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안개, 혁명의 도시 맨체스터와 엥겔스, 튜링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국 북부에 자리한 맨체스터(Manchester)라는 도시의 이름을 처음 들으면 대부분의 한국인은 축구를 떠올린다. 붉은악마니 하늘색 전사니 하는 축구 응원단과 구단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이 도시는 단순히 공을 잘 차는 동네가 아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경제적 격변인 산업화의 진원지이자, 여성참정권 운동의 발원지이며, 컴퓨터 과학의 모태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세계를 뒤흔든 사람들이 빗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맹렬히 일해 온 도시다. 맨체스터는 연간 강수일이 140일을 넘긴다. 우산 없인 못 사는 곳이다.
맨체스터 딘스게이트 스퀘어(위키피디아)
로마인들이 처음 쌓은 진흙요새, 기원전부터 산업혁명까지
맨체스터의 역사는 로마제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기 79년경, 로마 군인들이 아이어웰(Irwell) 강과 메드록 강이 만나는 지점에 마무키움(Mamucium) 이라는 작은 요새를 세웠다. 젖가슴 모양의 언덕 을 뜻하는 켈트어에서 온 이름이라니, 참으로 로맨틱한 시작이다. 지금도 카슬 필드(Castlefield) 지구에 가면 그 요새의 흔적을 볼 수 있다.
17~18세기에 이르면, 맨체스터는 면직물 공업의 중심지로 부상한다. 1761년에는 브리지워터 운하가 완공되어 탄광의 석탄을 도시로 실어 날랐고, 1830년에는 세계 최초의 도시 간 증기기관차 노선인 리버풀·맨체스터 철도가 개통됐다. 이 철도의 개통식에서 영국의 정치인 윌리엄 허스키슨(William Huskisson, 1770~1830)이 열차에 치여 세계 최초의 철도 사망자라는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축하하러 갔다가 그 새로운 시대에 목숨을 잃은 셈이니, 역사의 아이러니란 이런 것이다.
1845년, 독일 출신 사상가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는 맨체스터에서 2년간 지내며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눈으로 목격했다. 그 기록이 바로 『잉글랜드 노동계급의 형편』(1845)이다. 그의 친구 칼 마르크스(1818~1883) 또한 이 도시를 오가며 함께 연구했다. 자본주의가 가장 뜨겁게 타오르던 바로 그 용광로에서, 자본주의를 해부하는 칼이 벼려진 것이다. 둘이 나란히 앉아 책을 읽던 체담 도서관(Chetham s Library, 1653년 설립)의 창가 자리는 지금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혁명은 도서관에서 시작된다.
멘체스터 카슬필드 운하 분지(위키피디아)
이 도시가 낳고 품은 사람들
에밀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 1858~1928)는 맨체스터 모스 사이드(Moss Side) 출신이다. 1903년 여성 사회·정치 동맹 을 창설해 여성참정권 운동을 이끌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Deeds, Not Words) 를 외치며 단식투쟁, 거리시위, 심지어 방화에 가까운 저항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1918년 30세 이상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됐다. 그러나 팽크허스트는 1928년, 21세 이상 모든 여성에게 완전한 투표권이 주어진 바로 그 해에 세상을 떠났다.
승리의 과실을 누리지 못하고 눈을 감았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2018년 세인트 피터스 광장에는 그의 동상이 제막됐는데, 맨체스터 역사상 왕족이 아닌 여성의 동상이 세워진 것은 팽크허스트가 처음이다.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은 런던 출신이지만 맨체스터 대학에서 활동했으므로 이 도시의 자랑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암호체계 에니그마 를 해독해 전쟁을 2년 이상 단축시키고 최소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1948년 맨체스터로 와서 초기 컴퓨터 개발에 참여했으며 인공지능의 기초개념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가는 그의 공로에 훈장 대신 유죄 판결을 내렸다. 동성애를 이유로 기소되어 화학적 거세를 강요받은 것이다.
