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장어 한덕수, 권력의 끝에서 드러난 민낯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넓어지는 한덕수의 말과 책임의 간극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둘러싼 논란은 이미 단순한 기억 논쟁이나 실무 착오의 영역을 벗어났다. 그의 이름을 따라붙는 수많은 의혹과 진술의 모순, 그리고 특검의 수사가 그려내는 정황들은 한 개인의 말실수나 오해로 돌리기에는 너무 크고 무겁다. 그가 말한 것과 실제로 드러나는 사실관계 사이의 간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지고, 그 간극은 정치권과 시민사회 모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방조, 내란 중요임무 종사 및 위증 등 혐의 결심공판에서 최후진술을 하고 있다. 그는 비록 비상계엄을 막지 못했지만, 찬성하거나 도우려 한 일은 결단코 없다 며 이것이 오늘 역사적인 법정에서 제가 드릴 가장 정직한 말 이라고 했다. 2025.11.26. 연합뉴스
한덕수는 여러 차례 스스로 계엄을 만류했다 고 말했다. 그러나 특검 조사에서 드러난 정황들과 그의 과거 회의 발언에서, 그가 말한 만류의 실체가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설명된 적은 없다. 설령 실제로 특정 상황에서 우려를 표했더라도, 그것이 계엄 검토의 구조 자체를 멈추게 하거나 방향을 바꾸는 핵심적 개입이었다고 말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더구나 그는 정작 중요한 순간마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보고 받았는지 모르겠다 문건을 봤는지 알 수 없다 는 말만 반복해 왔다. 만류했다는 주장은 능동의 언어이고,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은 방기의 언어다. 이 두 문장은 동일한 사람의 입에서 나올 때 서로 충돌하며 신뢰를 훼손한다.
한덕수 본인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진술이 모순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억의 불명확성이 아니라 책임의 무게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의 역할을 명확히 드러내는 순간 감당해야 할 정치적·윤리적 부담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말을 흐리고, 스스로의 위치를 희미하게 만들며, 행동의 흔적을 모호하게 남긴다.
국무총리는 국가 위기 시 국정의 중심이 돼야 한다. 위기 대응의 전 과정에서 행정 체계의 최종 확인자이자 조정자이며, 잘못된 판단이 있다면 이를 교정하는 마지막 장치다. 그럼에도 그는 계엄 검토가 실제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렀는지, 어떤 의견이 오갔는지, 자신이 무엇을 승인하고 무엇을 제지했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나라는 위기 상황에서 사실상 총리 부재 상태 였다는 뜻이다.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는 민주적 통치의 핵심 순간에서 자신의 역할을 고의적으로 축소하려 했다는 뜻이다. 둘 중 어느 쪽도 국가를 위해 있을 수 없고, 국민이 납득하기도 어렵다.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혐의 등 2차 공판에서 12·3 비상계엄 당일 대통령실 폐쇄회로(CC)TV 영상 일부가 공개되고 있다. 2025.10.13. 연합뉴스
특검의 정황과 드러나는 모순
특검이 제시하는 여러 정황은 그의 말과 어긋난다. 특히 보고 라인의 구조, 회의 관련 문서, 당시 회의 참석자들의 기억과 기록은 그가 책임의 경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고 보기 어렵게 한다. 특검이 위증 혐의를 적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위증 여부는 법원이 판단하겠지만, 공직자가 헌법재판소에서 한 발언이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중대한 문제다.
헌재는 헌정질서의 최종 수문장이다. 거기서의 발언은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공동체의 원칙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진술은 시간이 흐를수록 생생한 기억이라기보다 방어적 정치 언어에 가까웠다. 국민이 그의 증언을 의심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말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고, 책임의 중심에서 벗어나려는 흔적이 너무 도드라졌기 때문이다.
한덕수 주변을 오래 감싸고 있는 별명 하나가 떠오른다. 그는 흔히 기름장어 라고 불린다. 이 비유는 단순한 조롱이 아니다. 누군가를 비판할 때에는 비유가 실제로 설명의 기능을 해야 한다. 그는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때그때의 필요에 맞게 말을 조정하고, 책임의 손길이 닿으려 하면 곧잘 빠져나간다. 유연함이라 부르기에는 지나치고, 지혜라 부르기에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흔적이 너무 짙다. 특히 국가적 위기와 사법적 판단의 순간에까지 이런 태도가 반복될 때, 그 비유는 단순한 풍자를 넘어 구조적 문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마은혁 헌법재판관 관련 논란 역시 그가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그는 임명 과정에서 불투명하고 일관되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을 받는다. 헌재 재판관 임명은 정치적 선호나 사사로운 판단에 따라 흐트러질 수 없는 절차이다. 그 자리는 헌정 질서의 정당성을 지탱하는 마지막 축이다. 그럼에도 그는 절차상 정당성 문제에 관한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고, 설명해야 할 시점마다 해명을 미루거나 중요성을 낮췄다.
