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비평한 조선일보…균형 상실· 의도적 프레임 작동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송요훈 편집위원(전 MBC 기자)
처음에는 신기했고, 그 다음엔 놀라웠는데 이제는 갈수록 두려워집니다. AI가 가져올 변화는 이전에 인류가 경험했던 그 어떤 상전벽해의 변화보다 엄청날 것 같아서 말이죠. 머잖아 우리는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 겁니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이 한국을 다녀가면서 브라질 국민에게 썼다는 편지는 감동적이었습니다. 내용이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라 처음부터 거짓이라고 의심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브라질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는지 AI에게 물어보니 보도한 매체가 없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누군가의 장난으로 AI가 쓴 편지라는 걸.
룰라 대통령의 편지는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니 당장은 해악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동 전쟁 상황이라고 SNS에 떠도는 동영상 중에 상당수는 AI가 만든 가짜라고 합니다. 진짜와 분간하기 힘든 가짜 영상은 사람들이 상황을 오판하게 만듭니다. 무엇이 사실이고 아닌지를 점점 더 분별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물체가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어 불안합니다.
AI는 있는데 조선일보에 없는 것, 혹은 그 반대
조선일보가 최첨단 인공지능(AI) 엔진을 달고 새롭게 도약하겠답니다. AI와 공존하는 미디어의 미래를 선도하겠답니다. AI 시대에도 미디어가 결코 포기해선 안 되는 윤리와 신뢰의 기준을 세우고, 미디어 AI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하겠답니다.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진실 수호’와 ‘팩트 퍼스트’라는 저널리즘의 근본을 지키는 방안을 고민하겠답니다. 가짜뉴스와 딥페이크가 저널리즘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혼돈 속에서 모든 미디어가 지침으로 삼아야 할 ‘미디어 AI 윤리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겠답니다.
최첨단 AI 엔진을 달고 새롭게 도약하겠다는 조선일보의 사고(社告)
환영합니다. 조선일보가 AI 엔진을 달고 어제와 다른 조선일보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조선일보가 시각적인 면에서 지면의 혁신을 이끌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논조에서는 민주주의와 언론의 퇴행을 주도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마녀사냥의 선두에는 늘 조선일보가 있었구요.
AI에게는 인간보다 우월한 장점이 많습니다. 지역·학연·혈연의 연줄이 없고, 호오의 감정이 없고, 특정 정파에 기울어진 정치 성향이 없고, 약자에 대한 편견이 없고, 우월주의에 취한 선민의식이 없고, 선입견이 없고, 고정관념이 없고, 사사로운 이해충돌이 없어 사실을 왜곡하지도 과장하지도 조작하지도 않고 투명하고 정확하고 공정하게 전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AI 기자는 목구멍이 포도청도 아니고 출세욕도 없으니 유혹이나 협박이 통하지 않을 것이고 취재와 보도의 윤리를 철저하게 준수할 겁니다.
조선일보 사설에 대해 AI와 나눈 우문현답
유료 버전의 구글 AI에게 다음과 같이 한국기자협회의 윤리강령을 알려주고 조선일보 사설과 칼럼에 대한 비평을 부탁해봤습니다.
질문: 윤리적 언론은 정확한 사실을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맥락으로 전달해야 하고, 모든 정보를 성실하게 검증하고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보도하며,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야 합니다. 윤리적 언론은 특정 집단, 세력, 견해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무사한 자세로 보도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나 갈등적 사안을 다룰 때는 다양한 입장을 두루 담아 전체를 아우르는 균형 잡힌 시각과 관점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윤리적 언론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사회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견의 경중을 고려해 보도 내용의 양적·질적 균형을 맞춰야 하고, 특정한 가치와 정파적 이익에 부합하는 사실과 견해만을 선택하거나 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언론의 윤리를 기준으로 다음의 사설을 비평하시오.
삽화: 부분적 사실 vs 전체적 사실. 출처: 인터넷 이미지
비평을 부탁한 사설은 3월 6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사법 3법’ 결국 대통령 한 사람 위한 입법이었나”라는 제목의 사설입니다. 그랬더니 이런 비평을 하더군요.
답변: 사법 3법 을 오로지 이재명 대통령 개인의 안위를 위한 이재명법 으로 규정하며 정파적 프레임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법안의 본질적 취지(검찰권 견제,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 확대 등)에 대한 다각적 분석은 생략된 채, 대통령 개인의 사법 리스크와 연결 짓는 데 집중하고 있어 공정성 원칙에 어긋납니다.
사설은 보수·진보 법조계 다수 , 전국 법원장 등 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만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해당 법안이 발의된 배경인 사법 개혁 의 필요성이나 찬성 측의 논거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보도 내용의 양적·질적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윤리적 책무를 방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문명국의 수치’ ‘보복’, ‘오명 등 자극적이고 단정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는 냉철한 이성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론 본연의 모습보다는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여 특정 정치적 결론을 유도하려는 선동적 기술 방식에 가깝습니다.
