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봉은 팬덤 문화 익숙한 청년들의 새 연대 방식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케이팝 응원봉 걸스 의 저자 일석과 구구 작가가 지난 22일 서울시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기 전에 책과 보아 응원봉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3.22. 정 숙 시민기자
공연장을 밝히던 응원봉이 어느 날 광장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손에 들린 이 작은 빛은 곧 하나의 상징이 됐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도심 곳곳에서 이어진 대규모 집회 과정에 기존 시위 풍경과는 다르게 형형색색의 케이팝 응원봉을 든 청년들(특히 여성들)이 나타나 커다란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평화적 집회 문화가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으며 노벨 평화상 후보로 거론됐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것은 더 이상 일회적인 풍경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집단적 감각과 실천의 결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케이팝 응원봉 걸스 의 저자 일석과 구구는 그 장면을 새로운 현상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응원봉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해 왔던 감각과 관계가 드러난 것에 가깝다고 말한다.
‘케이팝 응원봉 걸스’는 팬덤 문화에 익숙한 청년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 기존의 엄숙한 운동 문법 대신 취향과 감정, 연결을 통해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쫓아간다. 연대는 더 이상 무겁고 결연한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중심으로 모이고 함께 응원하며 자연스럽게 사회적 의사를 드러낸다. 인터뷰에 등장하는 여성들(해련, 유원, 숨눈, 팝콘, 젤리, 콩알) 역시 스스로를 운동가로 규정하지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분명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서울시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두 지은이 일석과 구구를 만나 청년들이 왜 응원봉을 들고 거리와 광장으로 나왔는지, 응원봉이 어떻게 하나의 시대적 징후가 됐으며 사회, 정치적 참여로 확장됐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세 공동 저자 가운데 희주 작가는 개인적 사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케이팝 응원봉 걸스 클레이 하우스 제공
보아 응원봉을 들고 있는 일석 작가. 2026.03.22. 정 숙 시민기자
기존 사회운동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흐름 기록
연대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감각
-‘케이팝 응원봉 걸스’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케이팝 팬덤을 단순히 소비자나 열성적인 팬으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감정과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거리에서 응원봉을 든 청년들을 처음 봤을 때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단순한 굿즈같지만 그 안에는 개인의 취향, 소속감, 집단적인 감정이 응축돼 있거든요. 그런데 동시에 그 장면이 지금 시대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라고 느껴졌어요. 기존의 사회운동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흐름을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서 ‘연대’라는 키워드가 중요하게 읽힌다.
연대라는 것은 거창한 정치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감각에 가까워요. 같은 공연을 보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면서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서로를 지지하게 되는 과정 자체가 연대라고 생각하고, 응원봉은 그걸 눈에 보이게 만든 가시화 도구인거고요.”
팬덤은 단순한 취미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경험
응원봉은 ‘지지’의 가장 직관적인 표현
-기존 사회 운동과 가장 다르다고 느낀 점은 무엇인가?
팬덤은 종종 비이성적이거나 과도한 집단으로 소비되곤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과 규칙 그리고 윤리가 존재해요. 서로를 배려하고 정보를 나누고 때로는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그런 면들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팬덤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조직 중심, 이념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개인의 취향과 감정에서 출발합니다. 이미 존재해온 팬덤 활동 방식과 사회 참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응원봉이 광장에서 주목받은 현상을 어떻게 봤나?
그 장면 자체는 굉장히 인상적이지만 동시에 조금은 단편적으로 소비됐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새로운 주체가 등장한 것처럼 얘기되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사실은 이미 존재해 온 사람들과 방식이 드러난 것이고 그 맥락까지 함께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응원봉은 ‘지지’의 가장 직관적인 표현입니다. 광장으로 확장되면서 개인의 취향이 곧 사회적 메시지가 되는 순간을 만들어냈다고 봅니다.
청년들 스스로 ‘운동가’라 칭하지 않지만 적극 참여
청년 세대 새로운 참여 방식 이해하려는 시선 필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
많은 청년들이 스스로를 ‘운동가’라고 정의하지 않으면서도 실제로는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기존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청년 세대가 정치나 사회에 무관심하다는 오해도 많다.
