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글쟁이 송호근 교수의 어지러운 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중앙일보에 10년 이상 장기 연재되고 있는 송호근 교수의 [송호근의 세사필담]은 한국사회에서 ‘지성인의 명문’ 쯤으로 평가돼 왔다. 소설과 대중가요 노랫말까지 넘나드는 다재다능한 필력을 자랑하는 그는 학자를 넘어 세련된 ‘글쟁이’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러나 화려한 수사와 자유분방한 문체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의 칼럼이 과연 한국 사회를 냉철하게 살피는 지성적 공론장 이 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표피적인 인식과 자의적 논리가 이끌어가는 경우가 잦은 그의 글은 얼핏 화려한 춤이지만 어지러운 난무(亂舞)에 가깝다. 사회학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의 엄밀성 결여, 그리고 소설적 상상력을 시도하지만 정작 이야기의 필연성을 갖추지 못한 그의 칼럼들을 통해 독자들이 한국 사회를 제대로 읽을 수 있을지 큰 의문이 든다.
4일자에 실린 칼럼 가 그의 글의 이 같은 특성을 다시금 보여준다. 이 글에서 송 교수는 국군사관학교 통합 및 이전 논의를 비판하는데 그 논리가 매우 ‘독창적’이라고 할 만하다.
중앙일보 4일자 송호근의 세사필담 칼럼.
그는 ‘융합’에 바쁜 대학에서도 땅, 바다, 상공을 뒤섞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하지 않는다면서 동식물을 관통하는 유전공학이라면 몰라도 흙, 물, 공기를 섞어 무엇을 만들려 하느냐고 매섭게 질타했다. 교육과 연구 수준의 하락 위기에서 절박한 개혁을 위해 사관학교의 통합으로 투자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을 땅과 바다와 상공을 섞으려는 해괴한 발상으로까지 규정한다.
전쟁에서 수도권을 점령당하면 패전인데 사관학교를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것이 말이 되냐며, (서울의) 홍대와 성수동 카페거리에서 동년배 청년들과 자주 교류해야 시대감각을 익힌다”는 논리를 편다. 국가안보를 책임진 미래의 군장교가 계룡산과 금강 유역에서 시세를 꿰뚫는 예리한 인식을 기를 수 있겠는가라고 개탄한다. 서울에 소재한 사관학교를 나온 장교만이 훌륭한 지휘관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읽힌다. 대전 자운대 주변의 국방 관련 연구·교육기관과 전문 인력이 많이 모여 있어 최적의 입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홍대와 성수동 카페 거리에서 익히는 시대 감각’ 앞에 간단히 무시돼 버린다.
이 칼럼은 상당 부분 육군사관학교 옹호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그러나 육사를 나온 장성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육사의 기수를 중심으로 형성된 폐쇄적 인맥이 낳은 폐해는 보이지 않는 듯하다.
나아가 군사력 증강에 선결 요건은 ‘인재를 모으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하고는 난데없이 ‘장성들의 명예’가 떨어지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그 예로 요즘 장성과 고위 장교들이 추풍낙엽인 상황이라고 말한다. 장성들이 무더기로 내란혐의에 쓸려가는 시대에 누가 장군을 꿈꾸겠는가”라고 말한다. 내란에 연루된 군 장성과 지휘관들을 처벌하는 것을 군의 명예 실추로 동일시해버린다. 해병대 사병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지휘관에 대해 책임을 물으려는 것을 막아서고 비호한 윤석열식 논리와 비슷하다.
이런 칼럼을 읽는 것이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한국의 대표적인 사회학자로 꼽히면서 글에 관한 한 경지를 이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이의 글이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과연 사회학자로서의 치밀한 분석, ‘글쟁이’로서 일가(一家)에 올랐다는 그 명성에 부합하는 것인지 따져보게 한다.
