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용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묻는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법의 담장은 일반 서민에게는 높고 험난한 벽이지만, 스스로에게는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편리한 싸리문에 불과하다.
국회 국정조사 특위 전체회의에 나오고도 증인 선서를 거부하며 사실상 민의의 전당을 무시했던 박상용 검사가 장외나 언론 인터뷰에 나와 누구보다 당당하게 자신의 얘기를 늘어놓고 있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무도한 권력에 의한 공소취소를 막기 위한 결단’으로 포장하며 스스로를 정의의 사도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국민이 묻는 것은 그가 생각하는 ‘정의’가 아니라, 수사 과정에 제기된 숱한 의혹에 대한 ‘진실’이다. 국회에서는 입을 닫고 방송국에서는 마이크를 잡는 이 선택적 분노와 선택적 웅변은 공직자로서의 최소한의 책임감마저 망각한 오만이다.
흔히 말하는 법꾸라지 는 수사망을 피하고 증거를 인멸하는 능력이 앞선다. 법의 허점을 잘 알기에, 법을 방패 삼아 법을 공격한다. 그들이 법망을 유린할 수 있는 이유는 매일 하는 일이 법의 경계선에서 줄타기하는 ‘법 놀음’이기 때문이다.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특검’이 연이어 등장하고 공수처가 신설됐지만, 검찰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직무정지나 징계 가능성 앞에서도 이들이 태연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로 파면되거나 구속돼 실질적인 책임을 지는 사례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일반 서민에게 법의 담장은 높고 험난하기만 하지만, 그들에겐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싸리문에 불과하다.
박상용 검사가 오늘도 방송 인터뷰에 나와 자신이 옳다고 떠드는 동안, 사법 정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피의자의 진술을 회유했다는 의혹, 수사 과정의 불법성 등 본질적인 비판에는 눈을 감은 채 정치적 희생양 코스프레에 몰두하는 것은 비겁하기까지 하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며, 법을 다루는 자에게는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교묘한 법 논리로 책임을 회피하고 정의를 사유화하는 이들을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의 공정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이번 국조특위가 여야의 정쟁으로 점철되지 않고 의혹의 당사자들을 일벌백계해 무너진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