AI로부터 ‘비약’ ‘편향’ ‘낙인찍기’ 비판받은 조선일보 칼럼
3월 2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기자의 시각] 미국은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라는 제목의 기자 칼럼에 대한 비평도 부탁해봤습니다. 미국의 눈 밖에 나면 안 되니 중국과 거리를 두라는 칼럼인데, AI는 MRI가 단층 촬영을 하듯이 세분하여 비평합니다.
답변: 미국은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 라는 전쟁학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이를 보편적 진리인 양 전제하고 논리를 전개합니다. 이는 강대국의 일방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위험한 결정론적 시각을 독자에게 강요할 우려가 있습니다. 윤리적 언론은 다양한 입장을 두루 담아야 하지만, 이 칼럼은 특정 외교 노선에 유리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배치했습니다.
일본(다카이치 총리)의 행보는 영민한 국익 추구 로 묘사한 반면, 한국(이재명 대통령)의 행보는 샤오미 셀카 등의 지엽적인 장면을 부각해 희화화하거나 저평가했습니다. 이 칼럼은 특정 외교정책(한미동맹 강화)을 절대 선으로 상정하고 반대되는 정책(한중 관계 복원)을 위태로운 줄타기 로 규정했습니다.
한중 협력을 외교 기술 혹은 신뢰 위기 로 명명하며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웠습니다. 이는 특정한 가치와 정파적 이익에 부합하는 견해만을 선택하여 과장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독자로 하여금 현 정부의 외교 정책이 실패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유도하는 의도적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하메네이의 ‘37년 철권통치’를 끝냈다며 미국의 이란 침공을 정당화하는 조선일보 보도
최고의 윤리규범이 무색한 여론조작과 권력유착
독자들이 사안을 전체적으로 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 언론의 윤리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많은 사실 중에 입맛에 맞는 사실만을 취사선택하여 의도한 방향으로 독자들을 몰고 가려 합니다. 그것은 여론 형성이 아니라 여론 조작입니다. 자극적인 언어와 감정적인 표현으로 독자들의 확증편향을 강화합니다. 그걸 반복하면 세뇌가 됩니다. 조선일보는 그런 식으로 여론을 의도한 방향으로 몰아갔고, 한때는 그 공로로 권력과 유착하여 밤의 대통령 행세를 하였습니다. 민주화 이후에는 공짜로 얻은 언론 자유를 오남용하며 여론몰이의 힘으로 정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 빠져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려 해왔습니다. AI는 비평으로 조선일보의 여론조작 기법을 콕 짚어냅니다.
조선일보는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부럽지 않은 윤리 규범을 갖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2016년에 조선일보는 박근혜 청와대와 누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지 헤게모니 싸움을 했습니다. 조선일보의 선공으로 시작했는데 송희영 주필이 홍보업체로부터 억대의 해외여행 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권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국정원 쪽에서 나온 정보였을 겁니다. 박근혜 정권 초기에 말 안 듣던 검찰총장 채동욱을 내쫓을 때도 국정원의 뒷조사 자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조선일보가 정권과 한편이 되어 채동욱 내쫓는 마녀사냥의 깃발을 들었는데, 박근혜를 길들이려다 국정원 공작이라는 같은 방식으로 조선일보가 당한 겁니다.
박근혜 정권 말기에 조선일보는 우병우 청와대 수석의 처가와 관련한 의혹을 보도하자 여당 의원이던 김진태(현 강원지사)는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과 관련한 의혹을 폭로했다.
조선일보는 기사 내기 전 꼭 AI에게 자문 받기 바람
그때 조선일보는 사과문을 지면에 싣고 언론 윤리로 재무장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온 것이 뉴욕타임스 등 세계 유수의 언론사 윤리강령을 참고하여 제정했다는 지금의 윤리 규범입니다. 그런데 그저 장식품으로 걸려 있을 뿐 지키질 않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인데, 조선일보의 윤리 규범은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진심을 담아 조언을 해주려고 합니다. 출고 전의 기사와 사설과 칼럼을 AI에게 비평하라고 해보세요. AI가 독자의 취향을 저격하기 전에 조선일보가 행간에 숨긴 의도와 활자에서 묻어나는 악의와 혐오까지 찾아내어 조선일보를 먼저 저격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악의와 혐오가 증폭과 확대 재생산의 과정을 거쳐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짜뉴스가 됩니다. 그래서 재래식 미디어를 가짜뉴스의 발원지라 하는 겁니다. 조선일보가 AI 엔진을 장착하고 새롭게 태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