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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유시민 음모론, 누가 정치를 왜곡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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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은 힘들다 유튜브 갈무리 요즘 SNS 공간을 들여다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민주당을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갈등과 권력 재편, 노선 충돌과 인물 간 경쟁이 한창인 와중에, 그 모든 현상의 원인을 두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서사가 넘쳐난다. 김어준과 유시민. 이 둘을 한 묶음으로 엮어 최근 사태의 진원지”, 보이지 않는 음모의 배후”, 당을 좌지우지하는 실세”로 규정하는 글들이 무차별적으로 공유된다. 마치 거대한 정치적 흐름이 두 명의 방송인·지식인에 의해 설계되고 조종되고 있다는 듯한 묘사다. 나는 김어준의 진행 방식에 대해 여러 차례 비판해왔다. 그의 화법은 때로 단정적이고, 복잡한 사안을 지나치게 선명한 구도로 정리하며, 청중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대신 다른 해석의 여지를 좁히는 경향이 있다. 유시민 역시 정치적 발언이 과잉 해석되거나 전략적 오판으로 읽힐 지점이 존재한다. 영향력 있는 공적 인물인 만큼 그들의 발언은 더 엄격한 검증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 SNS에서 벌어지는 일은 ‘비판’이 아니라 ‘악마화’에 가깝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적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복잡한 현상을 특정 개인의 음모로 환원하는 것은 지적 게으름일 뿐 아니라 민주적 토론 문화를 갉아먹는 행위다. 정당 내부의 갈등은 구조적이다. 공천권을 둘러싼 이해관계, 계파 간 세력 균형, 차기 권력 구도에 대한 계산, 정책 노선의 차이, 지역 기반과 세대 구성의 변화,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미묘한 긴장, 외부 정치 환경의 압박 등 수많은 변수가 얽혀 있다. 여기에 언론 환경, 지지층의 감정, 온라인 여론의 파동까지 더해진다. 이런 다층적 맥락을 분석하는 일은 어렵고, 시간이 걸리며, 때로는 자기 진영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그에 비해 누가 뒤에서 조종한다”는 음모론적 서사는 자극적이고 소비하기 쉽다. 설명이 단순하고, 분노를 집중시키기 좋으며, 책임의 방향을 외부로 돌리기에 유리하다. 그러나 단순함은 진실과 다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프레임이 민주 진영 내부의 불신을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김어준과 유시민을 묶어 ‘세력화’하고, 그들을 향해 분노를 조직하는 방식은 일시적인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공론 장의 질을 떨어뜨린다.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필요한 것은 분석과 전략의 재구성이지, 상징적 희생양을 세워 분노를 배출하는 일이 아니다. 정치적 실망을 특정 인물에 대한 혐오로 치환하는 순간, 우리는 문제의 본질에서 멀어진다. 이들이 정말로 모든 현상의 배후라면, 민주당의 정치인들은 무엇인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가. 당원과 지지자들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일제히 움직이는 집단인가.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정당 민주주의를 모욕하고 있다. 정당은 수많은 이해관계자와 주체가 얽힌 공간이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결정은 토론과 충돌, 계산과 타협의 산물이다. 이를 두 명의 인물로 축소하는 순간, 우리는 정치의 복잡성을 스스로 지워버린다. 물론 영향력은 존재한다. 대중적 방송과 저술을 통해 여론에 일정한 방향을 제시하는 힘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영향력과 지배력은 다르다. 설득과 조종은 다르다. 발언이 여론에 파장을 일으킬 수는 있어도, 그것이 곧 조직적 통제와 동일시될 수는 없다. 지금 SNS에서 반복되는 서사는 이 차이를 무시한다. 모든 정치적 선택의 배후에 누군가의 ‘설계’가 있다는 가정은 현실을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왜곡한다. 또 하나 짚어야 할 것은 책임 회피의 심리다. 당의 전략이 실패했을 때, 지도부의 판단이 미흡했을 때, 계파 정치가 과도했을 때, 우리는 내부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스럽다. 자신이 지지해온 인물과 세력의 한계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쉬운 길은 외부의 영향력을 과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옳았지만, 누군가가 뒤에서 왜곡했다”는 서사는 자기 위안을 제공한다. 그러나 위안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특히 최근의 공격은 묘하게도 두 사람을 ‘세트’로 묶는다. 서로 다른 이력과 역할, 발언 맥락을 지닌 인물들을 하나의 음모적 축으로 설정한다. 이는 분석이라기보다 정치적 상징 조작에 가깝다. 한 덩어리로 묶어야 공격하기 쉽고, 분노를 조직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는 그렇게 단순한 도식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나는 다시 말한다. 비판은 필요하다. 김어준의 진행 방식이 편향적이라면 구체적으로 지적하라. 유시민의 정치적 판단이 현실을 오독했다면 근거를 들어 논박하라. 발언의 논리적 허점, 사실관계의 오류, 전략적 한계를 조목조목 짚어라. 그것이 공적 인물을 대하는 시민의 태도다. 그러나 배후”, 진원지”, 조종자”라는 단어를 남발하며 막연한 의혹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이자, 감정의 과잉이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음모의 그림자를 좇는 일이 아니다. 노선과 전략을 둘러싼 공개적 토론,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조직 혁신, 권력 분산과 책임 정치의 원칙을 세우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삶과 연결된 정책 경쟁이다. 내부 갈등이 있다면 투명하게 드러내고, 서로 다른 입장을 논증으로 겨루어야 한다. 설령 격렬하더라도 그것이 민주주의다. 정치를 음모로 환원하는 순간, 우리는 사고를 멈춘다. 사고를 멈춘 정치 공동체는 쉽게 선동에 휘둘린다. 오늘은 두 사람을 배후로 지목하지만, 내일은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해 같은 방식의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이런 순환은 공동체를 강화하지 못한다. 오히려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작은 차이를 적대적 균열로 키운다. 정치적 비판은 냉정해야 한다. 감정이 아니라 논리로, 추정이 아니라 근거로, 낙인이 아니라 분석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허구의 적을 만들어내는 집단으로 전락한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유지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불편한 질문을 감수하고, 자기 진영의 한계까지도 드러내며,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 위에서만 성장한다. 김어준과 유시민을 향한 무차별적 배후론은 결국 우리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의심하는 행위다. 모든 것을 누군가의 설계로 설명하려는 유혹을 거부해야 한다. 정치는 음모가 아니라 구조와 선택의 결과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우리 모두의 몫이 포함되어 있다. 분노를 쏟아낼 표적을 찾는 대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정치이고,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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