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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벌집 사이를 무심히 오가다

벌집 사이를 무심히 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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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형 작가, 농부 그냥 둘 것을…… 수국을 전지하다 벌에 쏘였다. 어깨가 불에 덴 듯 따가워 화들짝 놀랐다. 내게 경고를 날린 벌이 위잉~ 수국 뒤쪽으로 날아간다. 빽빽한 가지 틈에 삶은 계란 반쪽 크기의 노란 벌집이 보인다. 쌍살벌 중에 작은 벌인 어리별쌍살벌 벌집이다. 평소 같았으면 벌집의 위치만 기억해두고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해가 뜨겁고 내 몸에선 비 오듯 땀이 쏟아진다. 겉옷까지 땀에 젖은 형국이라 수국 전지를 어서 끝낸 후 쉬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땅에서 솟아난 잔가지가 어찌나 많은지 수국 빽빽하기가 싸리 빗자루 같다. 세가 강한 굵은 줄기 대여섯 개만 남기고 다 솎아낼 생각이다. 벌집은 뒤쪽 가지의 시든 꽃대 아래 매달려 있다. 한눈에 봐도 잘라내야 할 줄기다. 벌들은 내게 물러나라고 하지만 난 벌들이 딴 데로 가길 바란다. 제충국 스프레이를 가져왔다. 살생보다 퇴치가 목적이라 쉬익- 소량만 분사한다. 벌들이 혼비백산 달아난다. 흥분한 벌들에게 쏘이지 않으려고 달아났다 돌아와 보니 벌들은 간데없고 벌집만 달랑 남았다. 전지가위를 대어 줄기째 잘라낸다.   어리별쌍살벌 벌집. 수국 전지를 다 마쳤다. 잘라낸 가지들을 쓸어모으다가 이파리 틈에 뒹구는 벌집에 눈길이 멎는다. 노란 육아방 안에서 애벌레들이 꼬물거리고 있다. 두어 마리는 육아방에서 떨어져 나와 서툰 몸짓으로 뒤뚱거린다. 기어갈 줄도 모르는 애벌레다. 육아방 안에 가만히 누워 언니 일벌들이 물어다 주는 먹이를 받아먹던 아기벌들이 낯선 풀더미 속에서 최후를 맞게 됐다. 전지가위를 든 채 주저앉아 멍하니 애벌레들을 내려다본다. 자책과 후회가 밀려든다. 잘못 자른 꽃송이를 보는 심정. 이어붙일 수 없는 것, 되살릴 수 없는 것, 돌이킬 수 없는 것, 내 손이 저지른 그것……. 심란한 마음으로 낮은 한숨을 토한다. ‘그냥 둘 것을…….’ 벌도 뻐꾸기처럼 탁란을 한다고?   좀목형 꽃에 앉은 어리호박벌. 뜨거운 한낮, 좀목형 꽃나무가 소란스럽다. 부웅부웅 벌들의 날갯짓 소리가 꽃나무를 공중부양이라도 시킬 듯하다. 밀원식물인 좀목형은 벌과 나비에게 인기가 많다. 어리호박벌이 특히 많고 청줄벌도 간간이 눈에 띈다. 호박벌은 크고 청줄벌은 작지만 둘 다 통통해서 무척 귀엽다.   버들마편초 꽃에 날아드는 청줄벌. 휴대전화를 가까이 대고 벌을 촬영한다. 찰칵, 찰칵, 셔터음을 울리며 다가들어도 벌들은 개의치 않고 제 할 일을 한다. 벌 날갯짓 소리만 들어도 기겁하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 벌은 사람한테 별 관심이 없다. 불시에 벌집을 공격당할 때나 떼로 덤벼들지, 가만히 있는 사람을 벌이 선제공격하지는 않는다.   루리알락꽃벌. 뻐꾸기벌이라고도 부른다. 좀목형 꽃에 앉은 아름다운 푸른 벌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개체 수가 많지 않아 흔히 보기 어려운 ‘루리알락꽃벌’이다. 몸 빛깔만큼 이름도 예쁘다. ‘뻐꾸기벌’로도 불리는데, 영어 이름은 ‘neon cuckoo bee’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이 벌은 뻐꾸기처럼 탁란을 한다. 어미 벌이 숙주 벌(감탕벌이나 호리병벌)의 산실에 알을 낳으면 알에서 깬 애벌레가 숙주의 애벌레를 죽이고 먹이를 차지하는 것이다. 탁란하는 벌이 루리알락꽃벌만 있는 건 아니다. 청벌(왕청벌, 육니청벌 등)도 탁란을 하는데, 신기하게도 루리알락꽃벌보다 더 강렬한 메탈릭 블루를 발산한다. 무리 짓지 않고 혼자 살며 탁란하는 벌들이 화려한 금속성 광택을 띠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눈에 보이는 벌집은 위험하지 않아 우리 집 외부엔 벌집이 많다. 보일러실에도 쌍살벌 벌집이 여럿 있다. 