‘무관심하다’, ‘이기적이다’는 평가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저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만 자신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을 뿐입니다. 청년 세대를 기존의 틀로 판단하지 말고 새로운 방식의 참여를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대선을 하루 앞둔 2일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의 마당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집중유세에 모인 시민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2025.6.2 연합뉴스
지금 청년 세대 ‘다르게 말하는 존재’
누군가의 감정 이해하려는 순간부터 관계 시작
-지금의 청년 세대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저는 지금의 청년 세대를 ‘다르게 말하는 존재’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그 방식이 낯설 뿐이거든요. ‘케이팝 응원봉 걸스’는 그 낯섦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기록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우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꼈으면 좋겠어요. 꼭 같은 취향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순간부터 관계는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응원봉은 그 하나의 사례일 뿐이고요. 이 책을 통해 ‘연결되는 경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계획하고 있는 다른 기록 작업이 있나?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일수록 기록의 중요성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의 언어와 움직임을 계속해서 추적하고 싶습니다.”
엔시티 위시 응원봉을 들고 있는 구구 작가. 2026.3.22. 정 숙 시민기자
팬덤 단순 소비집단으로 보는 시선에 문제의식
공연장의 응원봉 움직임은 집단적 감정의 발로
-공동 저자로 작업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일석 님과 비슷하게 팬덤을 단순한 소비 집단으로만 보는 시선에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특히 저는 팬덤 내부의 감정선이나 서사에 더 주목했는데요, 사람들이 왜 그렇게 깊이 몰입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로 남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응원봉은 그 감정을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고요.”
-응원봉이라는 소재가 갖는 상징성은 무엇일까?
응원봉은 굉장히 물리적인 물건인 동시에 집단적인 감정을 시각화하는 도구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연장에서 수많은 응원봉 불빛이 동시에 움직이는 장면은 일종의 집단적 감정 표출이라고 볼 수 있죠. 그 안에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은 함께 있음 을 느끼게 하는 경험이거든요. 그걸 기록하고 싶었어요. 그 경험이 광장에서도 비슷하게 이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청년들 연대 방식,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져
팬덤 조직력과 소통 방식, 사회적 이슈와 만나 확장
-‘케이팝 응원봉 걸스’에서 특히 주목한 지점은 무엇인가?
제가 주목한 대목은 연대의 방식입니다. 청년들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이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느꼈거든요. 훨씬 가볍고 빠르고 감각적입니다. 가벼움이야말로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습니다. 가볍다는 이유로 의미까지 가볍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팬덤 문화와 사회 참여가 결합된 현상을 어떻게 보나?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팬덤은 조직력과 소통 방식을 갖추고 있었고, 그것이 사회적 이슈와 만났을 뿐입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확장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광장 이후의 상황도 중요하게 봤을 것 같다.
위기의 순간에는 사람들이 빠르게 연결되지만 이후에는 다시 흩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때 만들어진 감각이 정치나 사회 안에서 충분히 이어지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 이후의 시간 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각자 다른 삶 살고 있지만 응원봉 통해 연대
응원봉, 단순한 팬심 넘어 시대 비추는 존재
-책을 쓰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인터뷰이들은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응원봉을 통해 연결되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힘든 시기를 버티게 해준 존재로, 또 어떤 분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준 계기로 얘기하더라고요. 거창한 목표보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무엇을 느끼길 바라나?
케이팝이나 팬덤에 익숙하지 않은 분도 편견 없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특정 문화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타인과 연결되는지를 다루는 얘기니까요. 응원봉이 낯설게 느껴지더라도 그 안의 감정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참여 방식은 다르지만 분명히 함께 사회를 향하고 있거든요. 그런 다양성에 대한 얘기가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관계의 방식들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청년 세대를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하고 싶나?
‘즐거움과 의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세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문화와 정치, 개인과 집단이 더 이상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시대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세대들의 ‘가벼움’을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응원봉의 빛은 단순한 팬심을 넘어 하나의 시대를 비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 저자 일석(왼쪽부터), 구구, 희주 모습 2026.3.22. 일석 작가 제공
여러 아이돌들의 굿즈를 살펴보며 출간 회의를 하는 희주, 일석, 구구 작가. 2026.3.22. 일석 작가 제공
대한민국 시민들이 만들어낸 평화적 집회 문화가 노벨 평화상 후보로까지 거론된 것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실천의 결과일 것이다. ‘케이팝 응원봉 걸스’는 바로 그 축적의 과정을 담았다. 응원봉 빛은 광장에서 불쑥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이어져 온 감정과 관계의 연장선에 있다.
단순히 팬덤 문화를 기록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결국 우리 모두의 얘기로 확장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시작된 감정은 응원봉이라는 작은 빛을 통해 서로를 비추고, 그 빛들이 모여 예상하지 못했던 공감과 연결을 만들어낸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분명한 관계 속에 놓여 있다.
응원봉을 들었던 그날의 감각이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지금,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서로를 감각하고 지지하는 일, 그런 작은 실천들이 쌓일 때 연대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된다. 그리고 그때 광장을 밝히던 응원봉의 빛과 그 의미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