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미-이란 전쟁’ 이후를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 [국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가 붕괴했지만 아직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지 않은 ‘그람시적 위기’의 시대에 지구촌 곳곳을 피로 물들이는 전쟁이 잦아지고 있다. 집단안보의 핵심 축이어야 할 유엔은 상임이사국이 직접 개입된 전쟁 앞에서는 중재 기능을 상실한 채 안보리 결의 위반을 방치하며 완벽한 마비 상태에 빠졌다. 이는 글로벌 경제체제를 지탱해 온 달러 패권의 동요와 러시아·중국의 대안적 결제시스템 등장과 같은 금융 패권의 지각변동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
이와 같은 다극화 기류 속에서, 중·러 주도의 새로운 대안 질서에 이란이 적극적으로 가세한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일찍이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그의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예언했듯,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불만감으로 통합된 ‘중-러-이란’의 반패권 동맹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란의 상하이협력기구(SCO) 정회원 가입과 오만만 및 호르무즈해협 일대에서 정례화된 중·러·이란 안보벨트 연합해상훈련은 이 삼각 축의 전략적 공고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오판이 부른 전쟁
이러한 모순의 심화 속에서 이란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하마스 무기 공급과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그리고 이스라엘-이란 간의 상호 보복전, 이어 2025년 6월 미국의 이란 핵심 핵시설 공습(Midnight Hammer)을 거쳐, 마침내 2026년 2월 28일 미국이 ‘장대한 분노(Epic Fury)’라고 부른 미국·이스라엘의 전면적인 이란 공격(이하 ‘이란전쟁’)이 발발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GDP 대비 120%대 초반에 이른 국가부채로 세계패권 몰락의 출발점인 ‘퍼거슨 한계’에 직면해 있었으나, 이란의 60% 농축우라늄 보유 방치와 중동 패권 상실 비용이 재정파탄의 위험보다 더 크다고 전략적으로 오판했다. 아울러 반미·반서방 권위주의 연대(CRINK)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고, 압도적 공군력과 정밀타격을 통해 단기전에 승리함으로써 유리한 고지에서 새로운 핵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확신 속에 전쟁을 개시했다.
7일 이란 테헤란의 샤란 정유소가 공습을 받은 후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2026. 03. 07 [AFP=연합뉴스]
그러나 이란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란은 미군·이스라엘군의 군사적 격퇴 대신에 전 세계 원유의 해상물동량 25%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과 예멘 후티 반군을 동원한 바브·엘만데브 해협(10~12%)을 동시 타격하는 ‘세계 경제의 무기화’ 전략으로 저항했다. 저비용 드론과 고속정 떼거리 전술을 배합한 비대칭 소모전으로 미국·이스라엘의 고가 요격미사일을 고갈시켰고, 글로벌 물류망 마비와 인플레 폭등을 유도하여 미국 내부의 반전 여론을 영리하게 자극했다.
글로벌 안보지형에 남긴 심대한 상흔과 동아시아 국가들 반응
결국 미국과 이란은 개전 수개월 만인 2026년 6월 19일,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종전과 호르무즈해협 개방, 이란 내 고농축우라늄(HEU) 폐기와 동결자금 절반 우선 해제 등을 골자로 하는 14개 항의 ‘종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 전쟁은 국제 유가의 배럴당 70달러선 안정화라는 단기적 안정을 가져왔으나, 60일 시한부 협상의 한계와 이스라엘의 독자적 반격 권리 인정이라는 불씨를 남겨둔 채 글로벌 안보지형에 심대하고도 구조적인 상흔을 남겼다.
이란전쟁은 단순히 중동 지역의 국지적 충돌에 머물지 않고, 멀리 떨어진 동·남중국해를 둘러싼 분쟁과 대만해협, 그리고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동아시아 안보지형 전체에 격변과 연쇄 파장을 몰고 왔다. 이번 전쟁의 전개 과정과 종전 합의는 역내 핵심 행위자들의 대외 및 군사전략을 뿌리째 흔들며 동아시아를 다극화 체제의 가장 뜨거운 핫스팟으로 변모시켰다.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중국의 대외 군사 및 해양 전략의 근본적인 선회에서 관측된다. 중국은 미국의 고정밀 공습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결합했을 때 전 세계 해상물류 마비와 해외자본 이탈 등 자국 경제가 직면해야 할 막대한 비용 부담을 생생하게 체감했다. 특히 원유 수입의 상당 부분을 해상에 의존하는 중국으로서는 해상보급로의 취약성이 드러난 것이 치명적이었다. 경제적 공멸의 리스크를 확인한 중국은 대만해협을 무력으로 전면 봉쇄하는 시나리오 수정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었다.
