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이 드러낸 PC 자본주의 한계와 새 희망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전 대통령(왼쪽부터)이 16일 위성턴D.C.의 세인트 매튜 아포스틀 대성당에서 에텔 케네디를 위한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다. 2024.10.16.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민주당을 두고 어떤 이는 정의당과 국민의힘을 반반 섞어 놓은 정당”이라 평했다. 경제정책만 놓고 보면 기업 친화적이고, 사회문화적으로는 진보를 자처한다. 즉, 자본의 논리를 지키면서 인권과 다양성을 외치는, 모순적인 존재다. 이 기묘한 혼종은 단지 미국 정치의 특이점이 아니라, 오늘날 세계 자유주의의 근본적 한계를 보여준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효율성과 이윤 추구다. 이 체제는 태생적으로 배제와 차별”을 전제한다. 일 못하는 사람을 구조에서 밀어내야 생산성이 유지된다. 따라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마르크스가 이미 19세기에 지적했듯, 설령 ‘착한 자본가’가 존재하더라 그는 곧 경쟁에서 밀려나 사라진다.
그런데 미국 민주당은 그 자본주의의 틀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면서, 포용”과 다양성”을 외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PC 자본주의’의 실체다. 이 체제는 흑인 CEO”, 여성 장관”, 성소수자 스타트업 창업자”를 내세워 차별이 사라진 듯한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여전히 저임금 노동자, 이주노동자, 사회적 약자가 깔려 있다. 자본주의의 기초가 유지되는 한, 이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트럼프의 등장은 이런 ‘위선적 진보’의 반동이다. 정치적 올바름(PC)”에 대한 피로와 냉소는 사실상 민주당의 이중적 태도에서 비롯됐다. 민주당은 금융자본의 이익을 지키면서 동시에 약자 보호를 외쳤고, 결국 어느 쪽도 구하지 못했다. 그 결과가 바로 자본주의 못 잃어!”라는 아메리카식 본색이다.
미국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인 ‘변태적 자유주의’, 즉 개인의 사유재산권만을 절대시하는 자유주의”를 민주당은 단 한 번도 극복하지 못했다. 그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케인스적 수정자본주의를 잠깐 실험했지만 결국 신자유주의의 손을 잡고 돌아왔다. 빌 클린턴의 ‘제3의 길’, 오바마의 ‘월가와의 공존’, 그리고 바이든의 ‘산업보조금 자본주의’까지— 모두 체제 비판이 아니라 체제 보존이었다.
진보는 더 이상 ‘착한 자본주의’의 환상에 기대어선 안 된다. 자본주의의 한계를 직시하고, 그 너머의 사회적 대안을 상상해야 한다. 그 대안은 단순한 ‘복지 확장’이 아니라 생산과 분배의 권력을 재구성하는 체제 전환이어야 한다.
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출신 연방 상원의원(왼쪽)이 조란 맘다니 시장(오른쪽)의 취임 선서를 집례하고 있다. 부인 라마 두와지씨(가운데)가 쿠란을 들고 있다. 2026.1.11. AP 연합뉴스
균열을 내는 자들: 버니 샌더스에서 조란 맘다니까지
하지만 절망만이 가득한 것은 아니다. 민주당이라는 거대 자본의 요새 안에서도 시스템의 뿌리를 뒤흔드는 이단아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선봉에는 버니 샌더스가 있었다. 그는 민주당이 월가의 개가 되었다 는 사실을 광장에서 폭로하며, 의료와 교육을 시장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공공의 권리로 되돌려놓겠다는 민주사회주의 의 깃발을 들었다. 샌더스가 뿌린 이 불씨는 이제 한 노정객의 외침을 넘어, 미국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 거대한 산불로 번지고 있다.
특히 최근 뉴욕 시장 선거에서 파란을 일으킨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의 당선은 그 희망의 실체다. 인도계 우간다 출신 이민자의 아들이자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 소속인 그는, 민주당 엘리트들이 현실 을 핑계로 외면했던 의제들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무상 버스 도입, 임대료 동결, 그리고 억만장자들에 대한 과감한 과세까지—그의 공약은 단순히 자본주의의 상처를 가리는 반창고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심장을 조준하는 화살이었다.
조란 맘다니가 뉴욕의 광장에서 거둔 승리는 돈이 지배하는 정치는 끝났다 는 선언이자, 샌더스가 예고했던 정치 혁명 이 지방 정부에서부터 현실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들은 흑인 CEO나 성소수자 임원을 내세우는 PC 자본주의의 기만에 속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저임금 노동자와 세입자들이 직접 권력을 쥐고 삶의 기반을 재설계하는 체제 전환 의 정치를 실천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지금 ‘인간적인 자본주의’를 꿈꾸며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그 무너지는 담벼락 사이로 샌더스와 맘다니가 이끄는 새로운 진보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진보의 진짜 적은 보수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신앙처럼 떠받드는 가짜 진보였음을, 그리고 이제 그 가짜들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뉴욕의 광장은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껍데기뿐인 다양성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삶을 뿌리째 바꾸는 혁명에 동참할 것인가. 조란 맘다니의 당선은 그 대답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