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로그인   회원가입   초대장  
페이지투미   페이지투미 플러스
페이지투미 홈   서비스 소개   아카이브   이야기   이용 안내
페이지투미는 사회혁신 분야의 새로운 정보를 모아 일주일에 3번, 메일로 발송해드립니다.

link 세부 정보

정보 바로가기 : 당신의 침실을 보여주세요

당신의 침실을 보여주세요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한국인이 오래 전부터 불러온 (양주동 작사, 이흥렬 작곡)은 1930년대에 나온 노래니까 어느덧 100년이 되어간다. 그런데 가사에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에서 ‘진 자리’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아기가 변을 놓아서 젖어버린 바닥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짐작했다. 그런데 도올 김용옥 선생께서 강의 중에 바로 잡아주셨다. 천정에서 빗물이 새어서 방바닥에 축축해진 곳이 바로 ‘진 자리’라는 것이다. 노랫말은 그쪽에 어머니가 눕고 아기를 다른 쪽에 눕힌다는 뜻이다. 이라는 불교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비가 내리면 지붕 틈으로 흘러내려 바닥이 젖을 만큼 열악한 주거 환경이 옛날에는 흔했다. 의식주의 여건 자체가 워낙 빈곤했던 만큼, 수면 공간도 지금의 기준으로 최소한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서양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형편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미셸 페로가 쓴 라는 책에는 18세기 말 전염병 연구를 위해 노르망디 지역의 농촌을 방문한 어느 의사가 그들의 거주 실태에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초가 지붕을 한 일종의 오두막집들은 물이 고인 늪과 이리저리 흩어진 퇴비 근처에 있었고, 농민들 중 일부는 간신히 새로 바꾼 짚더미 위에 침구류도 없이 잠을 잤다. 다른 사람들은 공동의 방에서 동물이나 가금류와 뒤엉켜 잤는데...’ 당시 유럽의 많은 집은 거실과 작업 공간이 분리되지 않았고, 가족과 하인들이 한 공간에서 함께 잤다. 그리고 위의 인용문에 나오듯이 가축과 한 지붕 아래 사는 경우도 꽤 일반적이었는데, 난방 시설이 부족했던 시절이라서 겨울에 동물의 온기를 빌려오는 이점이 있었다. 이누이트족도 날씨가 영하 50도 이하로 내려가면 썰매 개들과 함께 잠을 잤다. 이것은 요즘 우리가 반려동물이 사랑스러워서 동침하는 것과 달리 ‘체온 공유’를 통한 생존 전략이었다. (1960~70년대의 팝 그룹 중에 가 있었는데, 이누이트족이 너무 추운 밤에 개 세 마리를 껴안고 잤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으로 자신들은 노래로 세상을 따뜻하게 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가축과 함께 자는 것이 보온에는 좋았지만 감염의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분변과 습기가 가득한 가운데 각종 병균이 들끓었고, 벼룩, 이, 빈대 등의 벌레들과 늘 동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류층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침실이 독립 공간으로 분리되고 침대와 커튼과 카펫 등이 설치되면서 많이 아늑해졌지만, 역설적으로 그 틈새가 해충의 서식처가 되기도 했다. 영국 등지에서는 빈대가 ‘공포의 대상’이 되었을 정도다. 17세기에 그려진 아래 그림들을 보자. 빛, 바닥 타일, 액자, 정돈된 가구 등이 정갈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당시의 귀족들이 사뭇 우아한 생활을 누렸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침구와 목재와 직물에 얽힌 위생 리스크와 환기가 부족해서 생기는 악취 등은 감춰져 있다. 촛불과 벽난로의 그을음으로 인한 실내 공기의 오염도 생략되어 있다. 우리가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을 때는 그런 불편함을 상상으로 채워 넣어야 할 것이다.   Jan Steen Couple in a bedroom (1660). 이 땅의 선조들은 어떠했을까. 일찍이 온돌(영어로 그냥 ‘Ondol’이라고 표기할 만큼 한국의 고유한 주거 양식이다)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고, 밤에 이부자리를 깔았다가 아침에 개어서 치우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실내가 건조하고 따뜻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침구 관리(말리기와 보관)가 수월했을 듯하다. 그리고 주거 구조상 가축들과 함께 잠을 자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기생충과 오물처리가 골칫거리였고, 벼룩과 빈대에 시달리는 일상은 유럽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20세기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성장하신 아버지께서 그런 벌레들 (거기에 더해 천장 위를 기어 다니는 쥐들) 때문에 밤잠을 설쳤던 경험을 여러 번 들려주셨다. 경제 성장에 따라 주거 위생이 나아지면서 사정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연탄이 보급되면서 밤중에 일산화탄소를 마시고 목숨을 잃는 일들이 1960~80년대에 빈번했다. 내게도 초등학교 시절 다른 방에서 자던 사촌 형이 가스에 중독되어 의식을 잃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구급차가 없어서 가족들이 동치미 국물을 먹이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민간요법 정도로 대처해야 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 우리의 침실은 매우 쾌적하고 안전해졌다. 여름의 모기 말고는 괴롭히는 벌레들이 거의 없고, 난방과 단열이 좋아져서 겨울철의 외풍(밖에서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나 웃풍 (방 안의 천장이나 벽 사이로 스며들어 오는 찬 기운)도 많이 줄었다. 물론 모든 면에서 다 좋아진 것은 아니다. 반세기 전에 생겨난 반지하 방에는 지금 약 40만 가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습기가 많고 곰팡이 등의 오염 물질이 많다. 그런가 하면 빌라나 아파트 등 다세대 공간이 급증하면서 층간 소음으로 인해 잠을 설치게 되는 것도 예전에는 없었던 문제다. 거기에 더해, 종일 몸에 떨어지지 않는 스마트폰이 침대까지 따라와서 잠들기를 방해하는 것도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침실은 어떨까. 