2026년 4월 18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에 위치한 이란 케슘섬 해안에 정박한 유조선 앞으로 소형 보트가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해군력 강화와 동아시아 다극질서 재편 속도 내는 중국
중국은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국제해양법보다 국가안보를 우선시’하며 침공을 개시한 전례를 목격했다. 2014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서사군도) 분쟁에서 ▲9단선 무효, ▲섬 지위 불인정, ▲인공섬 불법 등 중국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놓았다. 미국은 ‘항행의 자유 작전(FONOP)’의 명분으로 이 재판 결과를 내세웠다. 하지만 중국은 향후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 9단선 안쪽을 내해화하여 봉쇄할 때 이를 방어할 논리적 명분과 국제법적 회피 수단으로 이번 사례를 적용할 수 있는 명분과 근거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해상수송로인 ‘일로(一路)’의 위험을 우회하기 위해 육상교통로인 ‘일대(一帶)’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전략적 결론에 도달했다. 동시에 중국의 해양 패권전략은 미국 주도의 포위망 구축에 맞서 도련(Islands Chain) 전략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의한 말레카 해협 차단의 공포가 현실화되자, 중국은 자국 상선의 보호를 구실로 인도양과 중동 근해까지 작전반경을 대폭 확대하는 원양해군 건설과 항모강습단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은 동아시아 다극질서 재편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은 미·중 정상회담 직후 중·러 및 북·중 정상회담을 연쇄적으로 개최하며 반미·반서방 권위주의 연대(CRINK)를 단단하게 결속했다. 시진핑 주석의 7년 만의 평양 방문으로 성사된 북·중 정상회담은 동아시아 안보의 새로운 변수로 작용한다. 중국은 외교·법집행·군대 등 각 분야의 교류 확대를 제시하며, 국제정세의 변동과 관계없이 북한의 사회주의 영도를 확고히 지지하고 전략적 조율을 강화하여 공동의 주권과 안보 이익을 수호하겠다며 북한이 자국의 세력권임을 확인하려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북한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영하여 평양 목란관에서 연회를 마련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2026.6.9 연합뉴스
핵무기 고도화와 비대칭 해상·지상 전력 개발 가속화하는 북한
북한 역시 이란전쟁을 철저히 분석하며 자국의 대외 및 군사 독트린을 고도화하기 위한 교훈으로 삼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미국의 이란 침공을 ‘불법무도한 침략이자 후안무치한 불량배적 행태’로 규정하며, 핵무기 보유의 정당성을 재확인하고 중·러의 핵보유 묵인 아래 비핵화 협상의 문을 완전히 닫아걸었다. ‘이란전쟁’의 전개 과정은 물론 미국과 이란이 맺은 종전 양해각서(MOU)는 북한의 향후 행동양식에 구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을 상대로 대규모 선제공격을 통해 핵물질 폐기 약속을 얻어내려고 한 사례는 북한에게 심각한 생존 공포와 교훈을 동시에 주었다. 북한 지도부는 이란 지휘부가 개전 초기 대규모 정밀타격을 입은 사실에 대해 심대한 경각심을 느꼈을 것이다. 이에 대응해 북한은 참수작전 방어체계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하요새화, 기만전술, 이동식 C4I 강화를 최우선 군사과제로 설정하며 생존성 확보에 사력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의 선제타격 능력을 억제하기 위해 미 본토를 겨냥한 ICBM의 다탄두화 및 고체연료 고도화에 나서는 한편, 한국과 일본을 겨냥한 단거리 전술핵의 정밀성과 실전 운용능력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다. 나아가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보여준 ‘세계 경제의 무기화’ 효과에 착안하여, 유사시 한·일의 핵심 산업시설과 해상수송로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군사-경제 복합전 역량과 비대칭 해상·지상 전력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구축함 최현호에서 전략순항미사일 2기와 반함선미사일 3기의 시험발사를 참관했다고 조선중앙TV 14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6.4.14. 연합뉴스
북한은 대화 재개 보다 ‘핵 보유국 인정’에 더 집착할 것
이란이 받아든 14개 항의 종전 합의안은 본질적으로 ‘핵무기 개발 포기’와 ‘동결자금 해제 및 제재 완화, 관계 정상화’를 맞바꾼 거대한 거래다. 