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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는 FC 바르셀로나만 있는 것이 아냐
[뉴스]
오동진 영화평론가 넷플릭스의 스페인 다큐멘터리 에 나오는 ETA는 스페인어가 아니라 바스크어로 된 약어다. ‘Euskadi Ta Askatasuna(에우스카디 타 아스카타수나)’로 읽는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바스크(라는 이름의) 조국과 자유’라는 뜻이다. 바스크 민족주의자들, 바스크 분리주의자들, 거기서 나온 바스크 정치 군사 조직, 그러다 극렬 테러 집단이 된 조직의 이름이 바로 이 ETA이다. 이 영화 은 바로 이 약어 ETA를 (바스크어로서) 구분하고 읽어낼 수 있느냐에 따라 내용과 의미가 한 번에 파악되느냐가 결정된다.   1997년 스페인 전역을 뒤흔든 29세 청년 납치 살해극 1997년 미겔이라는 29살 청년 회계사이자 국민당 소속 시의원이 ETA 조직에 의해 바스크에 있는 에르무아라는 도시에서 납치된다. 주어진 시간은 48시간. ETA는 자신들의 요구(수감 중인 조직원들을 특정 지역, 곧 에우스카디의 교도소로 이감시키라는 것)를 들어 주지 않으면 미겔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한다. 결국 미겔은 머리에 두 발의 총알을 맞은 채 버려지고 발견된 후 병원으로 옮겨져 집중 조치를 받았지만,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끝내 사망한다. 스페인 전역이 들끓는다. 그리고 그 48시간의 애타는 마음들이 스페인을 뒤바꾼다. 이 작품은 그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미겔이 납치된 1997년은 구겐하임 미술관이 빌바오에서 개관하고 왕가의 크리스티나 공주가 결혼한 데다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총리가 스페인이 ‘잘 나가고 있다’라고 호언장담하던 때이다. 휴대폰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었고 집에 와이파이가 없었으며 소셜 미디어도 생기지 않았던 시대이다. 투르 드 프랑스(사이클 자전거 대회) 5회 우승자 미겔 인두라인이 은퇴를 선언해 많은 이들이 슬퍼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해 여름인 7월, 해변 술집에서는 가수 알레한드로 산스의 「코라손 파르티오」와 안드레스 칼라마로의 「플라카」가 인기 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해 그 시점까지 ETA는 이미 9명을 살해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ETA는 이미 그 전 30년간 바스크 독립을 명분으로 거의 800명을 살해했다. 그해 스페인과 프랑스 감옥에는 ETA 대원이라는 테러리스트들이 600명이나 수감되어 있었다. 파란 리본 달고 무사 귀환 기원한 스페인 국민들 1997년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더 평온했다. 그 와중에 미겔 앙헬 블랑코가 납치됐고 살해됐다. 그것도 단 이틀 만에 죽었다. 이 48시간 내내 수도인 마드리드를 비롯해 그라나다, 팔마, 바르셀로나, 팜플로나, 빌바오, 사라고사 등 스페인 전역에서 수만, 수십만 군중이 가슴에 파란 리본을 달고 미겔의 무사 귀환을 촉구하는 평화 시위를 벌이기 시작한다. 이때의 파란 리본은 우리의 세월호 노란 리본과 똑같은 이미지로, 서유럽에서는 전장에 나간 군인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할 때 쓰이던 것이었다. (세월호 리본의 유래가 어디서 온 것인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루프 형태의 리본은 일종의 인식 리본으로, 예를 들어 AIDS 퇴치를 요구하거나 유방암 극복을 기원할 때도 이 같은 이미지의 리본을 사용할 수 있다. 이 디자인은 세계 공동의 저작권을 갖는다) 다큐멘터리 은 테러 조직의 잔혹한 납치살해 사건을 넘어,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극도로 과격한 테러리즘의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나게 됐는지, 그 같은 집단지성이 무엇을 계기로,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마치 우리의 6.10항쟁(1987), 촛불집회(2014) 그리고 빛의 혁명(2024), 남태령 투쟁(2025) 때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동시에 다큐 속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하이메 마요르 오레하의 말마따나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그때나 지금이나 ‘삶이 그렇듯이 운이란 게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것’임을, 이 나라 안의 역사에도 늘 어두운 심연이 깔려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이 다큐의 한계는 바스크 독립운동이 시종일관 과격해지고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급진적 요구조건을 내세우며 인명을 살상한 것만을 기술하는 듯한 경향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건 이 다큐를 연출하고 내레이션을 맡은 기자 출신 존 시스티아가가 미겔 납치사건 당시를 직접 취재한데다 미겔처럼 자신도 당시 29살로서 동시대 사람이라는, 동일화 감정을 강하게 가지고 있어서인 듯 보인다. 