1954년, 마흔둘 나이로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고 숨진 채 발견됐다. 영국 정부는 2013년에야 공식 사면했다. 60년 뒤의 사과(謝過)란, 너무 늦어 씁쓸하기만 하다.
앤서니 버지스(Anthony Burgess, 1917~1993)는 맨체스터 하퍼헤이(Harpurhey) 출신의 소설가다. 디스토피아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1962)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국가권력과 폭력, 자유의지를 다룬 이 작품은 지금 읽어도 섬뜩하게 현실적이다. 한국 독자들도 낯설지 않으리라.
이안 커티스(Ian Curtis, 1956~1980)는 포스트-펑크 밴드 조이 디비전 의 전설적 소리꾼이다. 맨체스터에서 활동하며 우울과 실존의 음악을 만들었고, 스물넷 나이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의 음악은 지금도 세계 곳곳의 청년들 귓속에서 흐른다.
1913년의 에밀린 팽크허스트(위키피디아)
꼭 봐야 할 곳들
시청 건물(Town Hall, 1877년 완공): 건축가 앨프리드 워터하우스(Alfred Waterhouse, 1830~1905)가 설계한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시계탑 높이는 85미터다.
민중역사박물관(People s History Museum): 영국 노동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가 담긴 곳이다. 150년 전 노동자들의 손때 묻은 깃발, 파업 문서, 여성운동 자료들이 가득하다. 입장료는 없다. 공짜로 혁명을 배울 수 있다.
과학·산업박물관(Science and Industry Museum): 세계 최초 도시 간 철도의 출발역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증기기관, 방적기, 그리고 세계 최초 저장 프로그램 방식 컴퓨터 맨체스터 베이비 (1948)의 실물 재현품을 볼 수 있다.
체담 도서관: 1653년 설립되어 영어권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도서관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함께 앉아 공부하던 그 창가 자리가 있다.
팽크허스트 센터(The Pankhurst Centre): 에밀린 팽크허스트의 옛 집을 보존한 여성운동 기념관이다. 여성 참정권의 역사를 다루는 영국 유일의 전문박물관이다.
맨체스터 시청 건물.(위키피디아)
맨체스터가 한국에 던지는 물음
역사의 아이러니는 반복된다. 산업화의 선두를 달렸던 맨체스터는 1960년대부터 공장들이 문을 닫으며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었다. 1961년부터 1983년 사이 제조업 일자리 15만 개가 사라졌다. 이 과정에 마거릿 대처(1925~2013)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맨체스터를 직격했다.
그런데 맨체스터는 무너지지 않았다. 1996년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대형폭발물 테러로 도심이 쑥대밭이 되었을 때도, 이 도시는 그 자리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분쟁의 상처 위에 상권과 문화시설을 재건했고, 지금은 북부의 심장 으로 불린다.
1996년 폭탄 테러 이후의 맨체스터 코퍼레이션 스트리트(위키피디아)
여기서 한국이 배울 것은 무엇인가?
첫째, 이 도시는 언제나 아래로부터의 힘 으로 재건됐다. 노동자, 여성, 소수자들이 거리와 도서관과 공장에서 권리를 쟁취해냈다. 둘째, 맨체스터는 과거의 잘못에 대해 (늦었지만) 사과하고 고쳤다. 앨런 튜링에 대한 국가범죄를 인정하고 사면한 것처럼. 셋째, 팽크허스트가 보여준 것처럼 말이 아닌 행동 으로 세상을 바꿨다.
한국은 지금 어디 있는가. 기업가에 의한 노동자 탄압과 여성혐오와 소수자 차별이 여전한 이 땅에서, 맨체스터의 빗속을 걸었던 사람들의 발자국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의 앨런 튜링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으로 기소당하고 있는가. 우리의 에밀린 팽크허스트들은 어느 광장에서 경찰과 마주하고 있는가.
맨체스터는 비가 참 많이 오는 도시다. 그 빗속에서 사람들은 굴하지 않았다. 젖어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이 도시가 세계를 바꾼 방식이다.
윌리엄 와일드가 그린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맨체스터(위키피디아)