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법률 공포’는 틀렸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법률의 공포는 관보에 게재함으로써 행하며, 공포일은 관보에 게재된 날이다.”
법률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을 경과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한다.”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적 법률 공부할 때부터 너무도 익히 들었던 말이다. 시험에도 자주 나왔던 문제들이다. 그리하여 이 말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서 더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는 ‘공리(公理)’가 되었다. 그리하여 ‘법률 공포일자’는 ‘관보발행일자’이며, 법률의 ‘공포’란 법령을 일반국민에게 알리는 행위를 말한다”로 모두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상식과 관행 그리고 ‘확고한’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며, 틀린 것이다.
다음에 인용하는 글은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김동훈 박사가 2019년 9월 19일자 에 발표한 법률 공포에 관한 우리의 오래된 오해”라는 제목의 기고문이다.
2016년 이탈리아 국외연수 중 우리 헌법과 이탈리아 헌법을 비교하다가 한 조문에 마주쳤다. 법률은 의회의 승인 후 1개월 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 … 법률은 공포 후 즉시 공고하고 … 공고 15일 후에 효력을 발생한다.”(이탈리아 헌법 제73조). 우리와 비슷한데 미묘하게 달랐다. 이탈리아에서도 대통령이 법률을 ‘공포’하는데, ‘공포’(promulgazione) 후에는 별도로 ‘공고’(pubblicazione)를 하도록 한 것이다. 시사점을 얻은 김에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독일 등의 헌법과 관련 법률을 내쳐 찾아보았다. 모두 ‘공포’와 ‘공고’를 별개로 규정하고 있었다(프랑스 헌법 제10조, 스페인 헌법 제91조, 독일 헌법 제82조).
왜 서구는 구별하는데, 우리는 구별하지 않는가? 하지만 의문을 풀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다. 그 후 주변의 법률가들에게 물어보고 관련 문헌도 찾아보았으나 성과는 없었다. 우연히 전기를 맞게 된다. 우리의 한 학자가 이 문제에 관해 쓴,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논문과 기고문이었다. 우리나라 학자는 이 문제의 연원과 현황, 그리고 외국의 사정에 대해 풍부하게 고찰하고 있었다. 그 논의를 요약하면 이러하다. 우리의 ‘공포’는 일본 헌법의 ‘공포’ 용어를 받아들인 것인데, 실은 promulgation과 publication이 구분됨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한 채 용어만을 수입하였고, ‘널리 알린다’라는 ‘공포’의 일반적 어의에 끼워 맞추어 ‘공포’를 ‘관보 게재’라고 이해해온 착오를 범하였다. 더구나 2008년 개정된 법령공포법은 잘못된 관행을 정당화하는 개악(改惡)까지 하고 말았다(소준섭, 「각국 법률상 ‘공포’ 개념 고찰을 통한 우리나라 ‘공포’ 규정의 개선 방안」, (2011)).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을 기존의 회사 에서 회사 및 주주 로 넓히고, 상장 회사의 전자 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하는 조항 등을 담고 있다. 2025.3.13. 연합뉴스
법률 ‘공포(promulgation)’와 ‘관보발행(publication)’은 상이한 개념이다
프랑스 헌법 제10조는 대통령은 최종적으로 승인되어 정부에 이송된 법안을 이송일로부터 15일 이내에 공포(promulgue)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 헌법 제82조는 이 기본법의 조항에 따라 성립된 법률은 부서 후 연방대통령이 서명(ausgefertigung)하고 연방법률공보에 공고(verkündung)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헌법은 법률은 의회의 승인 후 1개월 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 법률은 공포 후 즉시 공고하고, 공고 15일 후에 효력을 발생한다”고 규정한다. 벨기에 헌법 제109조는 국왕은 법률을 서명, 공포한다(The King sanctions and promulgates laws).”라고 규정함으로써 ‘promulgate’라는 용어를 명기하고 있다. 러시아 헌법 15조 3항은 모든 법률은 공표(公表, официальное)되며 공표되지 않은 법률은 효력을 갖지 못한다.”라고 규정하는 반면 러시아 헌법 제107조는 1. 승인된 연방법은 5일 이내에 서명 및 공포(обнародование)를 위해 대통령에게 보내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공표(официальное)’와 ‘공포(обнародование)’를 상이한 법률용어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중국의 입법법(立法法) 제52조는 법률의 서명 공포(公布) 후 적시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공보 및 전국적으로 배포되는 신문에 게재(刊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듯하지만, 결국 다르다. 