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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란희의 TalkTalk】 2024 첫레터- ESG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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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2024년 늦은 신년 인사드립니다. 지난해 11월부터 2개월 동안 칼럼을 쓰지 못했습니다. 7년 동안 다니다 쉬었다를 반복한 박사과정의 마지막 단계인 논문을 마무리짓기 위해 동분서주하다보니, 주경야독에 주말까지 반납하느라 도저히 칼럼을 쓸 수 있는 물리적, 정신적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12월 29일, 대학 도서관에 검정색 박사논문 제본을 제출하고 행정실에 확인증까지 주고 나니 더이상 지쳐서 텍스트를 한 글자도 쓰기 싫었습니다. 만학도를 고려하시는 분들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학위는 수명 혹은 건강과 맞바꾸는 작업입니다. ^^ 한달 정도 쉬니까, 이제 글을 좀 쓰고 싶어집니다. 올해는 바쁜 틈틈이 칼럼과 좋은 기사로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U, 기후에서 국방으로 지출 중심 전환? 첫 칼럼 주제는 ‘전략적인 ESG vs. 기술적인 ESG’라는 이야기로 풀어볼까 합니다. 사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상황이 좀 드라마틱합니다. 파이낸셜타임즈의 클라이밋(Climate) 섹션에서 최근 눈에 띈 기사는 ‘EU, 기후에서 국방으로 지출 중심 전환’이라는 내용입니다. 핵심 내용은 EU가 기후규제에 대한 반발에 직면한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서 지출의 우선순위를 경제 녹색화에서 국방 투자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EU는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항해 8000억달러(약 1000조원)에 달하는 유럽주권기금(European Sovereignty Fund)을 통해 코로나 19 경제회복과 친환경 전환을 꾀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저탄소 기술과 과학연구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포함한 100억유로(약 14조원) 규모의 ‘전략 기술 플랫폼(Strategic technologies platform, STEP)’을 추진했으나, 정상들은 유럽 국방기금을 위한 15억유로(약 2조1600억원)만 동의했다는 것이 FT의 설명입니다. 아직 최종 협상 중이기는 하지만, 녹색기술이나 기후 관련 투자가 아니라 국방 관련 프로젝트로 관심이 쏠린 현상에 대해 독일 싱크탱크인 아고라 에네르기엔데의 프라우케 전무는 “녹색 정책의 맥락이 2019년 브뤼셀이 처음 그린딜 기후법을 제안했을 때와 매우 다르다”고 설명했다고 FT는 밝혔습니다. 2019년 ‘기후은행’이라고 지칭했던 유럽투자은행(EIB) 또한 무기 산업에 더 많은 프로젝트 자금을 지원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블랙록, 2024년 스튜어드십 보고서 그런가 하면, 블랙록의 ‘2024년 스튜어드십 보고서’에 보면, 기업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관여) 우선순위가 약간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블랙록의 스튜어드십 리포트는 수천 개 기업의 주주로서, 주주총회에 앞서 ‘위임 투표(proxy voting)’이나 관여 전략을 어떻게 사용할지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블랙록은 “인공지능(AI)와 고금리로 인해 기업들이 동요하는 상황에서, 장기적인 재무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이러한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블랙록은 2024년 우선순위 목록에 지난해와 똑같이 ‘기후 및 자연자본’을 올려놓았습니다. FT는 “블랙록은 ‘지구 온난화’ 및 ‘2도 이하 기준’ 등과 같이 예년에 쓰던 용어를 빼버렸다”면서 “블랙록은 우파와 좌파의 극심한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최근 분기별 규제 소송항목(regulatory filing)에 ‘ESG 이슈’를 추가하기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마도 기후 변화나 지구 온난화라는 용어를 싫어하는 공화당을 의식한 것 아닌가 하는 분석입니다(최근 유엔의 한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들었던 후문인데,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유엔에서 근무하던 미국인 친구가 정부 문서에서 ‘기후(climate)’라는 용어를 모두 빼고 ‘날씨(weather)’라는 용어를 쓰게 하는 바람에, 너무 부끄럽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기후변화는 인간의 산업활동 때문이 아니라고 보고 있지요).    ESG 정책적 리스크의 시대  2020~2021년의 ESG 광풍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의 상황이 무척 놀라울 지경입니다. 기업의 ESG 담당자들도 갈길을 찾아 헤매며, “앞으로 ESG팀은 공시와 평가만 책임지면 되는 것인가”라며 여러 고민을 많이 털어놓습니다.  ESG는 분명 ‘정책적 리스크’에 처해있습니다. 