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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80년 광주 가 여전히 오늘의 문제 인 이유

80년 광주 가 여전히 오늘의 문제 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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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80년 광주’ 이야기냐 라는 냉소적인 질문이 있다. 그 질문에 대해 작가 정찬은 이렇게 답한다. 아직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진실이 있고, 남겨진 이들의 고통이 계속되는 한, 기록은 멈출 수 없다.” 정찬의 소설 『그들이 있었던 곳』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 선포부터 5월 27일 도청 재진입 작전까지의 긴박했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2002년 내놓은 장편 『광야』를 바탕으로 쓴 것으로, 작가로 하여금 다시 ‘광주’로 돌아가게 한 것은 12·3 비상계엄의 날이었다. 계엄을 막으러 국회로 달려간 시민의 모습에서 80년 5월의 광주 시민이 떠오른 것은 역사의 신비였다. 처음 『광야』를 쓴 것이 2002년이었으니 80년으로부터 22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이번에 다시 펴낸 것은 또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뒤다. 22년이라는 간격이 두 번 반복된다는 것이 묘하게 느껴진다.   시민언론 민들레와 인터뷰하는 정찬 작가.  12·3 그날 밤 TV를 보면서 1980년 광주의 끔찍한 시간이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80년대 드라마가 내면에서 작동했다고 할까. 광주가 진압되고 87년까지 수많은 청년들의 희생이 쌓였고, 그 위에서 겨우 항쟁을 일으킬 수 있었는데, 12·3 계엄을 보는 순간 그 공포의 기억이 생생하게 현전(現前)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6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됐고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가고 있지만, 그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광주에 대한 문학적 작업이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다. 광주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머리로만 알고 있다. 왜 광주가 일어났는지, 어떤 과정과 변화를 거쳤는지, 어떻게 끝났는지를 구체적으로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광주라는 역사적 생명체를 인식이 아니라 심정으로, 몸으로 체감하게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그에겐 역사도 하나의 이야기이고 소설도 하나의 이야기다. 역사가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기록이라면, 소설은 사실 너머의 진실을 바탕으로 한 기록이다. 광주를 그 방식으로 현재화하는 작업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평화학·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이 『그들이 있었던 곳』의 인물들이 현재성을 가진다고 추천사에 쓴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 현재성은 소설가 정지아가 말한 것처럼 한강의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광주항쟁의 전모를 섬뜩하게 우리 앞에 들이민다. 소설의 주요 인물들은 갑자기 폭력과 불의를 마주하고 고통스러워하지만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다. 해방광주 가 켠 역사의 등불을 지키고자 하는 항쟁 지도부 박태민, 목숨을 건 항쟁을 통해 영혼의 자유를 느끼는 기층민 출신의 시민군 김선욱, 계엄군의 폭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내면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계엄군 강선우, 광주의 고통을 십자가의 고통으로 변용하는 신부 도예섭, 광주항쟁을 이방인이지만 시민의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외신기자 머턴 등이 그들이다. 광주 시민들이 그토록 저항하게 된 내적 동력은 처음에는 윤리적 분노였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주권자인 국민을 짐승 사냥하듯 하는 현장을 눈앞에서 보면서 분출된 분노였다. 그런데 거기에 그쳤다면 광주 항쟁이 그 격류처럼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들이 당하는 폭력이 민주주의에 대한 폭력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면서, 개인적인 분노가 집단적 분노로 변화된다. 그 윤리적·집단적 분노가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학살 이라는 인식과 만나면서 저항의 감정이 급격히 깊어지고 퍼진 것이다.   정찬의 소설 그들이 있었던 곳 의 표지. 계엄군이 해방광주 의 시간을 멈추기 위해 다시 탱크를 앞세우고 광주 시내로 들어갔을 때, 26일 자정을 기해 전남도청 진압 작전을 펴겠다고 했음에도 끝까지 도청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항쟁파가 있었다. 계엄군을 이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들은 남았던 것일까. 정찬이 관련 기록들에 찾아낸 바로는 최후의 순간까지 총을 들고 도청을 지키던 이는 200명에서 300명 이상이었다. 그러나 27일 새벽 전투에서 계엄군 부상자는 단 2명, 그것도 큰 부상이 아니었다. 