모두 법률의 ‘공포’와 ‘게재(발행)’가 상이한 개념이며, 법률의 ‘공포’ 행위가 발생한 연후에 비로소 공보에 ‘게재(발행)’, 즉 ‘공표’〮〮〮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세계에서 맨 처음 법률상 ‘공포’의 개념 및 규정을 발전시켜왔던 프랑스의 법률사전에는 공표(publication)란 공표절차가 실행되는 행위이다. 법률 또는 법적 고지의 발행이 게재되는 공보 또는 신문은 출판물(publication)이라고 칭해진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또한 ‘공포’의 법률상 개념에 대해서는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은 법률이 정부에 이송된 후 15일 이내에 공포한다. 공포는 법률의 합법적인 탄생을 확인하는 행위이다(Arnauld Salvini, 2003:29)”라고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본래 ‘공포(promulgation)’의 법률적 의미는 ‘관보발행’이 아니라 바로 대통령, 혹은 국가 수반(首班)의 법률 서명 절차를 가리키며 법률을 성립(확정)시키는 행위이다. 따라서 ‘공포’란 관보발행을 의미하는 publication(출판)과는 분명하게 상이한 개념이다.
법률이 정상적으로 만들어졌음을 확인하는 행위와 법령을 일반대중에게 알리는 표시행위는 구별되어야 한다. 확인행위를 독일법에서는 Ausfertigung이라 하고 프랑스법에서는 promulgation이라 하는 반면, 표시행위는 독일법에서는 Verkündigung이라 하고 프랑스법에서는 publication이라 한다. 확인행위는 법령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법적 행위로서 특정 법령이 정상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증하는 행위이고, 표시행위는 시민에게 법령의 존재를 알리는 행위다.
근대 시기에 이르기까지 왕이나 황제 등 국가 수반의 법률 반포, 즉 공포 행위만으로써 법률은 이미 충분히 그 법적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인쇄와 출판이라는 수단이 마련된 뒤부터는 법률의 효력 발생 시점을 법률을 출판, 발행하여 국민들이 법률 공포 사실을 인지한 때로부터 적용시키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도 근대 시기에 이르기까지 법률공포 행위만으로써 법률은 이미 충분히 효력을 발생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황제 나폴레옹의 서명과 동시에 법률의 효력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 법률의 공포 사실을 수범자(受範者)인 국민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는 근대 민주법치주의의 기본 정신을 살리기 위하여 법률의 효력 발생 요건을 국민들이 법률 공포 사실을 인지한 시점부터 적용함으로써 ‘출판일자’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실종돼버린 법률 ‘서명일자’
법률에는 중요한 일자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법률이 언제 만들어졌는가, 즉 언제 탄생되었는가의 법률 출생일자이다. 독일, 프랑스를 비롯하여 미국, 스페인, 러시아 등 서구 모든 국가의 법률은 0000년 00월 00일의 「×××× 법률」”이라고 칭해진다. 여기에 기록되는 일자는 이른바 법률일자로서 법률공포권자가 법률에 서명한 서명일자와 동일하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법률의 생일을 가리키며, 이 일자가 바로 공포일자이다.
또 하나의 일자는 법률을 관보에 게재한 발행(출판)일자이다. 원래 출판인쇄가 없었을 때는 이 일자가 존재하지 않았으나 대중들에게 법률이 만들어진 사실을 ‘출판’을 통하여 알리는 절차가 중요해지면서 발행(출판) 일자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법률을 지칭할 경우 일반적으로 앞뒤의 일자와 번호는 언급하지 않은 채 「××× 법률」이라고만 부른다. 따라서 우리의 법률에는 법률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의 출생 일자를 알 방도가 없다. 마치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출생 신고를 동사무소에 하는데, 신고일자만 남고 정작 출생일자는 없어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된 셈이다.
지금의 잘못된 ‘법률공포’ 개념은 일제 잔재다
일본은 천황 칙령 6호 공식령(公式令) 제12조에 법령의 공포는 관보로써 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1946년 이 공식령은 폐지되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일본 강점기 시대에 적용되었던 ‘공포’ 개념을 아무런 변화 없이 지금까지 유지한 채 적용시키고 있다. 전형적인 일제 잔재이다.
