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눈으로 본 이란 페르셰폴리스 마르잔 사트라피 [사람들] 이란 출신 작가 겸 영화감독인 마르잔 스트라피(가운데)가 자전적 그래픽 노블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페르세폴리스 로 제60회 칸 국제영화제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레드카펫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은 영화에서 어머니 목소리를 연기한 카트린느 드뇌브, 오른쪽은 자신의 목소리를 연기한 드뇌브의 딸 키아라 마스트로얀니. 2007.5.23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1979년 혁명 이후 이란 이슬람 지도부의 억압과 통제 아래 자라난 어린 시절을 돌아본 자전적 그래픽 소설 시리즈 페르셰폴리스 로 유명한 이란과 프랑스 작가이자 영화감독, 인권운동가 마르잔 사트라피가 비교적 이른 56세에 세상을 등졌다고 AFP 통신과 영국 BBC가 4일(현지시간) 전했다.
사트라피의 측근들은 AFP에 보낸 성명을 통해 사트라피는 남편이자 평생의 동반자였던 마티아스 리파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여 만에 슬픔에 잠겨 세상을 떠났다 고 밝혔다. 스웨덴 출신의 프로듀서이자 배우, 각본가였던 마티아스 리파는 지난해 4월 사망했다. 그녀는 최근 인스타그램에 내 인생의 사랑을 잃었기 때문에 라는 진심 어린 게시물을 연달아 올렸는데, 정확한 사망 일시와 장소, 원인 등이 언급되지 않은 것을 봤을 때 비극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파리 엘리제궁도 그녀의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엘리제궁은 고인이 페르셰폴리스로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았다 고 전하며 프랑스 문화의 선도적 인물이자 자유에 헌신한 예술가로, 그녀의 작품은 보편적인 메시지를 담고 국제적으로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 고 평가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란에서의 어린 시절을 보편적인 우화로 바꾼 위대한 예술가 에게 경의를 표했다. 엘리제궁은 어린아이 같은 시각, 아이러니, 부드러움, 그리고 내면의 악마들로 저자는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세계를 창조했다 고 덧붙였다. 에마뉘엘 그레구아르 파리 시장도 엑스(X, 옛 트위터)에서 오늘 우리는 천재적이고 자유로우며 창의적인 예술가를 잃었다. 그는 이란을 깊이 사랑했으며, 이란 국민의 자유를 향한 열망이 평생 그녀를 이끌었다 고 추모했다.
마린 통들리에 녹색당 대표 역시 여러 세대의 여성들에게 그는 아이콘이었다 며 그의 거부할 수 없는 작품과, 미친 듯이 자유롭고 유쾌하며 재능 넘치던 한 여성의 기억이 앞으로 우리를 이끌어주길 바란다 고 말했다.
고인은 1969년 11월 22일 이란의 상류층 가정 출신으로 10대 시절 오스트리아의 명문 리세 프랑세 드 비엔에서 4년간 공부했다. 심한 기관지염을 앓아 잠시 귀국했는데 놀랍게 변한 테헤란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 이 에피소드는 페르셰폴리스 2권에 상세히 나온다. 테헤란의 이슬람 아자드 대학에서 시각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받았고, 결혼했으나 얼마 안 있어 이혼했다.
부모가 그녀에게 유럽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했고, 1994년 스트라스부르로 건너가 오트 아르트 뒤 라인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것은 2006년이었다.
그래픽 노블 시리즈 페르셰폴리스 의 한 컷. 연합뉴스 자료사진
2000년에 처음 출간된 페르셰폴리스 를 비롯해 바느질 수다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이란 문화와 여성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페르셰폴리스 는 작가가 공동 연출로 나선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만들어져 2007년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기도 했다. 이듬해 오스카 최우수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올랐다.
사트라피는 2024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페르셰폴리스 는 서구 독자들로 하여금 이란 사람들의 인간성을 되돌아보게 하고, 아, 그들도 우리처럼 인간이다 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마르잔의 목소리를 키아라 마스트로얀니가, 어머니 목소리로 카트린느 드뇌브가 출연했다.
프랑스 국회 의장 야엘 브라운피베는 X에 거대한 예술가를 잃었다 고 적고 마르잔 사트라피는 자신의 일을 자유의 행위로 바꾸었다. 페르셰폴리스를 통해 그녀는 이란 혁명에 얼굴과 목소리를 부여했고, 여성의 자유와 존엄성을 위한 싸움을 자랑스럽게 이끌었다 고 추모했다.
사트라피는 2024년 7월 이런 예술적 업적과 이란 문화 이해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기사장 수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그녀는 이란에 대해 프랑스가 위선적이라고 비판하며 훈장 수령을 거부했다.
그녀는 당시 영상 메시지를 통해 자유를 사랑하는 젊은 이란인, 반체제 인사, 예술가들이 비자를 거부당하고 있는 반면, 이란 소수 지배층의 자녀들은 파리와 생트로페(휴양 도시)를 아무 문제 없이 거닐고 있다 고 비판했다. 이어 이란의 여성 혁명을 지지한다는 것은, 2022년 복장 규정을 어긴 혐의로 체포된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피해자나 유명인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것으로 축소될 수 없다 며 이란인들에게 필요한 건 구체적인 행동 이라고 꼬집었다.
사트라피는 다만 훈장 거부는 절대 프랑스에 반하는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 나라를 깊이 사랑한다 며 프랑스가 스스로 진실하기를 바랄 뿐 이라고 말했다.
아마니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가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을 때 그 생생한 이야기들을 담아 영화 Woman, Life, Freedom 을 만들었다. 그녀는 당시 데드라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부모들이 1983년 여성에게 히잡을 강요한 정권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섰던 일을 털어놓았다. 사트라피는 부친에 대해 그는 아주 소수의 남성 중 한 명이었다. 다른 대다수 남성들은 당시 여성의 권리가 사회의 권리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고 말했다.
그녀는 또 페르셰폴리스 와 자신의 활동에 관해 정권으로부터 위협과 비방을 받았다고 밝혔다. 나는 거짓말쟁이이자 스파이라고 불렸다. 나는 인생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걸 신경 쓰는지 말지 결정하게 된다. 내가 두려움이 없거나 부주의한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열일곱 살 아이들이 총에 맞고 있는데, 나는 반세기 넘게 살아왔다.
2023년에는 파리 주재 이란대사관 앞에서 레마와 셀레나 고메즈의 노래 Calm Down 에 맞춰 틱톡 영상을 올려 체포된 5명의 테헤란 청소년들과 연대하는 시위를 이끌었다. 사트라피는 2024년 BBC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예술가로서 겸손해야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쁘고, 무관심한 것이 더 나쁘다 며 내가 하는 일이 크거나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는 목소리가 있고, 얼굴이 있고, 프랑스에서 알려져 있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 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어떤 사회에서든 예술과 문화를 빼내면 사회는 무너진다 고 말했다.
그녀의 다른 영화 출연작으로는 2014년 공포 코미디 더 보이스 가 있는데 라이언 레이놀즈가 주연을 맡아 정신분열증을 앓는 공장 노동자 역을 맡았으며, 환각으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내용이었다. 또 로자문드 파이크 주연의 선구적인 폴란드계 프랑스 물리학자이자 화학자 마리 퀴리의 전기 영화 Radioactive (2019)를 연출했다. 아울러 다른 영화 작품으로 자두의 푸레 (2011)와 라 반드 데 조타스 (2012)도 있다. 그녀의 다른 소설로는 자수 와 여성, 삶, 자유 가 있다.
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