그의 글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편향성을 넘어, 텍스트와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의 태만 혹은 의도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난해 4월 15일자 가 대표적이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인용 결정문이 국회를 향해 권력남용과 국정마비를 초래했음을 경고했다고 주장했다. 국회의 권한 행사가 권력남용이자 국정마비를 초래한 행위 라는 것, 국회는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관용과 자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했어야 했다는 것 이다. 그러나 헌재 결정문은 국회가 권력남용을 하고 국정마비를 초래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 윤석열이 그렇게 느낄 여지가 있었다고 말했을 뿐이다. 반헌법적 계엄 선포라는 극단적 행위 대신 정치적 해결을 모색했어야 함을 지적한 것이었다. 이를 교묘하게 비틀어 국회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모습은 단순한 인용의 오류로 봐 주기는 어렵다.
위의 칼럼 제목을 빗대자면 그 자신의 칼럼들에서 자주 보이는 것은 현실에 대한 ‘외면’이다. 2024년 4월 총선 직후의 라는 칼럼에서 송 교수는 여당의 참패였던 총선 결과에 대해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선방으로 탄핵 저지선을 방어했다고 매우 색다르게 평가했다. 국민의 혹독한 심판을 받은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2년간의 국정 운영에 대해 문(文) 정권이 저지른 온갖 폐기물을 치우느라 동분서주했으며, 국민과 대화하려 애썼다”고 했다. ‘유례없는 불통 정치의 대명사’는 오히려 문 정권이었다면서, 운동권들이 설쳐댔고, 운동권 정책과 수사(修辭)가 남발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니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의 0.79% 신승은 송 교수에게는 문 정권의 나 홀로 독주에 대한 응징의 결과 였다. 민생과 경제에서 적어도 문 정권보다는 나은 정권의 출범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때 그의 일련의 글들은 국가적 재난 앞에서 정부를 비난하며 비현실적인 주장을 펴는 것으로 일관했다. 등을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 정국에 선거를 한다고 비판하고 문재인 정부의 무능력을 성토하며 이런 정부에게 맡겨두면 큰일 나게 생겼다는 등의 맹비난을 퍼부었다. 마스크 하나 제대로 공급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조업 강국에서 마스크 대란이라니 라고 개탄했다. 팬데믹 초기에 이대로 정부에 맡겨두면 사망자가 150여 명에 이를 것 이라면서 정부가 아니라 대구와 경북 바이러스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는 포항공대가 격전지의 사령탑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바이러스로 침몰하기 전에, 우리 무고한 국민이 바이러스 공포로 한없이 추락하기 전에, 포항 공대 과학자와 지식인집단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며 포항 공대에 TF팀을 만들어서 대국민 보고와 제안을 발표하는 일 이라고 했다. 국가 위기 관리 시스템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가 얼마나 빈곤한지를 드러낸 것이었다. 사관학교 통합 이전을 비판하며 내세웠던, 서울을 떠나지 않아야 갖춰지게 되는 시대 감각 이 여기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역사를 다루면서 그는 ‘소설적 글쓰기’, 그러나 소설이 갖춰야 할 탄탄한 개연성이 결여된 글쓰기로 흐르기도 한다. 2023년 10월자 에서 그는 1894년 동학농민봉기를 항일투쟁으로 보지 않으며 독립유공자 대우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수많은 사학계의 연구와 저서들을 통해 2차 동학농민혁명이 명백한 항일무장투쟁이자 독립운동의 뿌리로 평가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채 ‘운동권적 역사 편집’으로 매섭게 비판했다.
그의 신랄한 공격과 비판은 그러나 과거 뉴스타파가 보도한 삼성의 ‘장충기 문자’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렸을 때 그가 보인 자신에 대한 관대한 태도와는 매우 상반된다. 그는 재벌로부터의 선물을 ‘단지 인맥관리용에 불과한 것’으로, 자신의 감사 인사를 ‘동방예의지국 예법상 감사’ 표명으로 설명했다.
그의 글은 문학적 수사와 세련된 어휘, 화려한 미사여구들로 넘쳐난다. 학자의 권위와 작가의 감각적인 글쓰기가 결합된 특별한 글쓰기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엄밀한 사실 관계와 치밀한 논리적 필연성을 희생하고 얻어진 것이라면, 그런 글이 유력신문에 현실을 진단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시론으로 실릴 만한 것인지, 그것도 한국 사회에 대한 한 등대로서 빛을 비추는 것이 온당한지, 적잖은 독자들의 의문은 더욱 커질 법하다.
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