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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오션토피아] ㉔반대 조의 댓글만 삭제하는 프로그램

[오션토피아] ㉔반대 조의 댓글만 삭제하는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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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폼폼크랩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마른 울음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치어였을 때 ‘진료소놀이’를 자주 했었어... 진료소에만 가면 울음을 터뜨리니까 엄마가 놀이로 승화시켜줬던 거지. 의원인 엄마는 환자인 나에게 가짜복어 침을 놓았어. 신기하게도 그 이후론 진료소에 가도 눈물이 나오지 않더라. 그런데... 어느 순간 더 이상 그 놀이를 하지 않게 되었어. 그런 게 시시한 나이가 돼버렸거든. 네가 그렇게 읽으라는 책도 안 읽었어. 책 속의 다른 이가 될 필요를 느끼지 못했거든. 그냥 나는... 너만 있으면 좋았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해역이 어둠으로 잠기는가 싶더니 설핏 밝아졌다. 그 날 새벽 피피크랩은 돌아올 수 없는 해역을 건넜다. 폼폼크랩은 낡은 비닐수레와 함께 피피크랩을 묻어주었다. 쥐고 다니던 말미잘과 더불어 유일한 유품이었다. 비닐에 싸여 있으면 왠지 너도 썩지 않을 거란 믿음이 가. 바보 같지? 사실은 말이야... 네 말이 옳은 거 알고 있었어. 면이 안서서 고집을 부렸던 거야. 네 말을 인정하면 나의 뿌리까지 부정당하게 될까봐 두려웠어. 평생 나고 자란 난파선이 흔들린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어. 그래서 우격다짐을 했던 거야. 그런데 이제... 나는 너 없이 어떻게 사니.” * -은빛연어가 이 해역에 민물성분을 퍼뜨리고 다닌단 제보를 C로부터 긴급입수 [오션일보]에 대문짝만한 속보가 올라왔다. 기이한 것은 얼마 후 ‘C로부터’만 교묘히 지워졌단 사실이었다. 갯바위당은 그것을 어렵사리 포착해냈다. 왜 C에 대한 얘기를 지웠을까요?” 숨기고 싶어서겠죠.” 혹시 C가 누군지 알아요?” 전혀요. 은빛연어 님은요?” 그가 고개를 젓자 비늘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은빛연어는 노파심에 다시 입을 열었다. 장수거북님. 설마 저 가짜뉴스를 믿으시는 거 아니죠?” 그럼요. 그런데... 정말 사실이 아닌 거죠?” 절 의심하는군요.” 죄송합니다...” 은빛연어는 맥이 훅 빠졌다. 참으로 기사의 힘은 대단하군요. 측근까지도 의심하게 만들다니. 다음 대선을 위해 우리 당을 분열시키려는 대왕의 얕은 수작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시금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드립니다. 저도 이렇게 판단력이 흐려지는데 다른 물살이들은 눈이 흐려지는 걸 넘어서서 아예 멀어질까 봐 겁나는군요.” 민물성분이란 게 무엇인지 제가 더 궁금해지는군요. 참, 어제 조문은 잘 다녀오셨나요?” 장수거북은 자신의 경솔함을 덮고 가는 은빛연어에게 내심 고마움이 들었다. 폼폼크랩이 자리를 지키고 있더라구요. 아쿠아리움을 함께 탈출했던 사이기도 해서 나름 각별하거든요. 명랑한 성정이었는데 반쪽을 잃고선 완전히 다른 물살이가 되어 있더군요.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되었겠지만 깊이 추념하고 왔습니다.” 장수거북은 이번 사고로 죽은 물살이들의 서식처를 두루 다녀왔는데 대부분 작고 나약한 치어들이더라고 덧붙였다. 은빛연어는 혀를 쯧쯧 찼다. 리 주필은 최소한 양심이 있으면 다치고 죽은 물살이들에 대한 위로 기사라도 써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뭘 바래요? 