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 가능케 한 흑인 수학자 글래디스 웨스트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 없이 글로벌 측지(위치 측정) 시스템(GPS)을 사용할 수 있도록 복잡한 수학 연산을 해낸 글래디스 웨스트가 자신의 자동차 내비게이션 장치를 조작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Carolyn Oglesby 제공
미국의 선구적인 수학자 글래디스 웨스트 박사가 지난 17일(현지시간)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전자제품 전문 웹로그이자 팟캐스트 엔가젯(Engadget)이 19일 전했다.
그녀의 이름과 얼굴이 생소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 그녀에게 상당한 몫의 빚을 지고 있다. 그녀가 연구한 것은 글로벌 측지(위치 측정) 시스템(GPS) 기술의 기초가 되는 수학적 연산을 해낸 것이었다. 모두들 느끼겠지만, GPS는 이제 항공과 긴급 대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됐을 뿐만 아니라 저녁 약속이나 면접 때문에 제 시간에 약속한 곳에 도착하는 데도 분명 큰 도움이 된다.
고인이 어디에서 어떻게 눈을 감았는지, 사망 원인 등은 알려진 것이 없다.
웨스트는 1930년 10월 27일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남쪽의 농촌 서덜랜드에서 태어났다. 소작농 공동체에 속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농가였다. 웨스트는 어릴 적부터 부모의 담배 농사를 도왔다. 모친은 담배공장에서, 부친은 철도회사에서 일하며 농사 일을 병행할 정도로 힘겨운 살림이었다. 그녀는 녹슨 가구, 때때로 빗물이 새는 천장, 항상 물려받은 책들로 가득한 교실 하나뿐인 학교 까지 5km를 걸어 다녔다고 돌아봤다.
웨스트는 교육만이 산더미 같은 농장 일에서 해방돼 다른 삶을 살게 해줄 유일한 방편이란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미국 남부가 흑인을 차별하는 짐 크로우 법에 짓눌려 있을 때라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녀는 버지니아 주립대(VSU)에서 수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며 고등 교육을 계속할 수 있었다. 노력 덕이기도 했겠지만 운도 따랐을 것이다.
그녀가 다니던 고교에서는 매년 성적이 우수한 졸업생 둘에게 흑인 명문 공립대학인 VSU의 전액 장학금이 주어졌다. 웨스트는 1948년 수석으로 졸업하며 이 장학금을 받아 VSU에 진학, 남학생들의 영역이었던 수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대학 시절 그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학생회 알파 카파 알파(Alpha Kappa Alpha) 회원으로 활동했다.
1952년 수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버지니아주 웨이버리 고교에서 2년 동안 수학과 과학 교사로 일했다. 그 뒤 모교인 VSU로 돌아와 학업을 계속, 1955년 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석사 졸업 후에는 버지니아주 마틴스빌에서 다시 교단에 섰다.
1956년, 웨스트는 버지니아주 달그렌에 위치한 해군 시험장(NSWC, 현 해군 수상전 센터)에 채용됐다. 당시 그녀는 이 직장에 고용된 두 번째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었다. 함께 일하는 흑인 직원이라야 3명에 불과했다. 그녀는 처음에 고학력 백인 남성들이 자신보다 똑똑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함께 일해 보니 자신이 더 영민하다는 생각에 무척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이곳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근무하며 위성 데이터 분석을 위한 처리 시스템의 프로젝트 관리자 역할을 수행하며 동시에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학업을 병행해 공공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0년대 초, 웨스트는 해왕성과 명왕성이 같은 궤도를 움직인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학 연산을 해내 실력을 인정받았다. 100시간의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50억 번의 계산 끝에 이 프로젝트는 공로상을 받았다.
그 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지구 측지 궤도 프로그램 (Geosat)의 위성 고도계 데이터를 분석해 지구 형상 모델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또 해양 원격 탐사가 가능한 최초의 위성 시샛 (Seasat) 레이더 고도계 프로젝트의 관리자로 일했다. 그녀의 효율적인 업무 수행 덕에 팀의 데이터 처리 시간은 절반으로 단축돼 그 공로를 인정 받아 표창장이 상신되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웨스트는 IBM 7030 스트레치(Stretch)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해 지구 형상에 대한 정밀한 계산을 수행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한 수학적 계산이었다. 이 모델들은 나중에 GPS의 핵심 모델이 됐다. 지구는 단순한 구형이 아니라 지오이드(Geoid)라고 불리는 불규칙한 굴곡을 지닌 타원체 형태를 띠고 있다. 웨스트는 정교한 지전위(Geopotential)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중력, 조력 및 기타 지구의 형상을 왜곡하는 다양한 힘의 변화를 정밀하게 산출하는 복잡한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적용했다.