다큐 은, 말하고자 하는 아젠다는 옳고 분명해 보이지만 역사의 배경 등을 설명해 내는 데 있어서 다큐가 지녀야 할 일반성, 보편성이 다소 취약해 보이는 작품이다.   당시를 회상하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 폭압적 독재 권력 밑에서 더 극렬화한 바스크 분리 독립운동 바스크는 스페인 북부에 있는 지역이다. 프랑스 접경, 비스케이만 해안에 있다. 세계적인 영화제를 여는 곳으로 유명한 산 세바스티안(바스크어로 도노스티아)이 이 바스크 지방에 있다. 스페인 내에서 독립 요구가 못지않게 강한 카탈루냐는 스페인 동북부로, 축구 선수 메시가 데뷔하고 축구 인생 대부분을 뛰었던 FC 바르셀로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스크와 카탈루냐는 모두 분리 독립의 분위기가 강한 만큼 고유한 언어, 관습, 문화적 전통, 민족적 자부심이 스페인의 다른 지역과 완벽하게 차별된다. 이들의 분리 운동의 기원 역시, 많은 나라가 그런 것처럼, 오랜 기간의 철권 통치나 독재 정치에서 시작된다. 스페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인 스페인 내전이 바로 그것이다. 헤밍웨이의 유명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도 이 내전 때를 다룬 내용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 노먼 베순, 조지 오웰 등 세계 지식인들이 자발적 의용군으로 내전에 참여했다.   내전 중 반정부군을 열병하고 있는 프랑코 총통. 스페인 내전은 1936년~1939년까지 벌어진 전쟁이다. 파시즘, 공산주의, 아나키즘, 공화주의, 왕당파, 자유주의자들이 벌인, 말 그대로 이념의 각축장과 같은 전쟁이었다.(앙드레 말로의 대하소설 『희망』에는 옆에서 싸우는 전우를 가리키며 난 네가 왕당파인 줄 오늘 처음 알았어!”와 같은 대사가 나올 정도다) 이 스페인 내전은 파시스트인 장군 프랑코의 쿠데타로 시작되어 1939년 4월 1일에 공화파 정부가 항복을 선언하고 프랑코가 수도 마드리드로 입성하면서 끝이 났다. 그는 군국주의 정당 팔랑헤를 이끌며 스페인을 철권으로 통치한다. 그리고 그 파시즘의 역사는 독일 히틀러가 이끄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연결된다. 피카소의 작품 는 바로 그렇게 양국의 파시스트가 연합해 만들어 낸 양민 학살극을 고발한다. 게르니카는 바스크 지방에 있다. 프랑코는 바스크를 (마치 스탈린처럼) 강제로 통합해 온갖 군사적 탄압을 자행했다. 38년간(~1975) 독재자로 군림한 프랑코 치하 내전으로 죽거나 폭격으로 사망한 사람들, 투옥되고 고문, 사형당한 바스크인들이 2만 명에 이른다. ETA는 1959년에 결성돼 2018년까지 격렬한 저항 독립운동을 벌였다. ETA가 그토록 과격한 근성을 갖게 된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테러 막는 것은 군대 아니라 평화 원하는 집단지성 다큐멘터리 은 ETA의 정치·군사적 활동이 1997년 미겔의 납치 살해극으로 그 명분을 완전히 잃는 전조(前兆)가 되었음을 보여 준다. 역사의 진보란, 아무 죄 없는 미겔의 죽음처럼, 때론 엄청난 희생과 고통이 요구된다는 것인데 이 사건 이후 스페인 국민은 ‘더 이상의 테러는 안 된다’라는 생각을 확고히 가지게 되었다. ETA를 해산시킨 것은 스페인 정부나 군대, 경찰이 아니라 평화를 원하는 스페인 국민의 집단지성이 이루어 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구호가 ‘더 이상의 바스크주의는 안 돼’가 아니라 ‘테러를 일삼는 바스크 극렬 분리주의는 안 돼’로 구분, 차별화됐다는 것이다. 대중, 민중이 스스로 구체성을 획득해 나갈 때 사회와 정치가 올바른 방향성을 찾아 나간다는 점을 알게 한다. 그럼에도 미겔의 무덤은 ETA 지지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훼손됐으며 갈리시아로 이장돼 파라몬타오스의 묘지로 와서야 평안을 되찾는다.   인상적인 것은 이 다큐를 만든 존 시스티아가의 마지막 멘트이다. 그는 미겔의 묘역에서 너의 죽음으로 우리는 두려움을 벗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이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본 이 나라 젊은이 60%는 네가 누구인지 몰랐어.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말해 주지 않은 우리의 잘못이야. 그게 지금 우리의 상황이야.” 넷플릭스 다큐 은 바스크나 카탈루냐 등 스페인 내 분리 독립운동에 대한 통찰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스페인 현대사의 복잡함, 그것이 세계 다른 나라 특히 우리나라의 무엇과 닮아있는가를 유추하게 만든다. 스페인의 상황을 잘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이 보인다. 월드컵 시즌이다. 결승에 오른 스페인 축구를 볼 때 한 번쯤 스페인 내부를 생각해 볼 일이다. 은 거기에 맞춤인 작품이다. 넷플릭스에서 막 공개됐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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