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로그인   회원가입   초대장  
페이지투미   페이지투미 플러스
페이지투미 홈   서비스 소개   아카이브   이야기   이용 안내
페이지투미는 사회혁신 분야의 새로운 정보를 모아 일주일에 3번, 메일로 발송해드립니다.

link 세부 정보

정보 바로가기 : 새 술 담을 새 부대는 준비돼 있는가

새 술 담을 새 부대는 준비돼 있는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동안 글을 떠났습니다. 계엄 내란의 국면을 통과한 뒤, 어떤 말들은 너무 쉽게 선동이 되고, 어떤 문장들은 너무 빨리 소모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시 멈췄습니다. 침묵이 비겁해서가 아니라, 침묵만이 진실을 지키는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시 돌아오니 세상은 숨도 고르지 못한 채, 더 빠르게, 더 급하게 변하고 있었습니다. 어제의 상식이 오늘의 조롱이 되고, 오늘의 분노가 내일의 피로로 바뀌는 속도 속에서,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현실을 내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민들레로 돌아왔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내 몫의 문장을 꺼내들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제 일상은 강원도 강릉 바닷가에 더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이른 새벽, 바람이 기분을 바꾸고, 파도가 하루의 표정을 바꾸는 그곳에서 저는 낚싯대를 듭니다. 고요한 물결 위에 찌 하나 띄워두고, 한참을 기다립니다. 바다는 정직합니다. 억지로 당기면 끊어지고, 욕심을 내면 허탕을 치고, 마음을 낮추면 때로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줍니다. 낚시는 어떤 면에서 기도와 닮았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앞에서, 내가 해야 할 몫만 하고, 나머지는 하늘과 물결에 맡기는 일. 고기를 낚는다는 것은 결국 고기를 잡기보다, 내 조급함을 다스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통합 논의는 뒤에 머무는 것인가, 미래로 향하는 것인가 정치권이 다시 ‘통합’을 말합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통합 논의가 뜨는 순간, 국민의 마음은 두 갈래로 갈립니다. 이게 단순한 덩치 키우기인지, 아니면 시대가 요구하는 구조개혁을 담아내기 위한 자기 비움인지, 사람들은 더 이상 구호를 믿지 않고 ‘내용’을 보려 합니다. 통합은 말의 기술이 아니라, 낡은 습관과 관성의 체질을 바꾸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논의를 바라보며 성경의 오래된 지혜를 다시 떠올립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는 비유로 변화의 원리를 단칼에 정리합니다. 지금의 ‘새 술’은 정권 심판이라는 감정만이 아닙니다. 불공정과 불평등을 바로잡고, 무너진 신뢰를 복원하고, 민생의 고통을 줄이라는 사회적 요청이 새 술입니다. 문제는 그 새 술을 담을 ‘부대’입니다. 통합이란 이름 아래 조직과 의사 결정이 과거 방식에 머문다면, 새 술은 흘러내립니다. 국민은 바로 그 지점을 냉정하게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통합 추진을 좋게 본다”(28%)보다 좋지 않게 본다”(40%)가 더 많게 나타납니다(한국갤럽, 2026년 1월 4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왼쪽),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여기서 정치의 무의식을 직시해야 합니다. 프로이트가 말한 반복 강박은 개인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정당도, 지지집단도, 한 시절의 기억을 정체성으로 굳혀버리면 그 기억을 다른 형태로 반복하며 현재의 과제를 놓칠 수 있습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기의 상징적 장면들이 오늘의 판단을 붙잡아 끌어당길 때, 통합은 미래를 여는 장치가 아니라 과거를 재연하는 무대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배의 선미(지나온 항로)의 설명이 아니라, 선수(앞으로의 항로)의 결단입니다. 통합의 목적은 모두의 삶 낫게 만드는 공동선이어야 C.G. 융의 언어로 말하면, 정치집단은 이때 ‘그림자’를 만납니다. 보고 싶지 않은 한계, 인정하기 싫은 실패, 말하기 껄끄러운 책임이 쌓일수록 그림자는 커지고, 그 그림자를 덮기 위해 더 강한 페르소나가 필요해집니다. 우리가 정의다” 우리가 피해자다” 같은 문장이 커질수록, 정작 국민이 듣고 싶은 질문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무엇을 바꿀 것인가?’, ‘누구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통합이 진정 감동이 되려면 이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합니다. ‘겸손은 힘들다’지만, 이제 겸손해져야 합니다. 겸손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기 집단을 ‘메타인지’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인정하는 용기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피케티가 불평등을 다루며 강조해온 핵심을 기억합니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결과는 다시 되풀이된다’는 말입니다. 통합도 산술이 아닙니다. 사람을 섞는 것이 아니라 룰을 바꾸는 일입니다. 정당 통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숫자를 합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의사 결정하는가(공천·재정·당내 민주주의),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는가(민생·주거·노동·돌봄·교육), 어떤 방식으로 책임지는가(성과·검증·인재 교체)- 이 ‘제도적 설계’가 바뀌어야 통합이 의미를 갖습니다. 절차나 과정은 이후에 논의해도 충분합니다. 통합의 명분이나 속내가 과거의 명예회복이나 특정 지지층의 위로에 붙들릴수록 외연은 넓어지지 않습니다. 통합의 목적은 오직 공동선이어야 합니다. 모두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커지는 정치’ 아닌 ‘견디고 넘어서는’ 지속가능한 정치 그래서 저는 이해찬 총리님의 영결식에서 백낙청 선생님이 남긴 말씀을 꼭 함께 기억하고 싶습니다. 백 선생님은 시민사회를 대표한 추도에서, 민주정치가 한 당의 몫으로 떠맡겨지는 구도를 넘어 더 넓은 연합의 지평을 주문했습니다. 민주당이 민주정치를 혼자서 온통 떠맡으려 하기보다”라고 말씀하시며, 변화의 중도와 다당적 네트워크 속에서 폭넓은 연합을 주도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지금의 통합 논의에 던지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통합은 한쪽을 흡수해 ‘커지는 정치’가 아니라,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구조를 새로 짜 범민주 진보진영의 지속 가능한 ‘견디고, 넘어서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다음 위기를 건너갈 힘이 생깁니다. 결국, 통합의 출발점은 ‘메타노이아(Metanoia)’, 곧 ‘방향 전환’입니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고백이 먼저이고, 과거의 정당화가 아니라 현재의 책임이 먼저이며, 팬덤의 언어가 아니라 국민의 언어가 먼저입니다. 통합을 말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이름만 새로 붙이는 통합이 아니라, 부대 자체를 새로 만드는 통합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 길은 어렵지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길만이, 국민이 다시 손을 내밀고 이해하는 길입니다.


최근 3주간 링크를 확인한 사용자 수

검색 키워드


주소 : (12096) 경기도 남양주시 순화궁로 418 현대그리너리캠퍼스 B-02-19호
전화: +82-70-8692-0392
Email: help@treeple.net

© 2016~2026. TreepleN Co.,Ltd. All Right Reserved. / System Updated

회사소개 / 서비스소개 / 문의하기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