디며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훨씬 편하고 평안하고 행복할 것 같다는 틈만 나면 내 영혼을 나약하게 만드는 속삭임은 정말 이겨내기 힘듭니다. 그래서 나는 압니다. 그가 그렇게 떠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고. 수모와 심리적 고문은 ‘살아내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그렇게 혼잣말하며 살게 했습니다. 동료들의 경계와 침묵, 심지어 비난은 나를 매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했습니다.”
이선균 배우의 비극 이후에도 대통령 가족의 권력형 비리 의혹보다 연예인들과 연관된 사건, 사고에 수사기관과 언론이 훨씬 더 적극적인 강약약강의 패턴은 계속되고 있다. 당장 주류언론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가장 많이 본 뉴스에는 어김없이 연예인들의 잘못, 스캔들에 관한 기사들이 올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김호중 사건에 대해 직접 나서 ‘엄정 대응’을 지시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2주간 김호중 사건을 가장 중요한 소식으로 취급하고 거듭 헤드라인으로 올리며 최대의 사회악인 것처럼 몰아갔다.
수사기관은 실적을 올릴 수 있고, 언론은 클릭 수를 높일 수 있고, 대중은 말초적 흥미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악순환의 구조 속에서 대중 스타와 연예인들은 매우 취약한 위치에 있다. 사람들은 흔히 인기를 누리고 돈도 많이 버는 대중 스타와 연예인들을 부러워하지만, 사실 그들은 대중적 인기를 얻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작가는 자신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대중스타들 중에서 공황장애가 많은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다.
“스타란 너(대중)의 취향에 나를 온전히 맞추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생태계에서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생존자다. … 인기 절정의 연예인도 결정적 실수나 악성 댓글 한 번에 그간의 모든 환호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이 된다. … 그들에게 사람은 공포에 가까운 존재가 되고 그 공포는 내면화된다. 그런 공포를 이기기 위해 더욱 ‘너’에 충실해 지려 한다. … 서서히 나를 지워나가기로 한다. 그렇게 자기 소멸의 길로 접어들며 병이 든다.”(<당신이 옳다>)
대중 스타와 연예인들은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거나, 스캔들에 휘말리면 이미지가 무너지면서 언제든지 ‘영웅’에서 ‘악당’으로 전락하며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기에 불안감에 떨어야 하는 존재다. 그들에게 부와 인기를 얻게 해 준 대중매체가 이제는 정반대의 몰락과 절망을 맛보게 해 준다. 인기가 컸던 만큼 절망과 상처도 커진다. 사회학자 엄기호는 이 과정에서 작동하는 사회와 언론의 메커니즘, 대중의 심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명망가들의 몰락이 큰 쾌감을 주는 것은 이들의 몰락 속도와 추락의 깊이가 평범한 사람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하기 때문이다. … 언론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것은 '스캔들'이다. 다른 사람의 치부, 특히 연예인을 중심으로 한 명망가들의 치부를 들춰내고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며 짐짓 도덕적인 척하는 것이 최근 언론이 보이는 행태다. … 신상이 털리고 인육을 사냥당하는 사람은 인격이 파괴되면서 죽음에 이르는 극심한 고통에 빠진다.”(<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그러나 세상 사람이 모두 돌을 던지는 듯한 '인육 사냥'의 상황에서도 누군가 나를 믿어주고 걱정해준다면 그 절망과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고 정혜신 작가는 지적한다.
“내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내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이 있으면 사람은 산다.”(<당신이 옳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많은 사람이 인생작으로 손꼽는 이선균 배우의 대표작 <나의 아저씨>는 바로 이것을 보여주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그토록 감동적이고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게 됐다는 것을 총선 이후에 <나의 아저씨>를 다시 보면서 깨달았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보통의 인간들처럼 흠결이 있고 실수나 잘못도 한다. 이지안(아이유)은 회사 간부에게 돈을 받고 박동훈(이선균)의 휴대폰을 불법 도청한다.