또 현재의 ‘공포’ 개념은 ‘사실(fact)’에 위배되고, 엄정해야 할 대통령의 국법행위를 가장 기본적인 절차부터 뒤틀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제5조는 법률 공포문의 전문에는 국회의 의결을 받은 사실을 적고, 대통령이 서명한 후 대통령인을 찍고 그 공포일을 명기하여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공포일자”를 대통령이 미리 명기해야 한다는 어이없는 규정이다.
법률공포 개념을 바로잡기 위한 문제 제기로 도리어 징계를 받다
‘법률 공포’라는 개념을 바로잡기 위한 필자의 작업은 오랜 세월 외롭게 전개해온 ‘투쟁기록’이었다. 법조계의 그 내로라하는 교수, 판사, 변호사들이 많고 많지만, 공감과 지지는 거의 없었다. 아니 한 치의 관심조차 없었다. 학술지에 논문을 제출해도 공포=관보게재”라는 ‘전가의 보도’에 의해 기본도 갖추지 못한 주장”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필자의 요청으로 근무기관에서 열린 관련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헌법전공 교수들은 토론회가 끝난 뒤에도 개념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무관심하기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관련 글을 기고해도 받아주는 언론사는 거의 없었다.
필자는 이 문제의 시정을 요구했다고 하여 근무기관으로부터 징계까지 받았다. 또 이 징계의 부당성을 바로잡고자 요청해 열린 고충 소청조차도 근무한 지 몇 년이나 됐느냐?” 등 조롱 섞인 언사만 청취한 채 기각되었다. 필자는 다만 마음속으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되뇌일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이 ‘공포’를 ‘관보 게재’라고 보는 것으로부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서두에 밝힌 김동훈 헌법재판소 연구관은 해당 기고문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첫째, 서구의 법적 전통에서 홀로 이탈하게 된다. 우리만 공포와 공고를 구분하는 서구의 법률 역사와 법리를 무시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다른 길로 가기 위해선 이론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있거나 특유의 사정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관행이 아주 오래되었다는 점 말고는 정당화 요소를 찾을 수 없다.
둘째, 대통령의 법률안 서명 실무가 이상하게 뒤틀리게 된다. 현행법상 대통령은 법률안에 서명함에 있어 서명일의 날짜 대신 관보 발행일을 예상하여 그 날짜를 ‘공포일’로 미리 기재한다(법령공포법 제5조). 예컨대, 대통령은 8월 15일에 법률안에 서명하면서도 그 일자는 8월 19일로 기재하는 것이다(실무상 관보 게재는 발행 3일 전까지 요청해야 함). 이는 과거의 잘못된 실무를 바로잡기 위해 2008년 개정된 법령공포법 때문인데, 이 개정 역시 새로운 오류를 만들어내고만 것이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서명일자를 공란으로 두면 행정직원이 관보발행일에 그 날짜를 기입하였다.
셋째, 대통령의 공포권은 권력분립원칙상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권한인데 그것이 제약받게 된다. 앞서 본 것처럼 공포일자를 미리 당겨 기재하게 되면 대통령의 법률안에 대한 심사기간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공포를 요식적이고 행정적인 절차쯤으로 여겨온 우리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공포권의 의미는 자못 중대하다. 권력분립원칙상 법률의 제정은 국회가 하지만 그 법률에 집행력을 부여하는 것은 대통령이다. 즉, 법률은 대통령에 의해 공포됨으로써 비로소 집행력을 부여받고 실시할 수 있게 되는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작금의 상황은 부끄러운 일이다. 법률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대통령의 국법행위로서 엄중하고 정밀하게 처리되어야 할 법률 공포가 반세기 동안 오해받아온 것이다. 물론 관행대로 해나갈 수도 있다. 관행은 현상을 옹호하므로, 하던 대로 하면 큰 탈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비웃음을 살 일이다. 국가의 뼈대인 법률을 제정하는 문제에 있어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지점에서 실수하는 것은 우리의 국격(國格)을 손상하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천하의 대사는 반드시 미세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天下大事, 必作於細).” 국가 기본질서로의 법률 시스템이 이렇듯 뒤틀려선 안 된다. 엄중하고 정밀해야 할 대통령의 국법행위에 이러한 하자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