근조의 의미로 ‘태평성대’ 앞에 둔 톳도 치워버렸던데요. 그래서 그에 대한 비판 기사를 올렸습니다.” 흠. 연임까지 한 마당에 대왕이 가만히 두고보려나요? 머잖아 [장수일보] 자금 줄까지 조일지도 몰라요. 그에 대한 대책을 미리 강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책이랄 게 있나요.” 우리도 광고를 받아볼까요?” 그건 절대 안 됩니다. 광고주의 눈치를 보게 되면 진실을 알리는 기사가 아닌 그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게 됩니다. 그러면 [오션일보]짝 나는 거예요.” 허나 광고 외엔 달리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아직 인간쓰레기가 좀 남아있습니다. 말 나온 김에 잠시 다녀오지요.” 단속이 엄중하다던데 지금은 몸을 낮추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장수망 유지비가 만만치 않아요. 안 들키게 잘 피해서 팔고 오겠습니다.” 장수거북은 자신이 생각보다 빠르다는 말을 능청스레 덧붙이며 비닐 수레를 꼬리에 걸었다. 은빛연어는 ‘돼지고기 앞다리 살 500g’ 아래 십년 전 날짜가 찍혀있는 스티커를 당장이라도 떼어주고 싶었지만 묵묵히 배웅만 했다. [비톨드 필레츠키] -C가 누구임? 왜 빛의 속도로 삭제됨? -비밀경찰 같은 게 아닐까 추정해봄. -왜 경찰을 비밀로 둠? -나도 모름. 무튼 영어라서 이색적인 느낌을 자아냄. -그건 그렇고 ‘태평성대’ 거닐다 깨달은 건데, 우린 지느러미로 헤엄쳐 다니니까 산책로를 밟을 일이 없잖음. 도대체 왜 만들었나 모르겠음. -엇, 나도 그 생각함. 그렇게 인간 욕하면서 인간 건축물 따라 만드는 대왕이야말로 포유류스러움. -진짜 간첩은 대왕인가? -무슨 귀신 굴 까먹는 소리하고 있음? 대왕오징어님은 이제 신화의 반열에 올라서심. 우리 같은 잔챙이들이 왈가왈부할 대상이 아니란 말씀. -옳소. ‘태평성대’의 완공은 태평성대의 시작임. -태평성대 NO 난세흉물 OK   검열. 리본장어는 부정적인 댓글만 골라서 삭제했다. 정화작업을 조금만 소홀히 해도 이렇듯 취지에 반하는 댓글들이 마구잡이로 출몰했다. 특히나 저 마지막 리듬댓글은 눈엣가시였다. 반대 조의 댓글을 파악하여 절로 삭제하는 프로그램 같은 게 있으면 좋을 텐데. 쏙쏙 골라내서 박멸시키는 방법 없으려나?” 오, 가능하겠어?” 헤헤. 오셨어요? CEO님.” 혼자만의 공상을 들킨 게 민망해진 리본장어는 자신의 몸에 비해 한 줌도 되지 않는 백합조개를 향해 대가리를 조아렸다. 백합조개는 네모난 칩을 건넸다. 내일 오전 기사에 넣어.” 이게 뭔가요?” 대왕님 연설.” 왜 직접 나와서 하지 않으시구요.” 백합조개는 대답 없이 돌아섰다. 리본장어는 ‘태평성대’ 기념촬영 이후로 대왕을 본 적이 없었다. 수면주간이 길어지나 보다 짐작할 따름이었다. 아마 다른 물살이들도 아마 그렇게 추측할 터였다. 다음 날 사위가 밝아지자 백합조개가 건넨 영상이 업로드 되었다. 난파선 안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왕오징어는 근엄하고 박진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물살이 여러분, 요즘 들어 우리 해역은 민물 간첩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79선의 방어를 철저히 하여야 합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지 않으면 온갖 민물살이들이 섞여 이 해역은 잡동사니가 되고 말 것입니다. 또 하나, 이번에 불법상거래를 하다 적발된 장수거북이 현장에서 도주하였습니다. 이에 공개 수배하니 발견 즉시 [난파 의원당]에 제보해주십시오. 현상금으론 난바다 곤쟁이 백 마리가 지급됩니다. 다시 한 번 경고하건대 국영상점 바깥에서 일어나는 매매행위는 불법입니다. 해역의 기강을 문란케 하는 물살이들은 필히 용왕님의 노여움을 받아 불행을 면치 못할 것이니 몸을 낮춰 행동하길 당부 드립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해역은 강력한 통치 아래 대동단결해야 합니다. 