고농축우라늄(HEU)을 완전히 폐기하고 영구적인 종전을 선언한 이 딜의 구조는, 역설적으로 ‘핵무기 포기’라는 단 한 가지 조항을 제외하면 과거 북한이 대미 협상에서 그토록 갈구해 왔던 제재 해제와 관계 정상화 등의 혜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평화적 목적의 저농축우라늄(LEU) 생산 권리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란전쟁’의 종착지는 북한에 대화 재개의 동기 부여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독자적인 핵보유 노선을 결코 돌이킬 수 없도록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은 아무리 이란이 비대칭 소모전과 호르무즈 봉쇄라는 강력한 협상력을 발휘해 세계 경제를 인질로 잡았다 한들, 최종 단계에서 ‘핵포기’를 수용하지 않는 이상 미국과의 근본적인 체제보장 딜이 불가능하다는 미국-이란 종전 합의의 한계를 냉정하게 읽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향후 대미·대남 대응에 있어 ‘핵보유국 인정’ 없이는 그 어떤 협상 테이블에도 앉지 않겠다는 대화 거부 방침과 강압(Coercion) 외교를 한층 극단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이란의 평화적 핵주권조차 인정하길 주저하는 미국의 태도로 볼 때 이번 종전 합의 수준의 타협안은 북한 수뇌부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특히 미국이 중동 리스크를 덜어내고 아·태 지역으로 고정밀 선제타격 자산을 재배치하는 군사적 압박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보유한 핵의 실전 운용력’을 과시하는 벼랑 끝 전술에 매달릴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등 동아시아로 유입되는 미군 전략 자산
‘이란전쟁’의 종전 합의는 역내 미군 자산의 대대적인 이동을 유발하며 한반도 안보정세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동 리스크를 덜어낸 미국은 이동식 중거리미사일 발사대인 ‘타이폰’을 연합훈련의 명분 아래 일본 규슈지역에 신규 배치하는 등 전략자산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대거 이동 배치하고 있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중동지역으로 이전해 간 사드 포대도 주한미군 기지에 재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종전 합의 이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한국군의 역할 확대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한반도는 아시아의 심장에 꽂힌 단검과 같다”는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처럼, 대만-한반도의 안보적 연계가 현실화되면서 중국-대만 분쟁 시 평택이나 군산기지 등 한국 내 미군기지가 분쟁에 개입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이는 한반도 전체를 거대한 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는 중대한 안보적 인화성을 유발하고 있다.
중국 본토를 사정거리 내에 둔 일본 배치 미사일(오른쪽 푸른색). 위에서부터 후지 육상자위대 주둔지 배치 25식 고속활공탄 (수백km 사정거리), 구마모토 겐군 육상자위대 주둔지 배치 25식 지대함 유도탄 (1000km급 사정거리), 가노야 해상자위대 항공기지 *미군 토마호크(1600km) 쏠 수 있는 타이폰 배치 *중국이 사정거리 내. 왼쪽(분홍색)은 중국의 중거리 및 준중거리 탄도미사일 보유 현황. *준중거리탄도탄미사일(1000~3000km) 1300기 *중거리탄도미사일(3000~5500km) 550기. 일본경제신문 6월 20일
이처럼 숨 막히는 동아시아 지정학적 격변과 북한의 독자적 핵 강압 노선 강화라는 이중의 파고 속에서 대한민국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타성적인 안보 의존에서 벗어나 철저히 국익을 축으로 한 압축적이고 영리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 우리 경제의 생명선인 4대 해상교통로(SLOCs)가 주변국의 일방주의와 비대칭전략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을 극복할 열쇠는, 독자적인 비대칭 거부(A2/AD) 역량 강화와 함께 한미 동맹의 틀을 전략적으로 역이용하는 명민한 자강 외교에 있다.
자강의 국방전략과 한미 동맹의 실용적 역이용은 주변국을 정교하게 다루는 실용주의 다자외교를 통해서만 견고해진다. 일본과는 한미일 협력의 틀 내에서 셔틀외교를 지속하고, 상호 국빈방문으로 관계를 전면 복원한 중국과 경제·민생 협력을 심화해야 한다. 러시아와도 북극항로 및 경제 재진출을 매개로 북·러 밀착을 우회적으로 무실화하여 러시아를 한반도 문제의 건설적 중재자로 견인할 필요가 있다. 외교 지평을 글로벌 사우스로 다변화해 ‘G7+ 외교강국’으로 나아가는 것은 통상국가의 외연을 지키는 길이다.
‘평화통일 지향하는 특수관계’ 전제 위에 평화구조 대전환 이뤄야
조성렬 경남대학교 초빙교수
이 모든 실용외교의 종착지는 결국 한반도 평화구조의 완전한 대전환이다. 북한이 ‘이란전쟁’의 교훈을 학습하고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선언하며 핵 강압을 일상화하는 교착기일수록,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의 특수관계라는 헌법적 정체성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우리는 국내 합의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두 국가의 실체를 인정하되, 단순한 외국 관계가 아닌 과도적 특수관계임을 천명하는 ‘남북기본협정’의 체결과 국회 비준·동의를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 잠정적 평화구조를 디딤돌 삼아 사실상의 통일 상태인 ‘남북연합’을 전개하고, 최종적인 법적 통일국가로 이행하는 치밀한 로드맵을 가동해야 한다. 이란전쟁이 동아시아 안보 지형에 새긴 엄중한 연쇄 위기와 한층 더 완강해진 북한의 핵 독트린을 거울삼아, 대한민국은 흔들림 없는 자강국방과 외교적 자율성에 기반한 고차원적 실용외교를 융합하여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구조를 주도적으로 완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조성렬 전략노트 insscs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