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TalkTalk】현대차-LG엔솔 공장 475명 체포의 숨은 맥락과 의미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칼럼으로 돌아왔습니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의 미국 조지아주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대대적인 이민단속으로 475명이 체포되었다는 보도 때문입니다. 한국 직원들도 300여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내 언론에는 외교적 파장에 대한 내용 위주로만 보도되고 있다보니, 사건의 전모에 대한 맥락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것 같아서입니다.
해외 미디어와 미 노동부의 보도자료 등을 기반으로, 이 사건이 왜 이렇게 일파만파 커졌는지 살펴보고, 글로벌 수출대기업이 된 국내기업의 경영관행과 마인드셋 측면에서 개선할 점은 없는지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세계적 투자, 그러나 안전사고의 연속
이번 사건이 배경이 된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의 HL-GA 배터리 공장은 2023년 현대차와 LG엔솔이 약 5조7000억원(약 45억달러)를 투자, 연 약 30GWh 규모의 배터리 셀 생산을 목표로 한 공장입니다. 2025년말 양산을 목표로 했으나, 공장 건설이 1년 가량 늦어졌다고 합니다.
이곳은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전기차 공장의 핵심이 될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공장 인근에 있어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의 핵심으로 여겨졌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이 공장을 위해 76억 달러(약 10조원)를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조지아주는 삼성, SK, 현대차, LG 등 한국 기업 110곳 이상이 진출해 1만7000명 이상의 직접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는 의문을 품습니다. ‘해외 기업이 미국을 위해 대규모 투자까지 감행하는 마당에, 왜 이민국이 왜서 단속을 하지?’ 라고요. 우선 이 사건의 시작은 심각한 산업재해 때문입니다. 임팩트온의 해외미디어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관련 데이터 크롤링 자료를 보면, 이곳은 해외 착공 이후 이미 여러 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한 현장입니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의 근로감독조사에서 한국기업들은 요주의 대상입니다. 현대차그룹의 사건 기록만 보면 이렇습니다.
2023년 4월 29일. HMGMA 현장에서 건설 노동자 34세 빅터 하비에르 감보아 카히가(Victor Javier Gamboa Cagiga)가 추락, 사망했습니다. 미 산업안전보건청(OSHA)의 조사에 따라, 2023년 11월 2일자 미국 노동부(DOL) 보도자료는 하청업체(Eastern Construction Inc.)의 작업자들이 공장 페인트 건물 꼭대기에 I-빔을 설치하던 중 추락 사고가 발생했으며, 추락방지장치가 부적절하게 제공돼 날카로운 모서리로 인해 안전선이 절단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미 OSHA는 이 시공사를 상대로 13건의 안전위반을 적발했고 벌금 16만달러 이상을 부과했으며, 이곳은 ‘중대 위반 사업장(Severe Violator Enforcement Program)’에 등록됐습니 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메타플랜트 현대건설 공사 현장에서 2023년 1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응급서비스 인력이 대응한 사고가 20건 이상이라고 합니다. 현지매체는 조지아 공공 기록법을 사용하여 현대건설 현장의 ‘외상성 부상’과 관련된 응급 의료 서비스 보고서, 국가 화재 사고 보고 시스템 기록, 911 통화 기록 및 오디오를 요청했고, 기자들이 약 500페이지 분량의 기록을 정리, 검토, 분석하고, OSHA에서 공개한 보고서와 상호 참조해 기사를 실었습니다. 현대건설 현장 건설에 참여한 현대 계열사 및 하청업체의 현직 및 전직 근로자 20여 명을 인터뷰했는데, 이들 중 다수는 현장 부상 목격자였습니다.
OSHA의 사고 DB에만 2024년 5월까지 공개된 사고가 10개라고 합니다. OSHA DB에는 현대차의 7개 회사가 나열되어 있는데, 이 회사들은 법적으로는 서로 다르지만 현대자동차의 전기자동차 생산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고 기사는 보도합니다.
안전수칙을 위반한 또다른 협력업체도 등장합니다. OSHA는 계약업체인 Sungwon Georgia Corp.가 심각한 위반 사항 두 가지를 저질렀다고 판단하고, 2만2000달러의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2024년 9월 현지보도에 다르면, 미 노동부가 현대 계열사인 글로비스 EV 로지스틱스 아메리카(Glovis EV Logistics America)와 하청업체 2개를 조사하고 있다고 돼있습니다. 미 노동부 대변인에 따르면 5월 31일에 시작된 조사는 진행 중이며 현대건설 현장 하청업체인 SFA Engineering Corp.와 Il Sun Systems도 관련되어 있다고 나옵니다.