더 나아가 사실 이지안은 정당방위의 과정이었지만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 박동훈은 순간적 욕심에 뇌물 로비로 보내온 돈봉투를 챙겼다. 결코 작지 않은 이런 흠결, 실수, 잘못은 이들의 삶을 더욱 고달프고 꼬이게 만든다. 편견과 이해관계에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주인공들의 흠결과 잘못, 불행을 계속 들춰내고 수군대고 이용하려고 하면서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회사 간부들은 이지안이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는 것을 몰랐냐고 박동훈을 다그친다. 박동훈은 “왜 이 자리에서 이지안 씨가 또 판결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인간의 과거를 그렇게 붙들고 늘어지십니까”라고 이지안을 감싼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는 잊고 싶은 과거가 끝없이 소환되고 또다시 판결받는 일이 흔하게 벌어진다. 주인공들은 ‘이유는 모르지만 끝없이 다시 태어나 지옥에서 벌 받는 게 인생’이라고 이야기한다.
건축구조기술사인 박동훈은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인데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라고 말한다.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내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외력’을 이길 수 있게 해 준 가장 중요한 힘은 나를 걱정해주고, 내 편을 들어준 사람의 존재였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에서
박동훈과 이지안은 서로 가장 힘든 순간에,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달려와 주고 손을 잡아주었다. 여기서 박동훈의 명대사들이 나왔다.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마라, 당신 괜찮은 사람이다, 그런 응원으로 숨이 쉬어져. 고맙다 옆에 있어 줘서.” “거지 같은 내 인생 다 듣고도 내 편 들어줘서 고맙다.” “쪽팔린 거? 인생 망가졌다고 사람들이 수군대는 거? 아무것도 아니야.”
드라마 초반에 나오는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은 건물 청소일을 하는 박동훈의 형이 건물주에게 갑질을 당하는 에피소드다. 청소하다가 자신에게 먼지가 튀었다고 쌍욕을 하는 건물주에게 박동훈의 형은 복도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고, 그 장면을 박동훈 형제의 어머니가 목격한다. 울면서 그 이야기를 하는 형을 보고 박동훈은 건물주에게 달려가 사과를 요구한다.
“나도 무릎 꿇은 적 있어. 욕도 먹고 그 와중에도 다행이다 싶은 건 우리 가족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 아무렇지 않은 척 먹을 거 사 들고 우리 집에 갔어. 아무렇지 않게 저녁을 먹고. 그래 아무 일도 아니야. 내가 무슨 모욕을 당해도 우리 식구만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니야. 근데 어떤 일이 있어도 식구가 보는 데선 그러면 안 돼.”
지난해 연말에 이선균 배우가 당한 망신과 모욕은 이것을 훨씬 뛰어넘는 일이었다. 가족을 넘어서 온 사회가 보는 앞에서 그는 비참하게 무릎 꿇고 발가벗겨졌다. 그런 끔찍한 순간에 이선균 배우에게 ‘당신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응원하는 사람들보다는 ‘인생 망가졌다’고 수군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결국 그는 더는 숨을 쉬기 어려워졌다.
올해 초에 열린 문화예술인들 기자회견 '오마이TV' 동영상 갈무리.
우리 모두는 너무 괴로웠고 후회가 됐다. 올해 초에 대중문화·예술인들은 이선균 배우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기서 윤종신 가수는 “일부 유튜버를 포함한 황색언론들, 이른바 '사이버 렉카'의 병폐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는가? 정녕 자정의 방법은 없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총선 때 조국혁신당은 ‘이선균 방지법’을 공약했고, 총선 이후에 영화 평론가 출신인 강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이선균 방지법’ 논의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반갑고 고마운 이야기다. 조만간 이선균 배우의 유작 <행복의 나라>도 개봉한다고 한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다가 다시 잊어버리고 비극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번에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