의외로 그에 대한 자료나 경험이 많지 않다. 가장 사적인 공간을 일부러 찾아 들어가 취재하거나 외국을 방문했을 때 홈스테이를 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자들이 현지 조사를 할 때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지만, 수면 행위까지 접근하는 경우는 매우 적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변방처럼 감춰져 있는 공간에 과감하게 카메라를 들이댄 사람이 있다. 영국 출신 사진작가 제임스 몰리슨 (James Mollison)는 전 세계 9세에서 13세 사이의 아이들이 잠을 자는 공간들을 소재로 2010년 ‘아이들의 잠자리’ (Where Children Sleep)라는 전시회를 열고 사진집도 출간했다. 아동 권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아이들의 얼굴 사진과 함께 그들이 잠자는 공간을 나란히 배치하여 불평등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제임스 몰리슨 (James Mollison)는 전 세계 아동들이 잠자는 공간을 소재로 ‘아이들의 잠자리’ (Where Children Sleep)라는 전시회를 열었다. 공식 웹사이트 https://www.jamesmollison.com/projects-link/where-children-sleep 공식 웹사이트나 관련 유튜브를 통해 사진들을 모두 볼 수 있는데, 어머니가 매달 1,000달러를 들여 사준 드레스들로 가득한 방(도쿄)이 있는가 하면, 총기 문화와 사냥이 일상인 환경의 침실(미국)도 있고, 3살 때부터 채석장에서 일하며 지내는 열악한 환경(네팔)이나 노천의 노숙용 매트리스(로마 근교)도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런 곳에서 잘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광경들이 많다. 잠을 잘 때 인간은 가장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기에, 그 물리적 조건은 자아와 세계에 대한 무의식과 감각을 만든다. 안전이 확보된 공간에서 수면을 취하지 못한 아이는 신뢰를 체득하지 못하고 긴장과 경계심에 찌들기 쉽다. 열악한 잠자리는 어른들에게도 커다란 고통이다. 지난번 글에서 재난 대피소와 난민촌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비상사태가 아닌데도 그리고 선진국인데도 최소한의 수면 공간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사방과 하늘을 가리지 않은 집 밖의 어느 장소에 몸을 눕히는 홈리스들은 한국, 일본, 미국 등의 여러 도시 곳곳에 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homeless’를 노숙인(露宿人 : 길 ‘路’가 아니라 이슬 ‘露’가 들어간다)으로 번역하여 그 처연함을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한데서 먹고 잠자며 모진 고생을 한다는 ‘풍찬노숙(風餐露宿)에서 파생한 말이다. 고달픈 삶은 노숙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2000년대 이후 집 없이 자동차에서 먹고 자는 샤츄하쿠족(車中泊族 : 차 안에서 묵는 무리) 이 등장했다. 원래는 여행이나 캠핑 목적으로 차에서 자는 사람들을 가리켰으나(일종의 일본판 van life”), 최근에는 경제적 이유로 정해진 거처 없이 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들을 통칭하기도 한다. 특히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대피소 생활이 너무 힘들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자동차가 더 안전하다고 느껴서 그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지만, 다리를 아래로 내리고 비스듬히 누워서 잠을 자기 때문에 혈전증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과 수면 부족 문제로 고생하게 된다. 다른 한편 24시간 영업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숙박하는 ‘넷카페 난민’도 주거 불안정의 현상으로 다뤄지고 있다. 잠자리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필수품이자, 심성이 형성되는 토대이기도 하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19세기에 프랑스 미식가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의 말이다. 이 말을 이렇게 바꿔 볼 수도 있겠다. 당신이 어디에서 잠을 자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잠자리는 단순히 쉬는 곳이 아니라 자아가 매일 재구성되는 장소다. 우리는 잠드는 동안 사회적 역할을 벗고 가장 솔직한 로 머물게 된다. 그 공간의 온도, 빛, 냄새, 질감은 다음 날의 감정과 사고를 미묘하게 조율한다. 따라서 이렇게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 당신이 어디에서, 어떻게 잠자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소망하는지 말해주겠다.” 침실은 단순한 방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신뢰를 암시하는 장소다. 깊이 잠든다는 것은 누구도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일이다. 따라서 침실은 당신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편안한 잠을 위해 그 공간을 어떻게 바꿔볼 수 있을까? 가까운 지인들끼리 각자의 침실을 사진으로 찍어 서로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흥미로울 듯하다. 그것은 단순히 취향을 견주어 보는 일이 아니다. 지금 지구촌에서 누군가는 침대를 고르고, 누군가는 바닥을 고르고, 누군가는 몸을 눕힐 곳조차 찾지 못한 채 밤을 뒤척이고 있기다. ‘당신의 침실을 보여달라’는 말은, 당신이 이 세계의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묻는 질문일 수도 있다. 오늘 밤 불을 끄고 누울 때, 이렇게 자문해보자. 나는 어떻게 이곳에서, 이렇게 잠들 수 있는가? *이 글은 미주 한인동포 매체인 에도 게재됩니다.


최근 3주간 링크를 확인한 사용자 수

검색 키워드


주소 : (12096) 경기도 남양주시 순화궁로 418 현대그리너리캠퍼스 B-02-19호
전화: +82-70-8692-0392
Email: help@treeple.net

© 2016~2026. TreepleN Co.,Ltd. All Right Reserved. / System Updated

회사소개 / 서비스소개 / 문의하기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