1986년 웨스트는 NSWC를 통해 Geosat 위성 레이더 고도계용 데이터 처리 시스템 사양 이라는 제목의 51쪽 분량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위성 측지학의 핵심 요소인 지오이드 고도(Geoid height)와 연직선 편차(Deflection of the vertical)의 정확도를 개선하는 방법론이 상술돼 있다. 그녀의 연구에 바탕해 1984년 3월 12일 궤도에 진입한 Geosat 위성의 전파 고도계로부터 수집된 데이터를 정밀하게 처리해낼 수 있었다.
웨스트는 NSWC 달그렌에서 42년 동안 일한 뒤 1998년에 은퇴했다. 2000년에 그녀는 원격 학습을 통해 버지니아 공대에서 공공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에서 과학기술의 돌파구를 연 여성들, 특히 유색인종 여성들이 그렇듯 웨스트의 공헌도 수십 년 동안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2018년 알파 카파 알파의 한 회원이 동문회 행사를 위해 제출된 웨스트의 짧은 약력을 읽으면서 비로소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웨스트는 같은 해 미 공군 우주사령부(AFSPC)가 수여하는 최고 영예 중 하나인 미 공군 명예의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글래디스 웨스트와 샘 스미스가 글로벌 측지 시스템(GPS)으로 얻은 데이터를 살펴보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위키미디어)
AFSPC는 보도자료를 통해 그녀를 전자 계산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 미군을 위해 복잡한 연산 작업을 수행했던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 팀의 일원 이라고 칭송했다. 마고 리 셰터리의 저서이자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잘 알려진 히든 피겨스 를 인용한 것이다.
NSWC 달그렌 지부 사령관이었던 고드프리 위크스 대령은 GPS 개발에 기여한 웨스트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녀는 위성 측지학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며 GPS의 정밀도 향상과 위성 데이터 분석에 크게 기여했다. 1956년 근무를 시작하며 그녀는 자신의 연구가 향후 수십 년 세상에 미칠 막대한 영향력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웨스트는 이에 대해 매일 업무에 임할 때 세상에 미칠 영향을 고민하기보다 오직 주어진 과업을 완벽히 완수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고 돌아봤다.
VSU 동문인 웨스트는 2018년 역사적 흑인 칼리지 및 대학 상 (Historically Black Colleges and Universities Awards) 시상식에서 올해의 여성 졸업생 으로 뽑혔다. 같은 해 영국 BBC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 에 이름을 올렸다. 2021년에는 영국 왕립 공학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Engineering)가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개인상인 필립 왕자 메달 을 목에 걸었다. 2024년, 버지니아주 프레더릭스버그 시 교육위원회는 관내 세 번째 초등학교 이름에 그녀의 이름을 넣기로 의결했다.
웨스트는 일하는 내내 인종 차별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녀는 직장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반면 백인 동료들은 칭찬과 추가적인 특권을 누렸다. 2020년 출간된 그녀의 전기 하나의 꿈으로 시작됐다 (It Started with A Dream)에는 여행과 홍보가 포함된 프로젝트를 맡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020년 웨스트와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그녀의 인생 역정에 대한 통찰을 공유했다. 재미있는 것은 자신이 간접적으로 도운 GPS보다 종이 지도를 선호한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웨스트는 해군 수상전 센터 달그렌 부서에서 남편 아이라를 만났는데, 그 역시 수학자 동료였다. 4명 뿐이던 흑인 직원 중 한 명이었다. 둘은 1957년 결혼했다. 아이라는 2024년 10월 20일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제 세 자녀와 일곱 손주가 유족으로 남겨겼다.
웨스트 가족은 매주 일요일 직장 안 예배당에 갔다. 그녀가 기지에 있던 동안은 시민권 운동이 한창이었다. 그녀는 그 운동을 지지했지만, 공무원이라 시위에 참여할 수 없었다. 기지 내 기혼자들이 거주하는 붐타운에서 그녀는 시민권 문제를 논의하는 흑인 여성 모임의 일원이었다.
GPS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1973년이었으니 정말 많은 이들의 공력과 시간이 쌓여 오늘날 많은 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편리하게 쓰고 있다. 그녀는 내비게이션이 이룬 기술적 발전에 여전히 감탄한다고 털어놓았다.
절대 지루해질 일이 없다. 내가 기여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 내가 일할 때는 GPS가 민간에서 널리 사용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 기술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보는 게 너무 좋고, 얼마나 널리 쓰이게 될지는 결코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