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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한 예속’이냐, ‘험난한 주권’이냐
[뉴스]
『이재명의 고독한 외교 1년 - 미국 없는 세계, 한국은 준비됐는가』는 이경렬 전 앙골라 대사가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펴낸 세 번째 외교 평론서다. 이 대사가 첫 저서『명품 외교의 길』을 출간했을 때, 그는 단숨에 외교 평론계의 주목 받는 목소리로 떠올랐다. 전직 외교관의 저술이 대개 개인적 일화와 경력 과시의 나열에 머무는 데 반해, 그는 처음부터 그 관행을 단호히 거부했다. 외교부 내부에서 축적한 깊은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제 기능을 잃고 자기 개혁의 의지마저 소진한 외교부를 향해 타협 없는 비판의 칼을 겨눴다. 극도로 보수적인 관료주의 속에서 전례 없는 내부 고발자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사건이었다. 두 번째 저서 『브라보 한미동맹』은 그 비판을 한층 깊은 곳으로 밀고 나갔다. 한국 외교의 고질 중의 고질인 ‘숭미주의’를 정면으로 해부하며, 이 뿌리 깊은 구조적·심리적 종속의 사슬을 끊는 것만이 한국 외교가 스스로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역설했다. B학점 짜리 이재명 외교, 성과와 한계   세 번째 평론서인 이 책은 그 문제의식의 자연스러운 연장선 위에 있다. 앞선 두 권이 한국 외교의 구조적 병폐를 거시적으로 고발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 책은 그 비판적 시각을 렌즈 삼아 이재명 외교 1년의 실제 궤적을 세밀하게 추적한다. 출범 첫해의 외교 활동을 꼼꼼히 해부하며 구체적 성과와 구조적 한계를 냉정하게 저울질한다. 저자는 이재명 정부 1년의 성과를 대체로 인정하되,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단호히 경계한다. 굳이 학점으로 환산하자면 B 정도가 될 것이다. 브라질·인도 등과의 정상회담으로 외교 반경을 확장하고, 냉각됐던 중국과 대화 채널을 복원한 것은 전 정부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성취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제도화하는 일에 여전히 주저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우려를 거두지 않는다. 외교 관료들의 의식 깊숙이 침전된 숭미주의를 청산하지 못하고 한미동맹 일변도의 안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급변하는 국제 질서 앞에서 버텨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뼈아픈 진단이다. ‘주권 외교’로 가는 다섯 가지 길 저자는 미국 패권의 쇠퇴와 다극 질서의 부상이라는 세계사적 전환 앞에서, 종속의 안락함을 내려놓고 주권 국가의 무거운 책임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이 나아가야 할 다섯 가지 구체적인 길을 제시한다. 이재명 외교의 궁극적 성패는 이 다섯 과제를 실제로 이행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첫째, 정책 현장에서 주권의 언어를 되찾는 일이다. 주권은 교과서 속 수사가 아니라 실제 협상과 정책 결정의 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 기준이어야 한다. 무엇을 거절하고 어디서 버티며 어디서 물러설지, 그 선택과 책임을 주체적으로 감당해야 한다. 둘째, 정책적 자율성의 실질적 기반을 넓히는 일이다. 안보와 산업, 기술과 금융, 에너지와 공급망은 각각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적 총체로 파악되어야 한다. 이를 통합적으로 운용하지 못하면 자율성은 구호로만 남는다. 셋째, 통상과 안보를 통합하는 전략적 사고다. 경제와 안보가 불가분하게 얽힌 오늘의 현실에서, 통상 협상은 단순한 손실 최소화의 문제가 아니다. 한 나라의 성장 전략과 산업 정책이 독자성을 지킬 수 있는가를 가르는 싸움이다. 눈앞의 손익을 넘어 협상의 판 자체를 주도하는 안목이 요구된다. 넷째, 외교 포트폴리오의 과감한 다변화다. 특정 국가나 낡은 질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반드시 외교적 취약성으로 되돌아온다. 미·중·일이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러시아와 글로벌 사우스로 외교의 지평을 열어야 하며, 브릭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 가입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다섯째,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되찾는 일이다. 한국이 스스로 그 주도권을 내려놓는 순간, 한반도는 다시 강대국들의 계산표 위에 놓인 객체로 전락한다. 미국의 박자에 맞춰 뛰는 ‘페이스메이커’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의 판을 스스로 짜는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트럼프와 첫 정상회담에서 그의 구미에 맞게 페이스메이커 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국익은 스스로 평화를 만드는 자의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위싱턴 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앞서 SNS를 통해 한국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글을 올려 회담 전망을 어둡게 만든 바 있다. 2025.8.26 EPA 연합뉴스 노무현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저자는 이 대통령이 이 과제들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 개혁의 의지를 품은 대통령이 홀로 앞서 나가다 관료 조직의 조용한 저항과 태업에 무너졌던 노무현 정부의 비극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대통령의 외교 개혁 의지가 불쑥불쑥 터져 나올 때마다 저자는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그의 최종 결론은 냉혹하리만치 현실적이다. 한미동맹의 재정립, 전략적 자율성의 제도화, 통상 협상에서의 주권적 국익 수호, 이 세 가지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실천적 헌신 없이는 실패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이 대통령은 남은 4년의 임기 동안 격변하는 세계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이 책은 그 질문을 이 정권 앞에 정면으로 들이민다. 한국 외교의 구조적 딜레마와 위태로운 줄타기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라면, 정권 안팎을 불문하고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저자는 6월 12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노무현 시민센터에서 출판 기념 북콘서트를 개최한다. 사전 예약 없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ohtak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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