이 일련의 태도는 그가 계엄 논의에서 보인 행태와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핵심 역할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어떤 판단을 했는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몰랐는지에 대해 일관되게 모호함을 유지하는 방식 말이다. 정치인은 때때로 침묵을 통해 메시지를 남기기도 하지만, 이런 종류의 모호함은 책임의 영역에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와 계엄 논의의 국가적 의미
한덕수의 말이 반복될수록 그의 세계는 기묘한 구조를 띠기 시작한다. 그는 만류했다 고 주장한다. 그는 기억나지 않는다 고 말한다. 그는 책임을 다했다 고 말한다. 그는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고 말한다. 이 네 가지 문장은 서로를 부정한다. 어떤 행위를 했다면 기억은 남기 마련이고, 기억이 없다면 책임을 논하기 어렵다. 그는 이 네 문장 사이에서 끝없이 진동한다. 이 모순적 구조가 지속되는 이유는 말이 진실을 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향하는 방향은 진실이 아니라 방어이고, 책임이 아니라 거리 두기이며, 규명이라기보다 회피다. 이런 언어의 구조는 한 개인에게 머무르지 않는다. 정치적 책임이 모호해질수록 공동체는 불안정해진다. 지도자의 언어는 곧 제도의 안정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의 태도를 보며 많은 이들은 민주주의의 허술한 틈을 다시 떠올린다. 계엄은 그 자체로 국가 비상조치 중 가장 중대한 조치다. 군의 역할이 확대되고, 시민의 권리가 일시적으로 제한되며, 정부의 권력이 극도로 집중된다. 이 과정에서 총리가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는 사후 평가가 아니라 현재의 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규명되어야 하는 문제다.
특검이 짚고 있는 문제는 단지 한 개인의 과거가 아니라, 민주적 통치의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관한 국가적 질문이다. 만약 특정 단계에서 제동을 걸지 못했다면 왜 그랬는지, 어떤 판단이 작용했는지, 그 판단에 누가 관여했는지 밝혀야 한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구조적 질문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는 말로 밀어낸다. 말은 가볍지만 그 결과는 무겁다.
이제 많은 이들이 말한다. 중형을 피하기 어려울 것 이라고. 그러나 이 말이 현실이 되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정치적 책임은 형량의 문제를 넘어선다. 법적 판단은 시간이 지나면 정리될 수 있지만, 정치적·윤리적 책임은 훨씬 오래 남는다. 그가 남긴 침묵과 모호함은 단지 한 개인의 흠결이 아니라, 한국 정치가 반복해 온 가장 나쁜 패턴을 응축한다. 권력은 비상시가 되면 불투명해지고, 책임은 흐릿해지며, 중요한 순간의 결정은 기록되지 않는다. 이 구조가 반복될 때마다 민주주의는 조금씩 힘을 잃는다.
5월 2일 오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은 한덕수 전 총리가 광주비상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의 반발에 가로 막히자 저도 호남 사람 이라며 참배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말의 무게와 책임의 회복
사람들은 그가 총리직을 사퇴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했던 말을 다시 꺼낸다.
이 결심이 옳고 불가피하다는 것을 오랫동안 고심했다. 현재 맡고 있는 중요한 책임을 내려놓고 더 큰 책임을 지겠다. 개인적 성공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국가를 위해 변명 없이 끝까지 내가 옳다고 믿는 길을 가겠다.
이 연설은 당시 많은 이들이 인상깊게 기억하는 장면이다. 그는 책임을 말했고, 더 큰 책임을 말했고, 변명 없는 길을 말했고, 국가를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모습은 그 말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책임의 순간에 그는 자주 사라졌고, 더 큰 책임을 말해야 할 순간 그 책임을 개인적 기억 속에 묻어버렸으며, 변명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가장 빈번한 변명으로 치환됐다. 국가를 위해 끝까지 가겠다는 말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 언어를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변해 버렸다.
정치인의 말은 그의 인생을 기록하는 문장이다. 그 문장을 스스로 배반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생애 전체를 설득력 없이 만든다. 한덕수는 지금 자신의 말과 기억의 틈 사이에 서 있다. 그는 여전히 말할 수 있고, 해명할 수 있으며, 사실을 밝힐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길은 여전히 흐릿하고, 앙상하며, 무게없이 미끄러진다. 국민은 그가 남긴 모호함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정치는 기억 위에서 유지된다. 그가 더 이상 기억 뒤에 숨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는 책임을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 그는 이제 스스로 말했던 문장의 무게를 다시 짊어져야 한다. 애초에 변명없이 끝까지 가겠다 고 말한 사람은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억의 회피가 아니라 책임의 인정이다. 그것이 그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마지막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