2025년 3월: LG엔솔과 현대차의 합작 배터리 공장 현장에서 지게차에 치이는 사고로 한국인 건설노동자 유순복(67세)이 사망했습니다. 사고 당시 그는 장비 사이에 협착돼 참혹하게 변을 당했다고 합니다.
2025년 5월: 동일한 현장에서 27세 하청업체 노동자 앨런 코왈스키(Allen Kowalski)가 지게차에서 떨어진 짐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공사가 본격화된 이후 불과 3년 사이에 총 3명이 사망한 사고였고, 모두 기본적인 산업안전 수칙이 지켜지지 않아 발생한 비극입니다.
이는 LG엔솔도 비슷합니다. 미시간 홀랜드(LG Energy Solution Michigan Inc.) 공장에서는 2025년 7월에도 한국인 하청 노동자(34세)가 신규 설비 세팅 중 기계에 협착되어 사망했습니다. 현지 기사에 따르면, 홀랜드 LG 공장의 전극 부서에서 약 4년간 근무한 제이미 애덤스씨는 홀랜드 시의회에서 회사의 근로자 괴롭힘과 안전하지 않은 작업 환경 때문에 세금 감면에 반대한다 는 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하이오 워런(Ultium Cells LLC, GM–LG 합작) 공장에서도 2023년 6월, 화재 이후 8월 작업자가 노출된 사건을 포함해 3건의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OSHA는 2주 사이 4차례 현장 조사를 실시, 중대한 위반 17건(기타 2건)을 적발했고, 약 27만 달러 벌금을 제시했습니다.
OSHA 제재에서 트럼프 2기 정부의 이민단속 정치 퍼포먼스로
이 같은 연이은 사망사건은 OSHA와 노동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OSHA는 반복적으로 시공사들의 안전관리 부실을 지적했으며, 지역 언론은 노동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생산 속도를 맞추기 위해 안전 규정을 무시했다”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적어도 3년 넘게 미 노동부가 관련 산업재해 사건을 조사하면서, 배터리와 전기차 공장의 인력구조를 파악했다는 것입니다. 안전사건이 잦은 현장의 인력 구조를 조사하면서, 노동자들의 신분 및 파견구조 등에 대한 교차조사가 이뤄졌고 불법고용과 이민법 위반이 연계돼있음을 파악했을 것입니다.
2025년 9월 현장을 급습한 것은 OSHA가 아니라 미 국토안보국(HSI)과 그 산하의 이민세관단속국(ICE)였습니다. 이들은 미 법무부 산하의 주류, 담배, 총기, 폭발물 단속국(ATF) , 마약단속국(DEA), 연방수사국(FBI), 조지아주경찰(GSP) 등을 대동했습니다. 이번 작전은 국토안보국 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사업장 집행이라고 합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민세관단속국(ICE)는 불법고용 관행 및 연방 범죄 혐의로 영장을 발부받아 작전을 전개했다 고 돼있습니다. 영장을 발부받을만큼, 사전조사 자료가 상당히 쌓여있다는 것이지요.
이번 사건과 판박이처럼 비슷했던 사건이 트럼프 행정부 1기였던 2019년 8월 7일, 미시시피주 6개 도시의 7개 육가공 공장을 대상으로 약 680명의 이주노동자를 한꺼번에 체포한 대규모 사업장 단속이 있었습니다. 이 작전도 ICE/HSI가 주도했습니다.
당시 680명 일제 단속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단속 기조를 대내외에 각인시킨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번 작전 역시 강한 이민법 집행, 대규모 현장 단속을 대내외에 확인시킨 매우 정치적인 퍼포먼스로 보입니다.
트럼프 역시 이번 불법체류 단속에 대해 그들이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단속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선을 그었습니다. 내연기관차가 아닌 전기차 현장에서, 자사 자동차기업이 아닌 해외 자동차기업을 대상으로, 정치적 메시지인 불법이주노동 이슈를 건드린 것이었지요. 미국에서는 지금 농장, 레스토랑, 호텔 등의 소규모 작업장을 표적으로 삼은 단속을 통해, 전과가 없는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고 있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트럼프 이후 ICE의 체포 건수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급증 했으며, 기관 수치에 따르면 약 6만 명이 구금되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정치적인 퍼포먼스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공급망의 인권, 안전사고를 대하는 회사의 태도였을 지도 모릅니다. 3건의 사망사고와 수많은 안전사고, 현지언론에서 지속적으로 비판기사가 나오고 있었음에도, 이에 대해 과연 본사에서는 어느 정도의 민감성을 갖고 사안을 대처했는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현대차 앨라배마 아동노동 사건의 여파
미국에서 현대차그룹은 앨라배마 아동노동 사건 이후 지역언론, NGO 등 수많은 인권기관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 노동부는 2022년 앨라배마 아동노동 사건으로 인해 2024년 5월 소장을 제기했는데, 피고가 3곳입니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부품공급업체인 스마트 앨라배마, 인력공급업체인 베트스 프랙티스 서비스(Best Practice Service)입니다.
