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그린허싱 vs. 유럽은 녹색채권 342조원 사상 최대 [뉴스] 미국 기업들이 정치적 보복을 두려워해 친환경 행보를 숨기는 그린허싱(Greenhushing) 에 빠진 사이, 유럽 녹색채권 시장이 다시 반등하며 전 세계 기후금융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재부각된 데다, ESG에 대한 유럽 내 높은 관심이 이어지며 올해 글로벌 녹색채권 발행 규모는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5일(현지시각) 영국 클라이밋본드이니셔티브(CBI)의 최신 데이터를 인용해, 올해 상반기 유럽에서 2420억달러(약 342조원) 규모의 녹색채권이 발행됐다고 보도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 전세계 녹색채권 발행 총액은 종전 최대치인 2024년의 6730억달러(약 950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유럽에서는 약 3740억달러(약 529조원)의 녹색채권이 발행돼 세계 발행량의 약 55%를 차지했지만, 올해는 유럽 비중이 세계 시장의 약 3분의 2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기업들이 정치적 보복을 두려워해 친환경 행보를 숨기는 그린허싱(Greenhushing) 에 빠진 사이, 유럽 녹색채권 시장이 다시 반등하며 전 세계 기후금융을 주도하고 있다./ 챗GPT 생성이미지
미국 34조원이 아니라 48조원…유럽과 격차 확대
유럽과 가장 대조적인 곳은 미국이다.
미국의 녹색채권 발행은 2021년 940억달러(약 133조원)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해에는 770억달러(약 109조원)가 발행됐고, 올해 상반기에는 340억달러(약 48조원)에 그쳤다. 올해도 연간 발행액이 전년보다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FT는 전했다. 반면 유럽 시장은 ESG 열풍이 다시 거세지는 분위기다.
네덜란드 ABN암로의 라리사 드 바로스 프리츠(Larissa de Barros Fritz) 수석 채권전략가는 FT에 미국 기업들이 ESG나 에너지전환 자체를 포기한 것이라기보다 관련 사업을 하면서도 녹색이라는 라벨을 붙이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며 올해 유럽 시장에서는 ESG 이슈가 다시 중심에 섰다 고 평가했다.
자산운용사 페더레이티드 허미스(Federated Hermes)의 미치 레즈닉(Mitch Reznick) 채권 책임자 역시 유럽의 시장 점유율 확대가 미국의 녹색채권 발행 감소분을 충분히 메우고 있다 고 분석했다.
유럽 녹색채권 다시 뜬 이유…에너지안보
올해 녹색채권의 급반등을 이끈 핵심 동력은 전력회사와 에너지 인프라 기업이다. FT는 최근 미·이란 전쟁에 따른 에너지 충격 이후 유럽이 에너지안보를 다시 핵심 정책 과제로 인식하면서 전력회사 채권에 대한 투자 수요가 커졌다 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곳이 스페인 최대 전력회사 이베르드롤라다. 이베르드롤라는 지난 6월 15억유로(약 2조4500억원) 규모의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4년물과 10년물 각각 7억5000만유로(1조2200억원)로 구성됐는데, 투자 주문은 발행 예정액의 3배인 45억유로(약 7조3400억원)를 넘어섰다. 330개 이상의 기관투자자가 참여했다. 이베르드롤라는 이 자금을 사업 추진 국가의 전력망 투자와 일부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입하기로 했다.
프랑스 국영 전력회사 EDF도 지난 2월 27억5000만유로(약 4조4800억원)의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투자주문은 약 110억유로(약 17조9400억원)로 발행액의 4배에 달했다. 특히 EDF 사례는 최근 녹색금융의 변화를 보여준다. 2년물과 5년물로 조달한 자금은 프랑스 기존 원자로의 수명 연장에, 12년물과 20년물은 영국 힝클리포인트C(Hinkley Point C) 신규 원전에 투입된다.
규제 불확실성 해소
아울러 유럽연합(EU)의 강화된 녹색채권 표준(EuGB) 및 국제자본시장협회(ICMA)의 새로운 가이드라인 도입 등이 이뤄지면서, 올해 관련 규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된 점도 발행량 증가에 기여했다.
EU는 2024년 말부터 유럽녹색채권표준(EuGBS)을 시행하고 있다.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제도는 아니지만 ‘European Green Bond’라는 라벨을 붙이려는 발행자는 EU 택소노미와 높은 수준으로 연계된 자금사용 기준과 공시, 외부 검토 절차 등을 따라야 한다.
CBI 자료에서도 이런 흐름은 나타난다. 올해 1분기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녹색채권 발행액은 1502억달러(약 212조원)로 전년 동기보다 5% 증가했다. 녹색채권은 녹색·사회적·지속가능·지속가능연계채권을 합한 시장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독일은 올 1분기에만 309억달러 규모의 녹색채권을 발행해 역대 가장 많은 분기 발행액을 기록했다.
프랑스 투자은행 소시에테 제네랄의 후안 발렌시아(Juan Valencia) 크레디트 전략가는 유럽의 녹색채권 발행량이 지난해와 2024년 수준을 크게 뛰어넘어 신기록을 세울 것 이라며 기후 전환 가속화와 함께 시장 확대가 지속될 것 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