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서거일 모독 명백 … 5 ·23에 맞춘 래퍼 공연 막았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래퍼 리치 이기(본명)가 19일 직접 노무현시민센터를 자필 사과문을 전달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조수진 노무현재단 이사는 본인의 소셜미디어(SNS)에 이 사진을 업로드하며 숙인 저 머리가 진심인지 끝까지 지켜볼 것 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조수진 SNS 갈무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당일인 오는 23일 서울 마포구의 한 공연장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래퍼의 공연이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차성수 이사장)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자진 취소됐다.
노무현재단은 해당 공연 무대에 서는 래퍼 리치 이기(본명 이민서)가 그 동안 다수의 음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실명을 사용하거나 서거 방식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등의 전력이 있는 데다 공연 시간을 오후 5시 23분, 입장권 가격을 5만 2300원으로 책정해 고인의 서거를 조롱하고 모욕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재단은 지난 18일 주최사에 공연의 즉각 취소와 서면 해명,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한 결과, 다음날 곧바로 주최측의 취소 결정을 이끌어냈다고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설명했다.
재단은 또 법무법인 노바를 법정대리인으로 선임해 주최사가 취소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법원에 공연 금지 가처분을 신청할 준비를 완료한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리치 이기의 음원들에는 노 전 대통령 모독 뿐만아니라 여성 혐오와 성적 대상화, 아동 대상 성범죄 묘사, 지역 혐오 등 사회적으로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의 반인륜적 표현들이 반복적으로 포함돼 있었다고 재단은 설명했다. 재단은 이에 따라 이번 공연도 혐오 문화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보고 공연 취소 압박에 나선 것이었다.
공연기획사 틴스튜디오와 공연장 연남스페이스는 재단 공문에 대한 회신을 통해 행사 일정과 판매 금액은 출연자 측의 요청으로 진행된 세부 사항”이라면서 고인 모욕 행위에 대해 출연자 측으로부터 이번 공문 이후 진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았다고 전했다. 공연장 측은 대관 계약 당시 힙합 단체 공연으로만 전달받았다고 해명했다.
19일 취소된 래퍼 리치 이기 공연 포스터
리치 이기는 이날 오후 인스타그램의 모든 게시물을 내리고 노무현시민센터에 방문해 자필 사과문을 제출했다. 그는 사과문에 나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깊이 반성하겠다 면서 단지 유명세를 위해 눈살이 찌푸려질 만한 언행을 일삼아 왔다 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절대 고인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또는 이를 희화화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언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면서 내가 했던 모든 행동과 언행을 반성하며 재단 측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가족분들께도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한다 고 덧붙였다.
리치 이기의 공연에 게스트로 무대에 설 예정이었던 팔로알토, 노엘, 더 콰이엇, 염따, 딥플로우, 수퍼비 등 다수의 선배 래퍼들에게도 곱지 않은 시선이 쏠렸다.
팔로알토와 딥플로우도 SNS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팔로알토는 고인을 조롱하거나 혐오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표현들에 동의하지 않는다 면서 표현의 문제성과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 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딥플로우 역시 팬과의 DM 내용을 공개하며 숫자의 의미를 전혀 몰라 포스터를 봐도 연관짓지 못했다 면서도 업계의 고참으로서 제 나이브함에 책임감을 느낀다 고 고개를 숙였다.
노무현재단은 이번 공연 취소를 사안의 완결로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출연자가 향후 다른 공연이나 음원을 통해 동일한 혐오 표현을 반복할 경우, 재단은 관계 법령에 따른 민·형사상 조치를 포함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 대응할 계획이다. 재단은 최근 발생한 롯데 자이언츠의 고인 비하 자막 사태와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모욕 마케팅 논란은 온라인의 혐오 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으로 침투했음을 보여주는 심각한 징후 라고 꼬집고 이런 문화가 오프라인 대중 공연이라는 상업적 무대로까지 확장되는 흐름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 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조치는 재단이 지난해부터 지속해 온 온라인 혐오 표현 대응 사업 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된 것 이라며 표현의 자유 뒤에 숨어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고 역사의 아픔을 모욕하려는 모든 시도에 앞으로도 강경 대응하겠다 고 밝혔다. 나아가 앞으로도 시민들과 연대하여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한 혐오 문화 확산을 촘촘히 감시해 나갈 방침 이라고 말했다.
한편 리치 이기의 공연에 게스트로 이름을 올렸던 더콰이엇의 과거 발언까지 파묘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지난해 8월 공개된 유튜브 콘텐츠 슈즈오프 팟캐스트 속 더콰이엇의 발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당시 더콰이엇은 발밍타이거 소속 래퍼 오메가 사피엔, 프로듀서 조준호 등과 함께 최근 한국 힙합 신(Scene)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메가 사피엔은 리치 이기와 유튜버 최홍철 등을 언급하며 예전 일간베스트 저장소에 나올 법한 커뮤니티 감성으로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를 한다든지, 페미니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든지 이 정도는 가야 사람들이 새로운 자극을 느낀다. 와우, 이거 하드하다 이렇게 느끼는 것 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프로듀서 조준호가 요즘 사회적으로 누르면 안 되는 부분들을 건드리는 흐름을 재밌게 보고 있다 고 말하자, 더콰이엇은 늘 금기를 건드리는 거죠. 그게 힙합이고 그게 젊음이잖아요 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더콰이엇은 우리가 사실 모두에게 사랑받으려고 이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몇 명만 좋아해 주면 된다. 근데 그 사람들이 정말 미칠 수 있는 소수여야 변할 수 있는 것 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더콰이엇은 해당 흐름에 대해 단순한 옹호보다는 결국 시장과 대중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취지의 설명도 이어갔다. 그는 모든 뮤지션이 만든 스타일이 영원한 건 아니다. 어떤 건 1년짜리고, 어떤 건 10년짜리고, 어떤 건 50년짜리 라며 세상이 선택하고 결정해 주는 것 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말 본인의 신념이라면 독고다이 길을 걸으시겠죠. 그러면 거기에 맞는 판단을 받으시면 되는 것 이라며 시장성과 평가 역시 결국 시장이 결정하는 것 이라고 밝혔다.
힙합 아티스트들이 이렇듯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시장과 대중의 평가를 핑계로 빠져나가려는 분위기가 있음을 실토한 셈이다.
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