미국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이 매우 강력하게 점쳐지고 있고, 이미 영국의 리시 수낙 총리는 지난해 내연기관 신차 판매금지 시기를 2030년에서 2035년으로 늦춘데 이어, 신규 기름보일러 판매금지 시기도 2026년에서 2035년으로 늦추겠다고 발표했으며, 히트펌프 생산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기업에 벌금을 부과하려된 계획도 철회 예정입니다. EU 선거에서도 이런 ‘ESG 백래시(backlash)’ 흐름이 나타날 경우, 전 세계는 넷제로 후퇴 및 보호무역주의, 각자도생이라는 길로 가게 될 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번 달리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사실 ESG는 우리가 지고지순하게 지켜야만 하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붙들어야만 하는’ 고유 명제는 아닙니다.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라는 용어로 바꿔보면 오히려 더 직관적이지요. 지속가능한 기업이나 투자라는 개념은 사실 끊임없이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합니다. 재무 성과처럼 ‘넘사벽’ 사례와 논리로 무장된 개념은 공격을 덜 받지만, 지속가능성(ESG) 성과가 그런 경지에 오를 때까지 아마 끊임없는 공격이 이어질 것입니다.  유럽연합(EU)에서 비재무정보보고에 관한 지침(NFRD)이 통과된 것이 2014년이었고, 이것이 기업지속가능성공시지침(CSRD)이라는 체제 하에서 5만개 기업에까지 의무화되는 시점이 2024년이니 무려 10년이 걸렸습니다. ESRS 기준 하에서 보고해야 하는 데이터포인트만 해도 1100개가 넘으니, 이 중에서 어떤 데이터가 기업의 재무성과 및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되고, 검증되려면 시간은 훨씬 더 많이 걸릴 겁니다.   BP와 행동주의 투자자의 갈등, 가치의 충돌  게다가 결정적으로 ESG는 ‘가치의 충돌’이라는 핵심적 반발을 갖고 올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최근에 FT 기사에서 흥미롭게 본 BP의 사례를 들어볼게요. 블루벨 캐피털 파트너스가 BP에 보낸 30쪽짜리 레터가 지난 1월말 공개됐습니다. BP는 2020년 2월 버나드 루니가 CEO로 취임한 이후 저탄소 에너지에 막대한 투자를 했지만, 그의 사퇴 이후 2030년까지 석유 및 가스생산량을 2019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25% 감축으로 바꿨습니다.  블루벨이 지적한 내용은 “과연 BP는 경쟁이 매우 치열한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성공할 준비가 되어있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BP는 재생에너지 투자에서 6~8%의 내부수익률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석유 및 가스사업에서 얻는 수익률인 15~20%에 훨씬 못미치는 수익입니다. 수익률이 BP의 자본비용보다 밑돌 수 있다는 것이죠. 게다가 지난해 독일 해상풍력 경매에서 공격적인 입찰을 함으로써, 인수비용을 훨씬 비싸게 줬다고 블루벨은 지적합니다. 블루벨은 “BP가 수익을 내기 힘든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대신, 차라리 그 금액을 경쟁력있는 재생에너지 회사에 투자할 수 있는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게 낫다”고 주장합니다. 블루벨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BP는 차라리 2030년 하루 230만배럴에서 250만배럴로 생산량을 늘리되, 재생에너지 대신 바이오에너지 및 수소와 같은 전통적인 사업과 연결되는 저탄소 분야에만 투자해서, 주주 보수를 늘리는 게 낫다”고 덧붙입니다. 참고로, 블루벨은 1억5000만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열정적인 환경운동가’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며, 이미 베스타스, 독일 RWE의 해상풍력 등에도 투자한 바 있습니다.  어떤가요? ESG의 평가 항목 가운데에서도, 환경(E)과 사회(S)의 가치 충돌이 존재할뿐만 아니라, 특히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해야 하는 업종의 경우 흔히 ‘공정 전환(just transition)’까지 같이 추진해야 하기에 기업 내부의 부담은 막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는 되도록 안 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결론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제가 ‘전략적인 ESG와 기술적인 ESG’라는 키워드를 생각한 이유가 바로 여기입니다. ESG 혹은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는 “보기 싫으니 당장 치우라”고 미 공화당이 아무리 소리쳐도 사라지기 힘듭니다. ESG라는 용어만 뺄 뿐입니다. 기술적인 ESG는 사라져도, 전략적인 ESG는 계속 될 것입니다. 수많은 투자자들이 미래 에너지, 미래 모빌리티, 미래 산업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직원들이 나서서 성과급 문제에 대해 트럭시위를 하는,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기업 ESG 담당자들이 “ESG가 다 죽었다”는 내외부의 트렌드에 위축돼, 너무 좁은 생각과 사고방식에 갇혀있으면 위험한 이유입니다.  ESG는 우리 기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예방주사임을 믿고, 더 많이 공부하면 좋겠습니다. ESG만큼 공부해야 할 게 많은 영역이 없는 것 같습니다. 2024년, 모두 함께 즐겁게 공부하시죠!!    ※이 칼럼은 한주 전 수요일 발송되는 뉴스레터입니다. 칼럼을 좀 빨리 읽고 싶은 분은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박란희 대표 &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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