벌들은 닫힌 문틈으로 기어들어 문틀 위나 문 안쪽에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운다. 보일러실을 텃밭용품 창고로 사용하다 보니 한여름에도 문 여닫을 일이 잦다. 문을 열면 벌들이 내 머리 위를 위잉~ 위잉~ 맴돈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필요한 물건을 꺼낸다. 벌집 아래를 하루에 몇 번씩 오가지만 한 번도 벌에게 공격당한 적이 없다. 내가 건드리지 않는 이상 그들도 나를 건드리지 않는다.   보일러실 문틀에 쌍살벌들이 집을 지었다. 번식을 마치고 떠날 때까지 내버려둔다. 벌집 짓는 걸 허락하기 싫다면 벌집이 손톱만 할 때 각목으로 긁어 떨어뜨리면 된다. 딴 데 가서 지으라는 경고다. 하지만 벌집이 꽤 커져 있다면 대부분 그냥 놔둔다. 이미 번성한 왕국, 이제 와서 없애면 재기불능일 게 뻔하다. 지극정성으로 집을 늘리고 애벌레를 키우는 벌들을 보고 있으면 살심(殺心)이 사라진다. 그들이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데 내가 왜 대량살상을 저지르나. 창고 문과 바닥에 흘린 배설물쯤이야 겨울 초입에 청소 한 번이면 끝날 일이다. 남의 집을 부수는 일, 남의 가족을 죽이는 일이 나는 내키지 않는다.   심산해당화 나무에 매달린 큰뱀허물쌍살벌 벌집.​ 정원의 심산해당화 가지에 큰뱀허물쌍살벌이 집을 지었다. 두어 달 전 나무 옆을 지나가다 처음 발견했고, 그 위치를 기억해두었다. 정원의 좁은 샛길을 지날 때 벌집은 내 어깨로부터 50cm 남짓 떨어져 있다. 지나갈 때마다 녀석들을 흘깃 곁눈질한다. 처음 봤을 땐 벌집이 탁구공만 했는데 날이 가고 달이 가며 점점 길어져 지금은 제법 뱀허물 같아졌다. 사진 찍으려고 휴대폰을 들이대니 벌집에 붙어 있던 벌들이 움직임을 멈추며 긴장한다. 사진 몇 장 찍고 슬그머니 물러났다. 가우디도 울고 갈 감탕벌의 건축술 벌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꿀을 모으는 벌(bee)과 꿀을 모으지 않는 벌(wasp). 꿀을 모으는 벌은 꿀벌, 호박벌, 청줄벌 등으로, 꿀을 빨기에 적합한 대롱 같은 입을 가졌다. 식물이 씨앗과 열매를 맺어 숱한 동물을 먹여 살리는 건 꿀을 모으는 작은 곤충들 덕분이다. 꿀을 모으지 않는 벌은 말벌, 쌍살벌, 호리병벌, 감탕벌, 맵시벌 등으로, 이들은 주로 곤충과 애벌레를 사냥한다. 과일즙도 좋아해서 늦가을에 떨어진 홍시에 머리를 파묻고 정신없이 핥아먹는 말벌류가 많다. 모두 생태계의 중요 조절자들이다.   줄무늬감탕벌의 흙집. 가우디도 울고 갈 건축술이다. 보일러실 안쪽 나무 기둥에 줄무늬감탕벌이 몇 달째 흙집을 짓고 있다. 초여름엔 작은 집이었는데 두세 달 지나니 규모가 상당히 커졌다. 조그만 입으로 진흙 경단을 얼마나 많이 물어 날랐을까. 들여다볼수록 그 노고가 아득하다. 이렇게 규모가 큰 집은 한 마리의 작품이 아니다. 여러 마리가 잇대어 지은 연립주택인데, 정확히 말하면 집이 아니라 산실이다.   진흙을 물어다 산실을 짓는 줄무늬감탕벌. 호리병벌이나 감탕벌은 흙집을 지어 알을 낳고 말랑한 애벌레를 산 채로 잡아 마비시켜 알과 함께 순장하듯 흙집에 가둔다. 꿀벌이나 쌍살벌처럼 집단생활을 하는 벌들이 새끼를 키워 군집을 늘리는 것과 달리, 단독생활을 하는 감탕벌이나 호리병벌은 살아생전 새끼와 만나지 못하는 대신 새끼가 살아갈 토대 마련에 온 힘을 다한다. 알에서 깨어난 아기벌은 흙집 안에 놓여 있는 산 애벌레를 먹고 자라 흙집 벽을 뚫고 나온다. 돌봄 없이 자라는 아기벌의 생명력은 어미가 물려준 단독생활자의 바탕 위에 굳건하다. 벌집이 거기 있을 줄이야 이른 아침 비닐하우스 주변의 풀을 정리하던 옆사람이 마른 덤불 속에 벌집이 있는 줄 모르고 건드렸다. 앗 따거!” 순식간에 양쪽 손등과 왼쪽 볼을 쏘였고, 반사적으로 달아났다. 나중에 다시 가보니 머리에 노란 점이 또렷한 별쌍살벌 벌집이다. 쌍살벌에 쏘인 통증은 꿀벌에게 쏘인 것보다 훨씬 심하다. 하지만 말벌 쏘임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별쌍살벌 벌집. 커질수록 찌그러지는 특징이 있다. 추석 전 풀베기 울력을 한다고 이른 아침 예초기를 둘러메고 나간 옆사람이 몇 시간 후 풀 조각 범벅이 되어 돌아왔다. 붉게 부은 그의 두 팔뚝이 찜질팩처럼 뜨겁다. 말벌한테 불침 두 방을 쏘였는데 쇠꼬챙이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었단다. 현장에 나가보니 석축 위 어둠 속에서 웃고 있는 기이한 공이 보인다. 