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가방 속 숨어든 그리움, 이제 역이민 의 길을 묻는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Gemini로 만든 이미지. Thomas Kim 시민기자
오래 달려온 자리에서
나는 은퇴를 눈앞에 둔 ‘이민 경계인’이다. 젊은 시절, 어린 자녀와 아내의 손을 잡고 낯선 땅에 터를 잡은 뒤 쉴 틈 없이 30여 년을 달려왔다. 기술 이민자로서 캐나다 땅에 내디딘 꿈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고, 그 벅찬 세월을 무던히도 견디며 살아왔다. 그러나 생의 황혼이 깃드는 요즈음, 문득 근원적인 질문이 스며든다. 나는 어디서 늙어가야 하는가? 내 삶을 마무리할 땅은 대체 어디인가?”
캐나다의 맑은 공기가 오히려 시리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제2의 고향이라며 자신을 스스로 다독였지만,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평원의 평화로움은 때로 지독한 적막이 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아침마다 나서는 일터에서는 늘 고향 말이 고파 허전했다. 그리움은 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만성적인 가슴앓이가 되었다.
‘역이민(逆移民)’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다. 뿌리 내린 땅과 태어난 땅 사이에서 흔들리던 경계인이 다시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중차대한 결단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젊은 날의 야망이 아니라, 늙어가는 몸의 그리움이 이끌어가는 법이다.
강해진다는 것과 편안해진다는 것
이민자는 언어의 장벽을 넘고 문화의 낯섦을 견디며 남들보다 세 배는 더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나는 그 과정에서 분명 강해졌지만, 살면서 ‘강해진다는 것’과 ‘편안해진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임을 깨닫게 되었다.
영어로 웃어도 속마음은 한국말로 울었으며, 이웃과 사귀면서도 보이지 않는 한 뼘의 거리는 늘 존재했다. 언어는 감정의 그릇이다. 내 감정은 한국어로 빚어진 그릇에 담겨 있어서, 영어로 옮겨 담으면 어딘가 늘 모자라고 어색해서 답답하기도 했다.
한국을 떠날 때 짐 속에 담아올 수 없었던 것들이 있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여름날 마루에 앉아서 듣던 빗소리, 지난날의 추억이 서린 옛이야기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이 감성들은 이민 가방 어딘가에 몰래 숨어들어온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난다. 아니, 세상의 다른 욕망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그리움이 커지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른 것이다.
편견을 넘어, 상생의 귀환으로
역이민을 결심할 때 마주하는 현실의 무게는 만만치 않다. 캐나다의 연금 시스템과 의료 혜택을 포기하거나 변경해야 하며, 여전한 남북 대치 상황도 마음 한편을 무겁게 한다. 무엇보다 싫다고 떠난 나라에 왜 돌아오느냐”, 늙어서 복지 혜택이나 누리려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차가운 시선은 상처가 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의 절반만 보는 편견이다. 역이민자는 수십 년간 타국에서 쌓아온 연금과 노후 자산을 들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 자산을 고국에서 소비하는 것은 결국 외화를 벌어 귀국하는 경제 활동과 다름없다.
또한, 이들은 국제적 시야와 다문화 경험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가지고 온다. 해외에서 자란 재외동포 2·3세들이 세계 각지에서 한국의 기술과 생산품을 연결하는 민간외교관 역할을 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인구 소멸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에,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동포들의 귀환은 가장 자연스럽고 질 높은 인구 보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Copilot으로 만든 이미지. Thomas Kim 시민기자
마지막 여정은 고향에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가장 자기다웠던 공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설명 없이도 이해받고, 번역 없이도 통하던 그곳 말이다. 캐나다의 붉은 메이플 잎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내 마음은 늘 고국의 설악산 단풍을 더 그리워했다. 그것은 결국 미적 비교가 아니라 귀속감의 문제였다. 캐나다의 단풍은 내가 ‘감탄하는 것’이었지만, 한국의 단풍은 온전히 ‘내 것’이었기 때문이다.
역이민을 꿈꾸는 것은 삶의 어느 지점에서 잃어버린 것에 이름을 붙이는 순수한 용기다. 낯선 타향에서 묵묵히 살아온 아내에게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 우리 이제 괜찮아, 집으로 돌아가도 돼.” 그동안 강해지기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편안하게 살아도 된다고 믿는다. 인생길은 돌고 돌아 마침내 완성되는 하나의 원(圓)이다. 긴 겨울을 견디고 맞이한 이 화창한 봄날, 나를 부르며 미소 짓는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본다. 합장(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