다들 지느러미 바짝 조여 생활할 것을 권고하며 둘 이상 모여 소곤거릴 시 민물살이나 포유류로 의심 받을 수 있으니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하도록 합시다. 대왕은 현재 비상시국임을 선언하는 바, 난파궁에서 용왕님과 좀 더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영상으로 대체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내가 하면 합법 네가 하면 불법 불가살이는 첫 댓글을 빠르게 끼적이곤 갯바위당으로 이동했다.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다. 모래밭으로 기어들어간 그는 예전에 파놓은 땅굴을 따라 요리조리 움직였다. 끝 지점에 다다르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갯바위당의 비밀통로에서 장수거북과 은빛연어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였다. 이제 쫓기는 신세가 되었으니 어떡합니까.” 이 정도 각오도 없었으려구요.” 어디로 가실 겁니까. 갈 데는 있습니까.” 갈 데는 없습니다. 하지만 갈 곳은 있습니다.” ?” C가 누군지, 도대체 뭐하는 작잔지 제가 직접 찾아 나서 보려 합니다.” 막중한 임무를 띠고 떠나시는군요. 부디 행운을 빕니다.” 혹시 비톨드 필레츠키란 인간을 아십니까.” 전혀요. 이름이 어렵군요.”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을 책으로 펴냈는데 말머리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머리털과 온몸의 털을 자르더니 찬물을 뿌렸다. 무거운 막대로 턱을 내리쳤다. 이빨 두 개가 그 자리에서 바로 빠졌다. 나는 그때부터 4859라는 숫자로만 불렸다.” 무시무시하군요.” 폴란드 비밀 저항군이었던 비톨드 필레츠키는 포로로 가장하여 제 발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들어갑니다. 그리하여 히틀러의 극악무도함을 외부에 알리지요. 또한 그 반대급부인 스탈린의 잔학행위도 고발합니다.” 대단하군요. 양쪽 다 고발이라니... 그런데 결말이 왠지 해피엔딩이 아닐 것 같군요.” 그건 이 여정이 끝난 뒤에 말씀드려도 될까요.” 비톨드 필레츠키의 최후를 듣기 위해서라도 꼭 무사히 돌아오셔야 하겠는걸요.” 그 때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돌 틈 사이로 폼폼을 든 집게 발 하나가 삐죽 튀어 나왔다. 표정이 경직되어있던 두 물살이는 말미잘을 보곤 이내 안도했다. [오션일보] 영상을 보고 이렇게 달려왔어요. 조금만 늦었으면 길이 엇갈릴 뻔 했네요.” 마지막 인사는 하고 가는군요. 폼폼크랩님.” 저도 데리고 가주세요. 그 말을 하려고 온 거예요.” 이런... 죄송하지만 마음만 함께 하겠습니다.” 장수거북은 위험한 여정이 될 거라며 거절했다. 하지만 폼폼크랩은 물러서지 않았다. 제 반쪽을 잃은 후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 고민했어요. 결론은 장수거북님과 함께 하겠다는 거였어요. 만약 피피였다면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쿠아리움을 탈출했던 그 때처럼 제가 길눈이 되어드릴게요. 위험한 여정일수록 함께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더 이상 거절의 명분을 찾기 어렵겠는데요.”   연대. 은빛연어의 말에 장수거북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반자가 되어주겠단 청을 뿌리칠 수가 없군요. 기꺼이 집게발 내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수거북이 팔을 내밀자 폼폼크랩은 자신의 집게발을 그 위에다 올렸다. 은빛연어도 지느러미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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