엄지손가락만 한 말벌들이 주위에서 날고 있다. 예초기 칼날이 말벌집을 가로로 쓰윽 그어 칼자국이 그대로 웃는 입이 됐다. 할로윈의 호박귀신 같다.   그의 예초기 날이 말벌집을 가로로 그었다. 벌 중에 무서운 벌이 말벌이다. 꿀벌 킬러라 양봉업에 특히 치명적이다. 말벌 중에 가장 크고 독하고 공격적인 벌이 장수말벌이다. 장수말벌에게 잘못 쏘이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옆사람도 공공근로를 하다 장수말벌에 쏘인 적이 있다. 우거진 잡목 속에 장수말벌 집이 있는 줄 모르고 예초기로 건드린 것이다. 쏘이는 순간 해머로 내려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는데, 삼십육계 줄행랑으로 다행히 큰 화는 면했다. 두려움의 뿌리는 무지다 ​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6m 높이 처마 밑 벌집에 약을 뿌리는 모습. (mbc 뉴스 화면 캡처) 6m 높이의 사찰 처마에 붙은 벌집에 소방대원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약을 뿌린다. 벌들이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 날고, 다수는 땅바닥에 떨어져 몸부림치며 죽어간다. 얼마 전 mbc 뉴스에 나온 장면이다. 뉴스 진행자는 폭염에 벌들의 활동이 활발해져 벌의 공격성도 거세졌다”고 말한다. 벌들의 공격성이 거세졌다고? 그 근거가 폭염이라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벌들은 자기 집이 공격받지 않는 한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단지 자기 두려움 때문에 벌들을 몰살시킨다. 단언컨대, 그 두려움의 뿌리는 무지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인데, 사람 손에 닿지도 않는 6m 높이의 벌집까지 찾아내 기어코 몰살을 시키다니. 우리 눈에 띄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삶터가 파괴되어도 되나? 우리가 불안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몰살당해도 되나? 과도한 두려움은 과도한 폭력을 낳는다. 벌집은 위험하다.”는 단정 앞에 전제 하나를 붙였으면 한다. (보이지 않는) 벌집은 위험하다.” 다른 말로 하면 (보이는) 벌집은 위험하지 않다.” 해마다 벌초하다 벌 쏘임 사고가 벌어지는 건 벌집의 위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오빠도 성묘하다 벌떼의 공격으로 온 가족이 죽음 직전까지 갔으나 천운으로 살아났다. 나와 옆사람도 이제껏 벌에 쏘인 횟수를 셀 수 없다. 그 위험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벌집을 건드려 일어난 사고를 모든 벌집에 일반화시키는 건 오류다. 공포와 혐오는 확산력이 강하고, 진실의 길에는 허들이 너무 많다. 뉴스 진행자는 말한다. 벌집이 보이면 신고하라”고. 보이는 족족 제거하는 게 우리가 벌집을 대하는 기본값이라면, 세상의 벌들은 어디에 집을 짓고 어떻게 새끼를 키워야 하나.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다 숨어야 하나? 도사린 위험이 되어? 벌은 적이 아니다, 죽이지 마시라, 제발 겁먹지 않아도 된다. 과잉 방어하지 않아도 된다. 벌은 그저 벌의 일을 할 뿐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찬바람이 불고 머잖아 벌집은 텅텅 빈다. 다음 세대를 이을 여왕벌은 흙속으로 들어가 월동하고 대부분의 일벌들은 저항 없이 단체로 죽음을 맞는다. 텅빈 벌집에 오글오글 몸을 맞대고 검은 봉분처럼 뭉쳐 추위를 견디다가 결국 투둑, 툭 모두 떨어진다. 겨울이 되면 나는 텅 빈 벌집을 떼어낸다. 119를 부를 것도 없다. 나무작대기로 툭툭 쳐서 떨어뜨리면 된다. 벌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벌이 있어야 사람도 있다. 곤충이 있어야 인류도 산다. 간절히 부탁한다. 제발 죽이지 마시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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