시민군들이 총을 들고 계엄군을 쏘려 했다면 수십 명은 죽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계엄군과 전투를 하려 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시민군들은 계엄군을 조준하고도, 자신들을 살상하려는 계엄군인데도 그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들의 목적은 저항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도청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먼저 죽어간 시민들과 함께 자신들도 죽음으로써, 다만 그 희생의 표징을 남기려 한 것이다. 억울한 희생을 그냥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그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사람들은 광주 항쟁 하면 싸웠던 것만 생각하지만 계엄군이 물러가고 자치 공동체가 들어선 뒤, 해방 광주 내부에서 벌어진 분열과 갈등, 다시 계엄군의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공포를 제대로 아는 이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광주 항쟁의 알맹이다,고 말한다. 작은 자치 정부라 하더라도 통치기구이기 때문에 권력의 법칙이 작동한다. 권력을 바라보는 시선, 권력이 추구하는 목적, 개개인의 신념에 따라 갈라진다. 해방 광주 안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의 대상은 무기 반납 문제였다. 항쟁파와 비항쟁파 모두 무기 반납의 필요성 자체는 공감했다. 진압 작전이 펼쳐지면 수많은 시민이 죽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냥 반납하면 그동안 언론에 도배된 폭도 낙인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언론은 광주 저항을 북한 간첩 침투, 좌파 세력, 빈민들의 폭동으로 몰아붙였다. 폭도로 남은 채 반납할 수는 없었다. 항쟁파들은 폭도가 아님을 인정하면 반납하겠다 고 했지만, 계엄사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자기들이 폭도가 되는 셈이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서로 권총을 겨누는 상황까지 갔다. 그 치열한 논쟁과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광주 시민을 살리고 해방 광주의 귀중한 진실의 등불을 지키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도청에 남게 된 것이다.” 도청사수 항쟁파 인 박태민은 그들이 지키려는 진실을 이렇게 정의한다. 공수특전단의 무참한 폭력은 시민들에게 진실을 일깨웠습니다. 진실은 시민들의 혼을 흔들어 죽음을 넘어서는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죽음은 진실을 지키기 위한 불꽃이었습니다. 죽음을 껴안고 싸웠던 이들은 알 것입니다. 해방광주는 죽음의 혼이 켠 진실의 등불임을. 그리고 박태민은 죽음으로써 지킬 희망을 이야기한다. 진실은 스스로의 시간을 창조합니다. 창조된 시간은 젊은 혼을 격동시킵니다. 격동된 혼은 전사의 혼입니다. 해방광주의 전사는 사라지겠지만 새로운 전사들은 역사의 시간, 그 광야를 가로지르며 진실의 불꽃을 향해 달려올 것입니다. 해방광주의 패배는 잠시의 패배입니다. 역사의 광야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인 인물은 계엄군 출신 강선우다. 그를 가장 복잡하게 그린 것은, 세상에 100% 순수함도 100% 악도 없기 때문이다. 선과 악은 그림자처럼 섞여 있다. 그는 베트남전 트라우마를 의식 깊숙이 억누른 채 광주에 투입된다. 처음에는 명령에 충실하게, 심지어 훈련의 억압 속에 쌓였던 폭력의 쾌감까지 느끼며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다가 학살이 점점 심화되면서 괴로움과 양심의 가책, 그리고 베트남전 트라우마가 되살아난다.” 그런 반의식적 상태에서 박태민과의 조우가 이뤄진다. 극도로 처절한 현장에서 박태민은 살아있으면서도 꿈속에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강선우 자신과 어딘가 연결되는 느낌, 동일시되는 감정을 일으킨다. 학살을 지탱하던 육체적·정서적 에너지가 그 순간 스르르 내려앉고, 다리가 꺾이며 쓰러지려는 것을 서로에게 기댄다. 이후 야산으로 무대가 옮겨지면서 부상당한 시민 두 명을 죽이라는 소령의 명령을 받는 순간, 내가 이 살육을 계속해야 하는가 라는 영혼의 물음이 강렬하게 일어난다. 철수하는 도중 로켓 공격을 받는 순간 그는 자신에게 살인을 명령한 상관을 찾아가 죽인다. 그것은 복수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을 완전히 단절하고 다른 삶으로 건너가겠다는 결심이었다. 상관이 아닌 과거의 자기 자신을 죽인 것과 같다.” 강선우는 그리고는 계엄군의 진압 전날, 도청으로 향한다. 그것은 죽임이 아닌 죽음을 향한 것이었다. 죽음의 집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간 그것은 삶에서 죽음으로, 그러나 또한 역설적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그리고 비인간에서 인간으로의 전환이다. 작가는 죽음 앞의 인간 존재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5월 광주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 에게 닥쳐온 죽음의 양식을 들여다보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 이 죽음과 마주했을 때 그들 의 표정과 숨결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싶었다. 작가는 80년 광주에서 죽어간 이들의 이야기로써 산 자와 죽은 자의 연대 를 보여주고자 했다. 80년 광주의 죽음들이 2024년 12월 3일의 산 자로 연결되듯이 작가가 46년 전의 비극을 오늘 다시 생생히 되살린 것은 80년 광주의 그 사실 너머의 진실의 추적이 2026년의 지금에도 여전히 오늘의 문제 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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