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시대, 원전 탄력운전의 위험성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재생에너지 확대 시대에 들어서면서 원전의 운전 방식과 안전 기준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2021년 이후 프랑스 원전에서는 수십 기의 원전을 가동 중단하고 검사한 결과 80건이 넘는 응력부식균열(SCC)이 확인됐다. 균열은 일부 예외적 설비에 국한되지 않고, 사고 시 핵심 안전 기능을 수행해야 할 안전주입계통과 잔열제거계통의 배관과 용접부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프랑스 규제 당국은 대부분의 균열이 보수·교체됐다고 설명하면서도 향후 추가적인 균열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는 단순한 정비 통계를 넘어, 노후 원전이 새로운 운전 조건에 들어설 때 어떤 구조적 위험이 드러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실적인 경고다.
오래된 원전일수록 ‘올렸다’ ‘내렸다’ 잦은 출력 조정에 더 약해
이 문제는 단순한 관리 실패나 일회성 결함이 아니다. 부하추종운전 확대와 장기 운전이 결합된 노후 원전에서, 잦은 출력 조정으로 인한 반복 응력, 고온·고압의 원자로 수환경, 그리고 경년열화가 중첩될 경우 기존의 안전 평가 틀로는 포착되지 않는 위험이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특히 환경피로계수(Fen)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설계 당시 가정했던 피로 여유는 실제 운전 환경에서 급격히 축소되고, 이는 반복 피로를 거쳐 SCC로 전이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은 우리에게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GW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는 계통 운영 측면에서 잦은 출력 제어와 탄력운전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노후 원전이 계통 유연성의 부담을 함께 떠안게 된다는 점이다. 출력 증감에 따른 열·기계적 응력의 반복은 배관과 용접부의 피로 손상을 가속시키고, 여유도가 줄어든 노후 설비에서는 환경피로가 응력부식균열로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미국이나 한국 원전에서는 인코넬-600 소재 문제를 제외하면, 프랑스와 같은 대규모 스테인리스강 SCC 문제가 구조적으로 드러난 적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과도한 우려라고 말한다. 이 지적 자체는 사실에 가깝다. 그러나 이는 재질이 근본적으로 달라서라기보다, 운전 조건과 노후화 단계가 달랐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프랑스는 높은 원전 비중 속에서 장기간 부하추종운전, 즉 탄력·유연운전을 수행해 왔고, 그 과정에서 출력 변동에 따른 응력 피로와 열성층화(Thermal Stratification), 잔류응력이 먼저 누적됐다. 반면 우리는 비교적 정출력 위주의 경직성 전원으로 운영해서 아직 같은 조건에 완전히 도달하지 않았을 뿐이다.
월성3발전소 신월성 1호기 2호기 한국수력원자력(주) 월성원자력 홈페이지
‘지금까지 문제 없음’이 앞으로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이유
더 주의해야 할 점은, SCC가 선형적으로 서서히 증가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응력, 환경, 노후화가 일정 임계점에 도달하면, 그 이전까지 잠재돼 있던 균열이 특정 시기에 급격히 증가하는 비선형적 특성을 보일 수 있다. 이런 특성을 고려하면 지금까지 문제 없었다”는 사실은 안심의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향후 운전 조건 변화에 대해 더 엄격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환경피로와 파단전누설개념(Leak-Before-Break, LBB)의 한계다. 수환경에서의 반복 응력은 설계 당시 가정했던 피로 누적 속도를 크게 앞당기며, 환경피로계수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을 경우 실제 피로 여유는 급격히 축소된다. 이는 균열의 개시 시점을 앞당길 뿐 아니라, 균열 성장률의 불확실성을 키워 SCC로의 전이를 촉진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시간 의존적 열화 과정이 확률론적안전성평가(Probablistic Safety Assessment, PSA)에 사전적으로 반영될 수 없다는 점이다.
LBB 역시 마찬가지다. LBB는 균열이 불안정 파단에 이르기 전에 검출 가능한 누설이 먼저 발생하고, 이를 감지·조치함으로써 다음 검사 주기까지 임계 크기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결정론적 가정에 기초한다. 그러나 탄력운전으로 운전 하중 스펙트럼이 바뀌면, ‘누설의 조기 검출’과 ‘임계 크기 미도달’이라는 전제의 신뢰도 역시 함께 흔들릴 수 있다. 특히 경수로의 서지라인 노즐처럼 열성층화에 의한 국부 응력이 지배적인 부위에서는, 파괴역학 해석의 불확실성에 환경피로와 검사·감지 한계가 중첩될 경우, LBB 승인 논리가 대형 누설로 이어지는 경로를 평가에서 누락시키는 착시를 만들 위험마저 있다.
탄력운전 전제로 원전 비중 높이려는 것은 잘못된 선택
이러한 맥락에서 PSA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 PSA는 사고 발생 이후 계통이 기능을 수행할 확률을 평가하는 도구이지, 정상운전 중 누적되는 경년열화와 균열 발생·성장 같은 시간 의존적 위험을 사전에 평가하는 도구는 아니다. 그럼에도 PSA 결과를 안전기준처럼 활용한다면, 노후 원전에서 실제로 중요한 안전변수들이 제도적 판단 과정에서 빠질 수 있으므로 PSA 결과를 안전 판단에 있어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여기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반면교사는 미국의 선택이다. 세계 최대 원전 운영국인 미국은 여전히 기저부하 운전을 중심으로 운영되며, 2023년 기준 전체 전력 생산의 약 19%를 원자력이 차지한다. 미국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원전의 탄력운전을 확대하기보다는, 가스발전, 에너지저장장치, 수요관리, 계통 보강을 통해 유연성을 확보해 왔다. 20% 이하의 원전 비중은 유연전원으로 쓰지 않기 위한 의도적인 관리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탄력운전·유연운전을 전제로 하면서 원전 비중을 높이겠다는 접근은 위험을 인지하고도 구조적으로 키우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70%에 가까운 원전비중을 높임에 따른 탄력운전으로 노후 원전에서 대규모 SCC가 발생한 프랑스와, 원전 비중을 적정 수준(20%) 이하로 유지하며 경직성 전원으로 운영해 온 미국의 사례는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 30%의 원전비중을 초과하는 우리는 여기서 반드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따라서 신규 원전 건설 추진을 결정 하더라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향은, 노후 원전의 탄력운전을 절제하고, 기저부하 범위 내에서 원전 비중을 적정수준 이하로 제한적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이는 원전을 포기하자는 주장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시대에서 현명하게 되돌릴 수 없는 위험을 관리하는 가장 책임 있는 안전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