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의 메신저 가 법윤리 가르쳐…기막힌 가재환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을 펼쳐 읽는다. 가재환(賈載煥, 1940~2025) 항목의 부제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제5공화국 시절 대법원장 비서실장, 안기부 압력을 법관들에게 전달해 사법 독립성 훼손
그리고 그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사법독립을 파괴한 법관이 사법연수원장 시절 법조윤리 강의
이 두 문장 사이의 거리가 한국사법부의 한 시대를 말해준다.
사법독립을 파괴한 사람이 법조윤리를 가르쳤다. 풍자가 따로 없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가재환 사법연수원장이 연수생들을 대상으로 마지막 강의와 기념사진 촬영을 했다. 1999.10.6. 연합뉴스
1940년 출생, 엘리트 코스의 끝에 선 자리
가재환은 1940년에 태어났다. 제15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동기로는 김광일, 이용훈, 강원일 등이 있다. 이 동기들 중 판사가 된 가재환, 이철환, 정상학 등이 훗날 나란히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에 수록됐다. 한국 엘리트 법조계의 한 기수가 어떻게 한꺼번에 사법역사의 어두운 면에 이름을 올리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재환은 판사로서 꾸준히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1981년, 전두환(1931~2021) 정권이 들어선 직후 유태흥(1919~2005) 대법원장 체제에서 대법원장 비서실장에 올랐다. 이 자리가 문제였다. 비서실장은 대법원장의 뜻을 안팎으로 전달하는 직책이다. 그런데 가재환의 비서실장 시절, 이 소통 경로는 다른 방향으로도 작동했다. 안기부의 뜻이 가재환을 통해 법관들에게 전달됐다.
가재환(‘판결 방패로 진실 눈감은’ 판사들의 쓴잔, 한겨레, 2010.6.14.)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 안기부가 재판에 손을 댔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이 주목하는 가재환의 핵심 반헌법 행위는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과 관련된 것이다. 안기부는 이 사건의 재판 과정에 적극 개입했다. 안기부가 만든 문건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대법원 측(비서실장 가재환)에서는 이일규 대법관의 체면유지 등 대내 사정에 의하여 대법원장의 사전 양해 하에 정책적으로 파기한 것이며, 다음 상고심에서는 유죄를 선고할 예정이니 관계기관의 큰 오해 없기를 바라고 있다.
이 문건은 충격적인 사실을 담고 있다. 재판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안기부가 미리 파악하고 있었고, 그 정보경로에 대법원장 비서실장 가재환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심장부가 안기부와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숨을 쉬고 있었다.
안기부는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통한 외압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일규 대법원판사에 대한 내사와 미행, 변호인에 대한 내사와 비위사실 수집까지 시도했다. 재판이 불리하게 흘러가자 재판장과 변호인을 사찰해 압박하려 한 것이다. 가재환은 이 구조 안에서 안기부의 뜻을 법관들에게 전달하는 합법적 채널 로 기능했다.
가재환.([사람들] 퇴임 가재환 원장 법조 윤리의식 갈고 닦아야 , 조선일보 1999.10.6.)
세계사 속의 동류, 권력과 사법부 사이의 파이프 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 떠오른다. 소련의 안드레이 비신스키(Andrey Vyshinsky, 1883~1954)는 검사로서 스탈린(1878~1953)의 뜻을 법정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직접 재판을 주재했다. 가재환보다 훨씬 노골적이었다.
더 닮은 인물은 나치 독일의 한스 하인리히 람머스(Hans Heinrich Lammers, 1879~1962)다. 히틀러(1889~1945) 내각의 총리실장으로서 총통의 뜻을 각 부처와 법원에 전달하는 행정적 역할을 맡았다. 그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전달했다. 그리고 그 전달이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결정들을 합법화했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가재환의 역할도 이와 유사한 구조다. 직접 판결하지 않았다. 전달했다. 그리고 그 전달이 고문으로 조작된 간첩들의 유죄를 확정하는 데 기여했다.
1950년의 안드레이 비신스키(위키피디아)
유태흥 체제의 사법부, 외압은 조용히 처리한다
가재환이 비서실장으로 일한 유태흥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는 어떤 모습이었나. 『반헌법행위자열전』에 따르면, 일부 법관들이 간첩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하거나 시위학생들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리자 공안기관의 사법부 개입이 갈수록 노골화됐다. 유태흥은 이런 외압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가재환 비서실장을 통해 조용히 처리했고, 눈엣가시 같은 법관들은 좌천인사로 솎아냈다.
사법부 독립을 지켜야 할 자리에 있는 대법원장이 외압을 처리하는 방식이 조용히 와 좌천 이었다. 가재환은 그 조용한 처리 의 실무자였다. 법원 안에 심어놓은 권력의 귀이자 입이었다.
1986년 비서실장직을 마친 가재환은 이후 법관으로서 경력을 이어갔다. 그리고 사법연수원장이 됐다. 그 자리에서 법조윤리를 강의했다. 사법독립을 파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미래의 법조인들에게 윤리를 가르친 것이다. 이 역설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풍자? 비극? 아니면 그냥 한국의 일상?
가재환([부고] 가재환(전 사법연수원장)씨 별세 | 연합뉴스, 2025.10.31.)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는 사법부 독립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들이 촘촘하게 짜여 있다. 1701년 왕위계승법이 판사의 신분보장을 규정한 이래, 행정부가 사법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은 심각한 헌정위기로 취급된다. 1980년대 영국에서 정부 관리가 특정재판의 결과를 법관에게 전달 하는 일이 있었다면 즉각 의회 청문회가 열렸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가재환이 안기부의 압력을 법관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고, 이후 사법연수원장에 올라 윤리를 가르쳤으며, 2025년 사망할 때까지 그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나 책임 추궁은 없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조희대의 사법부가 내란세력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지켜보며 나는 가재환을 떠올렸다. 사법부 안에 권력의 파이프가 작동한다는 것, 그리고 그 파이프를 통해 움직인 사람이 나중에 윤리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 그 구조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지 않은지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가재환의 이름을 기록했다. 화려하지 않은 이름이다. 그러나 역사는 총을 든 자만큼, 전화를 건 자도, 메모를 전달한 자도 꼼꼼하게 기록한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