2022년 7월 로이터에서 보도된 내용은 일파만파 커졌고, 백악관과 상원의원까지 이슈를 제기했고, 2023년 2월 현대차가 협력업체와의 관계를 끊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미 노동부는 이들에게 ‘이익환수(disgorgement)’를 요구했습니다. 공정근로기준법(FLSA)의 ‘핫굿(Hot Goods)’ 조항을 적용한 것인데요, 벌금이나 손해배상과는 달리 위법 행위로 벌어들인 수익 자체를 국가가 회수하는 것입니다. 어마무시한 요구입니다. 2025년 5월 보도를 보면, 현대차 측의 소송기각 요청을 판사가 거부해, 본안심리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조지아의 노동계인 AFL-CIO는 성명을 통해 이 공사 현장에서 이미 여러 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 필요한 것은 산업안전과 노동권 보호 강화이지, 정치적 동기의 이민 단속이 아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ICE의 공세적 단속이 현장 노동자와 가족들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내 사업장과 달리, 해외 사업장의 리스크는 제대로 컨트롤하기 어렵습니다. K-제조업 산업연맹과 같은 얼라이언스 조직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도 않고, 외교부에서 그 역할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때문에 리스크가 커지기 전에 사전 예방과 모니터링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전예방은 대부분 기업의 KPI에 포함돼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건 나서 해결하면 리스크 대응 부서의 존재 가치가 부각되지만, 사건 나기 전에 리스크 예방했다고 칭찬받는 조직은 없습니다. 숨겨진, 잠재적인 리스크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ESG(지속가능성) 리스크를, pre-financial risk 라고 하는 것입니다.
국내 기업에 던지는 질문
사건은 사건대로 해결하면 됩니다. 문제는 공급망의 인권과 환경 리스크를 대하는 국내기업의 마인드셋입니다. 국내와 달리, 미국과 유럽의 공급망에 관한 실사 요구가 규제 차원으로 높아지고 있고, 공급망 리스크는 정치적, 지정학적 갈등과 맞물려 지렛대 역할을 하는 경우 매우 많습니다. 이번 사건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국내기업의 이사회에서 ESG(지속가능성) 강의를 여러번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사들의 민감도가 약하고 관심이 부족합니다. 매출도 해외 중심, 인력도 해외 중심, 사업장의 환경도 해외 중심인데, 정작 헤드쿼터에 해당하는 본사의 의사결정자들은 모두 국내 중심으로 사고합니다.
본사의 HR팀도, 커뮤니케이션팀도, 전략팀도 국내의 기존 업무 중심이다 보니, 공급망의 인권 및 환경 리스크와 같은 글로벌에서 새롭게 부각되는 이슈에 대해 ESG팀이 알아서 대응하라”고 떠넘깁니다. 이사회와 최고경영진에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지 않으면, 형식은 잘 갖춰지되 실질적인 변화가 뿌리내기기 어렵습니다.
현대차·LG 사례가 보여주듯, 하청업체의 인권·노동·안전 문제가 단순한 현장 이슈에 머물지 않고, 수조 원대 투자 프로젝트 지연, 외교 갈등, 브랜드 가치 훼손으로 직결되고 있습니다. 즉, 공급망 인권 리스크는 곧 투자 리스크이며, 이는 더 이상 부차적 문제가 아니라 기업 생존의 전제 조건입니다.
현대차그룹을 포함한 국내기업들은 맨 윗선의 현지 정부 및 정책라인 관리만 할 것이 아니라, 가장 아랫단의 공급망 지역사회 현지 이해관계자(Stakeholder Engagement) 관리 및 실사(due diligence) 체계를 갖춰야 하며, 리스크 모니터링을 통해 공급망 전체의 책임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내 기업의 공급망 지속가능성 전략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지기를 기원합니다. 또 현지에 구금된 국내 직원들이 무사히 풀려나오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